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론 말씀 (가나다순)/홍성남 신부님

화 - 홍성남 신부님

김레지나 2011. 6. 9. 20:23

복음에서 주님은 ‘아버지와 내가 하나이다’ 하는 말씀을 하십니다.

하나라는 말

참으로 많이 사용되는 말이지요.

하나되게 하소서. 우리는 하나. 일심동체 등 ...

하느님이 우리에게 원하시는 것은 모든 사람들이 하나가 되는 것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사람과 사람이 하나 되는 것을 방해하는 것들이 적지 않아서

하느님의 뜻을 따르기가 참으로 어렵기만 합니다.

사람과 사람이 하나 되는 것을 방해하는 가장 큰 방해물 중의 하나는

화/분노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은 이 분노/화라는 것에 대하여 같이 생각해보는 시간을 가질까 합니다.

특히 옛날 교리를 배우신 분들은 오늘 강론을 더 잘 들어두시기 바랍니다.


분노/화라고 하면 우리는 거의 본능적으로 없애고 싶은 감정, 좋지 않은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화란 것이 우리 안에 있을 때 나타나는 현상들이 그리 좋지 않은 것들만 나타나기 때문입니다.

우선 사람이 누군가에게 화가 나 있으면 그 사람과 나 사이에 벽이 생긴다는 것을

화를 내 본 사람들은 누구나 압니다.

화가 났을 때에는 당사자의 옆에는 가능하면 가지 않으려고 합니다.

몸이 저절로 멀어지는 것입니다.

또한 화가 나 있을 때는 내 마음이 너무나 불쾌합니다.

밥맛이 떨어지고 잠도 못 잡니다.

그래서 우리는 어떻게 해서라도 화를 없애려고 하고,

기도할 때에도 마음이 늘 평안하게 해 달라고 청합니다.

심지어는 마귀가 사람의 마음 안에 심어놓은 것이라고 생각해서 구마기도를 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화란 것은 이렇게 부정적으로 볼 것만이 아니라 때로는 우리에게 필요한 것임을 아셔야 합니다.

즉 우리의 자존감과 직결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만약 우리가 화낼 줄 모르면 다른 사람들로부터 무슨 소리를 듣게 될까요?

좋게는 사람 좋다는 이야기를 듣지만, 바보라느니 배알도 없다느니 하는 소리를 들을 가능성,

즉 바보 취급을 받을 일도 생길 수 있단 것입니다.

그러나 평소에 화내지 않던 사람이 갑작스럽게 화를 내면 그 사람에 대한 주위 사람들의 대접이

달라지는 이유는 바로 화가 그 사람의 자존감과 연결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적절한 양의 분노는 사람의 생존에 필수적이라는 것이지요.

그리고 그런 관점에서 우리가 관심을 가져야 하는 것은 화를 어떻게 다룰 것인가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화가 났을 때 어떻게 하십니까?

다음 보기 중에서 가장 바람직한 방법이 무엇인지 골라보세요.

1.  꾹꾹 눌러참는다, 삭힌다.

2.  술을 죽어라고 퍼마시고 뻗는다.

3.  조용히 앉아서 나를 화나게 한 사람을 용서해달라고 기도한다.

4.  돈을 센다.

5.  약 먹고 카악 죽어버린다.

6.  산에 올라가서 개쉐이 새쉐이 하면서 소리를 지른다.

답은 4번과 6번입니다.

일반적으로 우리는 화를 참는 방법을 가장 많이 사용합니다.

왜냐? 참을 인자 세 개면 살인도 면한다느니, 웃는 얼굴에는 침을 안 뱉는다느니 하면서

화를 내지 말 것을 강조하는 이야기들때문입니다.

그러나 이런 방식으로 화를 대하면 그 부작용이 적지않게 생깁니다.

첫째는 성질이 더러워집니다.

사람의 눈 중에 호랑이눈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웃음기없이 눈을 부라리고 다니는 사람들을 호랑이눈이라고 하고,

그런 사람들이 마치 사나이 중의 사나이라고 일반적으로 생각하시는데 천만의 말씀입니다.

이 호랑이눈이란 심리학적인 용어로는 파라노이드 아이, 즉 편집증적인 눈을 말합니다.

즉 의심많고 성질 더러운 사람이란 의미입니다.

화를 참으면 그런 눈이 되는 것입니다.

이런 사람들은 대개 화를 눌러 참고서 자기는 절대로 화내지 않는다고 하지만

무의식적으로 화를 내고 다닙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가까이 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몸에서 분노의 기운이 느껴지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대인관계가도 좋지 않습니다.

두 번째는 병에 잘 걸립니다.

분노는 에너지, 그것도 불과 같은 에너지입니다.

이것을 누르고 참으면 그 홧기운이 신체의 가장 취약한 부분을 공격합니다.

그래서 신경증이란 이름이 붙은 병들이 생기게 되고,

심지어는 암의 원인이 되기도 하는 것입니다.

세 번째는 분노를 조절하지 못하고 합리적인 대화를 못 합니다.

참다참다 눈이 뒤집혀서 상황판단을 못 하고 비이성적인 행동을 하기 쉽다는 것입니다.

누르고 누르다가 폭발하여 버리는 것입니다.

순한 사람이 화나면 무섭다는 이야기가 바로 이런 경우에 해당합니다.

제가 전에 사목을 했던 병원에 화상병동이 있었습니다.

이곳은 마치 연옥을 연상케 합니다.

사람 살타는 냄새가 아주 고약하지요.

