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임스 마틴 신부님의 책
<나의 멘토, 나의 성인>(가톨릭출판사) 중에서
나는 죄인이니 - 베드로
P351~P.386
온갖 것의 출발점에 해당하는 인격 차원에서, 우리 모두가 하느님께 다가가는 방법을 알려주는 숭고하고 진솔한 진술이 바로 베드로다. 그 형식은 대단히 놀랍고, 많은 사람에게는 커다란 충격이 되고 실망까지 안겨준다. 우리는 올바로 행동함으로써가 아니라 우습게도 그릇되게 행동함으로써 하느님께 확실하게 나아가게 된다.
- 리처드 로어, <영혼의 형제들>
<전략>
p.360
한참 뒤 신학 공부를 하게 되었을 때, 우리 신약 성경 교수는 칠판에다 솜씨 좋게 도표를 그려 놓고 ‘신학적으로 뚜렷이 구분되는 시각들’이라는 제목을 달았다. 그는 도표 맨 위 칸에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공관복음서의 이름인 마태오, 마르코, 루카를 적었다. 그리고 도표 위에서 아래까지 세로로 낱말을 써 놓았다. 예수, 제자들, 그리스도인의 삶, 그런 다음 각각의 복음서가 이들 주제를 어떻게 예시하고 있는지를 해당 칸에 짤막하게 기재했다.
신약 교수는 마르코 복음 아래쪽 제자들 칸에다 이렇게 적어 넣었다. ‘바보들과 겁쟁이들;, 그리고 마태오 복음 아래쪽 제자들 칸에는 이렇게 썼다. ’믿음이 없는 자들‘
하나같이 이런 형국에서 이들 중의 으뜸은 베드로였다. 그는 늘 좋은 일을 하고 나서 그릇된 짓을 했다. 마르코 복음에서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물으신다. “너희는 나를 누구나고 하느냐?”
누구 하나 만족스러운 답변을 하지 못한다. “엘리야 아니신가요?”제자들은 대답한다. “요한 세례자 아니신가요?” 이윽고 베드로가 입을 열어 불쑥 말한다. “스승님은 그리스도이십니다”
독자가 생각하기에 틀린 대답이 아니다. 하지만 그 후에 예수님이 당신은 고통을 겪어야 한다고 말씀하실 때, 베드로는 판단을 잘 못하고 자신이 메시아라고 단언했던 예수님을 훈계하려 든다. 예수님은 그런 말을 용납하지 않으신다. 그분은 당신이 반드시 고난을 당해야 한다는 것을 알고, 그래서 그 유명한 꾸지람을 입에 올리신다. “사탄아, 내게서 물러가라!” 이는 베드로가 사탄이라고 하시는 말씀이 아니다. 그분은 당신이 체험을 통해 알고 계신 바를, 즉 우리에게 고통의 진실을 받아들이지 않도록 유도하는 충동은 하느님께로부터 나오는 것이 아님을 밝히시는 것이다. 그럼에도 베드로의 딱한 처지를 감지하기는 어렵지 않다. 베드로가 예수님의 말씀에 움츠러드는 모습은 능히 상상할 수 있다.
결국 베드로는 그리스도 공동체를 이끌도록 예수님에게 선택받고 팔레스티나에서 전도하는 동안 내내 주님 곁에 서게 된다. 하지만 스승을 나느냐고 묻는 결정적인 순간에, 잘 알려져 있다시피 베드로는 모른다고 부인한다. 예수님이 예언한 대로 세 번이나, 베드로가 당신을 저버리리라는 것을 알고 계셨다는 사실을 떠올릴 때, 베드로의 수치감은 불길에 석탄을 쏟아부은 듯 타올랐을 것임에 틀림없다.
예수님이 후에 “내 양들을 돌보아라”라고, 자라나는 그리스도 공동체를 이끌라고 당부하신 베드로는 흠이 있는 인간이었다.(예수님이 명백히 그에게 ‘바위’를 의미하는 케파 또는 베드로라고 부여하신 애칭조차 그의 모난 성품을 확인해주고 있다.) 베드로는 처음부터 자신이 죄많고 나약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루카 복음에서 예수님이 베드로를 처음 만나 그가 보는 앞에서 기적을 행하실 때, 베드로는 부끄러움에 움츠러들며 말한다. “주님, 저에게서 떠나 주십시오. 저는 죄많은 사람입니다.”
이것은 거짓된 겸손이 아니다. 이것은 하느님의 신비와 대면하여 자신의 죄악과 개인적인 한계를 분명하게 깨달은 사람의 입에서 나온 말이다. 그리고 그것은 초월적인 존재에 대한 자연스러운 반응이다. 이런 깨달음은 또한 그리스도인의 삶이 성장하는 데 핵심을 이룬다. 이것은 하느님과의 진정한 관계가 시작되었음을 보여주는 겸손의 표지이다. 로욜라의 이냐시오 성인이 일찍이 <영신수련>에서 피정하는 사람에게 ‘나의 죄를 진심으로 깨닫고..... 나의 행동의 잘못을 깨닫도록’ 기도하라고 당부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복음서에 나오는 이야기를 어느 정도 읽어본 사람은 누구나 ‘역사적인 베드로’라 부를 수 있는 인물과 대면하게 된다. 그는 고집 세고, 의심 많고, 갈팡질팡하고, 충동적이다. 독자는 또한 예수님이 베드로를 사랑하되 거리낌 없이 사랑하신다는 사실도 알게 된다.
