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봉모 신부님의 책 <생명을 나누는 인간>에서
생명을 돌보기 위해서 해야 할 마지막 훈련은 생명을 나누는 훈련이다. 이러한 훈련의 궁극적
목적은 생명을 나누는 것이다. 이웃과 생명을 나누지 않고 생명을 받고 보존하는 것은 아무
의미가 없다. 생명을 돌보기 위해 노력하는 것은 내 생명은 물론 나와 똑같이
귀중한 이웃의 생명도 돌보겠다는 뜻이다.
본시 생명을 줄 수 있는 존재는 하느님 한 분뿐이지만 인간도 사랑을 함으로써 하느님의 생명 사업에 동참하게 된다.우리가 사랑할 때 상대방에게 생명을 준다는 것은 의학적으로도 입증되고 있다. 스탠퍼드 정신과 의사인 슈피겔 박사는 유방암이 재발되어 죽음을 기다리는 환자들을 중심으로 모임(support Group)을 만들었다. 환자들은 한 주에 한 번씩 만나서 서로간에 용기와 희망을 주려고 노력하였다. 모임 처음에는 신세 한탄이 주를 이루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대화가 깊어지고 환자들간에 사랑의 관계가 형성되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이 모임에 참석한 이들이 평균 4년을 더 살다가 죽었다는 점이다. 유방암에 걸렸던 이들이 치유되었다가 재발했을 때 살 수 있는 기간은 보통 2년이다.그런데 이 모임에 참석했던 이들은 그 두 배를 산 것이다. 그것도 절망 속에서 죽음만을 기다리면서 산 것이 아니라 생의 의미를 찾으며 보람있게 살다가 죽었다는 것이다. 이 의학 보고서는 우리가 사랑을 나눌 때 생명도 나누게 된다는 진리를 입증한 것이다. |
1920년 미국에서 버려진 유아들은 영아원에 수용되자마자 대다수가 죽었다. 이 점을 안타까워한 프리츠 탈보트 박사는 버려진 유아들을 살리려면
따뜻한 사랑이 필요하며 이를 위해서는 보모들이 아기의 몸을 사랑으로 쓰다듬어 주는 스킨십이 필요하다고 주장하였다. 병원장들은 처음에 탈보트의
이러한 이론을 비웃었다. 하지만 이들은 곧 입증된 통계 앞에서 머리를 수그려야 했다. 뉴욕의 벨레브 병원이 탈보트 박사의 의견을 받아들여
보모들이 아기들을 안아주고, 우유를 먹일 때도 안고 먹인 뒤부터 유아 치사율이 10퍼센트 미만으로 떨어졌기 때문이다. 어린아이들이었지만 피부
접촉이라는 사랑의 체험을 통해 생명력을 부여받은 것이다. 보시(普施)의 삶은 쉽게 얘기하면 내게 있는 것을 이웃과 나누는 삶이다. 나눔은 한 송이 꽃일 수도 있고, 옷
한벌일 수도 있고, 밥 한끼일 수도 있고, 책 한권일 수도 있다. 무엇보다도 가장 좋은 보시는 물질적 나눔이 아니라 사랑의 나눔이다. 감성적
차원에서 자신을 타인에게 주는 것이다. 나의 사랑과 애정, 관심과 기도, 또 나의 시간을 선물하는 것이다. 보시 행위는 사랑의
행위이다. 보시의 선물 없이는 누구도 만나지 않겠다는 태도를 가져라. 누구를 만나서 그와 함께하는
동안 조용히 그 사람의 행복과 평화를 위해 하느님께 화살 기도를 드려라. 이러한 기도야말로 우리가 이웃에게 줄 수 있는 가장 훌륭하고
고귀한 생명의 선물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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