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병이어에 대한 설명은 (즉 어린이가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내놓자 양심의 가책을 느낀 나머지
사람들이 각자 꿍쳐놨던 것을 꺼내어 나눴던 것이다. 이렇게 저렇게 나누고 하다 보니까 결국 오천 명이 먹고도
남을 수 있었다는 것이다.) 아주 그럴듯하다.
그런데 여기에는 무언가 석연찮은 구석이 있다.
"그럼 그것을 가지고 왜 기적이라고 한 걸까?"
필자는 이 해석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그 이유는 이렇다.
여기 예수님을 따라다니던 사람들은 정상적인 유다인들이 아니었다.
주로 '오클로스'(ochlos) 라고 일컬어지던 이 사람들은 '부랑자'라는 뜻에 가깝다. 자신들의 먹을 것을 챙기지 못하는 사람들이었던 것이다.
이런 이유로 위의 이성주의적 해석은 우리를 온전히 설득하지 못한다.
오히려 결정적으로 "이것은 진짜 기적이다" 라고 확신할 수밖에 없는 대목이 있다.
"예수님께서는 저녁 때 그들이 배고파하는 것을 보시고 측은한 마음이 드셨다" (마르 6,33-44 참조)
만일 군중들이 가지고 있는 보따리에 음식이 들어있었다면 예수님이 그것을 모르실 분이 아니다.
그랬다면 그저 "자, 저녁시간이니 보따리에 있는 것을 꺼내어 나누어 먹자" 고 말씀하시면 간단히 해결될 문제였다. 그런데 예수님은 '측은한 마음'을 품으셨다. 그들에게는 먹을 빵이 실제로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기적을 행하셨던 것이다.
그렇다면 "이 사건을 어떻게 설명할 건데?" 라는 물음이 남는다.
앞서 이야기했듯이 '어떻게'는 히브리적인 사고방식이 아니다.
따라서 성경에서 '어떻게'의 문제는 우리가 알 수 없다.
한 번 생각해 보라. 과연 우리가 이 세상에서 설명할 수 있는 부분이 얼마나 될까?
'어떻게'의 관점에서 이해할 수 있는 것은 전체의 1%밖에 안 된다. 이는 아무리 과학이 발달해도 마찬가지다.
사람의 이성과 오관이 인식할 수 있는 진리는 전체 진리의 1%에 지나지 않는다고 한다.
그러기에 나머지 99%의 진리는 우리에게 미지의 영역으로 남아 있을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99%의 세계는 엄연히 비현실세계가 아니라 현실세계다.
우리 주변에서 '갑자기', '이유없이', '우연히' 발생하는 사건들이 사실은 이 99%세계에 해당하는 현상들이다.
그리고 믿음은 바로 이 99%의 세계로 들어가는 관문이다. 기적은 기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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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떠한 눈도 본 적이 없고 어떠한 귀도 들은 적이 없으며 사람의 마음에도 떠오른 적이 없는 것들을
하느님께서는 당신을 사랑하는 이들을 위하여 마련해 두셨다" (1코린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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