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서)
이하 2012년 2월 10일 씀
일주일 전에 저는 4일간 열이 나고 아팠습니다. 그 전날 성당에 다녀온 후에 푹 쉬었어야 하는데, 집에 불쑥 찾아온 두 자매님과 이야기를 오래 나누느라 무리했던 탓입니다.
한 자매님은 제가 세들어 있는 집을 산, 30대 후반의 새 주인이고, 다른 한 자매님은 개신교 전도사인데 새 주인이 청해서 같이 왔다고 했습니다. 집 주인은 리모델링을 위해 집치수를 재러 왔다가 실수로 놓고 간 카드를 찾으러 온 것이었습니다. 제 표정이 참 밝아서 인상적이었다면서 기도해주고 싶었다는 것입니다.
전도사 자매님은 자기도 천주교를 다니다가 개신교 전도사까지 되었다고 했습니다. 두 자매님은 자리에 앉자마자 제게 기도 많이 하고 기도 많이 받느냐고 물어보았고, 대뜸 "구원에 대한 확신이 있습니까?라고 물었습니다.
'오호라, 요 사람들이 나를 개종시킬 모양이네. 뭐라 대답하지?' 저는 갑작스런 질문에 얼른 대답할 말을 찾지 못했습니다. 위 글 ' 주님께서 우리 모두를 사랑의 방주에 태우셨으니'라는 글에 구원에 대한 확신에 관해서 쓴 기억은 나는데, 예상치 못한 상황에서 질문을 받아서인지 말문이 막혔습니다. '평소에 이런 상황에서 뭐라고 답변할지 확실히 연습해 둘 걸'하는 생각을 잠시 하면서, 말꼬투리 잡히면 밀릴까봐 ㅎㅎ, 대답 대신 공세를 취하기로 했습니다. '그 질문은 개신교 신자들이 천주교 신자들 공격할 때 시작하는 말이지요.?'하고 물었더니, 두 자매님은 극구 아니라고 했습니다.
"글쎄요. <일부> 개신교 신자들이 그렇지요. 하하하. 많이 받아 본 질문이에요. 천주교와 개신교의 구원론이 다르다는 걸 이유로 공격을 한다니까요. ...그런데 어떻게 인간이 하느님 구원의 범주를 인간의 잣대로 한계 지어서, 여기까지는 구원이고, 여기는 아니고, 교회 안은 구원 받고, 교회 밖은 구원 못 받고....하는 식으로 정할 수가 있지요?... 구원은 온전히 하느님의 자비에 달린, 하느님의 권한이지요...성경 말씀에도..................천주교 이단이라고 하는 친구들도 있고, ...우리 아들 담임은 아들이 몸이 아프다고 전화했더니....'00어머님,, 안타깝습니다. 어머님이 마르틴 루터의 95개조 반박문을 모르셔서 그렇습니다....라면서 잘못된 종교를 제가 다녀서 아들이 아픈 것처럼 협박을 하더라구요... 저 장로교계 고등학교 다녔는데,, 우리 교목님이 수업 중에 '담배 피우고 술 마시는 집안 치고 안 망하는 집안 있느냐면서 천주교 망한다고 하더라구요....개신교식 성경해석이 마음에 안 들 때도 많았지요....... 부자와 라자로의 비유에서도.. 뭐,,,부자는 하느님을 안 믿어서 지옥에 간 거라고.....대학 교수인 친구도 제 이야기듣고는 천주교도 하느님 믿는 줄 처음 알았다고 하고... ... 그 <일부>가 그렇게 가르치는지 몰라요....."'
두 자매님이 딱히 할 말을 찾지 못하고 있는 것 같아서 저는 제게 베풀어주신 하느님의 은총에 대해 간단히 이야기해주었습니다. 예쁘고 착해 보이는 집 주인 자매님은 눈물까지 글썽이면서 제 이야기를 듣더니, "주님과 그런 만남은 우리 교회(개신교)에만 있는 줄 알았어요."라고 하였습니다. 저는 환하게 웃으면서 '글쎄, 그렇다니까요. 성당 다니는 사람들도 신앙체험 다 해요. 제 주위에도 얼마나 많은데요."
