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7월 17일 연중 제16주일(농민 주일)
‘주인님, 밭에 뿌리신 것은 좋은 씨가 아니었습니까?
그런데 가라지는 어디서 생겼습니까?’
(마태오 13,24-43)
한국 천주교 주교회의는 1995년 추계 정기 총회에서 7월 셋째 주일을 ‘농민 주일’로 정하였다. 이날 교회는 농민들의 노력과 수고를 기억하고, 도시와 농촌이 한마음으로 하느님의 창조 질서에 맞갖게 살도록 이끌어 준다. 각 교구에서는 농민 주일을 맞아 기념 미사와 갖가지 행사를 하며, 신자들과 국민들에게 농업과 농민의 소중함과 창조 질서 보전의 중요성을 일깨워 주고 있다.
▦ 오늘은 연중 제16주일이며 농민 주일입니다. 오늘 주님께서는 하늘 나라는 겨자씨와 같다고 하셨습니다. 겨자씨는 씨앗 가운데 가장 작지만, 자라면 공중에 새들이 깃들일 만큼 커진다고 말씀하십니다. 우리 삶 한가운데 하느님 나라는 씨앗처럼 숨겨져 있습니다. 이를 발견하고 키워 나가면 우리가 사는 자리에 하느님 나라가 열립니다. 하느님 나라가 이 땅에 건설되기를 기도합시다.
오늘의 묵상
오늘 복음은 ‘가라지의 비유’입니다. 주인은 좋은 씨를 뿌렸습니다. 그런데 싹이 돋고 보니 가라지도 있었습니다. 가라지는 밭에 나는 잡초입니다. 이상한 생각에 종들이 질문합니다. “그런데 가라지는 어디서 생겼습니까?” 주인은 짧게 답합니다. “원수가 그렇게 하였구나.”
원수는 악의 세력입니다. 그들이 밭에 가라지가 생겨나게 했다는 겁니다. 그렇습니다. 나쁜 사람들은 분명 존재합니다. 우리 삶을 둘러봐도 공평하지 못한 면이 많습니다. 특별한 죄를 지은 것도 아닌데 불안감이 떠나지 않습니다. 왜 그럴까요?
“원수가 그렇게 하였구나.” 오늘 복음에 나오는 주인의 이 말씀에 답이 있습니다. 주인은 악의 세력을 인정하였습니다. 그들의 존재를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니 우리도 인정해야 합니다. 그래야 불안의 본질을 깨달을 수 있습니다. 막연한 두려움은 그들이 뿌려 놓은 가라지일 뿐 다른 무엇이 아닙니다.
“저희가 가서 그것들을 거두어 낼까요?” 종들의 이 말에 주인은 기다리라고 합니다. 종들은 순간을 보지만 주인은 멀리 내다봅니다. 주인의 인내입니다. 그러니 종말까지 선과 악은 공존합니다. 어둠의 요소는 우리 곁을 떠나지 않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주인은 처음부터 좋은 씨를 뿌렸습니다. 이 점을 늘 기억해야 합니다. 원수는 자꾸 가라지가 생겨나게 하지만, 그래도 좋은 씨가 더 많은 법입니다.
그것들을 거두어 낼까요?
-반영억 신부-
찬미 예수님, 사랑합니다. 주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그리고 그 사랑은 다양하게 드러납니다. 오늘 복음은 인내하시는 모습입니다. 가라지를 뽑아버리지 않으시고 추수 때까지 밀과 함께 자라도록 내버려 두십니다. 그것은 곧 심판 때까지 기다려 주시는 주님의 사랑입니다. 이 시간 인내하시는 주님의 사랑에 머물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일개미 이야기를 해드리겠습니다.
일개미는 집을 짓거나 먹이를 날라 모으는 개미 입니다. 여왕개미를 보호하는 역할을 하고 자기 체중의 25배가 넘는 물체들을 옮길 수 있다고 합니다.
그러나 날개와 생식기능이 없습니다.
그런데 일개미라고 다들 열심히 일하는 것은 아니라고 합니다.
