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론 말씀 (가나다순)/송용민 신부님

[스크랩]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는 길 - 대림 제1주일 강론(인권주일/사회교리주간)

김레지나 2013. 12. 29. 16:25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는 길 - 대림 제1주일 강론(인권주일/사회교리주간)

 

 

송용민 신부

 

 

 

나는 어떤 세상을 꿈꾸고 사는가? 어린 시절 못 먹고 못 살던 시절에는 하루 세끼라도 굶지 않고 살았으면 하는 바램을 가진 어르신들도 있을테고, 어려서 갖지 못한 것들을 실컷 갖고 누리고 싶던 세상을 꿈 꾸던 이들도 있을 것이다. 대개 사람들이 희망하는 세상은 자신이 이루지 못한 현실이 채워지는 세상일지 모르겠다. 하지만 분명히 우리가 꿈 꾸는 세상은 결코 사라져버리고 말 세속적 가치들로 가득찬 그런 세상은 아닐 듯 싶다. 결국에는 또 다시 사라져버릴 것에 대한 허망함이 아니라, 내 삶을 행복하게 만들어줄 깊은 영적 가치들에 대한 갈망이 인간을 희망하게 할 것이라 생각한다.

 

  유대인들은 세례자 요한이 광야에서 회개를 요구하면서 하느님 나라가 가까이 왔다고 외칠 때 그들이 기다리던 메시아의 도래에 걸맞는 삶의 준비를 하려했는지 모른다. 많은 이들이 회개의 표징으로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러 왔을 때 그들은 최소한 선택된 민족으로서 맞이할 합당한 준비를 위해서였는지 모른다. 하지만 당대의 집권층이자 기득권층이었던 바리사이와 사두가이들이 요한에게 왔을 떄 요한은 입에 담기 힘든 독설을 뿜는다. "독사의 자식들아, 다가오는 진노를 피하라고 누가 너희에게 일러 주더냐?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어라."(마태 3, 7-8)

 

  이런 요한의 독설은 요즘 정치권에서 종교와 갈등을 겪으면서 외친 말들 이상으로 시대를 흔드는 예언자적인 선포였다. 하느님의 나라를 받아들이는 자의 태도는 그야말로 참된 회개, 회심, 회두여야 한다는 것이었다. 자신이 바라보던 세상이 아닌, 하느님께서 이루시고자 하는 세상을 향해 고개를 돌리고, 마음을 돌리고, 생각을 고쳐먹는 것. 그것이 참된 회개의 시작임을 말한다. 하지만 유대인의 기득권층들은 그런 회개보다는 다가올 진노를 피하기 위한 자구책 정도로 생각했는지 모르겠다.

 

인간이 추구해야할 하느님 나라는 성경으로 표현하자만 창세기에 나오는 에덴동산이다. 하느님께서 창조하시고 보시니 좋더라 하신 세상. 인간과 피조물들이 어울려 조화롭게 살던 바로 태초의 세상이다. 이사야 예언자는 그 세상을 은유적으로 다음과 같이 표현하였다.  "늑대가 새끼 양과 함께 살고, 표범이 새끼 염소와 함께 지내리라. 송아지가 새끼 사자와 더불어 살쪄 가고, 어린아이가 그들을 몰고 다니리라. 암소와 곰이 나란히 풀을 뜯고, 그 새끼들이 함께 지내리라. 사자가 소처럼 여물을 먹고, 젖먹이가 독사 굴 위에서 장난하며, 젖 떨어진 아이가 살무사 굴에 손을 디밀리라."(이사 11, 6-8)

 

참 성서적 표상이지만 이보다 더 아름다운 세상이 존재할까? 더 이상 약육강식의 논리가 지배하지 않고, 서로 공존과 평화를 누리는 세상. 어쩌면 어두움이 짙어진 오늘의 세상이 꿈 꿀만한 그런 세상이 아닐까? 그런 하느님 나라를 이 땅에 이루고자 하시는 예수님의 오심을 기다리는 우리들의 삶과 믿음이 어떠해야 하는지는 분명해진다.  사도 바오로가 "그리스도께서 여러분을 기꺼이 받아들이신 것처럼, 여러분도 하느님의 영광을 위하여 서로 기꺼이 받아들이십시오."(로마 15, 7)라고 말한 것처럼 우리가 조화로운 세상을 만들어가는 데 서로를 받아들이는 수행의 삶이 전제된다는 것은 중요한 지적이다.

 

가톨릭 교회가 오늘을 인권주일로 지내는 것도 특별한 의미가 있다. 인권이란 하느님의 모상으로 창조된 인간의 존엄성이 담겨 있는 가장 중요한 개념에 속한다. 그 어떤 인간도 이념과 종교, 권력에 의해 자신의 존엄성이 침해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은 모든 인간 안에 깃든 하느님의 모상성에 근거한다. 그분을 닮았다는 사실이 인권의 가치인데 오늘날 그 가치들이 자본주의와 권력 지상주의에 의해서 훼손되고 외면되고 있는 현실을 생각하면 교회가 추구해야 할 길이 무엇인지 분명해진다.

 

근래 인간의 탐욕과 욕망의 시대 속에서 정치, 경제, 사회, 문화의 전 영역에 걸쳐 펼쳐지는 비인간적 사회모순과 결함을 바라보면서 교회는 세상에 파견되어 복음화를 위해 더 투신할 것을 요청받고 있다. 이른바 정치는 정치인들에게 맡겨진 것이 아니며, 종교는 단지 인간의 영혼 구원만을 위한 위로의 역할만 하는 것이 아니다. 참된 종교는 그 종교가 추구하는 영적인 가치가 이 세상 안에서 펼쳐지기를 바라는 사회적 차원을 가지고 있다. 인간의 삶 안에서 추구되지 않는 가치들은 그야말로 헛된 망상에 불화하다.

 

가톨릭 교회가 가르치는 사회교리는 그리스도의 복음이 세상 속에 녹아들어가 세상을 그리스도의 복음적 가치로 변화시킬 수 있는 원리들을 말한다. 오늘날 생명경시와 환경 파괴, 인권 유린과 경제적 독재형태가 인간의 기본권을 침해하고 있는 현실을 생각하면 가톨릭 교회가 이런 왜곡된 사회 질서를 정화하고 바로 잡는 데 앞장서는 것은 어쩌면 당연하고 적극적으로 요청되는 자세임을 잊어서는 안 된다.

 

 

 

인권주일에 천주교 주교회의 정의평화위원회가 제작 배포한 홍보 영상의 일부와 오늘날의 사회 문제를

요약한 영상을 편집해 올립니다. 본당에서는 전 신자들에게 강론 때 보여준 영상인데, 깊이 묵상할 만한 내용입니다.

 

 

 

 

 

 

 

출처 : 신학하는 즐거움
글쓴이 : 송사도요한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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