제가 성경을 인용하기도 했는데, 그러면 그 자매님은 "어머, 천주교도 우리랑 성경이 같아요? 몰랐어요."..라고 합니다.
두 시간쯤 이야기 나누다가 집 주인 자매님은 집에 돌아갔는데, 전도사 자매님은 더 남겠다는 것이었습니다.... 방언기도를 사모(개신교식 표현)했고,,주님과 교제(개신교 표현)하게 된 계기를 잠깐 이야기하더니, "천주교 신자들 집에 가면 말씀이 걸려있지 않은데, 여기는 말씀이 있네요.",라고 했습니다.. 또 "그런 체험을 나눌 기회가 성당에는 없지요?"하고 물었습니다. 저는 간단히 대답해주었습니다.(좀 횡설수설..ㅋ)
전도사 자매님은 하느님께서 저를 만나도록 이끄신 섭리에 대해 감사기도를 올리더니 다음에 다시 찾아오겠다고 했습니다.ㅎㅎ
하느님 이야기 나누는 일은 언제든 기쁜 일입니다. 두 자매님과의 만남도 고맙고 기분 좋은 만남이었습니다. 그래도 마음 속에 한 마디가 남았습니다. "오늘 온 자매님들은 좋은 뜻으로 고마운 방문을 해주었지만.. ..행여 천주교 다녀봤더니... 구원에 대한 확신도 없고, 말씀도 가까이 않고,,신앙 체험도 없고..... 그런 잘못된 이유를 빌미로, 하느님이 아니라 자기가 다니는 교회만의 유익을 위해서 잘 다니고 있는 천주교 신자들을 교회로부터, 은혜로운 성사의 은총으로부터 떼어낸 적이 있는 개신교 지도자들이 있다면.....하느님께서 책임을 묻지 않을까."
토끼 가족 여러분,
개신교 신자가 불쑥 "구원에 대한 확신이 있습니까?"하고 물어보면 뭐라고 대답하시겠어요?
저처럼 우물쭈물 하지 않으려면 미리 한 번쯤 입장을 정리해 두시는 게 좋을 것 같아요.
연옥 교리가 없는 개신교인들에게 설명하는 것이 한계가 있겠지만. '구원에 대한 확신'은 '하느님의 자비에 대한 믿음'이라고, 그런 의미에서라면 온 인류가 예외 없이 다 구원에 대한 확신이 있으면 좋겠다고 대답해볼까 합니다. ..ㅎㅎ..^^
혹시 위의 글에 보충이나 수정이 필요한 부분 있으면 가르쳐주세요.
바로 수정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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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버트 반 딕 신부님의 글 <연옥은 자비의 장소>의 일부를 옮깁니다.
7) "데레사 성녀의 가르침-제3천년기를 위한 메세지"
사람들은 데레사 성녀가 예전부터 전해오던 연옥에 대한 모든 인습적인 견해들을 엉망으로 만들었다고 말한다. 그것은 당연하다. 그녀는 하느님 앞에 빈손으로 나아가 선언할 것이다. 아무것도 없는 죄인들이, 공로가 많은 위대한 성인들보다 하늘나라에 쉽게 들어가는 이유를.
데레사 성녀는 믿음만으로 충분하다고, 공로는 아무런 보장도 해주지 않는다고, 오히려 하늘나라로 곧장 가는데 장애가 되는 일이 드물지 않다고, 또한 죄는 전혀 장애가 되지 못한다고 강조한다. 완전히 엉망인 인생을 살았더라도 오로지 믿기만 한다면, 하느님은 그렇게 죽은 자를 곧바로 당신 품에 받아들이실 것이다. 아무런 업적도 내세울 수 없을 때, 더욱이나 비참한 처지일 때, 믿는다는 것은 얼마나 손쉬운 방법인가!
