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니카 성녀는 332년 북아프리카 타가스테의 신심 깊은 가정에서 태어났다. 성녀는 비신자인 남편과 혼인하여 세 남매를 두었다. 모니카 성녀는 기도와 희생으로 남편을 개종시키고 방탕한 아들 아우구스티노의 회개를 위해 온갖 노력을 다하였다. 마니교에 빠져 있던 아우구스티노가 회개하여 세례를 받고 성인이 된 데에는 어머니 모니카 성녀의 남다른 기도와 눈물이 있었다. 아들이 회개의 길로 들어선 지 얼마 뒤인 387년, 성녀는 쉰넷의 나이로 로마 근교에서 선종하였다.
너는 과연 착하고 충성스러운 종이다.
네가 작은 일에 충성을 다하였으니 이제 내가 큰 일을 너에게 맡기겠다.
자, 와서 네 주인과 함께 기쁨을 나누어라.
(마태오 25,14-30)
주인은 여행을 떠나면서 종들에게 재산을 맡겼다. 각자의 능력에 따라 맡긴 탈렌트의 양이 달랐다. 많이 받은 이는 많은 이윤을 남겼다. 그러나 하나를 받은 이는 우왕좌왕하다가 그 하나마저 빼앗겼다. 탈렌트는 능력이다. 주인의 뜻에 맞도록 사는 능력이다
탈렌트는 예수님 시대의 화폐 단위로, 한 탈렌트는 노동자 한 명이 이십 년 동안 일해야 받을 수 있는 품삯과 맞먹는 돈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무지무지한 금액을 비유에 등장시키셨습니다. 확실한 느낌을 가지라는 의도였을까요? 아니면 하느님의 은총이 그만큼 크다는 암시였을까요? 아무튼 다섯 탈렌트와 두 탈렌트를 받은 사람은 잘 활용하여 두 배의 이윤을 남겼습니다. 그러나 하나를 받은 사람은 그대로 가지고 있다가 주인에게 돌려줍니다. 왜 그랬을까요? 너무 적었기 때문일까요?
오늘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비유의 가르침은 무엇이겠습니까? 우선 누구나 탈렌트를 받았다는 사실에 있습니다. 한 탈렌트도 엄청난 돈입니다. 아무것도 받지 않은 사람은 없습니다. 그러니 그 탈렌트를 찾아내야 합니다. 그것을 바탕으로 자신의 삶을 펼쳐 가야 합니다. 이것이 오늘 비유의 핵심입니다.
“잘하였다, 착하고 성실한 종아! 네가 작은 일에 성실하였으니 이제 내가 너에게 많은 일을 맡기겠다. 와서 네 주인과 함께 기쁨을 나누어라.” 다섯 탈렌트와 두 탈렌트로 이윤을 남긴 종들에게 한 주인의 말입니다. 주인과 함께 나눌 기쁨은 무엇이겠습니까? 주님께서 주시는 기쁨입니다. 주님께서 주신 탈렌트를 통하여 깨닫는 삶의 기쁨입니다.
예수님 시대에 한 데나리온은 일꾼의 하루 품삯이었습니다. 오늘 복음에 나오는 화폐 단위 한 탈렌트는 6천 데나리온에 해당하는 것으로, 환산하면 노동자가 6천 일을 일해야 얻을 수 있는 아주 큰 돈입니다. 오늘날 우리가 특별히 타고난 소질이나 재능을 가진 사람을 뜻하는 탈렌트(talent)는 바로 여기에 어원을 두고 있습니다.
그런데 탈렌트를 소질이나 재능으로만 이해하면 왠지 불공평해 보입니다. 오늘 복음의 비유에서 보듯이 누구는 다섯 탈렌트를 받았는데, 누구는 한 탈렌트밖에 받지 못했습니다. 우리도 TV에 나오는 숱한 재주꾼들이나 주변의 재능 있는 사람들과 비교하면 왠지 자신은 하느님께 받은 것이 별로 없어 보입니다. 이렇게 복음 속에 나오는 탈렌트를 세상 것으로 이해하면 불공평하다고 생각되며 불만스러워집니다.
