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론 말씀 (가나다순)/송용민 신부님

☆ 가톨릭 교회를 바라보는 관점 - 송용민 신부님

김레지나 2012. 4. 5. 19:17

세상 속 신앙 읽기
송용민 지음

3. 세상 속 교회
가톨릭교회를 바라보는 관점

  제2차 바티칸 공의회는 신앙 진리를 혼란에 빠뜨리는 이단에 대한 단죄를 목적으로 소집되었던 이전의 공의회와 달리, 교회의 쇄신과 회개 그리고 세상과 새로운 관계를 위한 일치와 사목적 관심에서 개최되었다.

  공의회 교부들의 열띤 토론과 성령의 인도 아래 가톨릭교회는 교회 역사상 가장 큰 변혁을 가져 왔으며, 진흙 속에 묻힌 진주를 발견한 교회의 영적 기쁨은 더할 나 위 없이 컸다.

  그러나 공의회가 표방한 개혁이란 그리스도 신앙 개혁이 아니라 그리스도 신앙을 이해하는 방식의 변화였다. 우리가 믿는 하느님이나 신앙 내용이 달라진 것이 아니다.

  교회는 하느님의 계시와 신앙, 세계와 다양한 문화적 발전 그리고 타교파와 타 종교들의 관계에서 규정되어 왔던 인식의 틀을 완전히 새로운 전망으로 바라보았다. 공의회 교부들이 언급한 대로 이 공의회 는 자체로 '성령의 사건'이었다.

  엄밀하게 말해서 우리가 현재 누리고 있는 신앙 형태와 교회생활 대부분은 공의회를 통해 깨달은 새로운 교회의 미래이자 이상이었고, 하느님 은총의 사건 이었다. 제2차 바티칸공의회가 없었다면 지금의 가톨릭교회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무엇보다 가장 중요한 변화는 교회가 자신을 이해하는 방식이 었다. 제2차 바티칸공의회 이전에는 교회가 하느님의 계시 진리, 곧 하느님이 인간에게 자신을 알려 주기 위해 예언자들을 통해 다양한 신적 가르침과 진리를 보존하고 전달하는 유일한 매개체였다고 생각했다. 교회가 가르치는 내용이 곧바로 하느님의 말씀이요 계명으로서 구원받고자 하는 이는 누구나 교회가 보유하고 있는 풍부한 구원 은총에 매달려야 했다. 교회 가르침을 따르느냐 그렇지 않느냐가 곧바로 구원 여부에 영향을 미친다고 생각했다. 하느님의 계시진리를 잘 보존하고 전달해야 할 임무를 맡은 제자들과 그 후계자들(오늘날의 주교님들)은 신자들에게 하느님의 은총을 전달해 주는 통로였고, 급기야 '가톨릭교회 밖에서는 구원이 없다!'라는 정식이 자명하게 받아들여졌다. 근래의 보수주의적 개신교가 즐겨 사용하는 '예수 천당, 불신 지옥'이란 표어를 이미 가톨릭교회가 먼저 사용했 던 것이다.

  제2차 바티칸공의회 이전에 교도권이 교회의 중심이 되고, 교도권의 가르침이 구원의 필수 요소로 인정되던 시기의 교회관을 흔히 '교계적 hierarchy 교회관'이라고 부른다. 여기서는 무엇이 옳고 그르냐는 것에 대한 판단이 온전히 교회의 교도권자들에게 맡겨져 있다고 본다.

  하느님 은총도 교회라는 수로를 통해 신자 개개인에게 전달되었기 때문에 교회를 떠나면 곧바로 구원 받지 못하고 나락에 떨어지는 것으로 여겼다.

