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8월 14일 연중 제20주일
"여인아, 참으로 네 믿음이 장하다!
네 소원대로 이루어질 것이다."
(마태오 15, 21-28)
이사야 예언자는 백성에게 하느님 말씀을 전한다. 주님께서는 구원이 가까이 왔으니 공정을 지키고 정의를 실천하라고 말씀하신다. 특히 이방인들도 하느님께 돌아와 그분을 섬기고 안식일을 지키게 되리라고 선언하신다(제1독서). 바오로 사도는 이스라엘 백성이 복음을 거절하자 이방인에게 복음을 전하게 되었음을 선언하면서 이방인들도 하느님의 자비를 얻어 누리게 되었음을 강조한다(제2독서). 이방인인 가나안 여자가 주님에 대한 굳건한 믿음을 보여 준다. 주님의 구원이 가까이 왔고, 그분의 정의가 곧 드러나리라는 이사야 예언자의 말씀대로 가나안 여자는 주님에 대한 믿음을 고백하여 주님의 자비를 입게 된다(복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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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평소와는 다른 모습을 보여 주십니다. 당신께 다가오는 가난한 처지의 여성들, 병자들, 고통 받는 사람들을 한 번도 외면하지 않으시는데, 오늘따라 당신께 애원하는 한 여인에게 냉정한 모습을 보이십니다. 그것도 당시 이스라엘 사람들이 이방인들을 무시할 때 했던 ‘강아지’라는 말도 서슴없이 하시면서 말입니다.
신비 신학자 십자가의 요한 성인은 이렇게 말하였지요. “우리가 자기 자신과 처절한 싸움을 하여 ‘완전한 무’(無)에 이를 수 있을 때 우리의 영혼은 ‘완전한 전부’(全部)이신 하느님과 일치할 수 있다.” 우리가 간절히 바라는 것을 얻으려면 스스로 완전히 부서지고 버려져서 온전히 ‘무’(無)가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복음에서 예수님께서 냉정한 모습을 보이신 이유는 가나안 여인을 무시해서도, 그에게 관심이 없어서도 아닙니다. 예수님께서는 가나안 여인의 믿음을 드러내 보여서 제자들과 사람들에게 믿음이 무엇인지를 가르쳐 주고 싶으셨던 것입니다. 믿음은 살아 있는 고백입니다. 정지된 ‘고정 관념’이나 ‘신념’ 같은 것이 아닙니다. 자신의 힘, 알량한 지식, 자존심 등 자신을 드러내는 모든 것을 내려놓고 온전히 ‘무’(無)가 되어 주님께 의탁하는 것입니다. 주인의 상에서 떨어진 빵 부스러기처럼 “주님, 저는 당신 앞에 아무것도 아닙니다.” 하고 스스로 부서지고 없어질 때, 우리는 비로소 ‘전부’를 얻을 수 있습니다. 믿는다는 것은 바로 이런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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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복음에서 가나안 여인은 예수님께 마귀를 물리쳐 주시기를 청합니다. 딸을 괴롭히고 있는 마귀입니다. 이전의 예수님께서는 그러한 청을 거절하지 않으셨습니다. 사탄 때문에 고생하는 이에게는 언제나 다정한 분이셨습니다.
그런데 오늘은 말씀이 없으십니다. 묵묵부답하신 채 걷기만 하십니다. 보다 못해 제자들이 말씀드립니다. ‘여인이 저렇게 애원하고 있는데 어떻게 하실 겁니까?’ 예수님의 답변은 엉뚱합니다. ‘자녀들의 빵을 강아지들에게 주는 것은 좋지 않다.’ 강아지는 이방인입니다. 그들에게 기적을 베풀 수 없다는 말씀입니다.
그 당시 어법이라고는 하지만, 생각하면 모욕적인 말씀입니다. 그럼에도 여인은 조금도 개의치 않습니다. 오히려 재치 있는 답변으로 예수님의 거절을 뒤집습니다. 여인의 무엇이 예수님의 마음을 움직이고 기적을 불러왔겠습니까? 오늘 복음의 교훈은 이 점을 묵상하는 데 있습니다.