성녀는 믿음을 가지고 모든 미소한 자들과 겸손함 자들에게 하늘나라로 가는 지름길을 보여준다. 그리하여 많은 사람들이 그길을 가고 있다. 성녀는 마리아 언니에게 이렇게 썼다. "하느님께서 내 모습 가운데 마음에 들어하실 모습은, 내가 나의 미소함과 나의 부족함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그분의 자비에 의탁하는 무조건적인 믿음... . 그것이 나의 유일한 보물입니다. 사랑하는 대모님, 나의 보물이 당신의 보물이 되어선 안 될 이유가 있나요?"
사람들은 데레사 성녀가 성덕을 통속했다고 말한다. 다시 말하면, 모든이가 그녀의 작은 길에 다가갈 수 있게 만들었다고, 그래서 그 길이 하늘나라로 곧장 가는 길이 되었다고... . 그 길은 더 이상 예외가 되지 않을 것이다. 모두가 아주 현명하게도 이 교회 박사의 '보물' 을 일단 자신의 것으로 만든다면, 그 길은 걷기 좋은 길이 될 것이다. 특히 작은 영혼이 되고자 하는 자들에게. 그것을 위해 데레사 성녀는 자신의 책 ' B' 의 끝에 하느님께 이렇게 기도했다. "나는 당신께 애원합니다. 당신의 눈길을 많은 작은 영혼들에게 보내주시길... . 나는 당신께 애원합니다. 당신 사랑에 합당한 희생 제물로서 작은 이들을 많이 뽑으시길."
그렇다. 성녀의 놀라운 메시지에 귀 기울인다면 그러한 작은 사람들이 많아질 것이다... . 아주 많아질 것이다... . 그러면 연옥은 '하늘나라로 가는 피할 수 없는 실제적인 건널목' 이 되기를 그만둘 것이다.
- 후버트 반 딕 신부님 (독일 DerFels
주님께서 우리 모두를 ‘사랑의 방주’에 태우셨으니
차동엽 신부님의 복음묵상 책자에서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읽었습니다.
<한 사람이 미국의 유명 대중설교 전도사인 무디를 찾아와서는, ‘자신이 구원받은 것처럼 느껴지지 않는다’며 걱정스럽게 얘기했습니다. 무디가 그에게 물었습니다.
“‘노아의 방주‘에서 방주 안에 있던 노아를 생각해 보세요. 그가 안전했습니까?”
“물론입니다.”
그 남자가 대답했습니다.
“그렇다면 노아가 어떻게 안전할 수 있었죠? 그의 느낌 때문이었나요, 아니면 방주 때문이었나요?”
그 남자는 곰곰이 생각하더니, 곧 무디의 의도를 파악하고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동안 제가 얼마나 바보처럼 지냈는지 알았습니다. 그렇습니다. 구원의 확인은 제 느낌에 있는 것이 아니라 나를 구원하신 예수님께 있는 것입니다.”>
저는 기도를 하면서 종알거렸습니다.
‘주님, 당신 사랑의 방주 안에 인류 모두를 태워주셨지요? 조건 없이 안전하게~~ 고마워요. 저희들의 느낌과는 상관없이, 저희들이 아무리 당신을 제대로 알아보지 못해도, 당신의 구원에 관심이 없어도, 주님께서는 이미 인류 전체를 구원하셨군요. 와~~ 새삼 너무 좋아요. 위로가 돼요. 든든하고요. 무디 전도사의 비유가 근사해요.’
30여 년 전, 해남 땅끝 마을에서 열리는 성당 중고등부 수련회에 참가했을 때의 일이 생각납니다. 학생회 부회장을 맡아 이런 저런 신경을 쓰느라고 꽤 고생했던 기억도 나고, 재미있는 여러 가지 활동을 했던 기억도 있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은 아일랜드인 주임 신부님과의 ‘질문과 대답’ 시간이었습니다.
