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 고백/투병일기-2012년

하느님께서는 ‘나’를 ‘특별히’ 사랑하신다. + 덧붙이는 말

김레지나 2012. 1. 3. 12:11

2012년 1월 3일에 2010년 8월에 썼던 글 뒤에 이야기를 좀 덧붙입니다.

하느님께서는 ‘나’를 ‘특별히’ 사랑하신다.

 

  2006년에 암으로 수술을 받을 무렵, 하느님을 사랑하는 설렘과 사랑받는 행복감에 취해 살던 때의 일입니다. 저는 주님께 “제 인생 최고의 사랑은 하느님, 당신입니다.”라는 고백을 담은 긴 편지를 썼습니다. 다음 날 우연히 인터넷에서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투의 글을 발견했습니다. 제 사랑고백 편지에 대한 예수님의 답장이 분명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예수님의 달콤한 사랑의 말씀들 속에 당시의 독특한 제 고민들에 대한 답이 들어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저는 세상을 다 얻은 것처럼 신이 나서, 동생에게 자랑했습니다.

  “이거 예수님이 나한테 주신 거다.”

  동생이 샐쭉해서 대답했습니다.

  “이게 어떻게 언니한테만 주는 답장이야? 나도 요즘 예수님한테 사랑한다고 고백하는데... 나한테도 주는 답장이지.”

  저는 답장 속의 몇 구절을 짚어주며 저한테만 주시는 예수님의 답장이 분명하다고 우기다가, 동생의 질투가 제법 진지해보여서 동생에게 져주었습니다.

  “좋아, 그래, 이 답장 니 거라고 해라. 근데 이 글에 보면 우리 말고 한 여자가 더 있더라. 이 편지 받은 사람이 우리 말고 최소한 세 사람이지. 칫, 도대체 이 절절한 연애편지를 또 누구한테 주신 거야?”

  “푸하하하하하하!"

  풀죽은 제 모습이 너무나 우스워서 동생과 저는 데굴데굴 구르며 웃었습니다.

 

  동생이 어느 신부님의 이야기를 해주었습니다. 그 신부님은 예수님께서 당신만 특별히 사랑하신다는 느낌이 들어서 신부님이 되셨답니다. 어느 날 성당에서 신학생들이 들어오는 모습을 보며 앉아계실 때 갑자기 예수님의 목소리가 들렸답니다. 예수님께서 신학생이 한 명씩 들어올 때마다 “나는 너를 특별히 사랑한다. 나는 너를 특별히 사랑한다....." 일일이 말씀하시더랍니다. 그 신부님이 속상해서 예수님께 따지셨답니다.

  “예수님, 그럼 저만 특별히 사랑하시는 게 아니었어요? 저는 그런 줄 알고 사제가 되었는데요. 그럼 저는 뭐예요?"

 

  우연한 기회에 저는 “하느님께서 나를 특별히 사랑하신다.“라는 말을 새롭게 묵상해보았습니다. 전에는 ‘특별한 사랑’을 ‘양적, 질적으로 완전한 사랑’으로 이해했었는데, 이젠 ‘특별’이 ‘고유’라는 뜻으로 새겨집니다.

  하느님께서는 제게 온 인류에게 조금씩 나눠주시는 흔한 사랑을 주시는 게 아니라, 저한테 밖에 줄 수 없는 독특한 사랑을 주십니다. ‘참 소중한 그들 중 하나’가 ‘참 소중한 너’로서 사랑해주십니다. 그런 묵상이 하느님을 사랑하는 기쁨과 행복을 더해주었습니다.

