톤즈 진료소엔 여전히 고 이태석 신부를 뜻하는‘닥터 존 진찰실’이란 푯말과, 이태석 신부의 사진이 담긴 액자가 문과 벽에 걸려 있다. |
그가 떠난 톤즈 진료소·학교엔
또다른 ‘이태석’들이 있었다
등록 : 2013.01.02 20:38수정 : 2013.01.02 21:56
새해특집 남수단에 꽃피는 희망
고장이 나서 길가에 방치된 것도 서러운 트럭이 흙먼지까지 뒤집어썼다. 남수단 비포장 흙길의 악명 높은 웅덩이들을 감당하지 못한 채 짐칸이 제풀에 주저앉아 멈춰선 것이다. 수도 주바에서 이런 길을 따라 490㎞ 가야 있는 톤즈. 아이들이 마을 입구 다리 밑 흙탕물에 벌거벗은 몸을 넣어 물고기를 건져 올리고 있다. ‘톤즈’는 잘 있을까? 이곳에서 2001년부터 헌신한 이태석 신부가 2010년 1월 대장암 투병 끝에 선종한 이후 국내에선 톤즈의 아이들이 의료·교육 지원을 제대로 받지 못하게 된 것 아니냐는 우려도 나왔다. 다큐멘터리 <울지 마 톤즈>에 소개된 진료소의 문엔 이태석 신부가 아픈 아이들을 당장이라도 맞이할 듯 ‘닥터 존(John) 진찰실’이란 푯말이 그대로 붙어 있다. 흰 가운을 입은 이 신부의 사진이 담긴 액자도 그 옆에 걸려 있다. ‘존’은 이 신부의 세례명 ‘요한’의 영어식 이름이다. 2013년 새해 사흘 전인 12월29일 찾아간 톤즈에서 만난 인도인 샤이젠(36) 신부는 “이태석 신부의 육신은 이제 이곳에 없지만, 그가 매일 우리와 함께 존재한다는 것을 느낀다”고 했다. “신부였고 의사였던 그는 아이들을 위해 음악밴드를 결성하고 의료·교육·선교활동을 하며 여기 사람들 삶에 큰 영향을 줬다”고 기억했다. 한센병 환자들을 가족처럼 돌본 그에 대한 톤즈 사람들의 그리움은 커져 가지만, 걱정과 달리 그와 함께한 톤즈의 아이들이 방치되고 있는 건 아니었다. 열악한 지역에 사제들을 파견해 청소년들을 교육하는 살레시오 수도회 일원으로 톤즈에 살았던 이태석 신부처럼, 살레시오회 소속 다른 나라 신부·수녀들이 그의 부재를 채워가고 있다. 톤즈엔 신부 3명, 수사 2명과 함께, 살레시오 수녀회 등 3개의 수녀회 소속 수녀들이 8년 과정 초등학교, 10개 분교, 4년 과정 상급학교, 이 신부가 맡았던 진료소 등을 운영하고 있다. 한국의 많은 이들이 ‘톤즈의 눈물’에 가슴 아파했지만, 현재 이곳에 있는 7명의 자원봉사자는 슬로바키아(3명)·미국·인도·케냐·남수단 청년들이다. 이 신부가 있던 톤즈의 ‘돈 보스코 본당’에선 지역민을 위한 라디오방송까지 하고 있다. 케냐 출신 프로듀서 토니 우냘라는 “톤즈를 중심으로 하여 반경 90㎞까지 송출된다”고 했다. 본당 사제들은 톤즈의 웃음을 찾아주려는 한국인들에게 고마워하면서도, 선심성 후원이 아니라 톤즈 사람들의 능력을 개발하는 ‘차분한 지원’이 돼야 한다고 당부했다. 지난해 10월 이 신부가 지도한 ‘돈 보스코 브라스밴드’ 아이들이 한국에 왔을 때 <한국방송>이 방문 모습을 사전 양해 없이 촬영해 다큐로 방송하려 했다며 살레시오회가 방송금지 가처분소송을 낸 일도 있었다. 살레시오회는 이태석 신부가 보여준 나눔의 본질 대신, 이 신부의 안타까운 선종과 톤즈 아이들의 슬픔에 감성적으로 접근하려는 시도들을 경계했다. 샤이젠 신부는 “이태석 신부는 어떤 상황에 있든 하느님이 우리를 돌본다는 것을 알려주려고 온 신부다. 그의 정신이 왜곡되지 않았으면 한다”고 말했다. 톤즈(남수단)/송호진 기자 dmzsong@hani.co.kr'밭에 묻힌 보물 > 기억할 글'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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