예수님은 그를 끊임없이 용서하되 심지어 십자가 수난 때의 비겁한 행동까지 용서하고, 그를 한결같이 신뢰하신다. (성경학자들은 예수님이 호숫가에서 베드로에게 “나를 사랑하느냐?”라고 세 차례 물으시는 것은 베드로가 예수님을 모른다고 세 차례 부인한 점을 상쇄하는 의미가 있는 것으로 추정한다.)
베드로가 위대한 성인인 이유는 그의 겸손과 그의 결점들, 의심과 아울러 이 모든 것을 통렬하게 느끼는 깨달음 때문이다. 초기 교회를 이끌고 사람들을 예수님께 인도할 수 있는 이는 자신의 죄가 많다는 사실을 알고 구원하시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아는 베드로같은 사람뿐이었다. 그가 해낸 일을 해낼 수 있는 사람은 베드로처럼 ‘나약한’ 사람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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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에 나오는 루카 복음(5,1-11) 말씀은 베드로 성인의 삶에서 겸손이 차지하는 위치를 말해 준다.
예수님께서 겐네사렛 호숫가에 서계시고, 군중은 그분께 몰려들어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있을 때였다. 그분께서는 호숫가에 대어 놓은 배 두 첫을 보셨다. 어부들은 거기에서 내려 그물을 씻고 있었다. 예수님께서는 그 두 배 가운데 시몬 베드로의 배에 오르시어 그에게 조금 저어 나가달라고 부탁하신 다음, 그 배에 앉으시어 군중을 가르치셨다. 예수님께서 말씀을 마치시고 나서 시몬에게 이르셨다. “깊은 데로 저어 나가서 그물을 내려 고기를 잡아라.” 시몬이 “스승님, 저희가 밤새도록 애썼지만 한 마리도 잡지 못하였습니다. 그러나 스승님의 말씀대로 제가 그물을 내리겠습니다.”하고 대답하였다. 그렇게 하자 그들은 그물이 찢어질 만큼 물고기를 많이 잡게 되었다. 그래서 다른 배에 있는 동료들에게 손짓하여 도와달라고 하였다. 동료들이 와서 고기를 두 배에 가득 채우니 배가 가라앉을 지경이 되었다. 시몬이 그것을 보고 예수님 앞에 엎드려 말하였다. “주님, 저에게서 떠나 주십시오. 저는 죄많은 사람입니다.” 사실 베드로도, 그와 함께 있던 이들도 모두 자기들이 잡은 그 많은 고기를 보고 몹시 놀랐던 것이다. 시몬의 동업자인 제베대오의 두 아들 야고보와 요한도 그러하였다. 예수님께서 시몬에게 이르셨다. “두려워하지 마라. 이제부터 너는 사람을 낚을 것이다.” 그들은 배를 저어 뭍에 대어 놓은 다음, 모든 것을 버리고 예수님을 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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겸손을 이해하는 베드로의 깨달ㄹ음이 나에게는 나를 해방시키는 통찰력이 되었다. 하느님께서 우리들 각자를 부르신다면, 타고난 재능과 결함을 다 지닌 우리를 부르시는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우리의 결함을 통해, 우리 삶에서 우리를 당황하게 만드는 그 부분을 통해 하느님께 더 가까이 가게 된다.
이 모든 이유 때문에, 나는 결국 베드로를 내 서원명으로 정했다. 나는 하느님이 우리를 사랑하시는 방식을 스스로 깨우치기를 바랐다.
누구나 알아 두어야 할 점이 있다. 하느님이 우리의 한계와 죄에 기우는 성향까지 포함해, 있는 그대로의 우리를 사랑하신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다는 점이다. 하느님이 우리가 회심하도록, 갖가지 죄 되는 행실에서 돌아서도록 우리를 끊임없이 부르시는 것은 무엇이나 벗어던지도록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것도 분명하다. 하지만 동시에 하느님은 우리 인간의 본성을 완벽하게 알고 용서하는 이해심 면에서도 당신을 본받도록 부단히 초대하신다.
언젠가 예수회 총회에서 작성한 문건에는 예수회원을 규정하는 놀라운 정의가 나온다. “예수회원이 된다는 것은 무엇을 말하는가? 그것은 자신이 죄인이지만 예수님의 동반자가 되도록 부름 받은 사람임을 아는 것이다.”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의미도 바로 이것이다.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은 ‘사랑받는 죄인’이 된다는 뜻이다.
