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론 말씀 (가나다순)/반영억 신부님

행함으로써 열매를 맺어야

김레지나 2011. 7. 14. 21:20

2011년7 10일 연중 제15주일

어떤 것은 좋은 땅에 떨어져서 맺은 열매가 백배가 된 것도 있었다.”
(
마태 13,1-23)

 

☆☆☆

 

오늘 복음의 ‘씨 뿌리는 사람의 비유’는 ‘좋은 땅’이 그 결론입니다. 유혹이 없고 삭막함과 가시덤불이 사라지는 땅입니다. 하지만 그러한 땅은 없습니다. 예수님께서도 유혹을 받으셨고, 사도들도, 훗날의 성인들도 모두 시련을 겪었습니다. 그러한 고통을 만났기에 더욱 자주 기도하였고 주님을 찾았습니다.
그러니 좋은 땅은 만들어진 땅입니다. 누구나 같은 땅과 씨앗을 받습니다. 어떻게 받아들이며 사는지가 중요합니다. 자연의 땅도 가꾸지 않으면 버려진 땅이 됩니다. 정성을 들여야 바라는 땅이 될 수 있습니다. 평범한 이 사실이 좋은 땅의 비결입니다. 오늘 복음의 교훈은 이 점을 묵상하는 데 있습니다.
우리는 어떻게 신앙생활을 하고 있습니까? 막연하게 따라가고 있는 것은 아닌지요? 그렇다면 새롭게 시작해야 합니다. 믿음의 길은 어려운 길이 아닙니다. 늘 새롭게 시작하면 됩니다. 기도를 바치고 선행을 실천하면서 시작하면 됩니다. 그렇게 한 주간을 보내면 또 다른 느낌으로 주일을 맞게 됩니다. 은총의 체험인 것이지요.
믿음 역시 흐르는 물과 같습니다. 뛰어넘고 도약하지 않으면 앞으로 나아갈 수가 없습니다. 지나간 것에 얽매여서도 안 됩니다. 지나간 것은 지나간 것일 뿐입니다. 어떤 형태로든 다시 시작하면 늘 새 땅이 됩니다. 이것이 좋은 땅으로 가는 지름길입니다.

 농부는 가을에 풍작을 기대하고 봄에 씨를 뿌립니다. 하지만 좋은 땅에 떨어진 씨앗만이 많은 열매를 맺을 것입니다. 우리는 하느님 말씀의 씨앗이 잘 자랄 수 있는 마음의 밭을 준비해야 합니다. 그 마음의 밭이란 주님의 말씀에 귀 기울이고 따르는 것입니다. 말씀 안에 풍요로운 열매를 맺는 이들만이 마지막 날에 구원될 것입니다.

 

 

행함으로써 열매를 맺어야

 -반영억신부-

 찬미 예수님, 사랑합니다. 하느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시고 당신의 말씀으로 늘 풍요롭게 해 주십니다. 이 시간 씨 뿌리는 사람의 비유를 통해 우리의 삶을 새롭게 해 주시기를 청합니다.

 씨 뿌리는 사람이 씨를 뿌리러 나갔습니다.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뿌린 씨가 어떤 것은 길에, 어떤 것은 돌밭에, 어떤 것은 가시덤불 속에, 그리고 어떤 것은 좋은 땅에 떨어졌습니다. 우리나라 농사법으로는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 비유는 갈릴래아 농부들이 일상적으로 체험하던 현실적인 이야기입니다. 우리나라에서는 먼저 밭을 갈고 나서 씨를 뿌리지만 팔레스티나에서는 먼저 씨를 뿌리고 밭을 갈기 때문입니다.