겸손한 믿음입니다. ‘무슨 말씀을 하시더라도 예수님께서는 기적을 베푸실 것이다. 나는 그것을 굳게 믿는다.’ 여인의 이 확신을 예수님께서 읽으셨던 것입니다. 그러기에 그분께서는 하느님의 권능을 드러내셨습니다. 거절당할 때 여인인들 왜 마음이 아프지 않았겠습니까? 그러나 여인은 극복하였습니다. 서운한 감정을 믿음으로 뛰어넘었기에 기적을 만날 수 있었던
당신의 모습을 감추셨을 지라도
-반영억신부-
찬미 예수님, 사랑합니다. 주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우리에 대한 주님의 사랑은 언제나 변함이 없으십니다. 주님께서는 당신의 사랑을 효과적으로 느낄 수 있도록 성체성사를 설정하셨습니다. 하늘로부터 내려온 살아있는 생명의 빵으로 우리를 풍요롭게 하십니다. 오늘 첫 영성체를 하는 어린이들이 주님의 사랑을 체험하고 주님의 사랑 안에 항구하게 머물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아울러 ‘첫 영성체 할 때 청하는 기도는 하느님께서 기쁘게 받아주신다.’했으니 어린이들이 믿음으로 주님의 마음에 드는 희망을 새롭게 하기를 바랍니다.
오늘 복음을 보면 한 가나안 여인이 예수님께 와 엎드려 “다윗의 자손이신 주님, 저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 하고 간청하였습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자녀들의 빵을 집어 강아지들에게 던져주는 것은 좋지 않다”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이방인 여인을 무시한 것이 아니라 은총은 준비된 사람에게 우선적으로 주어지게 되어있다는 말씀입니다. 다시 말하면 구원의 혜택이 이방인에 앞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주어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인의 반응이 놀랍습니다. “주님, 그렇습니다. 그러나 강아지들도 주인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는 먹습니다.” 하고 말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여인의 큰 믿음을 보시고 “네가 바라는 대로 될 것이다”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확고하게 믿으면 그만큼 하느님의 능력을 보게 되고 은총의 혜택을 입게 됩니다. 하느님의 은총과 더불어 인간의 협력이 반드시 필요한 것입니다. 결국 예수님을 통해서 이루어지는 구원은 유다인이나 이방인이라는 외적인 관계보다 철저한 믿음의 사람으로 있느냐가 관건입니다. 이방인 여인은 주님께 대한 믿음과 자식을 위한 한 없는 사랑, 그리고 끈기 있는 간청으로 이루고자 하는 소망을 결국 이루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두 가지를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1). 하느님께서는 지금으로부터 4천여 전에 수많은 민족 가운데 이스라엘 민족을 당신의 백성으로 선택하였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하느님께서 뽑아 주셨다는 것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하였습니다. 선민의식이 뿌리 깊게 박혔습니다. 그들은 선택받지 못한 백성들을 구원받을 수 없는 이방인이라고 부르고, 심지어 ‘강아지’라고 까지 부르면서 교만함이 가득 차 있었습니다. 특별히 선택되었다면 그에 걸 맞는 믿음의 삶, 사랑의 삶을 살아야 하는데 그렇지를 못했습니다. 사실 이스라엘 백성이 선택되었다고 다른 모든 민족들이 배척된 것은 아닙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그들의 마음과 표현으로 여인에게 ‘이스라엘 집안의 길 잃은 양에게 파견 되었을 뿐이다.’말씀하시고, ‘자녀들의 빵을 강아지에게 던져주는 것은 옳지 않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러나 여인은 ‘강아지들도 주인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는 먹습니다.’하며 간절한 믿음을 표현하였습니다. 바로 이스라엘 백성이 이러한 믿음의 소유자가 되어야 하는데 그렇지를 못하니 ‘정신 차려라!’는 꾸중의 말씀으로 들을 수 있습니다. 너희가 이방인이요, 강아지라고 무시하던 사람이 더 큰 믿음을 가지고 있으니 어찌된 일이냐? 배부르고 등 따뜻하면 하느님이 다 무슨 필요가 있느냐? 내칠 위험이 큽니다.
