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론 말씀 (가나다순)/반영억 신부님

어린이들이 나에게 오는 것을 막지 말고

김레지나 2011. 8. 14. 16:00

2011년 8월 13일 연중 제19주간 토요일

  

어린이들이 나에게 오는 것을 막지 말고 그대로 두어라.

하늘나라는 이런 어린이와 같은 사람들의 것이다.
(
마태오 19,13-15)
    

 

 여호수아는 죽기 전 이스라엘 백성에게 그동안 섬겼던 우상을 모두 버리고 오로지 하느님만을 섬기고 살라고 당부한다. 그들은 새로운 삶을 시작하면서 주님만을 섬기며 그분 말씀을 따를 것을 다짐한다(제1독서). 예수님께서는 당신에게 다가오는 어린이들을 두고 하늘 나라는 천진하고 단순한 어린이들의 것이라고 말씀하신다. 주님을 향한 단순한 믿음만이 주님께 나아갈 수 있다(복음).

 
어린이는 순진하고 이해타산이 적은 이들이지만, 그것보다는 사회적으로 약자에 해당합니다. 오늘날 강자인 어른들은 약자인 어린이들을 이용하여 자신들의 이해타산의 방편으로 삼으려 드는 경향이 짙고, 때로는 자신들의 노리갯감으로 여기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사랑은 우선 약하고 가난한 이들 편에 서는 것부터 출발합니다. 이것이 주님께서 행하시는 중용(中庸)의 도(道)입니다. 중용의 도는 저울추와 같아, 모자라면 보태 주고, 넉넉하면 덜어 내어 균형을 맞추는 것입니다. 가진 사람들은 못 가진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고, 배운 사람들은 못 배운 사람들에게 배운 것을 가르쳐 주어야 합니다.
주님께서는 약자인 어린이들이 당신께 오는 것을 막지 말라고 제자들에게 이르십니다. “어린이들을 그냥 놓아두어라. 나에게 오는 것을 막지 마라. 사실 하늘 나라는 이 어린이들과 같은 사람들의 것이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어린이와 같이 하느님의 나라를 받아들이지 않는 자는 결코 그곳에 들어가지 못한다.” 그리고 그들에게 손을 얹어 축복해 주십니다. 주님의 이러한 모습은 오늘날 모두가 잘났다고 나서며, 더 가지려는 욕심으로 얼룩진 어른들에게 보내시는 경고입니다.

 

 어린이들의 특성은 순진함입니다. 그들은 꾸밈없이 있는 그대로 바라보고 말합니다. 그들의 눈에는 지위 고하가 없습니다. 추기경이든 대통령이든 그들에게는 할아버지일 뿐입니다. 가난한 사람이건 부자이건 그들에게는 아저씨나 아주머니, 할아버지나 할머니일 뿐입니다. 친절한 사람은 누구나 그들의 친구가 될 수 있습니다. 아마 그들에게는 하느님도 두렵지 않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어린이들을 좋아하시는 것은 그런 순진함 때문이 아닐가요?

 

 

 

 어미 품에 안긴 젖 뗀 아기

 -반영억신부-

반모임 미사에 가면 어린이들은 따로 한 방을 차지하고 자기들만의 놀이에 열중합니다. 어른들‘미사에 시끄럽게 굴지 말라.’하면서 특혜를 주는 것입니다. 그러다 보니 미사참례는 어른이나 하는 줄로 압니다. 시끄러우면 좀 어떻습니까? 좀 더 거룩한 분위기에서 미사봉헌 하기에 앞서 어린이들에게 거룩한 미사참례의 기회를 빼앗지 않아야 하겠습니다. 

예수께서는 어린이들이“나에게 오는 것을 막지 마라. 사실 하늘나라는 이 어린이들과 같은 사람들의 것이다”(마태19,14)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어린이들을 통해 그들의 순수성을 배우려면 그들 곁에 있어봐야 합니다. 진득하게 오래 견디지는 못할지라도 ‘기도손’한 모습이 아름답습니다. 진정, 어린이들로부터 하느님의 은총을 빼앗을 수 있는 권리를 가진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레지오 마리애 회합에는 할머니가 데려온 어린 아이도 참석합니다. 모임을 갖는 동안 말썽 없이 기도하는 모습을 지켜보고 헤어질 때는 두 손을 가지런히 배꼽에 모으고는 허리를 90도로 굽혀 인사합니다. 예수님이 어디 계시냐고 하면 십자고상을 가리키고 성모상을 바라보며 성호를 그을 줄도 압니다. 어린이는 어른과 달리 자기에게 주어지는 것을 계산하지 않고 잘 받아들입니다. 어린이들은 부모님이 가르쳐주는 것을 금방 따라 합니다. 

그러므로 어려서부터 기도의 분위기를 잘 만들어 주어야 하겠습니다. “어미 새의 소리를 듣고 노래를 배우는 어린 새들과 같이 어린 아이들도 세상에서 그들을 가르치기로 되어 있는 아주 열심한 부모 곁에서 하느님 사랑의 숭고한 노래와 덕행의 지식을 배워야 합니다.”(성녀 소화 데레사). 또한 우리도 어린이의 온전히 의탁하는 단순함을 배워 자기에게 주어지는 모든 것을 하느님께서 주시는 것으로 선뜻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어린이가 부모의 가르침을 순수하게 받아들이듯이 우리도 주님의 가르침을 그렇게 받아들일 때 하느님의 나라를 차지하게 될 것입니다. “어미 품에 안긴 젖 뗀 아기”(시편131,2) 같이 주님의 품에 안겨 평온함을 누리시길 바랍니다. 사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