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론 말씀 (가나다순)/송용민 신부님

개신교 신자들을 어떻게 대해야 하나?

김레지나 2012. 4. 16. 21:31

세상 속 신앙 읽기
송용민 지음

4. 세상 속 사람들
개신교 신자들을 어떻게 대해야 하나?

  적지 않은 가톨릭 신자들이 갖는 편견 중의 하나는 개신교 신자들과 대화가 잘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래서 어떤 이는 대화의 필요성을 느끼지도 않고, 행여 친구나 동창 모임에 열심한 개신교 신자가 있으면 선뜻 신앙과 교리 이야기를 꺼 내는 일을 거북하게 여기기도 한다. 교회일치운동에 참여하 는 나한테 "개신교와 일치가 되겠어?"라고 회의적인 물음을 던지는 이들도 많다. 하긴 카톨릭을 이단으로 내몰거나, 마 리아를 숭배하는 '마리아교'로 치부하는 일부 개신교 신자들 을 생각하면 수긍이 된다.

  또 다른 편견은 한국의 모든 개신교를 통틀어 보수적이고 세상과 소통하지 못하는 배타적인 교회로 보는 점이다. 일부 개신교인들이 자신들의 종교적 신념을 절대시해서 '예수 천당, 불신 지옥'이란 자극적인 표어를 내걸고 선교를 하며, 공양하는 스님에게 회심을 강요하고, 불교 사찰이나 성당의 성모상을 훼손하는 몰지각한 형태를 보면 또한 일리가 있다. 사실 이러한 편견은 한국 개신교의 대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장로교가 유럽의 종교개혁 정신이 아닌 다소 변형된 복음주의적 청교도 정신에 뿌리를 둔 미국의 개신교 전통에서 전해진 점과 무관하지 않다. 미국 선교사들이 한국의 근대화에 공헌한 점과 한국 개신교의 놀라운 성장에 기여한 점은 높이 평가할 만하다. 하지만 인간 이성을 불신하고 오직 예수를 믿어야만 구원받는다는 미국의 배타적 복음주의가 보수적인 개신교 교단 전반을 지배하고 있어 그리스도인의 일치에 적지 않은 장애가 되고 있다.

  오늘 날 유럽 교회에서는 풍부한 서구 신학의 이성적 전통을 토대로 가톨릭과 개신교 간의 교리적 오해를 풀어가는 방향으로 대화가 진전되고 있다. 가톨릭 신자들이 개신교에 대해 갖고 있는 편견과 오해도 그들과 대화를 가로막고 있다는 점은 생각해볼 만하다.

  대다수 가톨릭 신자들은 종교개혁 이후 갈라져 나간 개신교 신자 들을 '서자'로 취급하면서, 그들이 지닌 교회적 전통과 유산 을 버리고 '장자'인 가톨릭교회로 돌아와야만 일치가 이루어 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일치란 그런 것이 아니다. 가령 부부 - 가족 - 교우 간에 일치를 이루자는 말이 서로의 생활방식이 나 사고방식, 습관과 기호까지 똑같아야 한다는 의미가 아닌 것과 같다. 그리스도인 일치 또한 각자가 소속된 교회 간의 상호 통합이 나 한쪽이 다른 한쪽으로 개종하기를 강요하는 것이 아니다. 서로의 교리와 언어방식, 전례와 교회의 형태는 달라도 삼위 일체이신 하느님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같은 그리스도 신앙을 고백하는 형제임을 고백하는 것이 일치의 출발점이다.

  가톨릭교회는 제2차 바티칸공의회 이후 개신교를 '갈라진 형제들'로 부른다. 그들이 비록 여러모로 신앙의 진리를 이해하는 방식이나 내용이 다르다 하더라도, 그들 또한 우리와 같이 "주님도 한 분이시고 믿음도 하나이며 세례도 하나"(에페 4,5)라고 그리스도 신앙을 고백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개신 교는 결코 무의미하거나 무가치하지 않고, "그리스도의 성령께서 그 교회들과 공동체들을 구원의 수단으로 사용하시기를" (일치교령 3항) 거절하지 않으신다.

  솔직히 개신교 신자들을 형제로 받아들이는 일이 쉽지 않 을 때가 많다. 그들이 마치 우리의 '하느님'과 다른 '하나님' 을 믿고, '가톨릭'과 다른 '기독교'라는 종교를 가진 것처럼 생각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가 개신교 신자를 가톨릭으로 개종시키려는 열성도 문제가 될 수 있다. 사실 같은 그리스도교 신자인 가톨릭과 개신교가 서로를 개종改宗시킨 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

  진정한 선교는 열심한 개신교 신자를 가톨릭 신자로 만드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그들이 더 욱 열심한 그리스도인이 되도록 격려하면서도, 우리가 가톨릭 신앙의 매력을 삶의 표양으로 보여줄 때 그들이 그리스도교 신앙 안에서 더욱 한 형제라는 의식을 갖도록 만드는 것 이다.

  선교에서 중요한 점은 예수 그리스도께 회심하도록 돕는 것이지, 우리 교회 사람으로 만드는 일이 아니다. 개신교 신자들과 대화할 때는 서로가 품고 있는 교리적인 오해에서 시작해서는 안 된다. 오히려 그들과 내가 받은 하느님의 은총과 감사, 예수님의 십자가로 얻은 용서와 회심 이야기를 나누는 일, 그리스도인으로 살면서 찾은 참된 행복, 하느님을 만난 체험과 그로 인해 변화된 삶을 나누는 것에서 시작해야 한다. 우리에게 성경을 펼쳐대며 달려드는 개신교인들에게 먼저 신앙이 어떻게 그들의 삶을 변화시켰는지 체험 을 나눠달라고 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개신교 신자들 중에는 우리를 부러워하고, 대화하고 싶어 하며 함께 그리스도인의 길을 걷기를 바라는 이들도 적지 않다. 술 한 잔 기울이며 인생 이야기를 나누는 신자들을 부러워하고, 아름다운 성당에서 거행되는 전례와 기도하는 모습 을 동경한다. 목사와 성공회 사제들 중에는 가족보다는 교회 를 먼저 생각하는 가톨릭 사제들을 부러워하는 이들도 있다. 형제가 되는 데는 정情을 보여주고, 그들이 필요로 하는 것이 무엇인지 헤아릴 수 있도록 슬기롭게 대화하는 지혜가 필요하다.

  매년 1월이면 성 바오로 사도의 회심축일(25일) 일주일 전 부터 전 세계 그리스도인들의 일치를 위한 기도주간이 시작 된다. 그리스도인 일치 기도주간에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선사하신 참된 일치를 이루고자 하는 희망을 개신교 신자들과 함께 염원해 보자. 그래서 삶과 신앙을 나누는 개신교 형제가 한 명쯤 우리 곁에 있을 수 있다면 그것도 일치와 평화를 희망하는 좋은 시작이 될 수 있을 테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