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론 말씀 (가나다순)/차동엽 신부님

차동엽 신부님의 책 <잊혀진 질문> 프롤로그

김레지나 2012. 1. 12. 18:45

 

책 잊혀진 질문 프롤로그

 

 

도대체 무엇을 위한 인생인가?

 

 

  2년 전쯤이었을 것이다. 지인을 통해서 다섯 쪽짜리 프린트물이 필자의 손에 건네졌다.

  ‘삼성 이병철 회장이 1987년 타계하기 전 절두산 성당 박희봉 신부께 보낸 질문지’

  이렇게 제목이 적혀 있었다. 주-욱 훑어보고 있는데 그가 사연을 말해주었다.

  “일방적으로 질문만 있었지, 아마도 답변은 없었던 모양입니다. 박희봉 신부는 이 물음들에 답할 수 있는 적임자를 물색하다가 정의채 몬시뇰에게 이 편지를 넘겼답니다. 나는 정의채 몬시뇰로부터 이 복사본을 받은 것이구요.”(나중에 필자는 정의채 몬시뇰로부터 그 경위를 직접 듣게 되었는데, 몬시뇰과 故 이병철 회장의 만남이 주선된 상태에서 이 회장의 갑작스러운 별세로 말미암아 만남이 무산된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질문에 집요하고 날카로운 구석이 있어 답변하기가 쉽지 않았을 듯하네요·······.”

  “··········. 하지만 여기 있는 물음들 가운데 우리가 힘들 때 불쑥 던지는 물음들도 꽤 됩니다. 사실은 우리 모두의 물음들인 셈입니다.”

  자세히 읽어보니 몇몇 물음은 예사롭지 않은 물음들이었지만, 그중에는 우리가 롤러코스터 같은 삶의 여정에서 무심결에 후렴구로 내뱉는 물음들도 꽤 있었다.

  “사실, 나도 이런 질문을 곧잘 받곤 하는데, 답을 시원스레 주지 못해 찝찝한 적이 많습니다. 누군가가 한 번쯤은 꼭 통쾌하게 답변해줄 필요가 있습니다.”

  “그런가요? 그러면 좋겠네요.”

  “말이 나온 김에 신부님께서 해보시는 것은 어떨지요?”

  “예-예?”

  “왜요???”

  실제로 내가 해왔던 역할에 그런 주제에 대한 저술 활동도 있었기에, 뒤로 빼자니 ‘위선’이요 그렇다고 생각 없이 나서자니 ‘교만’이 될 판이었다. 

  이렇게 질문 보따리는 나와 인연을 맺었다.

 

 

 하필이면 왜 故 이병철 회장은 그 물음 꾸러미를 절두산으로 보냈을까?

 죽음을 앞둔 한 인간이 영원에 대한 궁금증을 해소하고 싶은 절박함이 느껴지는 그 물음들.

  필경 어느 한나절 우박처럼 한꺼번에 쏟아져 내리지는 않았을 그 물음들.

  무슨 까닭에 굳이 절두산이었을까?

 

  소설가 김훈의 절두산에 대한 소회에서 그 힌트를 만났다.

  “옛 양화진 자리에 강물을 향해 불쑥 튀어나온 봉우리가 있는데, 누에 대가리 같다고 해서 이름이 잠두봉이어다.

140여 년 전에 무너져가는 나라의 정치권력은 이 봉우리에서 ‘사학邪學의 무리’를 목 자르고 그 시체를 강물에 던졌다. 죽임을 당한 자들이 1만 명이 넘었다. 서쪽에서 낯선 시간을 거슬러 올라오던 한강은 피로 씻기었고 봉우리의 이름은 절두산切頭山으로 바뀌었다. (········) 비 오는 날에는 절두산 벼랑이 빗물에 번들거리고 그 아래 자유로에는 늘 자동차들이 밀려 있었다. 자유로를 따라서 서울을 드나들 때마다, 이 한 줌의 흙더미는 나의 일상을 심하게 압박하였다. 이 소설은 그 억압과 부자유의 소산이다. (··········)“

  김훈의 소설 <흑산>의 후기를 읽는 순간, 나는 소름이 끼쳤다.

 

  그도 절두산을 알고 있었던 것일까?

  죽임을 당해 강물에 던져진 1만 원혼의 절규 아닌 노래를 그도 들었던 것일까?

