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7월 24일 연중 제17주일
그는 값진 진주를 하나 발견하면 돌아가서 있는 것을 다 팔아 그것을 산다.
(마태오 13,44-52)
왕권을 이어받은 솔로몬에게 주님께서 나타나셔서 무엇을 원하는지 물으신다. 솔로몬은 듣는 마음과 선과 악을 분별할 수 있는 지혜를 겸손하게 청한다. 주님께서는 그의 청을 기뻐하시며 지혜와 분별하는 마음을 내려 주신다(제1독서). 주님을 사랑하고 부르심을 받은 이들은 예수님의 모상이 된다. 주님께서는 이들을 의롭게 하시고 세상을 당신의 뜻에 따라 이끌어 가신다(제2독서). 하늘 나라의 보물을 발견한 사람은 모든 것을 팔아 그 보물을 산다. 그 보물을 간직한 사람은 하늘 나라의 기쁨을 이 세상에서 이미 누리는 사람이다(복음).
어떻게 해야 기쁜 믿음이 될 수 있을는지요? 매일의 기도를 먼저 점검해야 합니다. 신앙은 매일의 고백이고 다짐입니다. ‘주님, 다시 시작합니다. 또다시 출발하렵니다.’ 이 선언이 매일 기도의 핵심입니다. 하루의 첫 행위가 기도라면 신앙은 기쁨으로 바뀌지 않을 수 없습니다. 기도하지 않으면, 주위에서 아무리 믿음을 보물이라고 말해 주어도 건성으로 들립니다. 여전히 밭에 묻힌 보물로 남는 것이지요.
기도하면 무엇이 보물이며 어디에 있는지 알려 주십니다. ‘사건과 만남’이 그것입니다. 모든 사건 속에는 주님의 메시지가 숨어 있습니다. 그러니 늘 깨달음을 청해야 합니다. 왜 이런 사건이 일어났는지, 왜 이런 만남이 있었는지 말입니다.
이러한 행위가 주님의 뜻을 찾는 작업입니다. 아니 보물의 밭으로 가는 실제 행동입니다. 모든 사건은 우연인 듯 보여도 사실은 ‘필연’입니다. 그러므로 밭에 묻힌 보물은 언젠가는 우리에게 주실 하느님의 선물입니다.
진정한 보물을 발견하라
-반영억라파엘신부-
세상에서 가장 값진 보물이 무엇일까? 나름대로 여러 가지를 얘기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보물에 대해 기대하는 만큼 중하게 지키고 보호하고 간수하려 애쓰고 있는지는 생각해 볼일입니다.
값진 보물을 발견한 사람이 그것을 손에 넣기 위해서 그 보다 못한 것을 처분함은 당연한 것입니다. 일부러 애쓰지 않아도 되는 것입니다. 보다 큰 것을 얻기 위해 그보다 작은 것을 포기하는 것을 희생이라 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인간의 욕심이 그것을 허락하지 않습니다. 이것도 갖고 저것도 갖고 모두를 소유하고자합니다. 그러다가 모두를 잃어버리고 맙니다. 큰 것을 위해 보다 작은 것을 포기할 줄 아는 것도 큰 은총입니다.
보물을 발견한 기쁨이 크면 자기가 가진 모든 소유물은 그 보물 앞에서 빛을 잃어버립니다. 억제할 수 없는 기쁨 때문에 아무리 갚진 것이라도 하잘 것 없는 것이 되어버립니다.
바오로사도는 이렇게 표현합니다. “나에게 이롭던 것들을, 나는 그리스도 때문에 모두 해로운 것으로 여기게 되었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나의 주 그리스도 예수님을 아는 지식의 지고한 가치 때문에, 다른 모든 것을 해로운 것으로 여깁니다. 나는 그리스도 때문에 모둔 것을 잃었지만 그것들을 쓰레기로 여깁니다. 내가 그리스도를 얻고 그분 안에 있으려는 것입니다.”(필립3,8). 그리고 “사실 나에게는 삶이 곧 그리스도이며 죽는 것이 이득이 됩니다.”(필립1,21). 바오로에게 있어서 주님을 얻게 되는 것은 모두를 얻게 되는 것입니다. 주님은 바오로의 진정한 보물이기 때문입니다.
마르코 10,17이하를 보면 ‘부자 청년의 비유’ (하느님의 나라와 부자)이야기가 나옵니다.