 

  수술을 받고 난 후 미사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독서말씀을 듣다가 갑자기 대학시절 읽었던 “어느 어릿광대의 견해”라는 책의 한 부분이 기억났습니다. 읽은 지 20년도 넘은 책이라서 주인공 이름도 기억나지 않았지만, 신기하게도 영화처럼 선명하게 떠올랐습니다. 작품 속 어릿광대는 ‘마리’라는 여인과 서로 사랑하여 같이 살았습니다. 그러다가 마리는 안정된 직업을 가진 공무원과 결혼해 버렸습니다. 어릿광대는 마리의 작은 동작들 하나하나, 마리가 젖은 머리칼로 화장대 앞에 앉아서 겨드랑이 사이에 손을 넣고 녹이는 모습, 치약 튜브를 짜는 모습....등등을 일일이 기억하며 그리워합니다.

  그 장면이 생각나면서 마치 하느님의 속삭임인 양, 어릿광대의 독백이 제 머릿속으로 날아들었습니다.

  “그 모든 모습까지 다 사랑해줄 수 있는 사람은 오직 ‘나밖에’ 없다.”

  곧이어 독서말씀 한 구절이 귀에 박혔습니다.

  “나는 너를 영원히 나의 아내로 맞으리라.” (호세아서 2,31)

  저는 평평 쏟아지는 눈물로밖에 답할 수 없었습니다. 게다가 그날 미사의 영성체 성가는 “나 같은 죄인 살리신 그 은혜 놀라워”였습니다. 미사가 끝날 때까지 죽죽 울었습니다.

  미사 후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세상이 얼마나 새롭고 경이로워 보였는지 모릅니다. 성당 가는 길에 인상 나쁜 가게 주인을 보면서 ‘저 사람 인상 참 고약하네’하고 생각했었는데, 미사 마치고 나오는 길에는 ‘아, 저 사람도 하느님의 사랑받는 피조물이구나.’하며 흐뭇해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제게 그렇게 ‘특별히’ 당신 사랑을 일러주셨습니다.

‘특별하다’는 것은 ‘고유하다’는 뜻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저 외에 다른 사람에게는 나누어줄 수 없는 사랑을 마련하셨습니다.

왜냐면 저는 이 세상 어느 누구와도 다른, 이 세상에서 단 하나뿐인 고유한 존재로 창조되었기 때문입니다.

  저 외에 다른 사람들은 기억하지 못하는 하느님을 향한 저만의 그리움이 있습니다.

제 환경과 제가 겪은 일들은 이 세상에서 단 하나뿐이기 때문입니다.

  오직 하느님과 저만이 속삭일 수 있는 이야기들이 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우주를 대하시듯, 작고 작은 제 영혼과 ‘특별히’ 대화해주셨기 때문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저뿐만 아니라 온 인류 한 명 한 명을 ‘특별히’ 사랑하십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 각자와 ‘고유한’ 사랑을 주고받으시기를 간절히 바라십니다. 우리의 머리카락 개수까지 알고 계시는 하느님은 우리의 눈짓 하나, 스쳐가는 생각 하나 하나까지 다 사랑해주실 수 있는 분이십니다.

 

  우리가 세례를 받는 것은 그런 인격적인 하느님과 ‘특별한’ 관계를 맺겠다는 ‘약속’입니다. 우리가 하느님의 자녀로 사는 것은 하느님과 ‘둘만의 특별한 사랑’을 만들어나가는 응답의 연속입니다. 하느님의 자녀는 각자를 위한 하느님의 구원계획에 응답하면서, 아빠이고 애인이신 하느님과 둘만의 역사를 만들어가야 합니다.

 

  “하느님, 저를 이 세상에 둘도 없는 존재로 만들어 주셔서 고맙습니다. 제게 특별한 사랑으로 베풀어 주신 모든 은혜가 놀랍기만 합니다. 어느 누구도 갖지 못한 저만의 기억으로 하느님을 그리워합니다. 저만의 독특한 색깔과 향기로 하느님을 사랑합니다. 하느님, 당신은 제 인생 최고의 사랑입니다.”