이 말씀은 특별히 우리 감곡매괴성모순례지 성당의 신자들에게 하시는 말씀이라고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올해 본당설정 115주년을 맞이하고 있습니다. 청주교구의 어머니성당으로써 많은 은총과 축복으로 살아왔습니다. 성소의 못자리요, 많은 성직자 수도자를 배출하였습니다.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자부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곧 나의 믿음은 아닙니다. 그에 못지않은 믿음과 사랑을 간직하고 사느냐? 자문할 필요가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우리 성당을 찾아오십니다. 시간과 경제적 부담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오십니다. 우리는 엎어지면 코 닿을 곳에 있으면서도 은총의 땅을 소홀히 합니다. 늘 풍요로움 속에 있으니까 고마움을 모릅니다. 따라서 더 큰 믿음과 사랑에 소홀함이 없어야 하겠습니다. 겸손으로 거듭나야 합니다.
2). “여자는 약해도 어머니는 강하다.”는 말이 있습니다. 딸을 위해 어떤 어려움도 감당하는 어머니를 봐야 합니다. 강아지 취급받는 구박에도 아랑곳 하지 않고 끝까지 믿음으로 매달립니다. 그리고 주님께서는 끈질기고 집요하게 청하는 사람을 물리치지 않으십니다. 마침내 어머니의 믿음으로 딸이 치유되었습니다. 야고보 사도는 말합니다. “사실 우리는 끝까지 견디어 낸 이들을 행복하다고 합니다.”(야고5,11)
우리는 어떤 바람이 있을 때 반드시 얻게 되리라는 것을 믿고 기도하고, 믿고 기다려야 합니다.“기도는 지속성이 있어야 합니다. 비록 죄를 짓고 잘못에 떨어졌다 해도 기도하기를 그쳐서는 안 됩니다. 그 잘못에서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힘은 꾸준히 계속되는 기도를 통해서 이루어지기 때문입니다.” 선한 지향으로 인내하면서 청하는 것은 하느님께서 반드시 이루어 주십니다. 기도는 하늘의 열쇠며, 세상의 기둥입니다. 지혜의 저장소며 영혼의 힘이고 낙심의 치료제입니다. 슬픈자들의 위안이며 의로운자들의 승리고 하늘의 삶을 미리 맛보는 것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가 받으려 하는 것보다 천배 만 배 더 베푸실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시련과 고통 중에 믿음으로 간절히 기도하십시오.
그리고 은혜를 베풀어 주실 때 믿음의 자세가 필요한데 백인대장의 처신을 볼 수 있습니다. “주님, 저는 주님을 제 지붕 아래로 모실 자격이 없습니다. 그저 한 말씀만 해 주십시오. 그러면 제 종이 나을 것입니다.”(마태8,8) 이 믿음의 고백은 오늘 우리의 미사 안에서 영성체 전에 고백하고 있습니다. “주님, 제 안에 주님을 모시기에 합당치 않사오나 한 말씀만 하소서. 제가 곧 나으리이다.”무엇을 주시든지 주님께서 주시는 것이라면 고마운 마음으로 받아들여야 하겠습니다.
성경을 보면 열두 해 동안이나 하혈병을 앓던 여자도 믿음으로 병이 나았고(마태9,20-22), 주님은 “너희가 믿는 대로 되어라”(마태9,29)하시며 눈 먼 사람을 고쳐 주셨습니다. 또한 믿음을 보시고 “얘야, 너는 죄를 용서 받았다”(마르2,5)하시며 중풍병자를 고치셨습니다. 더군다나 “나를 믿는 사람은 내가 하는 일을 할 뿐만 아니라, 그보다 더 큰 일도 하게 될 것이다”(요한14,12) 하고 약속해 주셨습니다. 이는 우리를 도구삼아 일하신다는 말씀으로도 알아들을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바람이 큰 만큼 큰 믿음을 지켜야 합니다. 믿음은 ‘설령 하느님께서 당신의 모습을 감추셨을 지라도 결코 흔들림이 없는 것’입니다. 이방인 여인이 마치 예수님께서 외면하는 듯 여겼을지라도 한 치의 흔들림 없이 확고부동한 믿음을 지켰듯이 우리도 어두운 밤이 올수록 더 큰 신뢰를 가지고 믿음을 증거 하시기 바랍니다. 오늘은 기대하는 바와 간절한 소망이 하느님 안에서 완성되기를 기도합니다.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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