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위일체란 한 분이신 하느님이 세 위이시고, 세 위이신 하느님이 한 분이시라는 알쏭달쏭한 교리입니다.
어찌되었건 교회에서 가르치는 교리 중에 이 내용이 가장 어려운 것이라서 전해지는
썰렁한 유머들이 많습니다.
여러분이 알고 계실지도 모르지만 처음 듣는 분들을 위하여...
예전에는 학자들을 많이 보유한 수도원이 사회적으로 인정을 받았습니다.
프란치스꼬회와 도미니꼬회가 학문적으로 가장 유명해서 두 수도원은 은근히 경쟁상대였습니다.
어느 날 교황청에서 교회 최고의 학문수도원을 뽑는다고 대표학자들을 보내라는 공지가 왔습니다.
그런데 도미니꼬회와 프란치스꼬회는 서로 분위기가 달랐습니다.
도미니꼬회에서는 서로 나가겠다고 해서 시험을 보았고,
프란치스꼬회에서는 서로 안 나가겠다고 핑계를 대는 바람에 엉뚱하게도 주방수사가 나가게 되었습니다.
드디어 결전의 날이 와서 서로 맞붙게 되었는데
도미니꼬회 수사가 갑자기 손바닥을 쫘악 내미는 것이었습니다.
프란치스꼬회 사람들은 아이고 처음부터 졌다 하고 우거지상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주방수사는 아주 여유있게 주먹을 쑥 내미는 것이었습니다.
그러자 도 수사가 몹시 당황하면서 손가락으로 머리를 가리켰습니다.
이번에도 주방수사는 생각하지도 않고 자기 발을 가리켰습니다.
도 수사가 사색이 되어 마지막으로 손가락 하나를 들었습니다.
그런데 주방수사가 손가락 셋을 펼치자 도 수사는 그 앞에 무릎꿇더니 사부 하더랍니다.
두 수도원이 모두 난리가 났습니다.
우선 도미니깐들은 도대체 무슨 질문을 하였는가?
처음 바다는 끝이 없다 고 하였더니,
저쪽에서는 지구는 둥글다.
지구가 둥글다는 것은 알려진지 얼마 되지 않는 신학문이었습니다.
두 번째, 그리스도는 인간의 머리와 같은 분 하자
주님께서 제자들의 발을 닦아주신 분이라고 답했고,
마지막으로 하느님이 유일신 이라고 하자
삼위일체이신 하느님이라고 답했다면서
그 어려운 학문을 주방장까지 안다니 놀랍다고 했습니다.
프란치스깐들 역시 난리가 나서 아까 그게 뭐여 하고 묻기 바빴습니다.
주방수사 왈 자기는 아는 게 감자뿐.
저쪽이 감자전을 부쳐먹을 줄 아느냐 하길래 나는 통감자도 먹는다.
자기네는 감자가 머리만큼 크다고 하길래
우리 감자는 발로 올라설 만큼 크다.
자기네는 감자를 하루 한 끼 먹는다길래 우린 세 끼 다 먹는다고 했답니다.
그 일 이후로 도미니깐 수사들이 프란치스꼬회 주방장보다 못하다는 전설이 지금까지
전해져온다고 합니다.
삼위일체 하느님이 주시는 메시지는 성부 성자 성령 세 분이 구원사를 함께 이루신 것처럼
사람도 다른 사람들과 더불어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더불어 산다는 것은 말은 쉬우나 참으로 어려운 것입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성생활에서 아주 중요한 것이기도 합니다.
옛날 어떤 수도원에 아주 잘난 척 하는 수도자가 있었습니다.
이 수도자가 보기에 다른 수도자들은 다 게으르고 무식하고 형편없어보였습니다.
그러다 보니 자기같이 성덕을 추구하는 사람은 그런 수도자들과 어울리면 세속적이 될 것이라고
생각해서 늘 혼자서 기도하고, 혼자서 밥을 먹고, 혼자서 공부하는 싱글족의 생활을 했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사는 자기를 다른 수도자들이 존경해주길 바랬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원장수사 선출 투표를 하기만 하면 표가 딱 한 표만 나와서 늘 낙선을 하였습니다.
