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론 말씀 (가나다순)/반영억 신부님

☆ 나는 아버지께서 나에게 맡겨주신 일을 다 하여 - 반영억 신부님

김레지나 2011. 6. 7. 19:56

2011 6 7일 부활 제7주간 화요일

“나는 아버지께서 나에게 맡겨주신 일을 다 하여 세상에서 아버지의 영광을 드러냈습니다.” 

 (요한 17,1-11ㄴ)

 

말씀의 초대

바오로는 성령에 이끌려 예루살렘으로 가기 전 교회의 원로들에게 작별 인사를 한다. 그가 가는 곳마다 투옥과 환난이 기다리고 있지만, 그는 예수님께서 주신 직무에 충실하며 복음을 증언하는 일을 다 마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다(제1독서). 예수님께서는 수난을 앞두고 당신 자신과 제자들을 위해 간절히 기도하신다. 예수님께서는 비록 아버지께로 떠나시지만 지상에 남을 제자들을 염려하시며 이들을 지켜 주시고 하나가 되게 해 주십사고 기도하신다(복음).

 

 복음 묵상

술을 너무 많이 마시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술이 취한 날에는 가족들을 성가시게 했고, 가끔은 이웃 사람들에게 망신을 당하기도 했습니다. 다음 날이 되면 미안해서 고개도 제대로 들지 못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의 자녀 가운데 주일 학교에 다니는 초등학생이 있었습니다. 하루는 아들이 아버지에게 말했습니다. “아빠, 어젯밤 꿈에서 예수님을 봤어요.”

그러자 아버지는 피식 웃었습니다. “얘야, 예수님이 어디 있느냐? 오늘 밤 또 나타나면 한번 물어봐. 네 아빠가 지은 죄를 알고 있으면 말해 보라고 해 봐. 그러면 진짜인지 가짜인지 알 수 있어.” 그는 장난스럽게 대꾸했습니다.

다음 날 아들이 아버지에게 말했습니다. “아빠, 어젯밤 예수님이 말씀하셨어. 아가야, 아빠한테 얘기하렴. 나는 네 아빠가 지은 죄를 벌써 다 잊었다고.” 그 말을 듣는 순간, 아버지는 충격을 받았습니다. 그러고는 바로 술을 끊었다고 합니다. 은총이었습니다. 아들을 통해 무언의 깨달음을 만났던 것입니다.

우리는 너무 쉽게 ‘죄와 연관된 하느님’을 생각합니다. ‘사랑과 연관된 하느님’이 정답인데도 늘 잊고 지냅니다. 하느님을 인간적으로만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러기에 죄는 벌로 이어진다고 늘 자책합니다. 그래서는 시련의 의미를 알 수 없습니다. 시련이 은총임을 깨달을 수 없습니다. “저는 이들을 위하여 빕니다. 세상을 위해서가 아니라, 아버지께서 저에게 주신 이들을 위하여 빕니다.” 예수님께서는 사람의 행복을 누구보다도 깊이 바랐던 분이십니다

  

요한 복음 17장은 예수님의 유언입니다. 십자가의 죽음을 앞두신 그분께서는 제자들이 서로 일치할 것을 간곡히 기도하십니다. ‘아버지와 당신께서 하나이신 것처럼’ 그들도 하나가 되어 살 것을 기도하십니다. 그만큼 주님께서는 ‘일치’를 바라셨습니다.
우리는 일치의 하느님을 삼위일체 안에서 묵상합니다. 그리고 그 일치의 힘을 은총으로 주실 것을 청합니다. 신앙생활 역시 마지막 목표는 주님과 일치하는 데 있습니다. 이렇듯 신앙인은 예수님의 유언을 실천하는 사람들입니다.
사도행전에 따르면, 주님의 제자들도 서로 격렬하게 논쟁하였습니다. 그렇지만 늘 스승의 유언으로 합일점을 찾았습니다. 박해가 끝나고 수많은 이단이 교회를 혼란시켰지만 제자들은 이를 극복합니다. 일치를 위한 숨은 노력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사랑으로 하나가 되는 

 -반영억라파엘신부-

 많은 분들이 성체조배나 묵주기도, 9일기도, 15기도, 자비의 기도, 십자가의길 등 열심히 기도를 합니다. 그런데 가끔 9일기도를 하면 소망을 꼭 들어주신다고 하는데 그렇습니까? 하는 질문을 받습니다. 믿음으로 기도 하고 기도하는 만큼 주님과의 일치를 이룬다면 그렇게 됩니다. 그러나 삶의 변화나 주님과의 사랑의 일치를 이루지 못한 채 기도문만 외운다고 그렇게 이루어지겠습니까? 횟수나 형식에 매이지 말고 진심어린 마음으로 그 기도가 지향하는 바대로 삶의 쇄신을 이뤄야겠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세상을 떠나시기에 앞서 당신자신과 제자들, 그리고 앞으로 당신을 믿게 될 사람들을 위하여 기도하셨습니다. 자신을 위해 기도하신 것은 아버지께서 주신 권한을 통해 아버지 하느님께 영광을 드리기 위함이었습니다. 또한 아버지께서 주신 이들과 앞으로 당신을 믿게 될 이들을 위하여 기도함에 있어서 밑바닥에 깔려 있는 기본핵심은 사랑의 일치에 있습니다.

 

아버지와 아들, 아들과 제자들, 그리고 제자들의 증언을 통하여 믿게 되는 이들, 바로 우리와의 사랑의 관계를 완성하길 바라십니다. 그리하여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아버지께로부터 하늘과 땅의 권한을 받았기에 믿는 이들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시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생명의 빵과(요한6,32이하) 생명의 물(요한4,10이하)을 주시며 풍부하게 하십니다. 그리고 영원한 생명이란 아버지 하느님과 예수님을 아는 것이요, 안다는 것은 결국 통교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더불어 한 몸이 된다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기도한다는 것은 주님과 사랑으로 하나되는 것에 초점을 두어야 합니다. 주님은 아버지와 하나되어서 우리를 위하여 기도하셨습니다. 우리도 주님과 하나되어야 비로소 온전히 기도할 수 있습니다. 기도는 사랑하면서 사랑의 친교 안에 있는 것입니다. 마더 데레사 수녀님은 기도는 '심장과 심장의 만남'이라고 하였습니다. 작업시간에는 일로써, 기도시간에는 기도로써 우리는 일치를 이루어야 합니다. 기도를 말, 생각, 장소, 시간에 국한시키지 말고 그 한계를 넘어서서 언제 어디서든지 현존하시는 주님과 친교를 나누는 것으로 이해한다면 우리는 항상 기도할 수 있습니다. 부디 삶이 기도이기를 희망합니다.

이번 주간은 청주교구 사제들이 피정에 임하고 있습니다. 사제들이 주님과 하나가 되고 사제들간에 한 마음 한 뜻을 이룰 수 있는  귀한 은총의 시간이 될 수 있도록 기도해 주십시오. 절대침묵을 원하시는 주님과 함께 ....사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