1/3은 일개미답게 부지런히 일한다고 합니다.
1/3은 누가 시켜야 일을 하고, 통제를 하지 않으면 빈둥빈둥 놀며, 나머지 1/3은 생긴 것만 일개미지 일할 생각이 전혀 없이 자연스럽게 논다고 합니다. 그런데도 개미사회는 1/3의 부지런한 일개미 덕분에 큰 탈 없이 유지되고 있답니다.
어느 날 학자들이 부지런한 일개미1/3만 따로 분리해서 독립된 집단을 만들었는데 그 집단을 관찰하니까 다시 1/3은 부지런히 일하고 1/3은 마지 못해 일하고 1/3은 언제나 논다는 것입니다.
반대로 게으른 개미 1/3을 모아 놓았더니 그 중의 1/3은 또 부지런한 개미가 된다는 연구결과가 나왔습니다.
어쩌면 우리 사람들의 공동체도 마찬가지라고 할 수 있습니다. 공동체의 1/3의 부지런한 사람들 덕에 잘 유지된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부지런한 사람끼리 모아놓으면 또 일개미의 법칙이 시작됩니다.
우리성당 주변을 구역으로 나눠 환경관리를 하고 있습니다. 어느 구역은 가구수가 상대적으로 적습니다. 그런데도 항상 말끔하게 정리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어느 구역은 가구수도 많고 일할 수 있는 사람이 많은데도 기대 이하입니다. 왜 그럴까요? 서로 미루고 ‘나 하나쯤이야!’ 하고 빠지니까 정작 일할 사람이 없는 것입니다.
어느 집단이든지 그 집단에서 꼭 필요한 일을 하는 사람들과
이것도 좋고 저것도 좋고 그저 관망하는 사람들과
반대하는 사람들은 공존합니다.
그래서 이 세상은 완전하지 않습니다.
성당에 다니는 사람은 다 양심적이고 올바르고 모범적인가요? 그렇지 않은 사람들도 있습니다. 하느님 마음에 들지 않고, 내 마음에 들지 않는 사람들도 분명 있습니다. 그래서 상처받고 쉬는 사람들도 있고 다른 곳으로 가시는 분도 계시고…..그러나 거기 가 보면 또 거기에도 여전히 그런 사람은 있습니다. 뭐 피하려다 더 큰 골치덩이를 만납니다. 산 너머 산입니다. 그렇다면 누구를 탓할 것이 아니라 내 마음을 키워야 합니다.
맘 맞는 사람끼리 모여서 무슨 일을 하면 재미있다고 합니다. 손발이 척척 맞는다고 합니다. 그러나 얼마 지나보면 결국 일개미의 법칙이 나타납니다.
내가 커지지 않는 한 불평불만의 요소는 어디에나 있습니다. 혹시라도 이웃과의 관계에서 마음으로 불편함이 있다면 먼저 내 마음단속을 해야 합니다.
MBTI라는 성격검사 유형이 있는데 검사의 결과물을 가지고 같은 성향끼리 모여보면 깜짝 놀라게 됩니다. 내가 싫어하고 못마땅해하던 사람들이 모두 나의 그룹에 모여있기 대문입니다. 그렇다면 내 맘에 들지 않는 사람이 볼 대는 내가 바로 그런 사람입니다. 그것도 모르고 다른 사람 흉이나 보고 험담하고…..
마음에 맞는 사람끼리만 모아 놓으면 오히려 다시 그 마음 맞는 사람들 중에 맞지 않는 사람이 생기는 것이 인생여정입니다.
살다 보면 착한 사람에게는 무엇이 잘 안되고 악한 사람에게는 오히려 잘 되는 느낌을 받을 때가 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그 못된 사람을 왜 그냥 두시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선한 사람으로 비유되는 밀과 악한 사람으로 비유되는 가라지에 대해 “수확 때까지 둘 다 함께 자라도록 내버려 두어라.”하십니다.
