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뿌우우우-웅”
연세가 많고 거동이 불편한 할머니들이 모여 사는 양로원에서 새벽 미사를 드릴 때 생긴 일이다. 난 처음에는 강론을 하는데 온 신경을 모으고 있었기 때문에 제법 크게 들린 그 소리가 뭔지도 잘 몰랐다.
그런데 갑자기 한 할머니가 혼자 중얼중얼 거리는 듯 하더니 급기야는 젊은 신부가 열심히 준비한 강론을 들은 생각은 전혀 하지 않고 다른 한 할머니를 향해 소리를 치기 시작했다.
“아니, 미사 드리는 데 그렇게 방귀를 뀌면 돼? 더군다나 신부가 강론하고 있는데 그렇게 큰 소리로? 경우가 그런 게 아니지.”
그 할머니는 몹시 흥분한 표정으로 계속해서 방귀를 뀐 할머니를 몰아세우기 시작했고, 그 옆에 앉은 할머니들은 다들 이번 사건의 원인을 제공한 그 큰 소리의 주인공을 비난하듯 고개를 돌려 바라보았다. 그러나 정작 방귀를 뀐 할머니는 다른 사람들의 시선들에 전혀 반응을 하지 않고 아주 무표정한 얼굴로 눈을 껌벅이며 강론을 하다가 멈추고 가만히 서 있는 나만 바라보고 있었다.
이쯤 되면 평상시 같았으면 벌써 터져 나오는 웃음을 참지 못하고 바닥을 떼굴떼굴 굴렀을 나이지만 나마저 웃어버리면 그 할머니는 마주칠 시선을 줄 곳도 없이 더 불쌍하고 외로운 처지가 되어버릴 것이 분명했기 때문에 그럴 수도 없어 이를 꼭 깨물고는 눈을 감아버렸다.
나는 웃음을 참기 위해 눈을 감은 채 내 인생 중에 가장 슬펐던 몇몇 순간들을 떠올리느라 정신을 집중하고 있었는데 그 모습이 제법 심각하게 보였는지 이제는 다른 할머니들이 계속해서 큰 소리로 떠들고 있는 할머니를 말리기 시작했다.
“어이, 할멈. 이제 그만 해. 할멈 목소리가 더 커. 저것 좀 봐. 신부가 강론도 못하고 저러고 서 있잖아.”
내가 주위가 조용해진 뒤에도 한참 동안 눈을 감고 얼어붙은 듯 그 자리에 그대로 서 있자 이제 할머니들은 젊은 신부가 화가 나서 저러는가 싶어서인지 더 깊은 침묵을 유지하고 있었다. 나는 어느 정도 웃음이 가라앉았다 싶었을 때 갑자기 눈을 뜨고 짧은 한 마디로 강론을 마친 뒤 사제석에 가서 다시 눈을 감고 앉았다.
“지금 이 순간 우리 공동체에게 필요한 것은 훌륭한 강론이 아니라 서로를 용서하는 마음입니다.”
가만히 주변을 둘러보면 어떤 사람이 실수를 했을 때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몇 날 며칠을 떠들어대는 사람들이 있기도 한 반면에 명백히 드러난 실수에도 아무 말 없이 시선을 다른 곳으로 돌려주는 사람들도 있다.
내 주위에는 거의 예술이다 싶을 정도로 훌륭한 대인관계를 가진 사람들이 몇이 있는데 그 들은 모두 상대방의 실수를 보고도 침묵하는데 도가 튼 사람들이다. 물론 심각하게 하느님의 뜻을 거스르고 공동선을 저해하는 수준의 잘못에 대해서는 따끔한 질책과 충고가 따르지만 일상의 가벼운 실수로 여길 만한 수준에서는 알면서도 모르는 척하는 데 선수들이다.
하지만 한 번이라도 실수를 저질러 본 사람들이면 누구나 안다. 그 ‘알면서도 모르는 척’ 입 다물어주는 침묵이 고맙기도 하면서 한편으로는 훨씬 더 무게 있는 질책이자 충고로 작용한다는 것을......
상대방의 실수에 대해서 한 없이 관대하게 대해보도록 하자. 갑자기 나와 내 주변의 인간관계가 얼마나 부드럽고 아름답게 변화되는지 스스로가 놀랄 것이다. ‘알면서 모르는 척’ 눈감아 주는 재미가 제법 솔솔하다.
“당신이 실수했다고 하여 그것이 하느님께 손해라도 될 것이란 말이오? 당신의 죄가 아무리 많다고 하여도 하느님께는 그것이 대단한 일이 아니오.”(욥기35,6)
한국외방선교회 최강 스테파노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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