주님께서 주시는 탈렌트는 세상의 허황된 것을 얻으라고 주는 재능과 다릅니다. 복음적 탈렌트의 본뜻은 하느님께서 우리가 ‘사랑할 수 있는 능력’을 주셨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느님께서 주신 이 사랑의 능력으로 하느님 나라를 건설하고자 희생하고 봉사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이해하면 탈렌트를 많이 받았다고 좋아할 것도 없고, 못 받았다고 불만스러워할 것도 없어집니다. 많이 받은 사람은 그만큼 더 많이 희생해야 하고, 적게 받은 사람은 적게 받은 대로 자신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해서 봉사하면 됩니다. 오늘 복음에서 보면 다섯 탈렌트를 받고 두 배로 늘린 사람이나, 두 탈렌트를 받고 두 배로 늘린 사람이나 모두에게 주님께서는 똑같이 칭찬을 해 주십니다. 중요한 것은 자신의 자리에서 아름다운 사랑의 세상을 건설하도록 최선을 다하는 것입니다. 하느님 나라 건설을 위한 탈렌트는 노력한 결과가 중요합니다. 그 대가는 공평합니다
할 수 있는 것 먼저 하세요
-반영억라파엘신부-
하느님께서는 우리에게 알맞은 달란트를 주셨습니다. 각자의 그릇대로 주셨습니다. 그리고 부족함이 없습니다. 사실 내가 가지고 있는 것 모두가 다 하느님이 주신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더 많은 것을 받지 못하였다고 아쉬워합니다. 남이 가지고 있는 것을 받지 못했다고 투덜댑니다. 때때로 지금 가지고 있는 것이 주님께서 원하시는 만큼이라는 것을 인정하지 않습니다. 다른 사람과 비교하지 않으면 될 것을 스스로 비교하여 놓고는 비참함을 맛보기도 합니다. 참 안타까운 일입니다. 열을 가진 것에 감사하기보다 하나를 갖지 못한 것을 불평하고 있으니 말입니다.
복음을 보면 다섯 달란트를 받은 사람과 두 달란트를 받은 사람, 그리고 한 달란트를 받은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 중 둘은 자기에게 주어진 달란트를 활용하였습니다. 그러나 한 사람은 그것을 땅에 묻어 두고 말았습니다. 각자의 능력대로 주었으니 할 수 있는 만큼 활용하면 되는데 한 사람은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주인이 달란트를 주었을 때는 그에 상응하는 기대가 있었을 터인데 그 바람을 깨닫지 못하였기 때문입니다.
더욱이 처음부터 주인의 동기를 오해하고 하고 있었습니다. 더 벌지 못한 것에 대해 잘못하였다고 하면 될 것을 가지고 오히려 뻔뻔스럽게 “주인님께서 모진 분이시어서, 심지 않은 데에서 거두시고 뿌리지 않은 데에서 모으신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마태25,24) 하고 주인을 비난하고 있으니 그야말로 구제불능입니다.
하느님께서는 각자마다 탈란트를 최대한 활용하기를 바라십니다. 각자는 자기가 받은 대로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여 결실을 맺을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자기가 할 수 있는 일은 하지 않으면서 할 수 없는 일을 꿈꾸는 일은 허상입니다. 가진 자는 더 받아 넉넉해지고, 가진 것 없는 자는 가진 것마저 빼앗긴다는 말씀은 관리하지 않으면 결국 잃어버린다는 의미입니다. 그리고 뻔히 잃을 것을 알면 어떻게 맡길 수 있겠습니까? 작은 일에 성실하며 큰일도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작은 일에 성실하지 못한 사람이 큰일을 맡으면 그야말로 큰일을 내고 맙니다. 매사에 하느님께서 각자에게 주신 역량에 따라 귀한 열매를 맺기를 기도합니다. 귀한 열매는 주님과 함께 이루어지는 작은 일들의 연속으로 만들어집니다. 사랑합니다.
하느님의 뜻
성당에서 유난히 큰 소리로 기도를 하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는 빵 가게를 운영하고 있었는데, 어느 날 그가 또 큰 소리로 기도하자 옆에 있던 이웃집 사람이 그를 향해 소리쳤습니다. “당신은 목소리를 낮추는 대신 빵이나 크게 만드시오, 그게 하느님의 뜻이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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