하지만 하느님이 우리를 그토록 너그럽게 사랑하신다는 것은 믿기가 힘들 수도 있다. 우리가 하느님을 지나치게 우리와 닮은 모습으로 그린 나머지 우리가 사랑하는 방식인 조건부로 사랑하신다고 잘못 생각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하느님의 사랑은 우리가 알 수 있는 어떤 사랑보다 훨씬 깊고 풍성하다. 이를 알려주는 표지 하나가 흔연하게 인간이 되어 인간의 죽음을 감수하셨다는 사실이다. 우리가 하느님의 너그러우신 사랑을 믿기 힘든 것은, 우리가 우리 자신 안에서 발견하는 ‘어떤’ 한계도 인정하기 어렵기 때문이기도 하다. 우리는 우리의 실제 모습이 아닌 대단한 존재이기를 바란다. 사람들은 자신이 ‘좀 더 성스러웠더라면’ 하느님의 사랑을 받을 자격이 있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하느님이 바라시는 것은 우리가 우리 자신을, 또는 토마스 머튼의 표현대로 우리의 ‘참된 자아’를 찾는 것뿐이다. 성화로 향하는 길은 많은 점에서 자신을 찾아 나가는 길이다.
얼마 전에 한 젊은 아버지가 영성 지도 시간에 나에게 죄책감에 사로잡혀 있노라고 털어놓았다. 그가 느낀 것은 이기심, 경제적으로 성공하고 싶은 욕망, 자만심이었다. 이것은 교회 교부들이 말하는 이른바 ‘회한’을 맛본 고통스러운 체험이었다. 그는 이런 허물을 가진 자기를 하느님이 어떻세 사랑하실 수 있는지 의아해했다.
나는 그를 잘 알았고, 그래서 그에게 어린 아들을 사랑하느냐고 물었다. 아들은 소란스럽고 성미 급한 세 살짜리였다. 그는 힘차게 고개를 끄덕였다.
과연 그는 아들의 온갖 결점에도 불구하고 아들을 사랑했던가? 그는 “나는 아이의 결점들 때문에 ‘더욱더’ 아이를 사랑한다.”라고 하면서 별안간 눈물을 쏟는 것이었다. 장담하거니와, 그 자신도 놀랐음이 분명했다.
나는 하느님께서 바로 그런 식으로 우리를 사랑하신다고 말해주고 싶었다. 하지만 아무 말도 할 필요가 없었다. 젊은 아버지의 표정이 이미 알고 있음을 말해주었기 때문이다.
하느님의 조건 없는 사랑을 믿지 않는 우리의 불신은 교활한 방식으로 우리에게 태만을 조장할 수 있다. 우리는 참된 제자 직분으로 우리를 초대하시는 부르심을 참된 제자 되기에는 너무 부족하다거나 재능이 없다거나 평범하다는 등의 핑계로 외면한다. “나는 마더 데레사나 도로시 데이, 요한 23세가 아니다. 나는 너무나 인간적이어서 하느님께는 아무런 쓸모도 없다.”나는 흠이 많기 때문에 하느님을 위해 할 수 있는 것이 없고, 따라서 내가 해야 할 일은 아무것도 없다는 식이다. 우리의 겸손을 하느님을 따르지 않으려는 핑곗거리로 삼다 보면, 우리는 개인적인 소명과 다른 사람들에 대한 책임까지 회피하게 된다.
우리의 한계와 심지어 죄에 기우는 성향까지 이것이 우리를 하느님께 보다 가까이 이끌고 보다 훌륭한 제자로 만들어 주는 경우가 많다. 나는 이 사실을 신학기를 거치는 동안 터득했는데, 그 과정은 누구도 추측할 수 없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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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련기가 끝나고 거의 10년이 지나서야 나는 메사추세츠 케임브리지에 있는 웨스턴 예수회 신학교에서 서품 준비 최종 단계인 신학기를 시작했다. 오랜 세월 훈련을 받고 난 다음이라 나는 신학기를 전망하며 성경과 윤리 신학, 조직 신학, 교회사에 파묻혀 행복해하는 내 모습을 상상했다.
학교에 들어와 처음 몇 달은 내가 기대했던 그대로 이루어졌다. 유능한 교수들이 열정적인 학생들로 가득 찬 강의실에서 흥미진진한 강의를 해나갔다. 나는 학업에 무척이나 재미를 느끼고 있었기에, 어쩌면 성서학 박사 과정까지 공부를 계속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면서 책상에 편안히 앉아 커피 잔을 옆에 두고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고전 음악을 들으며 히브리어와 그리스어 서적, 성경 해설서, 교회 교부들의 저서 같은 책더미에 둘러싸이고 하느님의 말씀 속에 완전히 파묻혀 있는 나를 상상해 보았다. 얼마나 신명나는 앞날로 보였는지 모른다!
그런데 여러 달이 지나고 나자 내 양쪽 손과 손목에 통증이 오기 시작했다. 나는 키보드를 너무 많이 쳐서 그런 것이라 생각하고 컴퓨터 앞에 있는 시간을 줄였다. 그럼에도 통증은 가시지 않았다.
내 친구들은 키보드를 너무 많이 치지 마라. 일을 심하게 하지 마라, 스트레칭을 해봐라, 운동을 좀 더 해라, 좀 더 쉬어라 같은 선의의 조언을 해주었다. 그리고 그들의 조언에 따르고자 애를 썼지만, 통증은 오히려 심해졌다. 통증으로 밤에 잠을 깨고 간단한 일도 하기 힘들어지더니, 끝내는 키보드를 치거나 글을 쓸 수조차 없게 되었다.
장기간 학업에 매진해야 할 시기가 막 시작되면서 이런 일이 벌어진 탓에, 나는 갈수록 불안해졌다. 키보드를 치거나 노트를 작성하지도 못한다면, 어떻게 학생 노릇을 할 수 있단 말인가?