 

                                                            2010년 8월 엉터리 레지나 씀

-----------------------------------------------------------

  미사 중에 제가 ‘들었다고 생각되는’말씀을 위 글로 이야기할 수 있기까지 딱 4년이 걸렸습니다. 신앙은 감정적인 것이 아니라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것이라면서 제 이야기들을 무의식에서 튀어나온 (못된)상상력에 기인한 것이라고 몹시 비난하던 분이 있었는데, 그분이 준 상처와 두려움을 이겨내는 데 시간이 필요했던 것 같습니다.

 

  2010년에 위 글을 쓸 때만 해도 조심스러워서 독서말씀이 들렸다고 하는 게 낫겠다 싶어서 제대로 밝히지 않았지만, 실제 제가 들은 말씀은 “나는 너를 아내로 맞으리라”가 아니라 “나는 너를 나의 신부로 맞으리라.”였습니다. 저는 성경을 다 읽어본 적도 없는 사람이었기 때문에 한동안 성경말씀이라는 것도 몰랐었습니다.

 

  그 말씀이 호세아서의 말씀인 줄은 그후 1년쯤 지나서 어떤 수사님이 예언 안수를 해주시면서 그 성경구절을 읽어보라고 하셔서 알게 되었습니다. 그제야 그날의 독서말씀을 뒤져보았고 하느님께서 독서말씀을 통해 당시의 제 상황에 딱 맞는 말씀을 주셨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호세아서는 하느님께서 바알신과 바람났던 이스라엘을 불러들여 사랑을 속삭여주시는 내용이라고 합니다. 하느님께서는 10년 넘게 부질없는 것들을 좇아 하느님을 떠나 있었던 저를 그렇게 다시 불러주신 것입니다. 뜬금없게도 그날 영성체 성가는 개신교 찬송인 <나같은 죄인 살리신 그 은혜 놀라워~>이었습니다. 아마 성가대 특송이었던 것 같습니다. 독서 때부터 영성체후까지 얼마나 울었는지 모릅니다.

 

  2011년 1월 12일, 송봉모 신부님의 책에서 정말 반가운 글을 읽었습니다. ‘신부’라는 단어를 들었다고 말해도 된다는 허락을 받은 것 같았습니다. 제 체험이 ‘미친 소리’가 아니라는 위로 같았습니다. (그래서 이 덧붙이는 말도 용기를 내어 씁니다.)

  "주님이 우리에게 간절히 바라시는 것은 매우 간단하고 분명하다.

  주님은 우리를 원하신다는 것이다.

  우리와 인격적인 친교를 맺기를 원하신다.

  하느님은 인간을 창조하실 때

  "우리와 비슷하게 우리 모습으로 사람을 만들자"(창세 1,26)라고 하셨다.

  당신의 모습을 닮은 사람을 만드는 것은 당신의 동반자를 만드는 것이다.

  단순한 협력자가 아니라 동반자다.

  여기서 동반자는 구체적으로 신부(新婦)를 가리킨다.

  하느님은 우리를 당신의 신부로 창조하신 것이다.

  이런 점에서 주님이 우리에게 바라시는 것은 신부인 우리와 일치하는 것이다."

                                                             책 <세상 한복판에서 그분과 함께> 중에서

 

  하느님께서는 저만 당신의 신부로 부르신 것이 아닙니다.

  온 인류 한 사람 한 사람을, 제 이야기를 듣는 여러분을

  똑같은 사랑으로, 특별한 사랑으로

  한 번이 아니라 매 순간, 당신의 ‘신부’로 부르고 계십니다.

 

  새해에도 하느님과의 인격적인 만남을 통해서

  우리에게 ‘말도 안 되는’ 엄청난 사랑을 주시는 하느님께 감사하면서,

  하느님과 여러분, ‘둘만의’ ‘특별한’ 사랑을 더욱 아름답게 가꾸시길 바랍니다.

  주님의 놀라운 사랑 안에서 언제까지나 행복하시길 기도합니다.

   Happy New Yea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