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5땡큐>에 실린 차동엽 신부님의 말씀
다큐보다 더 사실적인 드라마, 나를 깨우쳐준 감사의 진실
"365 Thank You?"
사실 나는 감사의 비밀에 대해 알 만큼은 알고 있었다.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교만이 아니라, 착각이 아니라, 사실이 그랬다.
그랬기에 막다른 골목에 처한 사람들이 나에게 SOS를 청해오면 내 처방은 역설적이지만 여지없이 ‘일안 감사하기’였다. 효험은 놀랍게도 신통방통이었다. 이 책의 번역을 시작했을 때, 내 입에서 당황스런 독백이 흘러 나왔다.
“어? 그게 아니잖아?!”
중간쯤 갔을 때, 흘러나온 건 말이 아니라 눈물이었다. 아니 콧물이었다. 마음속에서도 하염없이 뭔가가 계속 흘러내렸다.
“내가 왜 이러지? 이거 얼마 만에 느껴보는 기분인가.”
그리고 마지막 문장의 번역을 마쳤을 때, 바야흐로 흐르고 있는 것은 적막뿐이었다. 그냥 그대로 머물고 싶은 적막, 깨달음인 듯, 감동인 듯, 아쉬움인 듯, 충만인 듯, 슬픔인 듯, 기쁨인 듯, 멈춘 듯 흐르는 듯, 그냥 유유히 깔려 있는 적막.
그 적막을 깨고 감히 나는 고백한다.
“진실을 말하자면 나는 감사를 모른다. 몰랐고, 모르고, 계속 모를 것이다. 왜냐하면 감사는 알수록 모르겠는 미지(未知)니까.”
적어도 이 책의 저자 존 크랠릭 판사는 이 엄중한 진실을 내게 깨우쳐 주었다.
그는 감사의 실체를 모르는 채 오직 ‘감사편지 프로젝트’를 뚝심 있게 밀어붙여 말 그대로 상상을 초월하는 휴먼드라마를 연출한다. 드라마보더 더 드라마틱한 다큐, 다큐보다 더 사실적인 드라마, 초특급 자기계발서보다 더 번득이는 지혜를 담고 있는 자기 고백적 스토리텔링....., 번역자로서 나는 적당히 끊을 대목을 놓치는 바람에 밤잠을 설치기 일쑤였다.
가시지 않는 여운의 뒤꼬리를 잡고 나는 사족을 달고 싶다.
“나는 몰랐네. 감사가 그토록 처절한 것이고, 그토로고 인간적인 것이고, 마침내 그토록 통쾌한 것인 줄은.”
번역하는 동안 나는 내내 환청에 시달렸다. 글자가 소리로 들리는 기이한 체험을 했다. 번역은 이제 받아쓰기가 되었다. 내가 그 비밀스런 음성의 첫 번째 청자가 된 것이다. 그리하여 다시 첫 번째 화자가 되었으니 이 어찌 벅찬 감사가 아니랴! 당신이 두 번째, 세 번째 화자가 되기를 기도한다.
2011년 가을에 차동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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