내 주치의는 나를 다양한 전문의에게 보냈다. 나는 신학 수업 사이사이에 보스턴에 있는 열댓 명의 의사를 찾아갔다. 신경과 의사, 류머티즘과 의사, 정형외과 의사는 물론 심지어 손 전문의(나는 그때까지만 해도 이런 분야가 있는지조차 몰랐다.)까지 만났다. 기계에서 전류를 손목에 쏘아대는 괴로운 절차인 엠아르아이, 엑스레이, 전자파 검사 등 수많은 진단을 받았다. 하지만 이런 검사는 결과적으로 통증을 가중시길 뿐이었다. (동거인 한 사람이 물었다. “담당 의사가 누구야, 맹겔레(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 유다인의 생사를 좌우하여 ‘저승사자’로 통하던 히틀러 추종자 -역주) 박사 아냐?” 나는 척추 지압사들 (한 의사는 내 목이 문제라고 말했다.) 안마 치료사들을 (다른 의사는 내가 지나치게 긴장하고 있다고 말했다.) 찾았고, 심지어 침술사까지(또 다른 의사는 해가 될 것 없으니 한번 시도해보라고 말했다) 찾아갔다. 그러나 명확한 진단을 내릴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는 것 같았다.
그후 몇 달은 상태가 갈수록 악화되었다. 하루는 신약 성경 강의 시간에 하혈하는 여성이 예수님에게서 치유를 얻고자 하는 이야기를 읽었다. 그녀는 열두 해 동안 많은 의사를 찾아다니며 치료를 받았지만, 아무 효험도 없이 상태만 더 나빠졌다. 나도 치유가 되려면 그처름 오랜 세월을 기다려야 하는 것은 아닌지 걱정스러웠다.
내 병은 생명을 위협하는 병은 아니었지만, 내가 해냐야 하는 일을 하지 못하게 만드는 쓰라린 체험이었다. 게다가 이 불편은 긴장을 풀기 어렵게 만들고 장래에 대한 두려움만 증폭시켰다. 설상가상으로 훌륭한 학생이라고 자부하던 나 자신이 쩔쩔매게 되었다. 이 문제를 두고 끊이없이 기도했건만, 도대체 이 모든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 길이 없었다. 이런 와중에 하느님은 대체 어디에 계신다는 말인가?
좀 더 분명히 말하자면, 대체 나는 어찌해야 좋다는 말인가? 내 한계를 받아들여 학업을 중단하고 사제 수품을 잊어버려야 한다는 말인가? 아니면 한계를 받아들이되 굳세게 버텨나가야 한다는 말안가? 나의 시련은 통증과 내 일을 완수하지 못하는 데 따른 좌절감 뿐 아니라 어떻게 대처햐아 좋을지 모르는 혼란까지 겹쳤다.
결국 나는 학업을 밀어붙이기로 했다. 다행히도 교수들은 이해심이 있었다. 다들 내가 구두로 시험을 보게 해주었다. 그리고 내 친구들은 으레 노트를 빌려줄 줄 알았다. 하지만 이 기괴한 병 때문에 생긴 걸림돌이 무슨 의미가 있는 것인지 아무리 노력해도 이해되지 않기는 마찬가지였다.
신학기 2년째 들어와 ‘고통과 구원’이라는 강의를 택했다.(그랬더니 한 친구가 “자네는 틀림없이 최고 학점을 받을 거야.”하는 것이었다.) 강의 시간이면 우리는 ‘우리가 무엇 때문에 고통을 당하는가? 라는 문제를 설명하는 여러 성경 구절을 두고 토론을 벌였다. 우리는 구약 성경의 아가와 욥기, 이사야서에서 ’고난받는 종‘이 나오는 대복 등을 읽었으며, 신약 성경에서는 예수님의 수난과 고통을 다룬 대목을 발췌해 읽었고, 바오로 성인의 말씀에 나타난 ’십자가‘의 의미를 두고 묵상했다. 우리는 성경에서 고통을 다루는 설명들의 변천사도 공부했다. 고통은 범한 죄에 대한 징벌이다. 고통은 일종의 정화작용이다. 고통은 우리가 그리스도의 삶에 참여하게 해준다. 고통은 불완전한 세상에 사는 인간 조건의 일부분이다. 고통은 우리가 그리스도의 고통에 부족한 부분을 ’채워주도록‘ 만든다. 등.
하지만 내게는 이런 설명들이 진실처럼 들이지 않거나, 일부만 진실로 들렸다.
우리는 수많은 신학자의 글도 읽었다. 그 가운데 가장 도움이 된 사람은 도로테 죌레였다. 그녀는 자신의 저서 <고통Suffering>에서 그리스도인이 거쳐 나가는 세 가지 접근 방식을 이야기한다. 첫 번째, 그리스도인은 고통의 ‘실제’를 받아들인다. 두 번째로 그리스도인은 ‘자기를 버리고’, 자신 안에서 미래를 통제하거나 고통을 부정하고 싶어하는 부분을 떨어낸다. 그리고 끝으로, 이전의 ‘자기 사랑’이 하느님을 새롭게 받아들이는 이해로 대체되는 체험을 한다.