왜 그냥 두실까요? 1). 회개의 기회를 주시는 것입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남이 잘못했으면 즉각 벌을 내리기를 바라지만 그 사람이 바로 나라고 생각하면 조금 더 참아 주시기를 간절히 소망할 것입니다. 그래도 거두어 낼까요? 뽑아버릴까요? 여러분이나 저나 잘못을 했을 때 즉시 벌을 내리셨다면 여기 이렇게 있을 수 있겠습니까? 회개의 기회, 은총의기 회를 주실 때 놓치지 말아야 합니다. 악한 사람이나 그렇지 않은 사람이나 자신을 돌아보는 일에 소홀함이 없기를 희망합니다.
2). 의인들에게는 단련의 시간을 허락하신 것입니다. 금도 불에 달궈야 순금이 됩니다. 시련과 역경을 통해 단련되고 강해지게 됩니다. 악한 사람을 포기하지 않고 좋은 길로 인도하도록 노력하는 가운데 하늘에 보화를 쌓게 됩니다. 우리에게는 선을 베풀 수 있는 기회입니다. 공로를 쌓을 수 있는 은총의 시간입니다. 그러므로 얌체 같은 사람이 옆에 있으면 감사하십시오. 나를 힘들게 하는 사람이 나를 다듬어 주는 복덩이 입니다. 자, 옆에 계신 분에게 ‘당신은 복덩이 입니다’.하고 말씀해 주세요.
3). 악인에게도 어느 정도의 선은 다 있습니다. 아니 하느님의 모상을 닮은 인간이기에 선한 모습이 더 많습니다. 그러므로 “전혀 손을 쓸 수 없을 만큼 나쁜 사람도 없고, 완벽한 사람도 없습니다.” ‘과거 없는 성인 없고, 미래 없는 죄인 없다.”고 했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선과 악의 성향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감화의 비결은 ‘사랑’입니다. 그러므로 더 많이 사랑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우리 삶을 돌아보면 공로가 많은 것처럼 실수와 잘못, 과오도 많습니다. 그럼에도 주님께서는 우리가 곳간에 쌓이기를 원하시기에 기다려 주십니다. 오늘 심판보다는 기회를 주신 주님께 감사를 드려야 하겠습니다.
율곡선생도 “선한 것이거든 그 의리를 다하고, 악한 것이거든 그 싹을 자르라.”하셨습니다. 뿌리를 뽑으라고 하지 않고 ‘싹을 자르라.’하신 것은 선과 악의 뿌리가 얽혀있어서 이것을 뽑으면 저것이 함께 뽑히기 때문입니다. 지금 당장은 좋은 것 속에 나쁜 것들이 들어있지만 분명한 것은 ‘좋은 것과 나쁜 것의 어김없는 구별’이루어져 좋은 것이 곳간에, 즉 하늘에 들어간다는 것입니다.
하늘나라는 보이지 않게 시작하여 거창해집니다. 그러나 세상 것은 거창하게 시작하여 흐지부지됩니다. 비록 우리가 행하는 선이 미약해 보일지라도 그 일을 끝까지 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마음에 들지 않는 가라지와 추수 때까지 함께할 수 있음을 기뻐하시기 바랍니다. 주님께서 그 공로를 결코 잊지 않으실 것입니다.
누가 여러분을 모함하고, 빈정거리고, 험담하며 사사건건 반대합니까? 그래서 미워죽겠습니까? 속상하고, 분하고, 야속합니까? 그 사람을 어찌하면 좋겠습니까? 거두어 낼까요? 뽑아버릴까요?
그래도 사랑해야 합니다. 그는 나쁜 사람이 아니라 악의세력에 휘둘리는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사람을 미워하지 말고 악을 미워하고 악과 싸워 이길 수 있는 방법을 생각해야 합니다. 그가 악의세력으로부터 자유를 누릴 수 있도록 협력해야 합니다. 사랑만이 악을 이길 수 있기 때문입니다. 주님의 마음으로 인내하며 모두를 품을 수 있는 은총 안에 머물기를 기도합니다.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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