 이런 전 이해를 가지고 보면 알아듣기가 쉬울 것입니다. 비유에서 나오는 씨는 하느님의 말씀입니다. 그리고 밭은 인간의 마음입니다. 그렇다면 이 비유는 하느님의 말씀을 받아들이는 네 부류의 다른 인간의 마음을 이야기 하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첫 번째로 사람 중에는 길바닥 같은 딱딱한 마음을 가진 사람이 있습니다. 대개는 배움이 많거나 자기의 가치관이 뚜렷해서 하느님의 말씀이 들어갈 틈이 없는 사람입니다. 신앙에 대해 이야기하다 보면 ‘좋은 사람이나 믿으면 되지. 나에게는 얘지 마라’ 하고 무관심하고 외면하는 아주 완고한 사람입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딱딱한 흙덩어리로는 도자기를 빚을 수 없습니다. 물렁하게 반죽을 해야만 도자기를 빚을 수 있습니다. 사람의 생각도 그렇습니다. 딱딱한 생각을 가지고는 아무 일도 하지 못합니다. 부드러운 생각을 가져야만 새로운 일을 시작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일단은 들어야 합니다. 그런데 이런 사람은 혹 들어도 진지함이 없이 건성으로 듣고 맙니다.

 창세기2장16-17절에 보면 주 하느님께서 사람에게 너는 동산에 있는 모든 나무에서 열매를 따 먹어도 된다. 그러나 선과 악을 알게 하는 나무에서는 따 먹으면 안 된다. 그 열매를 따 먹는 날, 너는 반드시 죽을 것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아담과 하와는 그 열매를 따먹었습니다. 따먹지 말라는 말씀을 듣기는 했지만 진지함이 없이 건성으로 들었습니다. 하느님을 생각하지 않고 자기의 일만 생각했기 때문에 유혹에 넘어갔습니다.

 오늘 복음은 길에 떨어진 씨앗을‘새가 와서 먹어버렸다.’고 기록하고 있는데 13장 19절에는 길에 뿌려진 씨는 악한 자가 와서 그 마음에 부려진 것을 빼앗아간다고 했습니다. 악한 자는 누구입니까? 베드로가 예수님께 야단을 맞은 적 있잖아요. “사탄아 물러가라, 하느님의 일은 생각하지 않고 사람의 일만 생각하는구나.” 그렇다면 언제 악한 사람이 되느냐? 그야말로 사탄이 되느냐? 하느님의 일은 생각하지 않고 사람의 일만을 생각할 때입니다. 그러므로 길바닥 같은 마음을 경계해야 합니다.

 두 번째의 사람은 돌밭과 같은 딱딱한 마음을 지닌 사람입니다. 이런 사람은 마음을 열고 말씀을 받아들이지만 그 마음에 뿌리를 깊게 내리지 못하여 신앙이 오래가지 못하는 사람입니다. 조그마한 어려움이나 시련, 갈등이 있으면 성당을 나오지 않는 사람입니다.‘성당 다니는 사람이 왜 저 모양이야?’하며 상처 받고 쉽게 신앙생활을 포기하는 사람입니다.

 의지가 약해서 결심을 하고도 실천하지 못하는 사람입니다. 말씀대로 살려고 했다가도 자신이 손해를 보고나 고통을 겪게 될 것을 두려워 말씀을 실천하지 못하는 사람이죠. 신앙생활은 때로는 희생을 감수해야 합니다. 그런데, 왜 내가 이런 일을 해야 돼. 생색도 안 나는 일을! 굿은 일을 ….서운한 소리 들으면 금방 성당 안 나와요, 내가 왜 저런 미운 사람을 바라봐야 하냐고…..신앙이 있는 사람은 그런 사람을 바꿔놓죠. 앙갚음을 하는데 얄미울 정도로 사랑으로 앙갚음을 해요.‘미운 놈에게 떡 하나 더 준다.’고 더 잘해요.

