소형차·게스트룸·난민 섬… 그의 행동은 ‘취향’이 아닌 ‘지향’이었다 |
등록 : 2014.08.10 21:07 수정 : 2014.08.11 1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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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란치스코 교황. 한겨레 자료 사진 |
아르헨티나에서 태어나 사제가 된 베르골리오와 프란치스코 교황은 많이 다르다. 주위 사람들도 깜짝 놀랄 정도라고 한다. 베르골리오는 아르헨티나에서 개인 대 개인으로는 아주 친밀한 사람이었지만, 대중들 앞에 나서기를 그다지 좋아하는 인물이 아니었다고 한다. 그러나 세상이 일거수일투족을 지켜보는 교황이 된 뒤 누구도 예상치 못한 행보로 세상을 놀라게 하고 있다.
그의 행동을 단순한 인간 프란치스코의 취향으로만 볼 수 없다. 그의 행동 하나하나는 이미지를 넘어선 분명한 메시지를 담고 있다.
가령 그가 교황궁이 아닌 게스트룸을 사용하거나 방탄이 안 되는 소형차를 타는 건 소박한 그의 취향으로 볼 수 있다. 그가 교황이 되자마자 바티칸의 청소부와 노숙자, 병자들을 먼저 초청한 것도 자비심 많은 성격 때문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신자유주의를 새로운 독재로 규정하고, 지난해 11월 첫 권고문 <복음의 기쁨>이란 책자에서 교황으로서 사목 방향을 드러냈을 때, 그의 행동 하나하나가 취향이 아니라 지향점을 갖고 있음이 밝혀졌다.
그는 이 권고문에서 “(구약의) 10계명은 ‘살인하지 말라’고 가르쳤다. 이제는 ‘배제와 불평등의 경제체제를 유지하지 말라’고 말해야 할 때”라며 가난과 불평등을 만들어내는 사회구조와 맞서 싸우는 임무를 계율의 수준으로 과감히 끌어올렸다.
그는 “배제와 불평등의 경제체제야말로 사회 병폐의 뿌리이며, 규제받지 않는 자본주의는 새로운 독재”라고 규정했다. 이어 교회와 그리스도인은 ‘가난한 이들의 해방과 진보를 위한 하느님의 도구가 돼야 한다’고 선포했다. “부의 재분배, 가난한 이들의 사회통합 등과 같은 가치들이 위협받을 때는 예언자적 목소리를 드높여야 한다.”
벼락처럼 쏟아진 교황의 자본주의 비판은 엄청난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1 대 99’의 분열이 깊어지는 가운데, 교회가 1%의 기득권에 쏠리고 있다는 불만을 품어온 이들은 열광했다. ‘이런 분이 교황이 되었으니, 세상도, 가톨릭교회도 조금 달라지지 않을까’라고 기대한 이들의 반대쪽에선 색깔론을 들먹이며 공격에 나섰다.
가톨릭 교계 일각에선 ‘교황이 해방신학에 경도돼 있다’며 불만을 터뜨렸고, 미국의 극우 논객 러시 림보는 “교황의 말은 완전한 마르크스주의”라며 “황당하다”고 비난했다. 그는 이런 매카시적인 이념 공세에도 “2000년 된 교회가 어떻게 200년 된 마르크스주의를 본받을 수 있겠느냐. 마르크스주의가 차용한 것”이라고 받아치는 여유를 보이기도 했다.
그가 교회 내에서 추동하는 변화는 하나하나가 획기적이다. 성직자들에게 교회 밖으로 나갈 것을 촉구하는 그는 개인의 안락과 기복에 안주하는 경향에 대해서도 일침을 놓고 있다. 현실을 외면해서는 안 되고, 힘든 현장 속으로 더 과감히 들어가야 한다는 것이다. 그가 빈민 사목에 가장 앞장서며, 세상의 부정의와 맞서오다가 바티칸으로부터도 박해받던 해방신학의 창시자 구스타보 구티에레스(85) 신부를 교황청으로 초청한 것은 교회의 지향점을 분명히 시사해준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는 매스컴이 지켜보는 행동을 통해 잠자는 세상 사람들을 깨우고 있다. 이기주의와 권위주의를 타파하고 완고한 교회의 벽을 무너뜨리고 있다. 또한 돈 앞에서 쓰레기로 변하는 인간 세상의 변화를 촉구하다.