우리 성당 학생들이 묵는 곳 옆에 어느 개신교 학생회에서 수련회를 열고 있었습니다. 하루는 개신교 학생들이 우리 성당 학생들에게 선교?하러 왔습니다. 개신교 일부에서 주장하듯이 천주교인들을 이단 신앙을 가진 선교 대상자로 생각했던가 봅니다.
개신교회 학생 한 명이 우리 성당 학생에게 “구원에 대한 확신이 있습니까?”하고 질문했습니다. 성당 학생이 “구원 받으려고 착하게 열심히 살려고 합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개신교회 학생이 정말로 깜짝 놀라면서 “구원에 대한 확신도 없이 어떻게 성당에 다닐 수 있습니까?”하고 되물었습니다.
공격을 받았던 학생이 신부님께 “구원에 대한 확신이 없으면 신앙생활 못하는 겁니까?”하고 여쭤 보았고, 신부님께서는 “천주교와 개신교는 구원론에서 차이가 있습니다. 그들은 오직 믿음만으로 구원 받는다고 하고, 우리는 그렇지 않습니다.~~~”하고 자세히 설명해주셨습니다. 덧붙여 신부님께서는 비신자들의 구원에 대해서도 말씀하셨습니다. 저는 보편적이고 믿음과 함께 선행과 공로를 중시하는 천주교 교리가 아주 마음에 들었습니다.
그 후로 저는 ‘예수천당 불신지옥’을 외치면서 ‘구원에 대한 확신’만을 지나치게 강조하는 사람들에게 자신 있게 “사람은 믿음만으로 의롭게 되는 것이 아니라 실천으로 의롭게 됩니다.(야고보 2,24)”라는 내용의 답변을 해주곤 했습니다.
시간이 많이 흘러서야 저는 구원에 대한 확신을 갖고 지내는 것이 교만하거나 불량한 일만은 아니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성경에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하느님께서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시려는 것이 아니라 세상이 아들을 통하여 구원을 받게 하시려는 것이다. 아들을 믿는 사람은 심판을 받지 않는다. 그러나 믿지 않는 자는 이미 심판을 받았다. 하느님의 외아들의 이름을 믿지 않았기 때문이다.(요한 3:16-18)“
물론 ‘구원에 대한 확신’이 ‘믿지 않는 자들에 대한 심판의 잣대’가 되고, ‘믿는 이들만 선택받았다는 교만’이 되고, ‘현세의 복을 구원의 증거로 삼는 구실’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하지만 불신과 좌절이 만연한 이 시대에는 ‘교회가, 온 인류가 이미 하늘나라에 닻을 내린 주님 사랑의 방주에 타고 있다는 믿음’이 절박하게 필요하다는 생각을 자주 합니다.
“믿지 않는 사람은 이미 심판을 받았다.”라는 말씀은 우리가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사랑을 믿지 않으면, 이미 이 세상에서부터 의지할 곳 없는 신세로 힘겹게 살 수밖에 없고,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 아닌 헛된 것들을 좇게 될 수밖에 없다는 말씀일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공로 때문이 아니라 주님의 자비 덕으로 구원 받습니다. 그러니, 우리의 부족함에도 불구하고 십자가의 우도처럼 겸손한 마음으로, ‘예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시리라는 믿음’을 고백할 줄 알아야 하겠습니다. 그러한 믿음이야말로 우리가 이 세상에서 훌륭한 신앙의 열매를 맺도록 돕는 가장 좋은 거름이 되기도 할 것입니다.
우리들이 의식하든 의식하지 못하든 우리 생명의 원동력은 바로 주님의 사랑입니다. 그런 주님의 사랑에 대한 믿음이 바로 구원입니다.
‘예수님이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을 지극히 사랑하시는 구원자이심’을 믿고서, 주님의 구원 계획에 응답하는 것은 ‘지혜 중의 지혜’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지혜로움을 나타내는 가장 분명한 표현은 명랑한 얼굴이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우리 신앙인들은 ‘우리 모두를 구원하시려는 예수님의 마음’을 아는 최고의 지혜를 가졌으니, 이 세상 소풍이 끝나는 날까지, 온갖 어려움 속에서도 명랑함을 잃지 않는 삶을 살아내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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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 제 묵상의 부족함을 차동엽 신부님의 신나는 복음 묵상 책자의 훌륭한 기도로 메우고 싶습니다.
