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론 말씀 (가나다순)/반영억 신부님

내가 묻혀 썩어야지 남이 대신 해 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김레지나 2011. 8. 12. 19:58

2011년 8월 10일 수요일 성 라우렌시오 부제 순교자 축일

 

라우렌시오 부제는 로마 교회의 일곱 부제 가운데 한 분으로, 스페인에서 태어났다. 그는 로마 황제 발레리아누스의 박해 때에 동료들과 함께 순교하였다. 잡히기 전에 라우렌시오 부제는 교회의 보물과 소유물을 팔아 가난한 이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그의 행동에 분개한 박해자들은 온갖 고문을 가한 뒤, 석쇠 위에 눕히고 구워 죽였다. 훗날 콘스탄티누스 황제는 그를 기념하는 성당을 세웠고, 이후 라우렌시오 성인에 대한 공경은 널리 퍼져 나갔다. 


정말 잘 들어두어라.

밀알 하나가 땅에 떨어져 죽지 않으면 한 알 그대로 남아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는다.
(요한 12,24-26)

 
주님께 바치는 예물은 계산하거나 억지로 해서는 안 된다. 기쁘게 봉헌하면 주님께서는 갑절로 축복을 주신다. 가진 것이 많은 사람이 풍요로운 것이 아니라 가진 것을 나누어서 주님의 은총을 누리는 사람이 참으로 풍요롭다(제1독서). 우리 삶은 하나의 밀알처럼 자신이 죽어야 새로운 삶을 얻는다. 이 말은 자신을 희생한 만큼 새로움을 선물로 받는다는 뜻이다. 살아 있는 신앙은 날마다 죽고 새롭게 나는 삶을 말한다(복음).   

 

 

주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밀알 하나가 땅에 떨어져 죽지 않으면 한 알 그대로 남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는다. 자기 목숨을 사랑하는 사람은 목숨을 잃을 것이고, 이 세상에서 자기 목숨을 미워하는 사람은 영원한 생명에 이르도록 목숨을 간직할 것이다.”
라우렌시오 성인은 참으로 주님 말씀에 충실하게 살았습니다. 자기 목숨을 불 속에 던지면서 오로지 주님을 향한 충실성 하나로 순교하신 분입니다. 교회 안의 재산은 언젠가는 없어져 버릴 물질적인 것입니다. 라우렌시오 성인은 어려운 상황에서도 그것을 가난한 이들을 구제하는 생명의 양식으로 삼았습니다.
현재 한국 천주교회도 수많은 순교자들을 모시고 살아갑니다. 그분들이 흘리신 피로 한국 교회는 더욱 풍요로워졌습니다. 물질이 모든 것을 압도하고 있는 듯한 오늘날, 우리는 앞서 자신의 십자가를 지고 기꺼이 주님을 따라 나선 순교자들의 고귀한 순교 정신을 결코 잊어서는 안 됩니다.

 

 밀알은 땅에 떨어져 썩어야 싹을 틔웁니다. 어디 밀알뿐이겠습니까? 모든 씨앗이 그렇습니다. 약육강식의 동물의 세계에서도 새끼를 위한 어미의 희생은 참으로 대단합니다. 본능에 따른 행동이라고는 하지만 감동적이 아닐 수 없습니다.
우리 인간 사회는 어떻습니까? 동식물보다 못한 사람이 많은 게 사실입니다. 희생하지 않는 것은 물론이고, 자신을 낮추는 사람을 오히려 어리석게 여깁니다.
희생하지 않으면 밀알이 썩는 이치를 제대로 이해할 수 없습니다. 썩지 않으면 하늘의 생명력을 얻을 수 없습니다. 삶의 무미건조함이 팽배한 것은 바로 이 때문입니다. 밀알이 썩지 않는데 어찌 싹이 돋을 수 있겠습니까? 희생하지 않는데 어찌 기쁨이 주어지겠습니까? 그러니 희생하는 행동을 구체적으로 실천해야 합니다. 이것이 사랑입니다. 

    

이제는 당신차례야

  -반영억신부-

하나의 밀알을 심는 것은 열매를 기대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풍성한 열매를 맺기 원하면 그만한 정성과 사랑으로 씨앗을 심어야 합니다. 그리고 밀알이 땅속에 묻히면 죽어서 싹을 틔우게 됩니다. 만약에 씨앗이 땅속에 묻히길 거절한다면 아마도 새한테 먹히거나 짐승한테 밟혀 으깨어지고 말 것입니다. 그러므로 묻혀야 합니다. 밀알이 땅속에서 사라지는 것은 없어짐을 뜻하지 않고 생명을 낳기 위하여 뿌리를 내림을 뜻합니다. 사실 죽는다는 것은 곧 새롭게 사는 것입니다. 따라서 얻기를 원하는 만큼 심어야 합니다. 얻기를 원하는 만큼 죽어야 합니다.

 

예수님의 죽음은 생명을 위한 죽음이었습니다. 진정한 생명을 위하여 감당한 죽음입니다. 그러므로 주님을 따르는 사람들은 영원한 생명을 위하여 그리고 더 높은 가치 때문에 지상의 생명을 거부해야 합니다. 무엇보다도 주님과 그분의 나라 때문에 지상의 매력에 집착된 욕심을 버려야 합니다. 그리고 일상의 삶 안에서 이웃을 위하여 나 자신을 포기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새 생명의 기쁨이 더해집니다.

 

주님께서는 누구든지 나를 섬기려면 나를 따라야 한다. 내가 있는 곳에 나를 섬기는 사람도 함께 있을 것이다. 누구든지 나를 섬기면 아버지께서 그를 존중해 주실 것이다.(요한12,26)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우리는 예수님의 모범을 따라야 하고 결국 그리하면 아버지 하느님께서 영광의 자리에 함께해 주시고 또 영광스럽게 해 주신다는 약속입니다. 그러므로 지금 감당하고 있는 모든 일상의 삶을 기왕이면 밀알의 삶이 되도록 해야겠습니다.

 

우리가 상대를 위한 배려를 하다가 그만 지칠 때가 있습니다. 그래서 이젠 당신도 바뀔 때가 되었지 않느냐! 이제는 철이 들 때가 되었지 않느냐! 왜 나만 양보해야 하느냐! 이제는 당신차례야! 하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한 알의 밀알이 된다는 것은 남에게 미뤄야 할 것이 아닙니다. 내가 묻혀 썩어야지 남이 대신 해 줄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밀알 하나가 땅에 떨어져 죽지 않으면 한 알 그대로 남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습니다.(요한12,24) 그렇다면 열매를 맺고 안 맺고는 나의 죽음에 달려 있습니다. 

각자 삶의 자리에서 한 알의 밀알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할 만큼 했다고 생색을 내지 말고 끝까지 항구하시기 바랍니다. 아버지 하느님께서 영광스럽게 해 주시는 그날까지 결코 좌절하거나 실망하지 말고 최선에 최선을 다하는 기쁨을 차지해야겠습니다. 사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