가끔씩 이곳에 부부싸움을 하고 난 후 가스를 튼 채로 불을 질러서

부부가 전신화상을 입고 입원하는 경우들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공통점은 샌님처럼 조용한 사람들이 그런 짓을 잘 저지른다는 것입니다.

화를 누르고 누르다가 그만 터져버리고 만 것입니다.


그러면 이런 사고를 내지 않으려면 화를 어떻게 해야 하는가?

잘 풀어야 합니다.

어떻게 잘 푸는가?

화가 났을 때는 그 날을 넘기지 말고 혼자서 화를 실컷 내서 마음을 시원하게 풀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왜냐?

화는 마음 안에 생긴 배설물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하루에 몇 번씩 화장실을 들락거리면서 배설물을 싸버리듯이

마음 안의 불쾌한 감정 역시 화장실같은 공간에서 배설하거나 털어버리기를 해야 하는 것입니다.

옛날에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라고 구덩이에 고래고래 외친 이발사 이야기는

바로 이런 치료기법을 말합니다.

또 그렇게 고래고래 소리지르지 않더라도 궁시렁거리기만 하는 것으로 화가 풀리기도 합니다.

지금은 고인이 된 사회심리학자인 모리 박사는 걸어다니면서 궁시렁궁시렁 하고

화를 푸는 방법으로 마음의 편안함을 얻었다고 하는데 현실적으로 따라 해볼만한 방법입니다.

한 번 해 볼까요?

여건만 된다면 나를 화나게 한 사람의 물건에 화풀이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 될 것입니다.

옛날 시집살이 고되던 시절의 며느리들이 건강하게 살았던 것은

두 가지 해소책이 있어서였다고 합니다.

하나는 우물가에서의 잡담이고

또 하나는 다듬이질-시어머니옷, 시아버지옷, 남편옷 등-이었다고 합니다.

말과 행동으로 마음 안에 쌓인 화를 풀었던 것입니다.

현대인들의 경우 차 안에서 풀거나 집에서 샌드백에다 화를 풀라고 합니다.

그런데 이런 설명을 하고 나면 꼭 이의를 제기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주님이 성내지 말라고 하셨다.

신자가 기도를 통하여 영적으로 해결해야지 그런 신자답지 않은 방법을 사용하면 어떡하느냐.

그렇게 화를 내다가 점점 더 화가 나서 나중에 미쳐버리면 어떡하느냐.

이런 의문들을 가장 많이 제시합니다.

답은

주님이 성내지 말라고 하신 것은 상대방에게 직접 성내지 말라고 하신 것이지

혼자서 화풀이하는 것을 하지 말라고 하신 것은 아닙니다.

복음을 보시면 아시겠지만 주님이야말로 한 성질 하신 분, 당신 감정을 참지 않으신 분이십니다.

또 영적인 해결이란 상대방을 용서하는 기도를 말하는데

분노가 해소되지 않은 상태에서의 용서는 거짓 용서의 감정일 위험이 큽니다.

그리고 그렇게 얻은 평화를 거짓평화라고 하는 것입니다.

용서란 상대방을 아예 기억하지 못하는 상태를 말하는데

분노가 해소되지 않으면 그런 용서는 불가능합니다.

마지막으로

화는 낼수록 커지는 것이 아니라 줄어드는 것입니다.

그러나 제대로 화내지 못하면 분노가 마음을 불안하고 혼돈스럽게 한다는 것이지요.


분노는 마귀가 우리에게 준 것도 아니고

쓰잘데기없는 것도 아닙니다.

분노라는 감정은 다른 감정들과 마찬가지로 하느님께서 우리 생존에 필수적인 도구로 주신 것입니다.

문제는 지나칠 때 일어나는 것이지요.


옛날에 어떤 수도원에서 고령의 수도자들이 같이 사망해서

같이 하느님께 면접을 보러가게 되었다고 합니다.

세 사람은 나름대로 수도생활을 잘 하여 성인수도자들이라는 평을 듣던 사람들이었습니다.

하느님이 세 사람을 보시자 반갑게 한 집에서 살자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한 달 후 하느님께서 인사발령을 다시 내셨습니다.

각자 다른 장소에서 살 것을 명하신 것입니다.

한 사람은 화장실 근무

한 사람은 천당 교도소 근무

한 사람은 하느님의 비서실장이 되었다고 합니다.

화장실 근무자와 교도소에 가게 된 수사들이 항의했습니다.

우리가 비서실장이 된 수사보다 기도도 더 많이 하고, 희생도 많이 하는데

왜 우리를 그런 곳으로 보내는가?

하느님께서 말씀하시길

다 맞는 말인데

화장실로 가는 너는 화를 너무 참아서 마음이 변비에 걸렸느니라.

그래서 늘 네 얼굴은 똥마려운 얼굴을 하고 있으니

너를 보면 내가 불안해서 화장실 근무를 준 것이고,

또 너는 남을 용서한다고 하면서 눈은 늘 화난 호랑이눈을 하고 다니니

교도소가 적격이니라.

그런데 쟤는 늘 버럭버럭 화를 내고 궁시렁거리고 다니는데 왜 비서실장인가요?

쟤는 겉으로 보기에는 성질머리가 더러워보여도 다 뱉어내고

마음 안에 쌓인 것이 없어서 뒤끝이 없느니라.

그래서 내 곁에 두려고 한다.

여러분이 천당에서 어디로 발령이 나는가는 여러분의 분노를 어떻게 다루는가에 달렸다는 것

잊지 마시고 지혜롭게 분노를 해소하면서 사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