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론 말씀 (가나다순)/반영억 신부님

마음과 행동이 일치할 때 구원을 얻을 것입니다.

김레지나 2011. 8. 28. 12:21

2011년 8월 23일연중 제21주간 화요일
 
작은 벌레들은 걸러 내면서 낙타는 그냥 삼키는 자들이다
(마태오23,23-26)

 

“우리가 복음을 전하는 것은 하느님을 위해서입니다. 주님을 기쁘게 해 드리고자 온갖 핍박을 견디어 냅니다.”바오로 사도는 자신이 복음을 전하는 이유를 말하고 있다. 그는 불순한 동기나 속임수로 선교하는 것이 아님을 명백히 한다. 그들의 진심이 사람들을 움직였다.

주님께서는 바리사이들과 율법 학자들에게 ‘눈이 멀었다.’고 하신다. 접시의 겉은 닦으면서, 속은 깨끗하게 하지 않는다고 하신다. 속과 겉이 다르기에 위선이다. 겉모습은 경건하지만 마음은 탐욕으로 가득 차 있다는 꾸중이다. 무서운 질책이다
 

오늘의 묵상

“눈먼 인도자들아! 너희는 작은 벌레들은 걸러 내면서 낙타는 그냥 삼키는 자들이다. 너희가 잔과 접시의 겉은 깨끗이 하지만, 그 안은 탐욕과 방종으로 가득 차 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율법 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을 심하게 꾸짖고 계십니다. 무엇이 그분의 질책을 듣게 하는지요? 위선입니다. 겉으로만 착한 듯 행동하는 모습입니다. 안과 밖이 다르면 언제라도 꾸중을 듣기 마련입니다.
율법 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은 조신(操身)했습니다. ‘율법에서 명하는 부정’을 저지를까 두려워하며 살았습니다. 그러기에 자기들끼리 모여 살았습니다. 민중과 분리되어 살려고 노력했습니다. 그들과 어울리면 부정을 저지를 수 있다고 판단했던 것입니다. 더러는 자기들처럼 살지 않는 이웃을 멸시하였습니다.
율법의 근본을 망각한 행동입니다. 하느님을 섬기고 이웃을 사랑하는 것이 율법의 본질이건만 엉뚱한 것에 매달렸습니다. 그러니 아무리 율법을 철저히 지켜도 사랑이 없으면 강제 행위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러한 자세를 주님께서 원하실 리 없습니다. 바리사이들은 율법의 해악까지 알고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율법에서 명하는 부정’에서 벗어나려고만 애를 썼습니다. 진정 “작은 벌레들은 걸러 내면서 낙타는 그냥 삼키고” 있는 모습입니다.

인간은 본질적으로 이중성, 곧 양면성을 지니고 있습니다. 성경은 그것을 원죄의 결과라고 합니다. 이 양면성은 선한 모습과 악한 모습입니다. 모든 인간은 이러한 두 가지 모습을 지닌 채 태어납니다. 인간의 운명인 한편 그것은 인간에게 주어진 한계이기도 합니다. 그 한계성 때문에 우리는 사랑하다가도 미워하고, 질투하다가도 존경하기도 합니다.
위선도 이중성의 한 단면입니다. 우리 사회 어디를 가도 위선을 만납니다. 경쟁 사회에서 살아남고자 때로는 위선보다 더한 행동도 서슴없이 저지르는 것이 현대인입니다. 그러나 교회에서만은 이 위선을 벗어야 합니다. 아무런 보탬도 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은총의 장애물로 작용합니다.
우리 각자의 신앙생활에는 겉과 속이 다른 위선적인 면이 없는지, 곧 오늘 복음에서 볼 수 있는 바리사이들과 율법 학자들의 처신이 우리에게는 없는지 곰곰이 살펴보도록 합시다.  

 

 

마음이 깨끗하면 표정도 밝다

  -반영억 라파엘 신부-

매일 같이 이를 닦고 얼굴을 씻고 옷 매무새를 고칩니다. 외출을 하려면 거울을 보고 다시 한 번 몸단장을 합니다. 이것이 우리의 일상입니다.

어떤 이는 ‘아름다운 얼굴이 추천장’ 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성형수술도 하고 외모를 가꾸려 많은 정성을 기울입니다. 그에 비하면 마음을 가꾸는 일에는 너무도 인색하지 않나 생각합니다. 마음이 깨끗하면 표정이 맑고, 얼굴이 빛납니다. 그 ‘아름다운 마음은 신용장’입니다. 그리고 “마음이 똑바로 향해 있으면 행동 또한 바릅니다. 그리고 마음과 행동이 일치할 때 구원의 은혜를 입을 것입니다.”(성 아우구스띠노)

그럼에도 마음을 가꾸는 것에 정성을 기울인다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바오로 사도는 “여러분은 현세에 동화되지 말고 정신을 새롭게 하여 여러분 자신이 변화되게 하십시오. 그리하여 무엇이 하느님의 뜻인지, 무엇이 선하고 무엇이 하느님 마음에 들며 무엇이 완전한 것인지 분별할 수 있게 하십시오.”(로마12,2)라고 권고합니다.

율법학자들이나 바리사이파 사람들은 정결 예식에 대한 법을 지키고 가르치는 데 신중을 기했습니다. 그러나 ‘위선자’소리를 듣는 것은 중요한 것은 외적인 의식(컵을 닦고 그릇을 닦는 것)이 아니라 속마음이라는 것을 간과했기 때문입니다. 겉을 깨끗이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먼저 닦아야 할 속을 버려두고 겉만 닦는 데 문제가 있다는 것입니다. 잔이 아무리 좋은 잔이고 화려해도 속이 더러우면 쓸 수가 없습니다. 속이 깨끗하면 다른 것은 문제가 될 것이 없습니다. 

“입으로 들어가는 것이 사람을 더럽히지 않는다. 더럽히는 것은 오히려 입에서 나오는 것이 사람을 더럽힌다.”(마태15,11). “입에서 나오는 것은 마음에서 나오는 것인데 바로 그것이 사람을 더럽힌다. 마음에서 나쁜 생각들, 살인 간음, 불륜, 도둑질, 거짓증언, 중상이 나온다.”(마태15,19-20). 그러므로 마음을 깨끗이 하고 하느님과 스스로에게 정직할 수만 있다면 외적 행동 또한 빛나게 될 것입니다. 우리의 마음을 가꾸는데 인색하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마음이 즐거우면 얼굴이 밝아지고 마음이 괴로우면 기가 꺾인다.”(잠언 15,13) 따라서 “무엇보다도 네 마음을 지켜라. 거기에서 생명의 샘이 흘러나온다.”(잠언 4,23).“주님, 당신께 찬미 노래 부르오리다. 흠 없는 길에 뜻을 두리니 언제 저에게 오시렵니까? 저의 집 안에서 온전한 마음으로 걷고 불의한 일을 저의 눈앞에 두지 않으오리다.”(시편101,2).사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