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론 말씀 (가나다순)/홍성남 신부님

받아들임 - 홍성남 신부님

김레지나 2011. 6. 7. 20:01

오늘 복음에 대해서는 강론하는 사람마다 강조하는 부분이 다릅니다.

예를 들면 영성신학을 전공한 사람들은

주님의 말씀을 따랐더니 물고기가 많이 잡혔다는 부분을 강조하고,

저같이 영성심리학을 전공한 사람은

주님께서 제자들에게 와서 아침을 먹어라 하고 말씀하신 부분을 강조합니다.


와서 아침을 먹어라

참으로 평범한 말씀입니다.

왜 주님께서는 이런 말씀을 하신 것일까요?

  1.  주님께서 해장국집을 개업하셔서

  2.  제자들이 늘 아침을 안 먹고 지내서

  3.  그냥 할 말이 없어서

  4.  혼자 아침밥 드시기가 거시기해서

  5.  이 중에 답이 없음


와서 아침을 먹으라고 하신 말씀

밥을 먹으려면 무엇무엇을 준비해야 한다느니

니들 밥먹을 짓은 했냐고 묻지도 않으시는 이것은

당신이 제자들에게 해주실 수 있는 최선의 사랑을 베푸신 것입니다.

즉 제자들을 그냥 그대로,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신다는 말씀이신 것입니다.


있는 그대로를 받아들인다는 것이 무에 그리 중요한가?

우리는 흔히 사랑이란 상대방에게 무엇인가를 주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런 사랑의 개념은 지극히 주관적인 것이며

때로는 자기 감정에 도취된 것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예컨대 어떤 사람에게 내가 사랑한다는 징표로 무엇인가를 주었을 때

상대방이 좋아하는 것을 보면서

자기 마음이 흐뭇해지는 것을 즐김과 동시에

그 뒷면에는 내가 이렇게 너에게 잘하니 너도 나에게 잘해야 한다는

요구가 숨어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런 사랑은 아가페적이라고 말하기가 어렵습니다.

아가페적인 사랑이란?

상대방이 내 마음에 들지 않아도 상대방이 변화될 것을 요구하지 않고

그냥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을 말합니다.

주님이 와서 아침을 먹으라고 말씀하신 것은 바로 이런 마음으로

제자들의 허물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신다는 표식으로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상대방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인다는 것이

말은 쉬운데 실행하기는 참으로 어렵습니다.

이것이 어려운 이유는 무엇인가?

우리가 가진 기존의 인생관이 사람은 늘 변해야 하고 늘 더 좋아져야 한다는

강박관념인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이런 생각에 사로잡혀 살면서

아가페적인 사랑을 실천한다는 것은 참으로 어려운 것입니다.


어떤 자매가 수도원에 가려고 한다면서 상담을 청해왔습니다.

이 자매는 이미 다른 수도원에 들어갔다가 나온 사람이었습니다.

수도원에서 나온 이유는 아주 단순합니다.

수도원의 수도자들이 세상 사람들과 다를 바 없고, 변화하려고 노력하는

모습을 찾아보기 어려운 것이 영 마음에 들지 않아 나와버렸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몇 해가 지나고 나니 세상살이가 너무 세속적이라서

다시 수도원에 들어가고 싶어서 준비중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어떤 수도원이 정말 수도자같은 사람이 사는 곳이냐

추천해달라고 묻는 것입니다.

자기는 그런 수도원에서 오로지 주님만 바라보며 살고 싶다는 것입니다.


만약 여러분이 제 입장이라면 무어라고 조언해주시겠습니까?

저는 말로는 우리나라에는 자매님같은 분을 받아들일만한 수준높은 수도원이 없습니다

하고 답변했지만  속으로는 너같이 성질 까탈스런 여자를 누가 받아주것냐


많은 분들이 수도자들은 세상과는 다른 삶

주님 안에서 늘 평화와 사랑을 먹고 사는 그런 삶을 사는 사람들이라고 생각들 하십니다.

그러나 실제 수도생활은 변화하지 않는 사람들과 달라질 것이 없는 자신이 함께

서로 불편함을 참으면서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훈련을 하면서 사는 삶입니다.

그리고 이것은 세상에서 살아가는 우리들에게도 똑같이 적용되는 삶이고,

주님이 아침을 먹으라고 하신 것도 이런 관점에서 하신 말씀이신 것입니다.


어떤 신부가 세상에서 살면서 신자들보고 변화하라고 들들 볶아대다가

자기 성질을 못 이겨 죽었다고 합니다.

그 신부가 죽은 날 그 본당신자들은 앞으로 우리보고 이래라저래라 잔소리할 사람이

없어졌다고 장례하는 뒤에서 잔치를 벌일 정도로 기뻐했다고 하는데

어쨌건 이 신부가 살기는 열심히 살아서 죽은 다음에

천당에는 가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 신부가 천당에 가서 보니 고칠 것이 너무나 많더랍니다.

그래서 만나는 사람들마다 잔소리를 해댔습니다.

그러자 견디다 못한 천당주민들이 민원을 올리고 차라리 연옥에서 살겠다고

이주신청을 하는 사람들이 줄을 지었다고 합니다.

그런데도 그 신부는 그것도 모자라서 하느님을 뵙기만 하면 득달같이 달려가서

아 왜 천당이 이 모양이냐고 이러쿵저러쿵 잔소리를 했다고 합니다.

하느님 역시 견디다 못하셔서 연옥에나 갈까 하시다가 마지막으로 깨달음을 주기 위해서

그 신부에게 당신이 친히 붓글씨로 쓰신 현판을 주셨답니다.

그 현판에는 한문으로

행할 시, 죄 벌, 일할 노, 말 마...

이게 무슨 뜻입니까?

하느님 왈,

고대 당나라에 한 나그네가 길을 가는데 어떤 농부가 지친 말을 채찍질하는 것을 보게 되어

여보시오 말이 힘든데 그렇게 하면 되겠소 하였더니

그 농부 하는 말이, 말이란 짐승은 이렇게 해야지 안 그러면 딴 생각을 먹어서 아니되오 하면서

더 채찍질을 하더란다.

나그네가 그 모습을 보고 한문 사자성어를 써서 농부에게 주었단다.

행할 시 죄 벌 일할 노 말 마

일하는 말에게 벌을 가하다 라는 뜻으로 그렇게 살지 말라는 것이지.

그런데 그 신부는 그 뜻이야 상관없이 그 현판을 자기 집 문에다 떡 걸어놓고

하느님이 주신 것이라고 자랑스러워했는데

지나가는 사람들이 그 현판을 읽으면서 하느님의 뜻이 무엇인지를 헤아리게 되면서

욕이 되었다는 슬픈 이야기입니다.


만나는 사람을 있는 그대로 존중해주고 받아들이는 사람을

참된 의미의 호인이라고 합니다.

만나는 사람마다 트집을 잡고 바꾸려하는 사람은 그 신부와 같은 소리를

듣기 십상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