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 고백/투병일기-2012년

너무 그러지 마시어요.

김레지나 2012. 1. 10. 19:10

 

오늘 우연히 읽게 된 시다.

 

평생을 시골과 소도시 공주의 초등학교에서 교편생활을 하다

정년퇴임한 나태주 시인은

한때 병원 중환자실에서 시한부 삶을 선고받을 만큼 중병을 앓았었다.

병석에서 생사의 기로에 선 자신보다

곁에서 간호하는 아내에 대한 안쓰러움이 더 컸기에,

그 마음을 하나님께 하소연하며 기도하는 내용의 "너무 그러지 마시어요"

시를 마지막 편지처럼 썼다.

 

 

 

- 너무 그러지 마시어요

 

나태주 시인

 

너무 그러지 마시어요.

너무 섭섭하게 그러지 마시어요. 하나님,

저에게가 아니예요.

저의 아내 되는 여자에게 그렇게 하지 말아달라는 말씀이에요.

이 여자는 젊어서부터 병과 더불어 약과 더불어 산 여자예요.

세상에 대한 꿈도 없고 그 어떤 사람보다도 죄를 안 만든 여자예요.

신장에 구두도 많지 않은 여자구요,

장롱에 비싸고 좋은 옷도 여러 벌 가지지 못한 여자예요.

한 남자의 아내로서 그림자로 살았고,

두 아이의 엄마로서 울면서 기도하는 능력 밖엔 없는 여자이지요.

자기 이름으로 꽃밭 한 평, 채전밭 한귀퉁이 가지지 못한 여자예요.

남편 되는 사람이 운전조차 할 줄 모르는 쑥맥이라서

언제나 버스만 타고 다닌 여자예요.

돈을 아끼느라 꽤나 먼 시장 길도 걸어다니고

싸구려 미장원에만 골라 다닌 여자예요.

너무 그러지 마시어요.

가난한 자의 기도를 잘 들어 응답해주시는 하나님,

저의 아내 되는 사람에게

너무 섭섭하게 그러지 마시어요。

 

 

이 시에 화답하여 시인의 아내 김성예씨가 시를 쓴다.

 

 

“너무 고마워요"


 

남편의 병상 밑에서 잠을 청하며 사랑의 낮은 자리를 깨우쳐주신 하나님,

이제는 저이를 다시는 아프게 하지 마시어요.


 

우리가 모르는 우리의 죄로 한 번의 고통이 더 남아 있다면,

그게 피할 수 없는 우리의 것이라면, 이제는 제가 병상에 누울게요.


 

하나님, 저 남자는

젊어서부터 분필과 함께 몽당연필과 함께 산, 시골 초등학교 선생이었어요.

시에 대한 꿈 하나만으로 염소와 노을과 풀꽃만 욕심 내온 남자예요.

시 외의 것으로는 화를 내지 않은 사람이에요.


 

책꽂이에 경영이니 주식이니 돈 버는 책은 하나도 없는 남자고요.

제일 아끼는 거라곤 제자가 선물한 만년필과

그간 받은 편지들과 외갓집에 대한 추억뿐이에요.


 

한 여자 남편으로 토방처럼 배고프게 살아왔고,

두 아이 아빠로서 우는 모습 숨기는 능력밖에 없었던 남자지요.

공주 금강의 아름다운 물결과 금학동 뒷산의 푸른 그늘만이 재산인 사람이에요.


 

운전조차 할 줄 몰라 언제나 버스만 타고 다닌 남자예요.

승용차라도 얻어 탄 날이면 꼭 그 사람 큰 덕 봤다고 먼 산 보던 사람이에요.


 

하나님, 저의 남편 나태주 시인에게 너무 섭섭하게 그러지 마시어요.

좀만 시간을 더 주시면 아름다운 시로 당신 사랑을 꼭 갚을 사람이에요.

 

 

어느 홈피에 내가 올려 놓은 최인호 작가님 글 (내 블로그 기억할 글 방에 게시)을 읽고

파킨슨씨 병을 앓고 계시면서.. 늘 나를 위해 이웃을 위해 기도해주시는 고마운 분의 댓글을 읽었다.

자판을 치기도 힘들다는데.. 긴 답글을 달아주셨다.

 

"저도 내병은 내 죄 때문이다 생각했던적이 있었지요
근데 그렇다면 성인들은 왜 병에 걸렸을까?
생각해보니 무언가 우리를 통해 드러내보이시기 위햠이란 것을
알게되었어요
교황님께서도 파킨슨병을 앓다가 돌아 가셨잖아요

그런것만봐도우릴ㄹ 통해 무언가 보여주시려고
병을 걸리게 하신게 맞는거 같아요

어느 교우가 와서 9일기도 해주면서 내가이만큼 기도 했는데도
여태 안 나았는냐고 하는데 쥐 구멍이라도 잇음 들어 가고 싶은
심정이었어요
그때 정말 챙피한 생각떄문에 내가 무슨 죄를 많이 젔다고
이런 혹독한 벌을 내리신단 말입니까?
주님께서 원망스럽더이다

지금은 자랑(?) 스럽게 잘다니고 있어요
진아님 !!
건강하게 주님의 기적을 기다려 봅시다
홧----티----이---잉----------"

 

 

나는 하느님께 훌쩍 훌쩍 울며 부탁드렸다.

 

        너무 그러지 마시어요.

너무 섭섭하게 그러지 마시어요. 하느님,

저에게가 아니예요.

저를 위해 기도해주시는 고마운 그분에게 그렇게 하지 말아달라는 말씀이에요.

그분은 젊어서부터 병과 더불어 살다가 이제 몸도 제대로 못 움직이는 분이에요.

자기의 큰 고통보다 가족의 작은 한숨에 더 마음아파 하는 분이에요.

병이 낫지 않는다고 기도해주는 이들에게 미안해 어쩔 줄 모르는 순하디 순한 분이에요.

한 남자의 아내로서 그림자로 살았고,

두 아이의 엄마로서 울면서 기도하는 능력 밖엔 없는 분이지요.

자기를 위한 바람 욕심껏 낸 적도 없고

다른 이들을 위한 안타까움으로만 뜨겁게 울 줄 아는 분이에요. 

너무 그러지 마시어요.

마음이 가난한 자의 하느님.

그분에게 너무 섭하게 그러지 마시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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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동엽 신부님의 책 <잊혀진 질문>에 나오는 구절이에요.
설령 고통의 의미가 우리 앞에 훤히 드러난다 해도, 아직 준비가 되어 있지 못하면 그것은 우리의 답이 되지 못합니다...................

준비 없이 맞은 고통이지만..
겪으면서 우리는 그 고통의 의미를 깨달을 준비를 한 거지요.
고통의 신비와 영광을 곧 훤히 깨달을 수 있겠지요.
아예 고통을 품어버린 사랑. 그 사랑이 바로 하느님의 영광이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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