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론 말씀 (가나다순)/차동엽 신부님

값으로 쳐주시니

김레지나 2012. 3. 23. 23:34

차동엽 신부님이 <신나는 복음묵상> 테잎에 딸려 오는 소책자(2012.04,01 주님 수난 성지 주일 복음묵상)에서 옮깁니다.

 

p. 51

3) 값으로 쳐주시니

 

"호산나! 주님의 이름으로 오시는 분은 복되시어라."(마르 11,19).

 

  일본 성심 수녀회 소속으로 말기 중환자들의 내적 치유를 돕고 있으며, '이 시대의 스승'이라고까지 평가 받는 스즈끼 히데코 수녀님의 일화입니다.

 

  나는 호스피스 병동에서 죽음의 문턱에 있는 40세 남자의 병문안을 갔습니다. 그 사람은 죽음을 각오하고 있는 듯 말이 없었습니다. 나는 침대 한 모퉁이에 앉아 그의 호흡에 맞춰 기도를 계속했습니다.

  그와 시선이 마주쳤을 때 나는 물었습니다.

  "무슨 마음에 걸리는 일이 있습니까?"

  그는 가만히 내 얼굴을 바라다보며 조용한 목소리로 말했습니다.

  "저는 모두에게 폐만 끼치고 있습니다. 살 가치가 있는 걸까요?"

  그 한 마디에서 지금 그가 겪고 있는 깊은 고통이 전해 왔습니다. 나는 그의 얼굴을 잠시 바라보았습니다. 그리고 이런 말을 건넸습니다.

  "당신은, 우리를 대신해서 우리의 고통을 짊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삶에는 고통이 따르기 마련입니다. 그 괴로움을 병에 걸린 분들이 짊어지고 있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은 건강하게 일을 할 수 있습니다. 병으로 괴로워하고 있는 분들은 모두, 우리 대신 다른 사람들을 건강할 수 있게 해주고, 일하 힘을 주는 분들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나는 말을 계속했습니다.

  "당신 덕분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건강하게 지금 이 순간을 살아갈 수 있는지 몰라요. 괴로운 역할이지만 커다란 의미가 담긴 인생을 살고 있는 것이 분명합니다."

  그는 지그시 눈을 감고 그 말을 가슴에 새기고 있는 듯 했습니다.

  그 옆에서 나는 그의 마음이 차분해지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 스즈키 히데코, <행복을 발견하는 시간> 참조)

 

  스즈키 히데코 수녀의 저 말 한마디는 진정 권위 있는 말씀으로 제게 들립니다. 사실 아픈 삶에게 "당신은, 우리를 대신해 우리의 고통을 짊어지고 있는 것입니다."하고 말하기란 쉽지 않을 것입니다. 혹여 이 말을 듣고 속상함을 느끼는 아픈 분들이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이 말은 엄청난 위로입니다.

  이말이 단순한 말장난이 아니라 진실된 위로가 되도록 해주신 분이 바로 예수님이십니다. 예수님은 오늘 복음에서 수난의 왕, 고통의 왕으로 등극하십니다.

  "호산나! 주님의 이름으로 오시는 분은 복되시어라"(마르 11,10)

  백성들이 기대한 것은 천하를 호령할 권력자였지만, 지금 행차하시는 분은 십자가 고통을 통해 온 인류의 죄를 짊어질 수난의 왕이십니다.

  그러니 오늘 감당할 수 없는 고통을 겪고 있는 모든 선량한  형제와 자매들 역시 이 예수님의 십자가에 초대받아 동참하고 있는 셈인 것입니다.

 

  함께 기도하시겠습니다.

  주님, 그렇다고 저희의 고통이 줄어드는 것은 아니지만, 저희가 치러야할 고통으로 저희도 주님 십자가를 함께 지고 있는 셈이 되는 것이라면, 그것으로 이미 위로입니다.

  주님, 저희 고통을 십자가 값으로 쳐주시니 과분합니다.

  주님, 그리고 저희의 알량한 수고도 십자가 값으로 쳐주시니 은혜가 벅찹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