죌레는 독일의 신비가 마이스터 에크하르트의 통찰력을 활용해 고통의 실재를 부정하지 않으면서 고난보다 하느님의 사랑에 초점을 맞춘 접근법을 제시한다. 그녀는 “이같은 자세가 갖는 힘은 그것이 비참한 상태일망정 실재와 맺는 관계에 있다.”라고 말한다. 그녀가 제시하는 길은 극기나 단순한 묵인이 아니라, 고통이 전체로서의 삶을 긍정하는 거대한 “예yes"의 일부분임을 확인하는 것이다.
바꾸어 말해서 고통을 받아들일 때 (반가워하는 것이 아니라 고통의 실재를 인정할 때) 우리는 마음을 열어 새로운 방식으로 하느님을 체험할 수 있게 된다는 뜻이다.
하지만 죌레의 발상은 이성적으로 일리가 있지만 체험상으로는 별반 의미가 없었다. 사실이 그렇듯이 한정된 나의 고통 체험이 어떻게 하느님을 새로운 방식으로 만날 수 있게 해준다는 말인가? 내가 어떤 형태로든 마음 깊이 ‘받아들이는’ 체험을 맛보고 있다는 느낌이 없는 것만은 확실했다. 내가 육체적인 고통을 생각할 때 느끼는 것이라고는 분노뿐이었다.
내가 나의 영성 지도자에게 “이 십자가는 지고 싶지 않다.”라고 말했더니, 그는 내가 지고 싶어하는 십자가는 십자가가 될 수 없다는 점을 일깨워주었다.
통증은 완전하게 가라앉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줄어들었고, 덕분에 나는 학업을 끝마칠 수 있었다. 물리치료와 마사지와 운동을 병행하다 보니 그럭저럭 통증을 이겨내는 데 도움이 되었고, 하루에 반 시간 키보드를 칠 수도 있었다. 하지만 공부를 계속하고 싶은 욕구는 포기해야 했고, 성경을 공부하여 박사학위를 받겠다는 소망 또한 접어야 했다. 나는 이 실재에 저항하면서도 이것이 어찌 됐든 죌레가 말한 ‘나를 버리는’ 과정의 일부라는 점은 모르지 않았다. 그럼에도 졸업 미사 때 내 친구들과 앉아 3년의 신학기 종강을 축하하는데, 무엇 때문인지 더없이 마음이 아팠다.
내가 이 시절이 갖는 의미와 이것이 그리스도인으로서의 내 삶에 얼마나 필요적절했는지를 깨닫기 시작한 것은 훗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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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사제품을 받고 나서 잡지 <아메리카>의 공동 편집인으로 파견되었다. 신학기 내내 그러했듯 손의 통증은 몇 달이 채 안 돼 심하게 재발했고, 그때마다 나는 일시적으로 절망의 수렁에 빠져들었다. 유달리 맥빠지고 불편스럽던 어느 주일에 나는 제프라는 영성 지도자를 만났는데, 이 예수회 사제는 내가 전에 일했던 동부 저지대 성탄 본당에서 생활하고 있었다.
나는 사제관의 어질러진 응접실에서 미처 자리에 앉기도 전에 지난 여섯 해 동안 (날마다 스트레칭에 수영과 운동을 해야 하는 등) 끊임없이 신경을 쓰면서 정서적 에너지를 소모하고, 지나치게 나 자신에게 초점을 맞추며 살아온 이 신세에 얼마나 화가 나는지 모르겠노라고 토로했다. 나는 쓰고 싶은 만큼 글을 쓰지도 못하는데 남들은 나보다 훨씬 쉽게 써내기 이 얼마나 불공평한 처사냐는 등등.
나의 비가悲歌가 이렇듯 한참 이어지는 동안, 나는 홀가분하다는 느낌보다 오히려 절망에 빠져드는 느낌이었다.
제프는 내 불평을 귀담아듣고나서 몇 초 동안 말이 없었다.
그러다가 이윽고 내게 물었다. “이 상황 어디엔가 하느님이 자리하고 계시는 것 아닐까?”
“아니요!” 나는 단호하게 잘랐다. “전혀 그렇지 않아요.”
그 질문 자체가 지독하게 싫었다! 지난 몇 년 동안 나는 도대체 이런 일 속에 하느님이 어떤 방식으로 자리하실 수 있는지 알아보고자 했지만 실패해온 판이었다.
그런데도 다음 순간 나는 내가 어디에서 하느님을 발견했는지보다 그 체험이 내 삶에 어떤 의미로 다가왔는지에 관해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내가 말했다. “내 생각에 이 고통은 내가 쓰고 있는 글을 두고 한결 마음 깊이 감사드리도록 만들어준다고 봅니다. 내가 무슨 글을 쓰든 그것은 하느님의 은총 덕분이요, 비록 일시적이나마 건강을 선물받았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아니까요, 또 글쓰는 능력에 한계가 있는 내게, 이 고통은 글에 보다 신중을 기하도록 만들어 준다고 봅니다.”
제프가 고개를 끄덕였다.