< 영원한 생명은 죽어서나 누리는 내세의 삶이 아닙니다.
영원한 생명은 지상에서도 한껏 누리는 특은입니다.
생명은 마지못해 연명하는 것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생명은 충만입니다. 기쁨의 충만, 희망의 충만, 사랑의 충만, 이런 충만입니다. 그러므로 외아들 예수님을 믿어 영원한 생명을 누리는 우리의 삶은 언제나 행복의 절정인 것입니다. 그러기에 영원한 생명은 특은입니다. 누구라도 이 ‘영원한 생명’의 실체를 자신의 삶 속에서 단 한 줄기라도 감지할 줄 안다면 그의 눈에서는 감격의 눈물이 흐르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영원한 생명은 우리 생에서 가장 든든한 전천후 담보입니다.
영원한 생명은 실패 중에서도 승리의 담보입니다.
영원한 생명은 절망 중에도 희망의 담보입니다.
영원한 생명은 미움 중에도 사랑의 담보입니다.
영원한 생명은 죄 중에도 용서의 담보입니다.
영원한 생명은 불행 중에도 행복의 담보입니다.
함께 기도하시겠습니다.
주님, 저희가 저희의 공로가 아니라 저희의 믿음 위에 내리신 주님의 은총으로 이미 ‘영원한 생명’을 누리고 있음에 감사드립니다.
주님, 영원한 생명이 저희 안에 용약하기에 저희는 어떤 궁지에서도 ‘멸망’하지 않을 것임을 저희가 압니다.
주님, 저희로 하여금 ‘영원한’ 생명의 특은을 머리로만이 아니라 저희의 온 몸으로 느끼고 누리게 하소서. 아멘!
- 차동엽 신부님의 ‘신나는 복음묵상’ : 가해 삼위일체 대축일(2011.06.19) 책자 중에서 - >
2011년 6월 26일 엉터리 레지나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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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하 2012년 2월 10일 씀
일주일 전에 저는 4일간 열이 나고 아팠습니다. 그 전날 성당에 다녀온 후에 푹 쉬었어야 하는데, 집에 불쑥 찾아온 두 자매님과 이야기를 오래 나누느라 무리했던 탓입니다.
한 자매님은 제가 세들어 있는 집을 산, 30대 후반의 새 주인이고, 다른 한 자매님은 개신교 전도사인데 새 주인이 청해서 같이 왔다고 했습니다. 집 주인은 리모델링을 위해 집치수를 재러 왔다가 실수로 놓고 간 카드를 찾으러 온 것이었습니다. 제 표정이 참 밝아서 인상적이었다면서 기도해주고 싶었다는 것입니다.
전도사 자매님은 자기도 천주교를 다니다가 개신교 전도사까지 되었다고 했습니다. 두 자매님은 자리에 앉자마자 제게 기도 많이 하고 기도 많이 받느냐고 물어보았고, 대뜸 "구원에 대한 확신이 있습니까?라고 물었습니다.
'오호라, 요 사람들이 나를 개종시킬 모양이네. 뭐라 대답하지?' 저는 갑작스런 질문에 얼른 대답할 말을 찾지 못했습니다. 위 글 ' 주님께서 우리 모두를 사랑의 방주에 태우셨으니'라는 글에 구원에 대한 확신에 관해서 쓴 기억은 나는데, 예상치 못한 상황에서 질문을 받아서인지 말문이 막혔습니다. '평소에 이런 상황에서 뭐라고 답변할지 확실히 연습해 둘 걸'하는 생각을 잠시 하면서, 말꼬투리 잡히면 밀릴까봐 ㅎㅎ, 대답 대신 공세를 취하기로 했습니다. '그 질문은 개신교 신자들이 천주교 신자들 공격할 때 시작하는 말이지요.?'하고 물었더니, 두 자매님은 극구 아니라고 했습니다.
