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랫동안 고해 성사를 하지 못하셨다는 어느 수녀님으로부터 전화를 받고 성 베드로 광장으로 향했다. 길 양 옆으로 흐벅지게 피어있는 봄꽃들의 환호를 받으며 내 발이나 다름없이 친숙해진 자전거의 페달을 천천히 밟고 있노라니 ‘인생은 아름다워’라는 찬사가 절로 터져나왔다.
때마침 교황님의 일반 알현이 있는 날이라 자전거를 끌고 베드로 광장으로 들어갈 수가 없어서 고민하던 중 ‘뭐 무슨 일이 있으랴’싶어 사람의 왕래가 잦은 넓은 길가 가로수에 자전거 자물쇠를 채우고 광장으로 들어갔다. 우리는 사람들로 꽉 찬 성전의 회랑에 앉아 고해성사를 했다. 이럴 때는 언어가 다른 게 또 도움이 된다.
그런데 이게 또 웬일이란 말인가? 성사를 마치고 자전거를 세워 둔 곳에 와보니 기둥에 자물쇠만 덩그마니 남아 있고 자전거는 온데 간 데가 없이 사라져 버렸다. 바로 근처의 가게들에 들어가서 혹시 누가 자전거 훔쳐가는 것을 보지 못했느냐고 물었더니 다들 고개를 좌우로 흔들었다.
이럴 수가...... 그 동안 8개월 동안이나 내 신체의 일부분처럼 함께 움직였기 때문에 정이 들대로 든 자전거를 도둑맞은 것이다. 순간 얼마나 당황스러웠는지 모른다. 그건 단순히 자전거를 도둑맞아서 아깝다는 느낌이 아니었다. 나는 내 맘에 너무 쏙드는 그 놈에게 인격적 존재감을 부여하고 그 동안 자전거를 타고 거리를 달릴 때마다 친한 친구를 대하듯 그 놈을 대했었다.
그렇게 정을 붙인 놈인데 한 순간에 도둑을 맞고 나니 갑자기 그 놈이 너무 보고 싶다는 감정이 몰려와 겉으로는 태연한 척 했지만 금방이라도 눈물이 쏟아지려는 것을 애써 참고 있었다. 헬멧과 망가진 자물쇠만 손에 든 채 버스를 타고 집에 돌아오는 길에 온통 자전거만 내 눈에 들어왔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버스 안에서 계속 창 밖을 주시했지만 그 놈을 볼 수는 없었다.
그 놈이 없이 혼자서 대문을 열고 집에 들어오는 것도, 자전거를 세워두는 쪽이 아니라 그냥 정원을 가로질러 건물 안으로 들어오는 것도 모두 낯설게만 느껴졌다. 밤새 뒤척이다가 새벽녘에야 겨우 잠이 들었는데 꿈에서 나는 그 놈과 함께 어디론가 열심히 달려가고 있었다. 내 자전거도 내 꿈을 꾸었을테지......
어렸을 때 집에서 키우던 비둘기 한 마리가 어떤 고양이에게 목을 물려서 죽었을 때, 8년 정도를 같이 살았던 작은 발발이 ‘진실’이가 차에 치어 죽었을 때, 파푸아 뉴기니에 가 있는 동안 어느 수녀님께 맡기고 간 단풍나무 분재가 말라 죽어있는 것을 봤을 때, 그때그때마다 나는 눈물을 삼키며 내가 얼마나 정에 약한 사람인가를 확인하면서 다시는 날짐승이든 강아지든 화분이든 살아있는 것을 키우지 않을 것이라 다짐하곤 했었다.
자전거는 생명이 있는 것이 아니라서 안심하고 정을 쏟아 붇고 있었는데 이제 보니 정이 드는 것은 생명이 있는 것이든지 없는 것이든지 내가 어떤 의미를 부여하고 관계를 하느냐에 달려있는 것처럼 여겨진다.
이렇게 정에 약한 사람을 하느님께서는 어떻게 감당을 하시려고 사제로, 그것도 모자라 항상 떠나야만 하는 선교사로 불러주셨는지 도대체 알 수가 없다. 이렇게 정에 약한 사람이 돼 가지고 나는 또 어떻게 감당을 하려고 고아들의 아빠가 되어 살기를 빌고 또 빌고 있는지 도대체 알 수가 없다.
에라, 모르겠다. 어쩌면 어설픈 자신감보다는 이렇게 아예 난 자신 없다고 인정하는 쪽이 하느님의 은총에 기댈 수 있어 좋은 일인지도 모르겠다. 하느님의 은총에 온전히 기대면서 받게 되는 상심이라면 그 자체로 내 안에서 이루시고자 하는 뜻이 또 있겠지.
심장이 뛰는 사람으로 태어나서 정 한 쪽 안 붙이고 한 세상 살 수는 없을 테고...... 할 수 없다. 조심 조심 살다가 나도 모르게 정이 들어 버리는게 생기면 또 한 바탕 맘 고생을 치르면서 어찌 이렇게 약하게 만드셨냐고 하느님께 따지는 수 밖에......
그 놈이 맘씨 착한 주인을 만나야 할 텐데 걱정이다.
“여러분이 하느님의 뜻을 따라서 겪은 바로 그 상심이 여러분에게 이루어 준 것이 얼마나 많습니까?”(2고린7,11)
한국외방선교회 최강 스테파노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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