“어쩌면 나는 참을성도 많아졌는지 모릅니다. 나는 모든 일을 곧바로 해낼 수가 없거든요. 일을 날잡아 단번에 해치워야 하는 신세입니다. 아울러 거창한 기획안을 짜거나 앞으로 쓰고자 하는 온갖 놀라운 일을 누구에게 말할 수 있는 처지도 아니라서, 내 글을 두고 자만심에 빠질 가능성도 줄어들었습니다. 바로 이튿날 키보드를 두드릴 수 있다는 보장도 없는 상태니까요. 그런가하면 이전에 비해 휠체어에 앉아있는 사람이나 목발을 짚은 사람처럼 지체장애가 있는 사람 등 다른 사람들의 육체적 제약을 온전히 알게 되었다고 봅니다.”
“또 다른 것도 있는가?” 제프가 물었다.
“내가 하느님께 의존하고 있음을 보다 확연하게 의식합니다. 나 혼자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음을 아는 까닭이지요. 나는 만사가 하느님께 달려있다는 사실을 잊을 가능성이 적다고 봅니다. 고통이 나를 보다 인정 많은 사람으로 만들어주는 것 같기도 하고요.”
내 잎에서 나온 말이, 하나같이 사실이기는 했지만 도저히 믿기지 않았다.
제프가 미소를 지었다. “그런데도 이 어디에도 하느님이 계시지 않는단 말인가?”
나는 웃음을 터뜨렸다. 갑자기 모든 것이 아주 분명해졌다! 하느님은 이 고통 한가운데 계셨던 것이다. 내가 스스로 알아차린 것보다 많이 ‘나 자신을 버리고’ 있었던 셈이다. 나는 하느님이 나에게 이런 것을 수용하도록 만들기 위해 고통을 야기하신 것이 아니라고 알고 있었지만, 내 마음은 지난 몇 년 동안의 체험을 통해 자연스럽게 열리고 있었던 것이다. 마침내 죌레의 통찰력을 이해할 수 있었다. 고통이 나를 보다 나은 그리스도인, 보다 나은 제자로 만드는 데 도움을 주는 일도 가능했던 것 아니겠는가?
제프가 입을 열었다. “말이 나왔으니 말이지만, 수련자 시절에 장기 피정을 하는 동안 겸손을 바라고 기도하지 않았던 것 아냐?”
“맞아요.” 내가 대답했다. 이 은총을 구하는 일은 영신 수련에서 필수에 해당한다.
“그래, 바로 이것이 그런 종류의 겸손이라네.” 그가 말했다. “자네에게 사물을 바꿀 수 있는 힘이 없음을 알고, 자네가 하느님을 의지하고 있음을 깨닫는 겸손 말일세.”
“이건 내가 바란 겸손이 아닌데요.” 내가 말했다.
“대체 무슨 말인가?”
“내가 바란 겸손은 남들이 날 보고 ‘와, 무척이나 겸손한 사람이다! 정말 대단한 친구야!”하는 겸손이었어요.“
제프가 웃음을 터뜨렸다.
내가 말했다. “난 내가 자랑거리로 삼을 수 있는 겸손을 바랐던 거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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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프의 통찰력은 내가 사소하지만 오랜 기간 지속된 그 시련 한가운데서 하느님을 발견하도록 도와주었다. 우선 이런 어려움을 겪지 않았더라면, 나는 이런 방식으로 하느님을 대면하지 못했을 것이다. 일이 평탄하게 풀려갈 때면, 우리는 우리가 근본적으로 하느님께 의존하고 있음을 잊는다. 적어도 내 경우에는 그렇다. 이것은 미묘한 형태의 오만이다. 나는 무엇이든 다 처리할 수 있고, 상황은 잘만 돌아가고, 인생은 달콤하다. 그런데 하느님이 왜 필요하단 말인가? 우리는 대체로 우리의 방어 능력이(통상 우리의 의지와는 반대로) 떨어지고 그리하여 훨씬 취약한 처지에 놓일 때, 우리가 하느님을 의존하고 있음을 제대로 인식한다. 철학 용어를 빌리자면, 우리는 인생 문제에 직면할 때 우리가 ‘불확정적’ 존재임을 기억하게 된다. 우리는 우리의 삶 자체를 하느님의 자비에 의존하고 있다.
영성 생활에서 겸손이 중심축이 되는 까닭도 여기에 있다. 우리가 있고 싶지 않은 곳에 있을 때 곧잘 하느님을 만나게 되는 까닭이다.
우리 대부분은 혼자 힘으로 밀어붙이는 데 이골이 난 탓에 우리가 하느님께 절대적으로 매여있음을 간과한다. 그리고 이것은 지나친 자급자족에 빠진 나머지 일례로 질병이나 죽음과 대면하는 등 고통을 받는 시간 외에는 하느님께 의존하고 있음을 머리에 떠올리는 경우가 거의 없다. 독일의 신학자 요한네스 밥티스트 메츠는 <마음의 가난>에서 이렇게 말한다. “우리가 우리 존재의 진시로가 동떨어진 삶을 영위하기란 참으로 쉽다. 빈곤한 무한성과 무한한 빈곤이라는 위협적인 空虛공허는 우리를 일상의 걱정거리가 만들어낸 혼란 속으로 이리저리 끌고 다닌다.” 우리는 우리의 부와 자급자족 때문에 타고난 영적 가난에 주의를 쏟지 못할 뿐 아니라, 그것을 인정할 경우 우리네 세상을 뒤엎고 방향을 재정립해야 하기 때문에 적극적으로 무시하기까지 한다.