  그 빈터에 남은 ‘한 줌의 흙더미’로 억압과 부자유에 그도 시달렸던 것일까?

 

 

  여하튼 필자는 그 물음 보따리에 나 나름대로 답을 시도해 보기로 했다. 그것을 건네주신 분들의 여망일 뿐 아니라, 그 물음들이 지금껏 필자가 여러 부류의 사람들로부터 받았던 것들의 힘이라는 성격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었다.

  필자가 항상 가슴에 품고 있던 성구 중에 이런 구절이 있다.

  “여러분이 지닌 희망에 관하여ㅕ 누가 물어도 대답할 수 있도록 언제나 준비해 두십시오.”(1베드 3,15)

  ‘누가 물어도’, 여기에는 어떤 예외도 없다. 안 그러면 역차별이다. 그랬기에 필자는 ‘누가 물어도’ 성심성의껏 답변해 왔다.

  필자에게는 이데올로기도, 지위고하도, 빈부도 없다. 사제인 필자 앞에는 목마른 영혼만 있다. 사제에게는 모든 영혼을 차별 없이 돌보아야 하는 의무가 있기 때문이다.

  물론 처음부터 내가 할 수 없는 것은 사양한다. 하지만 할 수 있는 것을 사양하는 법은 내 사전에 없다.

  이번 <잊혀진 질문> 역시 그 가운데 하나일 뿐이다.

  

  시방 세상이 하수상하다.

  소위 2040세대의 신음은 거칠고, 절망은 깊고, 분노는 격하고, 혼돈은 칠흑이다.

  그 언저리라고 나을 바 없다. 너고 나고가 없다.

  모두가 한통속으로 공황을 넘어 오리무중이다.

  저마다 묘안을 쥐어짜 보지만 답답함은 가시지 않는다.

  이 난리통이 언제쯤이나 어떻게 지나가려나.

 

  지진·쓰나미가 덮치면 그 원인이며 대책이며를 ‘표층’에서 찾지 않고 ‘그 아래’ 지반에서 찾듯이. 모르긴 몰라도 오늘 대한민국을 급습한 문화적·사회적·정치적 지각변동에 대한 묘책도 부글부글 끓는 여론의 표층에서 찾을 것이 아니라 ‘그 아래’ 심층에서 찾아야 할지 모른다.

 

  ‘그 아래’ 심층!

  그곳이 어딘가? 인간 존재의 밑바닥을 말한다.

  거기 무엇이 있는가? 마르지 않는 물음의 샘이 있다.

  “왜, 왜, 왜? 하필이면 왜 나에게 이런 일이?”

  “하여간 어떻게 살아야 옳으냐구?”

  도대체 무엇을 위한 인생인가?“

   ······.

 

  이런 물음들이 그때그때 솟구쳐 올라, 때로는 하늘에 삿대질을 해대고, 때로는 자신을 무차별로 질타하고, 때로는 거침없이 궤도 수정의 용단을 내리게 하고, 때로는 묵직한 터치로 등을 밀어주기도 하는 것이다.

 

  이 글은 다섯 페이지 분량의 물음들에서 출발했다. 그 물은은 사실상 우리 고달픈 인생들의 흉금을 대변하는 것들이었다. 뭐랄까, 생의 밑바닥을 흐르는 거부할 수 없는 물음들?!

  그것들은 실상 절망 앞에 선 ‘너’의 물음이며, 허무의 늪에 빠진 ‘나’의 물음이며, 고통으로 신음하는 ‘우리’의 물음이었다.

 

  이런 까닭에 제목을 ‘잊혀진 질문’이라 정했다. ‘잊혀진’이라는 말은 잊혀져 있지만 다시 발굴되게끔 되어 있다는 의미다. 곧 잊으려 해도 잊히지 않고, 묻으려 해도 묻히지 않는 질문이라는 뜻이다.

 

  답은 완전하지 않다. 원하는 답의 실마리나 작은 꼬투리쯤이어도 여한이 없다.

  이 글 가운데 어느 한 마디라도 그것이 독자의 묵은 체증을 뻥 뚫어줄 수 있다면야.

  아무렴, 그렇다면야!

 

                                                                       해뜨는 마을에서

                                                                  무지개舞之開 차동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