놀라운 것은 그가 외부를 향해서만 개혁의 목소리를 내고 있지 않다는 것이다. 2000년을 지속해오면서도 가장 강력한 조직으로서 온갖 소설과 영화 속에서 음모가 난무하는 것으로 그려지기도 하는 바티칸을 향해서도 개혁의 칼을 빼어든 것이다. 누군가가 마피아와 연계돼 있다는 풍문까지 돌고, 실제 돈세탁 등 부정부패로 얼룩진 바티칸은행을 개혁하려 할 경우 암살을 당할지도 모른다는 우려에도 불구하고 그는 바티칸은행 조사에 착수하고, 지난달엔 프랑스 금융인 장바티스트 드 프랑쉬를 신임 은행장에 선임해 개혁에 시동을 걸었다.
또 수십년간 대주교, 주교, 사제 등 성직자들의 성범죄로 유럽과 미주에서 원성이 높아가고 있는데도 성직자들 감싸기에만 나서 원성을 받았던 것도 본격적으로 문제 제기했다. 그는 지난 3월 성직자의 성범죄 근절을 위해 8개국 전문가들로 구성된 대책위원회를 발족한 데 이어 지난 5월엔 성직자들의 아동 성범죄에 대해 관용을 베풀지 않겠다고 약속했다.
지난달엔 지금까지 성범죄로 조사받은 성직자들 가운데 최고위급인 요제프 베소워프스키 대주교의 아동 성추행 혐의를 유죄로 인정하고, 교회법상 가장 무거운 처벌을 내리도록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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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란치스코 교황이 부활절을 앞둔 성목요일인 3월28일 로마 교외 카살델마르모 소년원 부속 교회에서 소년원생들의 발을 씻어준 뒤 입맞춤하며 강복하고 있다. 로마/AP 뉴시스 |
팔레스타인 등 국제사회 약자에 손
“무관심의 세계화가 눈물 빼앗아가”
국제사회에서 버림받는 약자들을 위한 그의 행보도 지금까지 힘의 역학만이 지배해온 국제사회 지도자들과는 크게 다른 모습이다. 그가 지난해 7월 즉위 4개월여 만에 처음으로 로마 밖을 떠나 방문한 이탈리아 최남단 람페두사섬은 가난과 가혹한 통치를 피해 유럽으로 몰려드는 북아프리카 난민들이 목숨을 건 밀항지로 유명한 곳이다.
교황이 방문하기 1시간 전에도 168명의 난민을 태운 보트가 그 섬에 도착했다. 해마다 수백~수천명은 난파로, 때로는 갑판 밑 바닥에 짐짝처럼 실려 옮겨지는 도중에 질식해 숨진다. 지난 25년간 사망자가 2만5000명에 이른다.
교황은 이곳에서 불법 이주자 수용소를 찾아, 숨진 이들을 위해 기도했다. 그는 강론에서 “우리 중에 누가 이들을 위해 운 적이 있느냐”고 물었다. “무관심의 세계화는 우리에게서 눈물을 흘릴 줄 아는 능력을 앗아가고 있다”고 탄식했다. ‘세상의 비참’에 대한 공감의 회복을 역설적으로 강력히 요청한 것이다.
지난 6월 중동을 방문했을 때도 이스라엘보다 팔레스타인을 먼저 방문하고, 길을 가던 중 예정에 없이 팔레스타인 마을을 감옥처럼 포위한 분리장벽에서 내려 기도를 올림으로써 국제사회가 약자의 고통에 대해서 더 관심을 가져야 함을 몸으로 말해주었다.
교황의 행동은 독재의 총칼 앞에서도 저항을 멈추지 않은 남미의 해방신학 사제와 수도자들처럼 거침이 없다. 그가 올해 초 세살배기 아이가 마피아에 의해 무참히 살해된 적이 있는 칼라브리아주를 지난 6월21일 찾아 “악의 길을 숭배하는 자들은 하느님과 교감할 수 없다”며 마피아 단원들을 파문했을 때는 행동의 백미였다. 많은 이들은 ‘마피아의 보복’ 가능성을 우려에 두고 있지만 프란치스코 교황은 말한다.
“내 나이에는 잃을 게 별로 없다. 어떤 일이 일어날지는 신의 손에 달려 있다.”
교회 안팎에서 많은 이들이 가톨릭과 세상의 변화를 위해 염원했던 제3차 바티칸공의회가 프란치스코의 일거수일투족에서 이미 시작되고 있다.
조현 종교전문기자, 손원제 기자 wonje@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