그런가 하면 물질적으로 가난한 이들은 빈곤한 삶 때문에 자신이 태어나면서부터 하느님께 의존하게 되어 있음을 깨달을 가능성이 한결 높아진다. 수련기가 끝나고 몇 년 지아 나이로비에 있는 예수회 난민 봉사단에서 일할 때, 난민들이 일상적인 대화 중에 하느님을 얼마나 자주 언급하는지 분명히 보았다. 그들은 크고 작은 사건에 직면하면 “하느님, 감사합니다!”하고 말했다. 하루는 예수회 후원을 받아 작은 가게를 운영하는 한 가난한 르완다 여성이 자신의 고충을 이야기하고 있었다. 그런데 불운의 연속에도 그녀는 줄곧 “하느님은 좋은 분이세요!”라고 외쳤다.
이윽고 내가 “왜 하느님이 그렇게 좋으시다는 거죠?”하고 물었다. 그러지 그녀가 소리내어 웃고는 그날 자신에게 일어난 조그만 사건들을 시시콜콜 이야기하는 바람에, 나는 결국 하느님이 정말로 좋으시다는 사실에 동의할 수밖에 없었다. 가난한 사람들은 자신이 하느님께 매여 있음을 보다 깊이 이해하는 까닭에 하느님의 현존을 분명히 식별하는 경우가 많다. 하느님이 가난한 이들 가까이에 계시는 것은 가난한 이들이 하느님을 가까이 모시기 때문이다.
나는 또한 우리가 우리 자신에게서 떼어내고자 하는 부분을 통해 하느님이 각별하게 우리와 만나고 계신다는 사실도 발견했다. 내가 여기에서 말하는 것은 우리의 성품 가운데 우리를 죄로 이끄는 부분이 아니라, 우리를 난처하게 만들고 실망시키고 심지어 부끄럽게 만드는 부분, 곧 우리가 세상에서 감추고 싶어하고 실제로 숨기기 위해 많은 시간을 쏟아붓는 부분이다. 하지만 우리가 취약한 우리 모습을 발견하게 되고, 따라서 하느님께 가장 열려있는 자리가 바로 이곳이다. 일례로 나와 친구로 지내는 쾌활한 사람들 가운데는 자신이 하느님을 발견한 주요한 방법 중 하나가 하느님이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사랑하신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것이었다고 말하는 이가 많다. 시편 작가의 말마따나 “제가 오묘하게 지어졌기” 때문이다. 그들이 이전에는 매력 없다고 내버렸던 그 자리가 그들의 삶 속에서 하느님의 구원 활동 현장이 되는 셈이다. 시편 118장 22절의 말씀처럼 ‘집짓는 이들이 내버린 돌, 그 돌이 모퉁이의 머릿돌’이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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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각한 질병이나 가정의 위기, 가눌 길 없는 절망 같은 것도 우리가 하느님께 매여 있음을 깨닫게 도와줄 수 있다. 몇 년 전 추수감사절 무렵에 아버지가 폐암으로 9개월밖에 살 수 없다는 진단을 받았다. 아버지는 가톨릭 신자로 자라면서 초등학교와 고등학교 시절에 사제와 수사, 수녀들에게 교육을 받았음에도 독실한 종교인의 모습을 한번도 보인 적이 없었다. 나와 내 여동생이 어렸을 때, 아버지는 가끔 주일에 우리를 차에 태우고 성당에 데려다 주고는 차에 앉아서 신문을 읽었다. 그 일은 우리 집안에서 으레 튀어나오는 농담거리가 되었다. 그럴 때면 아버니는 “난 수도 없이 미사에 참석했다.” 라고 하면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너희도 나이를 먹으면 미사를 건너뛰어도 된다.”
하지만 암 진단을 받고 몇 달 지나면서 몸 상태가 악화되어 화학요업으로 치료받다가 방사선 치료를 받고, 집에 누워서 지내고, 호스피스에 입원하고, 요양소로 자리를 옮기고, 마침내 죽음을 맞이하는 동안 아버지는 점차 하느님에 관한 이야기에 많은 관심을 보였다. 심지어 종교에 관해 논의한 적이 한 번도 없는 나와도 마찬가지였다. 아버지는 화해할 필요가 있다고 느끼는 사람을 찾았다. 그리고 하늘나라에서 만나고 싶은 사람들에 관해 생각하고 이야기도 했다. 또한 친구들이 보내주는 상본을 소중하게 간직했다. 그러다가 돌아가시기 전에는 병자성사를 요청했다.
아버지가 특별히 가까이했던 사람은 이전에 나에게 신학을 가르친 제니스 수녀였다. 그녀는 아버지가 병을 앓기 4년 전에 내가 보스턴에서 부제품을 받던 자리에서 우리 부모님을 만났고, 그뒤로 급속하게 친해졌다. 재니스 수녀는 너그럽고 인정 많은 사람으로, 우리 부모님이 가까이 알에 된 최초의 수녀이기도 했다. 특히 아버지는 그녀를 대하면 더없이 편안한 듯싶었고, 대화 중에 그녀의 이름이 나올 때면 으레 “그분은 참 훌륭한 수녀님이시더라.”라고 말했다. 이따금 내가 우리 가족 소식을 듣는 상대는 여동생이나 매제, 사촌이 아닌 바로 재니스 수녀였다.