  그러나 세상은 그런 교회를 그대로 수용하지 않았다. 18세기 이후 계몽주의와 실존주의의 발전은 절대 권력으로 하느님의 은총을 좌지우지하는 교계적 교회관에 반기를 들었고, 교회 또한 하느님을 교회 울타리 안에 가둬둘 수 없었다. 하느님은 교회의 주인이시지만, 제도 교회에 예속된 분이 아니시기 때문이다. 또한 하느님의 구원은 교회 가르침에 대한 지적인 동의에 머물지 않고, 감성과 의지를 포함한 전인적全人的 결단을 통해 자기를 인정하고, 그분께 신뢰함으로써 이루어진다는 것을 깨달았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는 새로운 교회관을 제시했다. 이제 교회는 사도들의 전권을 이어 받은 성직자들의 전유물이 아닌, 성직자와 평신도를 포함하여 하느님의 부르심을 받은 모든 사람이 하느님의 백성이라는 인식의 전환을 가져왔다. 교회가 더는 눈에 보이는 십자가 건물이나 성직자들의 복장, 화려한 교회 제단만이 아닌,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건과 부활을 통해 자신의 인생 여정에서 철저하게 하느님을 만나고 그분의 은총을 체험한 이들의 친교적communion 또는 통교적 신앙 공동체임을 고백 하기에 이르렀다. 교회는 이스라엘 백성이 이집트의 종살이에서 해방되어 가나 안 땅으로 가는 여정처럼, 창조 때부터 인류와 깊은 구원 약속을 맺은 하느님의 부르심에 따라 순례 여정을 걸어가는 '하느님의 백성'으로 이해했다.

  성직자와 평신도 모두가 하느님의 백성으 로서 각기 맡겨진 소명에 따라 하느님 나라의 완성을 위해 헌신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성령의 도움으로 성부이신 하느님의 영원한 생명에 동참하는 것을 목표로 삼아야 한다.

  이제 교회 는 신앙인들이 필연적으로 속해야 하는 제도적 교회만을 의미하 지 않고, 성령의 은사를 통해 하느님을 만나고 체험할 수 있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 공동체임을 알게 되었다.

  이러한 공의회의 의식 변화는 곧바로 교회가 세상과 맺은 관계에도 커다란 변화를 가져왔다. 세상은 죄악과 오류가 들끓고 있는 악의 실재가 아니라, 이미 창조 때부터 '보시니 좋더라.'하 신 하느님 구원 역사의 장으로 인식했다.

  교회는 이 세상 한 복판에서 모든 이가 의식하든 의식하지 않든, 하느님의 은총으로 살아가는 것이며, 하느님 없이는 인간의 완성에 이를 수 없음을 깨우쳐 줄 소명을 받은 세상의 '빛과 소금'이다.

  교회는 스스로 완전한 하느님 나라가 아니며, 단지 세상 속에 서 하느님이 얼마나 인류를 사랑했고, 인류와 깊은 일치를 이루고자 하시는지를 드러내야 할 '도구이자 표징'(교회 1항)으로 이해되었다.

  따라서 가톨릭교회와 등을 맞대고 있던 개신교와 타 종교들은 하느님 저주의 대상이 아니라 하느님의 은총과 구원의지가 발견될 수 있는 형제적 관계로 이해되었다.

  이제 교회는 "그들이 모두 하나가 되게 해주십시오."(요한 17,21)라는 예수님 의 마지막 유언처럼, 그들 안에서 발견되는 참되고 선하고 거룩한 것을 배척하지 않고 그들과 공존의 길을 발견하기 시작했다.

 

  오늘날 한국 가톨릭교회가 공의회를 통해 새롭게 자각한 교회의 소명과 과제를 얼마만큼 소화하고 있는지는 지금의 교회를 되짚어 보면 쉽게 알 수 있다. 성직자와 평신도가 하나 되는 교회를 어떻게 실현해가고 있는지? 신자 각자에게 주어진 성령의 은사들이 교회 안에서 어떻게 조화를 이루며 구현되고 있는지? 교회는 세상 속에 스스로를 던져 하느님 나라 구현을 위해 빛과 소금의 역할을 다하고 있는지? 다른 종교인이나 그리스도교의 다른 교파 사람들과의 만남에서 가톨릭 신자들은 얼마나 당당하고 명백하게 그리스도 신앙을 고백하고 설명할 수 있는지? 친교적 교회관을 표방한 공의회 정신이 우리 한국 교회 안에 온전히 숨 쉴 수 있는지 되짚어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