 세 번째는 가시덤불이 가득한 마음입니다. 이런 사람은 들은 말씀을 받아들이기는 하지만 재물이나 세상 것들에 대한 유혹 때문에 신앙의 정신대로 나누지 못하고 쌓아두는 사람을 말합니다. 이런 사람은 주일은 꼬박 꼬박 지키고 자기의 건강이나 취미생활에는 충실하지만 단체활동이나 봉사활동 할 시간을 내지 못합니다. 아직까지는 세상이 중심이 되어서 매사를 자기 위주로 계획하고 시행하기 때문에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열매는 맺지 못합니다. 이런 사람은 걱정이 많아요, 왜? 더 많이 소유하고 더 많이 지배하려니까 쓸데 없는 데 머리를 많이 써야 합니다. 가시덤불의 특징은 금방 자라나는 겁니다. 뽑아도 뽑아도 금방 큽니다. 그래서 정말 정신 차려야 합니다. 소유, 지배, 권력, 명예욕은 뽑아도 뽑아도 쑥쑥자라요.

 네 번째의 부류의 사람은 좋은 땅과 같은 마음을 지닌 사람입니다. 이런 사람은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이것을 실천해서 하느님께서 주시는 은총을 누리는 사람입니다.

 자 여러분은 어느 땅에 속하는 것 같습니까? 길바닥, 돌밭, 가시덤불, 좋은 땅? 예, 좋습니다. 우리 모두는 다 좋은 땅 입니다. 하느님께서 당신의 모상대로 빚어 만드시고 당신의 영, 숨을 불어 넣어주셨는데 나쁜 땅이 어디 있어요, 다 좋은 땅인데 가꾸지 않는 것이 문제 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씨앗을 주시는 겁니다. 열매를 직접주시는 것이 아닙니다. 열매는 우리가 가꾸어야 하는 거죠. 다시 말하면 하느님의 은총과 인간의 협력이 어우러져서 수확하게 되는 겁니다.

 사실, 많은 사람들이 열매를 맺는 삶을 살기를 원합니다. 그런데 실제로 열매는 많지 않습니다. 왜 그럴까요? 그것은 말씀을 듣고도 말씀대로 살지 않기 때문입니다.

 하느님의 말씀은 살아있고 힘이 있으며 어떤 쌍날칼보다도 날카롭습니다. 그래서 사람 속을 꿰찔러 혼과 영을 가르고 관절과 골수를 갈라, 마음의 생각과 속셈을 가려냅니다.(히브4,12) 1독서 이사야서의 말씀대로 비와 눈이 땅을 적시어 기름지게하고 싹이 돋게 하듯 내 입에서 나가는 나의 말도 나에게 헛되이 돌아오지 않고, 반드시 내가 뜻하는 바를 이루며 내가 이런 사명을 완수하고야 만다.(이사55,10-11) 반드시 뜻하는 바를 이뤄주신다고 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중풍병자에게 “일어나라.” 손이 오그라든 이에게 “네 손을 펴라.” “네 믿음이 너를 살렸다.” 하시며 죄 많은 여인에게 ‘네 죄를 묻지 않겠다.’하시며 죄를 용서해 주시고 일으켜 세우셨습니다. ‘나를 따라오라.’하자 제자들이 따랐습니다. 그야말로 주님의 말씀은 능력의 말씀이요, 치유의 말씀이고 창조의 말씀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말씀대로 살지 않기 때문에 열매를 맺지 못하는 것입니다.

 농부는 봄에 밭을 갈고 씨를 뿌리고 긴 여름동안 여러 번 김을 매고 물을 주고 거름을 주면서 가을의 추수를 기대합니다. 열매를 거둘 때에는 한 없는 기쁨과 보람이 있습니다. 우리는 저마다 인생이라는 농장에서 농사를 짓는 농부입니다. 그리고 자기가 심은 것을 거두게 됩니다. 많이 심고 잘 가꾸는 이는 많이 거두고, 적게 심고 가꾸지 않는 사람은 적게 거두며 아무 것도 심지 않은 사람은 아무것도 거두지 못하게 되는 법입니다. 봄에 씨 뿌리지 않으면 가을에 거둘 것이 없습니다. 속담에 “콩 심은 데 콩 나고 팥 심은 데 팥 난다.”고 하였습니다.

