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론 말씀 (가나다순)/송용민 신부님

천사와 사탄은 정말 존재할까? - 숑용민 신부님

김레지나 2012. 4. 5. 20:35

세상 속 신앙 읽기
송용민 지음

2. 세상 속 하느님
천사와 사탄은 정말로 존재할까?

  어린 시절 자주 상상했던 장면 하나. 마음에 걸리는 부끄러운 일을 할 때면 내 머리 양쪽에 붙어서 한쪽은 양심대로 행동 하라고 나를 타이르고, 다른 한쪽은 '그까짓 것 해도 괜찮아. 남들도 다 하는데 뭐.'라고 살살 유혹한다. 바로 천사와 사탄이다. 늘 하얀색 옷을 입고 날개가 달린 천사는 사랑스런 웃음을 띠고 있는 반면, 사탄은 주로 검은색 옷을 입고 괴상한 뿔이 달린 험악한 모습을 하고 있다.

  재미있는 사실은 어린 시절에는 천사와 사탄이 내 마음 안에서 싸우면 대개 천사가 이길 때가 많았는데, 나이가 들수록 사탄이 이기는 경우가 많아진다는 것이다. 어린 시절 양심에 귀기울여 듣던 천사의 음성은 점점 읽기 싫은 교과서나 어머니의 잔소리처럼 들리고, 때로는 사탄의 속삭임이 달콤하다 못해 천사가 그냥 없어져 버렸으면 하는 맘까지 들게 한다.

 

  성경은 천사가 주로 하느님의 뜻을 인간에게 전달해 주는 심부름꾼 역할을 맡아왔다고 전해 준다(루카 1,19). 천사는 하늘과 땅을 연결해 주는 영적 존재로서(창세28,12). 우리를 보호하고(마태 18,10), 우리 기도를 전해 주며(묵시 8,3), 그리스도의 협조자로서 하느님의 뜻을 풀이해 주기도 한다(사도 1, 10-11).

  흔히 사탄을 천사와 대적해서 싸우는 힘 있는 영적 존재로 알고있지만, 구약성경에는 사탄이 하느님의 어전 천사 가운데 하나로 하느님의 권능에 종속되어 그분의 정의와 권리가 보장되도록 하는 검사와 같은 임무를 수행한다고 전한다 (욥기 1-3장).   오랜 교회 전승은 사탄이 인간을 향한 하느님 뜻에 반대하여 천사 그룹에서 밀려나 조직적으로 인간을 유혹하고 타락시키며 하느님께 가는 것을 방해하는 힘센 존재라고 가르쳐 왔다.

  예수님도 공생활 이전에 사탄의 유혹을 받으셨고(마태 4,1 -11), 하느님께 자신을 봉헌하는 마지막 순간에도 인간의 본 성을 뒤흔드는 사탄의 세력과 맞서 고뇌하시며(마태 26,37- 39) 죽음을 넘어서는 하느님 영광의 승리에 자신을 봉헌하셨다. 그래서 그리스도인의 영신수련에서 중요한 영적 투쟁은 사탄의 세력과 타협하지 않고 하느님을 향한 열망을 수호천사 들과 하늘나라 성인들의 도움으로 지켜가는 것이다.

 

  인간에게 고통이 신비인 것처럼 악의 문제 또한 풀기 힘든 신비 가운데 하나다. 원역사에 나타난 '뱀'의 유혹(차세 3장)은 인간 본성에 숨겨진 '악'에 대한 대표적인 성경적 표징에 속한다. 인류가 겪는 선과 악의 이분법적 투쟁 역사와 이에 대한 해석을 일일이 돌아보지 않더라도, 우리 안에서 발견되는 선과 악의 투쟁은 선하신 하느님을 믿는 신앙인들에게 적지 않은 걸림돌이기도 하다.