그 한 표는 바로 자기가 찍은 것이었고요.
이 수도자는 화가 나서 수도원에서 가장 나이먹은 수사를 찾아가서 불만을 하소연했습니다.
도대체 자기가 뭐가 모자라는지 알 수가 없다고 하면서 물었습니다.
제가 기도하는 시간이 모자란가요? 아니.
노동하는 시간이 모자란가요? 아니.
아님 학문이 부족한가요? 아니.
도대체 제가 부족한 게 뭔가요?
노인수사가 말하기를 너는 싸가지가 부족해. 싸가지가 없어서 낙선하는 것이야.
다른 수도자들하고 같이 살지를 못하잖아.
아니 다른 것들은 다 무지하고 게으르고 그런데 왜 그 까마귀 무리에 들어가야 하나요?
그럼 그렇게 백로처럼 외롭게 살다가 뒤져.
그래서 뒤졌다는 슬픈 이야기입니다.
사람에게는 인생에서 주어지는 숙제가 딱 두 가지입니다.
일 그리고 사람이지요.
이 둘 중에서 어느 것이 더 어려운 숙제인가?
일? 아닙니다. 사람입니다.
왜 일보다 사람과 사는 것이 더 어려운가?
일은 자기 능력껏 할 수 있지만, 즉 일에 대한 통제력을 내가 가질 수 있지만
사람은 그렇지가 않기 때문입니다.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일보다 사람으로 인해서 속상하고 속이 뒤집히는 경우가 더 많은 것입니다.
그런데 왜 성덕이 깊어지려면 다른 사람들과 더불어 살아야 하는가?
기도나 학문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과 어울려 살아야만 하는가?
사람의 마음은 본시는 모난 돌이라고 합니다.
즉 사람의 본래 마음은 자기밖에 모르는 이기적인 성향이 강하다는 것입니다.
이런 모난 마음을 어떻게 해야 보기좋게 둥글게 만들 수 있는가?
다른 모난 돌들과 같이 부딪히고 구르게 해야 합니다.
덩그라니 떨어져 있으면 그냥 모난 채로 있을 뿐 둥글어지지는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영성심리에서는 혼자 산에 들어가서 도를 닦는 사람들보다
공동체 안에서 더불어 사는 사람들을 영성적으로 더 높이 평가합니다.
우리 교회에는 봉쇄수도원이라는 아주 독특한 수도공동체가 있습니다.
많은 신자분들이 봉쇄수도원을 방문하고 오셔서 그곳에 사는 수도자들이 세속을 떠난
아주 맑은 마음을 가진 사람들이라고 얘기합니다.
실제로 봉쇄수도자들을 보면 아기처럼 아주 해맑은 얼굴을 하고 있습니다.
그럼 이 수도자들이 그런 얼굴을 가지게 된 것은 무엇 때문인가?
세속을 떠나서 그런 것인가? 그렇지 않습니다.
세상을 떠나서 수도원에 들어가도 세속은 거기에도 있는 것입니다.
답은
어디 도망갈 곳 없는 구역에서 잘 바뀌지 않는 사람들끼리 수십 년을 함께 살면서
서로가 서로를 받아들이지 않으면 안되는 영성훈련, 자기의 모난 부분을 다른 사람들의
모난 부분들과 부딪치면서 갈아내는 수련을 하였기 때문입니다.
어찌되었건 사람과 사람이 함께 산다는 것은 절대로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래서 사람으로 인해 속상한 일들이 많은데
그런 때 자기 마음을 달래주는 자기주문이 하나 있습니다.
이미 아시는 분들도 계실 것입니다만
속상할 때는 천년만년 살 것도 아닌데 좀 참아 하고 자기에게 말해주는 것입니다.
본당신부들의 경우 고약한 수녀를 만났을 때
천년만년도 아니고 이년이면 떠날 텐데 참아
신자분들의 경우 본당신부가 싫을 때
삼년 있음 갈 텐데 참아
배우자가 속을 썩일 때는 금방 뒤질 터인데 참아
이렇게 자기주문을 거는 것으로 마음의 짐의 절반은 줄어듭니다.
한 번 해 보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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