 밥을 먹지 않는데 배부를 수 있습니까? 공부를 안 하는데 성적이 좋아집니까? 우리는 심지도 않고 가꾸지도 않고 거두려는 어리석은 사람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노력하지 않고 열매를 기다리고, 노력하지 않고 행복해 지려 한다면 뻔뻔한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오랜 신앙생활을 했으면서도 영적으로 성장하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그것은 분명 내 마음의 밭을 제대로 가꾸지 않기 때문입니다. 능력의 말씀을 듣기는 하지만 돌밭, 가시덤불의 상태에서 듣기 때문에 아무런 열매를 맺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러니 귀 있는 사람은 알아들으십시오. “하느님의 말씀은 부드럽고 우리의 마음은 단단합니다. 그러나 하느님의 말씀을 자주 듣게 되면, 마음이 열려 하느님을 경외하게 될 것입니다.”(교부 푀멘)

 주님께서 “귀 있는 사람은 들어라.”(마태13,9)고 하셨습니다. 귀 있는 사람이란 ‘말의 의미를 깨닫는 사람, 이해하는 사람, 경청하는 사람, 순종하는 사람’을 가리킵니다. 그런 의미에서 여러분 모두가 귀 있는 사람이 되기를 바랍니다. 숙달된 자동차 정비사는 차의 소리만 들어도 어디에 고장이 있는가를 알아냅니다. 훌륭한 지휘자는 수많은 악기 소리 중에서도 잘못된 음을 금방 잡아냅니다. 그렇게 되기까지 얼마나 많은 수고와 땀이 있었을까 미루어 짐작합니다.

  우리의 귀는 어디에 훈련되어있습니까?? 어떤 사람은 영어, 수학, 과학에 관한 말은 잘 알아듣는데 하느님께 관한 말씀에는 문맹인 사람도 있습니다. 세상에는 눈이 밝으면서도 하느님의 말씀에는 어두운 사람들이 있습니다. 듣지 않아도 될 것들은 얼마나 잘 듣고 또 많이 아는 줄 몰라요, 연예인 이름을 줄줄 외우고 그의 경력, 활동..등등, 언제 무엇을 했는지 까지스포츠 신문, 잡지는 꿰차고 앉아 있으면서도 성경말씀에는 아주 강통인 분도 있습니다.

 그런데 어떤 분은 배움이 많지 않은 분인데도 성경 말씀을 장, 절까지 외우고 그 뜻을 잘 알아듣는 분도 계십니다. 참 놀라운 일입니다. 정말 귀 있는 사람이 누구입니까? 하느님 말씀을 듣고 또 그대로 행하는 사람이 아니겠어요.

 신부는 부제 서품식에서 복음서를 수여 받는데 그때 주교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주님의 말씀을 읽고, 읽는 바를 믿으며, 믿는 바를 가르치고, 가르치는 바를 실천하십시오.

 주님께서는 말씀의 씨앗을 우리 모두에게 주셨고 우리는 그 말씀을 듣고 믿고 가르치고 실행함으로써 좋은 열매를 맺게 됩니다. 여러분이 귀 있는 사람이 되어 하느님께서 주시는 은총의 열매를 풍성하게 거두시길 바랍니다.

 아시죠? 믿기 어려운 얘기지만 가끔 익사하는 오리가 있답니다. 오리는 날개 바로 밑에서 특별한 방수기름이 분비되는데 이것을 온 몸에 발라야 물에 뜰 수 있습니다. 그런데 어떤 오리는 게을러서 이 일을 하지 않아 물속에 들어갔다가 깃털이 물에 빨려 들어가 가라앉게 된다는 것입니다. 아무리 큰 은혜가 주어져도 받아들이고 실행하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사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