예수께서는 “제가 영원한 생명을 받으려면 무엇을 해야 합니까?” 하고 묻는 어떤 사람에게 “가진 것을 팔아 가난한 이들에게 주어라. 그러면 네가 하늘에서 보물을 차지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와서 나를 따라라.” 하였습니다. 그러나 그 사람은 재물을 많이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이 말씀을 듣고 울상이 되어 슬퍼하며 떠나갔습니다. 결국 그는 영원한 생명을 갈망 하면서도 자기의 소유물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진정한 보물을 얻지 못했습니다. 주님을 따르는데 있어서 양다리 걸치기는 없습니다. 하느님과 재물을 함께 섬길 수는 없는 것입니다.
애쓰지 않는 사람이 보물을 얻을 수는 없는 법입니다. 보물을 얻으려는 사람은 어떠한 대가라도 치를 수 있는 희생적인 투신이 꼭 필요합니다. 그야말로 ‘봄에 씨를 뿌려야 가을에 거둘 것이 있는 법’입니다. “눈물로 씨 뿌리던 사람들이 곡식 단 들고 올 제 춤추며 노래하리라. 뿌릴 씨를 가지고 울며 가던 그들은 춤추며 환호하리라.”고 시편은 노래합니다.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하느님 나라’ 라는 보물을 주셨습니다. 그리고 그 나라는 ‘우리 가운데’(루가17,21) 있습니다. “보라, 이제 하느님의 거처는 사람들 가운데 있다. 하느님께서 사람들과 함께 거처하시고 그들은 하느님의 백성이 될 것이다. 하느님 친히 그들의 하느님으로서 그들과 함께 계시고 그들의 눈에서 모든 눈물을 닦아 주실 것이다. 다시는 죽음이 없고 다시는 슬픔도 울부짖음도 괴로움도 없을 것이다.”(묵시21,3). 그러므로 진정한 보물을 아는 사람은 그만한 기쁨으로 자기의 모든 것을 포기할 수 있습니다.
“사람의 마음이 머무는 곳에 보화가 있습니다.”-성 암브로시오- 우리의 마음을 주님께 둘 수 있어야 합니다. 주님은 우리의 보물입니다.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보물입니다. 그리고 주님을 보물로 얻은 사람들은 자기 자신이 또한 이웃의 보물이 되어야 합니다. 내가 가진 진정한 보물이 무엇인지를 생각하는 것 못지않게 내가 다른 사람의 보물이 되어주는 것이 중요합니다. 왜냐하면 ‘주님, 주님 하고 부른다고 다 하늘나라에 들어가는 것이 아닙니다.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뜻을 실천하는 사람이라야 들어가기 때문입니다’(마태7,21).
“도박을 좋아하는 사람은 손을 잘라도 도박을 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그것은 손이 도박을 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이 하기 때문입니다. 때로는 ‘손이 크다.’ ‘손버릇이 나쁘다.’고 말합니다. 그것은 마음이 그렇다는 얘깁니다. 아무리 고운 손이라도 나쁜 짓을 하는 손은 고운손이 아닙니다. 아무리 거친 손이라도 선한 일을 하면 고운 손이 됩니다. 손의 주인은 마음이기 때문입니다. 죄를 지은 사람이 감옥을 갈 때 손으로 얼굴을 가리지만 죄를 지은 마음은 손으로 가릴 수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마음단속을 잘해야 합니다. 우리의 마음을 천상에 두고 살아야 합니다. 하느님께 마음을 두고 기뻐해야 합니다.
학창시절 보물찾기 하던 생각나십니까? 선생님이 숨겨놓은 쪽지는 먼데 있지 않았습니다. 돌 틈에 있었고, 나뭇가지에도 있었고 그냥 길바닥에 흘려놓은 것은 아닌 줄 알고 지나쳐 버렸습니다. 보물은 먼데 있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볼 눈이 없었고 찾는 정성이 부족했습니다. 그리고 결국 상품도 타지 못했습니다.
아빌라의 성녀 데레사는 말합니다. “무엇으로도 마음을 흩뜨리지 말며 무엇 때문에 놀라지도 마라. 모든 것은 지나가나 하느님은 변하지 않는다. 하느님을 차지한 자에게는 부족한 것이 없으니 하느님만으로 충분하다.” 하느님을 얻으면 모든 것을 얻은 것이요, 모든 것을 얻어도 하느님을 차지하지 못하면 아무것도 얻지 못한 것입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하느님나라의 보물은 결코 멀리 있지 않습니다. 내 삶의 자리에 있고, 이웃 안에 있습니다. 보물을 잘 찾는 한주간 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꼭 천상의 행복을 차지하시기 바랍니다. 또한 여러분 자신이 이웃의 소중한 보물이라는 것도 잊지 않으시길 바랍니다. 보물을 보물로 볼 수 있는 은총을 간구합니다.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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