 

  전통적으로 교회는 악이 선의 결핍에서 나온 것이라는 통념을 지지해 왔다. 곧 완전한 선善이신 하느님은 결코 악을 창조하신 적이 없지만, 당신이 세상을 창조하고 역사에 개입하시는 순간 악은 이미 선을 드러내기 위해 허용될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세상의 어둠과 빛, 죽음과 생명, 시간과 영원의 이분법적 갈등은 빛이신 하느님이 창조 때 어둠과 빛을 가르시고(창세 1,4), 죄로 인해 피할 수 없는 인간의 죽음을 허락하시는 순간(창세 3,19) 시작되었다. 하지만 동시에 인간을 구원하고자 영원하신 하느님은 사람이 되시어(요한 1,14) "새 하늘과 새 땅'(묵시 21,1)을 창조하시는 선을 이끌어 내셨다.

  천사와 사탄은 이렇듯 하느님과 인간 사이에서 일어난 창조와 구원 역사를 지탱해 주는 훌륭한 표징인 동시에 생생한 실재이다. 우리가 지나치게 천사와 사탄을 의인화해서 표현하다 보니 인간이 겪는 다양한 악의 체험을 사탄의 형상으로 표현하고, 세상에 가장 아름답고 선한 것을 천사의 모습으로 그려 내는데 익숙해진 것뿐이다.

  성숙한 신앙인은 어린 시절 가 던 천사와 사탄의 달콤한 대화에 머무르지 않고, 하느님과 나, 하느님과 인류가 맺는 관계에 대해 깊이 성찰할 줄 안다. 성숙한 신앙인은 '내 몸에 가시'(2코린 12,7)와 같은 사탄의 유혹과 악의 실재를 어쩔 수 없이 하느님께 등을 돌리는 나약한 우리의 처지를 비관하게 만드는 존재가 아니라 오히려 허영과 교만에 빠진 인간을 겸손하게 만드시어 당신께 돌아오기를 애타게 바라시는 하느님 손길이라 여긴다. 또한 성숙한 신앙인은 세상 악의 실재를 사탄과 악마의 소행이라고 생각하는 단순한 논리를 벗어나, 우리에게 선사된 하느님의 자유가 시간 속에 제한되기 때문에 직면할 수밖에 없는 죽음과 고통의 현실로 여길 줄 안다. 그것은 마치 고통의 문제를 죄와 악의 결과로 보지 않고, 인간 본성에 심겨진 알 수 없는 하느님의 신비라고 고백하는 것과 같다. 또한 하느님께 자신을 맡기지 않으면 결코 깨달을 수 없는 우리의 본성적 결함과도 같은 것이다.

 

  천사와 사탄은 분명히 존재한다. 하지만 신화 속에 그려진 형상이 아니라 우리 영혼 깊은 곳에 심어 주신 하느님을 닮은 우리의 영적 본성에 존재한다. 우리는 볼 수 없는 영의 세계를 볼 수 있는 표징을 통해서만 이해할 수 있기 때문에 각자가 가진 천사와 악마의 형상은 다를 수 있다. 너무 미운 사람, 상상을 초월하는 악을 자행하는 이들의 얼굴에서 사탄을 그려볼 수 있다. 반대로 작고 보잘것없는 사람들의 평온한 얼굴과 하느님의 사랑을 전하는 이들의 놀라운 손길에서 천사의 모습을 볼 수도 있다.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하느님을 애타게 찾는 내 영혼 안에서, 끊임없이 내 삶을 갈라놓는 영혼의 상처 안에서 날마다 천사와 사탄의 형상을 만날 수 있다는 것이다.

  천사와 사탄이 존재하느냐는 질문은 우리 일상의 선악 체험 에서 비롯되지만, 천사의 존재가 나를 하느님께로 이끌고 끊임없이 사탄의 유혹과 싸우도록 돕는다는 점을 기억한다면 사탄의 유혹을 담담하게 직면할 수 있는 여유도 생기지 않을까 한다.  하느님은 나약함으로 넘어질 때마다 부끄러운 마음으로 '에구, 제가 잘못했습니다.'라고 하는 애교 석인 뉘우침을 외면하실 정도로 쫀쫀한 분이 아니시리라 믿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