"글쎄요. <일부> 개신교 신자들이 그렇지요. 하하하. 많이 받아 본 질문이에요. 천주교와 개신교의 구원론이 다르다는 걸 이유로 공격을 한다니까요. ...그런데 어떻게 인간이 하느님 구원의 범주를 인간의 잣대로 한계 지어서, 여기까지는 구원이고, 여기는 아니고, 교회 안은 구원 받고, 교회 밖은 구원 못 받고....하는 식으로 정할 수가 있지요?... 구원은 온전히 하느님의 자비에 달린, 하느님의 권한이지요...성경 말씀에도..................천주교 이단이라고 하는 친구들도 있고, ...우리 아들 담임은 아들이 몸이 아프다고 전화했더니....'00어머님,, 안타깝습니다. 어머님이 마르틴 루터의 95개조 반박문을 모르셔서 그렇습니다....라면서 잘못된 종교를 제가 다녀서 아들이 아픈 것처럼 협박을 하더라구요... 저 장로교계 고등학교 다녔는데,, 우리 교목님이 수업 중에 '담배 피우고 술 마시는 집안 치고 안 망하는 집안 있느냐면서 천주교 망한다고 하더라구요....개신교식 성경해석이 마음에 안 들 때도 많았지요....... 부자와 라자로의 비유에서도.. 뭐,,,부자는 하느님을 안 믿어서 지옥에 간 거라고.....대학 교수인 친구도 제 이야기듣고는 천주교도 하느님 믿는 줄 처음 알았다고 하고... ... 그 <일부>가 그렇게 가르치는지 몰라요....."'
두 자매님이 딱히 할 말을 찾지 못하고 있는 것 같아서 저는 제게 베풀어주신 하느님의 은총에 대해 간단히 이야기해주었습니다. 예쁘고 착해 보이는 집 주인 자매님은 눈물까지 글썽이면서 제 이야기를 듣더니, "주님과 그런 만남은 우리 교회(개신교)에만 있는 줄 알았어요."라고 하였습니다. 저는 환하게 웃으면서 '글쎄, 그렇다니까요. 성당 다니는 사람들도 신앙체험 다 해요. 제 주위에도 얼마나 많은데요."
제가 성경을 인용하기도 했는데, 그러면 그 자매님은 "어머, 천주교도 우리랑 성경이 같아요? 몰랐어요."..라고 합니다.
두 시간쯤 이야기 나누다가 집 주인 자매님은 집에 돌아갔는데, 전도사 자매님은 더 남겠다는 것이었습니다.... 방언기도를 사모(개신교식 표현)했고,,주님과 교제(개신교 표현)하게 된 계기를 잠깐 이야기하더니, "천주교 신자들 집에 가면 말씀이 걸려있지 않은데, 여기는 말씀이 있네요.",라고 했습니다.. 또 "그런 체험을 나눌 기회가 성당에는 없지요?"하고 물었습니다. 저는 간단히 대답해주었습니다.(좀 횡설수설..ㅋ)
전도사 자매님은 하느님께서 저를 만나도록 이끄신 섭리에 대해 감사기도를 올리더니 다음에 다시 찾아오겠다고 했습니다.ㅎㅎ
하느님 이야기 나누는 일은 언제든 기쁜 일입니다. 두 자매님과의 만남도 고맙고 기분 좋은 만남이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도 마음 속에 한 마디가 남았습니다. "오늘 온 자매님들은 좋은 뜻으로 고마운 방문을 해주었지만.. ..행여 천주교 다녀봤더니... 구원에 대한 확신도 없고, 말씀도 가까이 않고,,신앙 체험도 없고..... 그런 잘못된 이유를 빌미로 행여 잘 다니고 있는 천주교 신자들을 교회로부터, 은혜로운 성사의 은총으로부터 떼어낸 적이 있는 개신교 지도자들이 있다면.....하느님께서 책임을 물을 거야."
