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톨릭 출판사 책 <나의 멘토, 나의 성인>을 요즘 재미있게 읽고 있습니다.
제임스 마틴 신부님의 멘토가 되어준 성인들에 대한 진솔한 이야기인데요.
그중에서 <마더 데레사>에 관한 부분 중 일부분을 옮깁니다.
마더 데레사께서 돌아가신 후에 마더 데레사께서 겪으신 어두운 밤에 대해 알게 된 기자들이
<마더 데레사도 하느님의 존재를 의심했다. 신앙은 허구다>라는 논지의 기사를 많이 써서
많은 젊은이들과 신자들을 혼란스럽게 한 적이 있지요.
'어두운 밤'에 대한 바람직하고 아름다운 마틴 신부님의 해석을 읽어보라 권하고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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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가 만나는 모든 이와 이 기쁨을 함께 나누라. - 마더 데레사
(전략)
p. 265
그녀의 이야기는 대체로 잘 알려져 있다. 하지만 죽음 이후에야 밝혀져 그녀를 잘 아는 사람들조차 깜작 놀란 일면이 있다. 그녀의 삶에서 숨겨진 이 부분은 오히려 그녀를 더욱 감탄스러운 인물로 만들어 주고 있다.
마더 데레사의 삶에 숨겨진 엄청난 비밀이란 그녀가 다르질링으로 향하는 그 중여한 기차여행 직후, 한동안 하느님이 바로 곁에 계신다는 느낌을 받고 나서 삶 속에서 오래도록 영적 어둠을 체험하는데, 어떤 이들은 영적 어둠이 남은 생애 내내 이어졌다고 본다.
마더 데레사는 기차 여행 후 몇 달 동안 위안에 충만해 있었지만, 그 직후부터 죽을 때까지 하느님과의 거리감을 느끼는 ‘내면의 어둠’을 체험했다. 그녀는 영성 지도자 중 한 사람에게 보낸 편지에서 하느님이 부재하시고, 하늘나라가 텅 빈 것처럼 보이는데, 무엇보다 견디기 힘든 것은 자신의 고통이 무의미해 보이는 것이라고 썼다. 마더 데레사는 페리에 대주교에게 이렇게 토로했다. “나는 내 영혼 속에서 하느님이 나를 원하지 않으시고, 하느님이 하느님이 아니시고, 하느님이 진짜로 존재하지 않는 것같은 끔찍한 상실의 고통을 느끼고 있답니다.”
나는 그녀가 죽고 나서 몇 년 후에 이 글을 처음 읽었을 때 아연실색했다. 가톨릭 잡지 <퍼스트 싱스First Things>에 “마더 데레사의 어두운 밤”이라는 제목으로 게재한 저자 카롤 잘레스키가 활용하고 있는 문서와 편지는 마더 데레사의 시성 절차를 책임 맡은 사랑의 선교 사제회 브라이언 콜로디척 신부가 편찬한 것들이었다. 이 편지들을 보면 마더 데레사가 십자가의 요한 성인이 ‘어두운 밤’이라고 부른 것, 다시 말해서 하느님과의 거리감을 느끼고 기도가 극도로 ‘무미건조해지는’ 장기간의 체험 때문에 몸부림치고 있었음이 확연하게 드러난다. 한때 하느님을 그토록 가까이 느꼈던 마더 데레사에게 이같은 거리감과 버림받았다는 느낌은 혼란과 곤혹과 고통의 근원이 되었다. 콜로디척 신부는 말한다. “우리가 아는 한, 마더 데레사에게 이 ‘암담한’ 신앙과 전적인 순종 상태는 그녀가 죽을 때까지 지속되었다.”
잘레스키가 이런 편지를 두고 언급한 논평 가운데 하나는 나의 반응과 일맥상통했다. “우리는 그녀가 하느님과 황홀하고 신비로운 합일 상태에서 나날을 보냈다고 생각하고 싶어할지 모른다. 왜냐하면 그런 생각이 우리 같은 속인을 의무감에서 벗어나게 해주기 때문이다.”