아버지가 병에 걸리자 재니스 수녀는 자주 전화를 걸고 편지를 보냈으며, 아버지가 돌아가시기 몇 주일 전에는 멀리 보스턴에서 필라델피아까지 찾아와 병실에서 만났다. 그리고 한 시간을 함께 이야기하며 보냈고, 나는 그녀에게 감사를 표한 뒤에 아버지가 갈수록 종교적이 되어가는 것같다고 말했다.
그러자 재니스 수녀가 말했다. “맞아. 임종은 보다 인간적이 되어가는 과정과 같으니까.”
나는 그녀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알아들었다. 하지만 내가 몇몇 사람에게 우리 아버지가 종교적이 되어간다고 말했을 때 그들은 마치 “글세, 그게 결국은 일종의 버팀목 아니겠어? 마지막으로 의지할 수 있는 것 말이야.” 하듯이 점잖은 미소를 머금었다. 그러나 나는 아버지가 자아를 찾고, 자신이 하느님께 의존하고 있음을 깊이 깨닫고, 보다 자연스럽게 종교적이 되고, 보다 인간적이 되어감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 아버지는 온전하게 하느님과 결합했고, 당신 자신이, 즉 당신이 되어있었던 바로 그 사람이 되었다고 생각한다.
메츠는 <마음의 가난>에서 이렇게 적고 있다. “가면이 벗겨지고 우리 존재의 핵심이 드러날 때, 우리가 본디 종교적이며 종교란 우리 존재의 은밀한 지참금이라는 것이 분명하게 밝혀진다.” 아버니가 삶의 종말을 향하고 있을 때 겪은 일이 바로 이것이었다. 그리고 만일 우리가 마음을 연다면, 이런 일은 일생을 살아가는 동안 우리에게도 일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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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드로 성인을 예수님께 보다 가까이 가도록 이끌어준 것은 분명 그의 한계들이었다. 베드로는 재능이 많아서 틀림없이 훌륭한 제자가 될 수 있었다. 그는 입바르고 대답하고 근면했으며, 그리하여 마지막에는 예수님의 벗이 되었던 것같다.
하지만 베드로는 완벽하지 않았고, 완벽한 사람이라면 흔연하게 그물을 버리고 예수님을 따르는 일은 결코 없었을지 모른다.(“이보쇼. 내게는 어부라는 직업이 있고, 일도 잘 풀리고 있으며, 필요한 것은 다 갖고 있는데, 내가 왜 당신을 따라야한다는 거요?”) 완벽한 사람이라면 예수님을 부정하지 않았을 테고, 따라서 용서를 바라는 인간의 갈망을 결코 이해하지 못했을 것이다. 완벽한 사람이라면 다른 제자들과 다투지 않았을 테고, 따라서 화해의 필요성을 결코 이해하지 못했을 것이다. 완벽한 사람이라면 자신에게 예수님이 얼마나 절실하게 필요한지 깨닫지 못했을 테고, 이 진리가 어찌하여 모든 제자 직분의 토대가 되는지 결코 이해하지 못했을 것이다.
베드로는 다른 제자들처럼 불완전했지만, 겸손했기에 자신이 하느님께 절대적으로 매여 있음을 알아차렸다. 이런 이유로 적어도 나에게는 그가 성인 가운데 가장 인간적이로 매력적인 사람이다.
나는 때로 예수님이 베드로의 약점들에도 불구하고 그를 선택하신 것이 아니라, 그 약점들 ‘ 때문에’ 선택하신 것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베드로는 자신의 한계를 인정함으로써 자신이 하느님께 매여 있음을 깨달았다. 이 점은 또한 그로 하여금 예수님이 자신에게 보이신 사랑을 온전히 이해할 수 있게 해주었고, 아무리 인간적인 사람이라 해도 하느님은 그를 통해서도 일하실 수 있다는 사실을 널리 알리게 해주었다. 그리고 이것은 세상 끝까지 전하기에 볼품없는 메시지가 결코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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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아직도 손이 낫지 않아 하루에 반 시간 이상 키보드를 두드릴 수 없다. 하지만 통증을 느끼는 지금, 나는 신학기 과정과 제프와의 만남을 통해 터득했던 바를 머리에 떠올린다. 그리고 베드로 성인을 생각해본다. 마음의 가난이 그로 하여금 어떻게 그리스도를 따르도록 해주었는지를. 그가 인간적인 약점과 한계에 맞서 싸우는 모든 이에게 어떤 방식으로 귀감이 되고 있는지를. 그가 얼마나 담대하게 제자 직분을 수행했고, 예수님이 그를 얼마나 깊이 사랑하고 신뢰하고 용서하셨는지를. 하느님께서 그의 가장 고약한 한계까지 궁극적인 선익에 어떻게 활용하셨는지를. 그리고 무엇보다 서원일에 그의 이름을 택한 것이 내게 얼마나 큰 기쁨인지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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