토끼 가족 여러분,
개신교 신자가 불쑥 "구원에 대한 확신이 있습니까?"하고 물어보면 뭐라고 대답하시겠어요?
저처럼 우물쭈물 하지 않으려면 미리 한 번쯤 입장을 정리해 두시는 게 좋을 것 같아요.
연옥 교리가 없는 개신교인들에게 설명하는 것이 한계가 있겠지만. '구원에 대한 확신'은 '하느님의 자비에 대한 믿음'이라고, 그런 의미에서라면 온 인류가 예외 없이 다 구원에 대한 확신이 있으면 좋겠다고 대답해볼까 합니다. ' 온 인류가 다~'라는 말이 또 시비거리가 되겠지만요..ㅎㅎ..^^
혹시 위의 글에 보충이나 수정이 필요한 부분 있으면 말씀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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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버트 반 딕 신부님의 글 <연옥은 자비의 장소>의 일부를 옮깁니다.
7) "데레사 성녀의 가르침-제3천년기를 위한 메세지"
사람들은 데레사 성녀가 예전부터 전해오던 연옥에 대한 모든 인습적인 견해들을 엉망으로 만들었다고 말한다. 그것은 당연하다. 그녀는 하느님 앞에 빈손으로 나아가 선언할 것이다. 아무것도 없는 죄인들이, 공로가 많은 위대한 성인들보다 하늘나라에 쉽게 들어가는 이유를.
데레사 성녀는 믿음만으로 충분하다고, 공로는 아무런 보장도 해주지 않는다고, 오히려 하늘나라로 곧장 가는데 장애가 되는 일이 드물지 않다고, 또한 죄는 전혀 장애가 되지 못한다고 강조한다. 완전히 엉망인 인생을 살았더라도 오로지 믿기만 한다면, 하느님은 그렇게 죽은 자를 곧바로 당신 품에 받아들이실 것이다. 아무런 업적도 내세울 수 없을 때, 더욱이나 비참한 처지일 때, 믿는다는 것은 얼마나 손쉬운 방법인가!
성녀는 믿음을 가지고 모든 미소한 자들과 겸손함 자들에게 하늘나라로 가는 지름길을 보여준다. 그리하여 많은 사람들이 그길을 가고 있다. 성녀는 마리아 언니에게 이렇게 썼다. "하느님께서 내 모습 가운데 마음에 들어 하실 모습은, 내가 나의 미소함과 나의 부족함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그분의 자비에 의탁하는 무조건적인 믿음... . 그것이 나의 유일한 보물입니다. 사랑하는 대모님, 나의 보물이 당신의 보물이 되어선 안 될 이유가 있나요?"
사람들은 데레사 성녀가 성덕을 통속했다고 말한다. 다시 말하면, 모든이가 그녀의 작은 길에 다가갈 수 있게 만들었다고, 그래서 그 길이 하늘나라로 곧장 가는 길이 되었다고... . 그 길은 더 이상 예외가 되지 않을 것이다. 모두가 아주 현명하게도 이 교회 박사의 '보물' 을 일단 자신의 것으로 만든다면, 그 길은 걷기 좋은 길이 될 것이다. 특히 작은 영혼이 되고자 하는 자들에게. 그것을 위해 데레사 성녀는 자신의 책 ' B' 의 끝에 하느님께 이렇게 기도했다. "나는 당신께 애원합니다. 당신의 눈길을 많은 작은 영혼들에게 보내주시길... . 나는 당신께 애원합니다. 당신 사랑에 합당한 희생 제물로서 작은 이들을 많이 뽑으시길."
그렇다. 성녀의 놀라운 메시지에 귀 기울인다면 그러한 작은 사람들이 많아질 것이다... . 아주 많아질 것이다... . 그러면 연옥은 '하늘나라로 가는 피할 수 없는 실제적인 건널목' 이 되기를 그만둘 것이다.
- 후버트 반 딕 신부님 (독일 DerFels 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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