많은 사람들로부터 ‘살아있는 성녀’로 지칭되던 여인은 당연히 하느님의 현존을 기쁘게 감지하며 나날을 보냈을 것으로 생각했다는 말은 일리 있는 말이다. 그러니까 우리는 가난한 이들에 대한 마더 데레사의 힘겨운 봉사가 남은 우리의 경우보다 쉬웠을 것으로 보았다는 말이다. 왜냐하면 그녀는 우리가 누리지 못한 위안과 확신을 하느님에게서 끊임없이 누렸기 때문일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로 인해 우리는 우리가 그런 종류의 일을 하도록 되어 있지 않다는 결론을 내릴 수도 있다. 그런 일은 한결 자연스럽게 떠올리고 쉽게 해내는 마더 데레사 같은 사람에게 맡기라는 식이다. 하지만 실제로 밝혀졌듯, 마더 데레사가 가난한 이들과 일하거나 그리스도인의 삶을 영위하는 일이 우리에 비해 조금도 ‘더 쉽지’ 않았다. 그것은 어느 누가 상상했던 것보다도 힘들었다.
우리 가운데 많은 사람은 기도와 씨름하며 기도가 지루하거나 무미건조하다고 여기고 하느님이 우리 기도를 들어주실까, 하느님이 관심이나 있으실까, 도대체 이렇게 애쓸 가치가 있는 걸까 의심을 품는 사람은 우리 같은 한심한 인간들뿐이라고 믿기도 한다. 우리는 성인이 되면, 기도가 항상 쉽고 감미롭고 위안이 된다고 느씰 수 있게 되면, 틀림없이 아주 멋질 것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성인들이라면 누구나 그저 눈만 감으면 보상으로 당장 포근한 하느님의 현존을 느끼게 된다고 믿는다. 하지만 최후의 병마와 싸우는 동안 나름대로 ‘어두운 밤’에 몸부림친 리지외의 데레사를 포함해 긴 대열을 이루는 성인들의 사례는 말할 것도 없고, 마더 데레사의 경우만 보아도 결국 성인들은 남은 우리와 정말 똑같고, 심지어 우리가 전혀 의심하지 않는 부분인 영성 생활에서까지 우리와 다름없이 온갖 방식으로 허덕이고 있음을 알게 된다. 그들은 더욱 심하게 몸부림쳐야 하는 때도 있다.
마더 데레사는 시간이 흐르면서 영성 지도자의 도움으로 이 고통스러운 어둠을 자신의 사도직 활동이 갖는 ‘영성적 측면’으로, 십자가 위에서 버림받았다고 느끼신 그 느낌까지 포함해 그리스도와 온전히 동화되는 기회로 바라보게 되었다. 그녀는 한 편지에서 “나는 이 어둠을 사랑하게 되었노라.”라고 썼다. “왜냐하면 이것이 지상에서 예수님에 겪으신 어둠과 고통의 한 부분, 아주 작은 한 부분이라고 믿기 때문입니다.” 그녀는 여러 해 전에 스코프예에서 자기 어머니가 보살폈던 늙고 병든 여인의 느낌이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었는지 체득하기에 이른다. 그녀는 잊히고 쓸모없다는 느낌을 맛보곤 했다. 그리고 그 느낌을 통해 고통받고 있는 가난한 이들에게 보다 깊이 동화될 수 있었다.
(중략)
마더 데레사가 영성 생활면에서 몸부림쳤다는 것은 자명한 사실이다. 그리고 내 눈에 그녀가 이룩한 업적이 한결 놀라워 보이고 그녀의 모범이 큰 의미를 갖게 해주는 것도 바로 이 점이다. 사실이 그렇듯이 유례없이 친밀한 예수님과의 만남이 토대가 되지만, 그 만남이 오랜 세월이든 평생이든 갈수록 침묵으로 잦아드는 가운데 이루어지는 그녀의 사도직 활동은 충절을 입증해 주는 놀라운 증거가 되고 있다.
마더 데레사의 삶이 지닌 이런 단면만큼 나를 그녀와 단단하게 묶어주는 것이 없으며, 내가 글이나 강론 또는 피정의 자리를 빌려 다른 사람들에게 이 이야기를 들려주었을 때, 그녀의 성덕을 식별하는 그들의 이해 능력이 어느 때보다 심화되고 있음을 발견한다.
(후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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