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6월 4일 부활 제6주간 토요일
청하여라 받을 것이다.
(요한 16,23ㄴ-28)
말씀의 초대
바오로의 새로운 선교 여행이 계속된다. 바오로는 여러 지방을 돌면서 예수님의 제자가 된 이들을 격려한다. 특히 바오로 일행은 이미 예수님을 알고 가르치고 있던 아폴로라는 사람을 만나자 그를 격려하며 하느님의 길을 더 정확하게 알려 주고 아카이아로 파견한다(제1독서). 주님께서는 주님의 이름으로 청하면 무엇이든 들어주신다고 말씀하신다. 주님께서는 믿고 따르면 사랑으로 응답해 주신다. 주님을 믿고 청하는 이들은 충만한 기쁨을 누릴 수 있다(복음).
복음묵상
“너희가 내 이름으로 아버지께 청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그분께서 너희에게 주실 것이다.” 참으로 놀라운 말씀입니다. 그만큼 예수님의 이름에는 힘이 담겨 있다는 가르침입니다. 그러기에 교회는 처음부터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를 끝맺어 왔습니다. 그것은 또한 그분의 죽음과 부활에 동참한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어린이들은 부모를 찾습니다. 기쁜 일이 있어도 찾고, 어려운 일이 생겨도 찾습니다. 다급하면 부모 생각을 먼저 하도록 길들여져 있습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청하라는 것도 주님과 ‘그러한 관계’를 만들며 살라는 가르침입니다.
사람들은 보이는 것만 믿으려 합니다. 그렇지만 ‘중요한 것’은 잘 보이지 않는 법입니다. 미끼가 먹음직스러워 보이기에, ‘보이지 않는’ 사람에게 물고기가 잡힙니다. 걱정만 보이는 것 같더라도, 어딘가에 있을 희망을 찾아야 합니다. 어린 시절처럼 부모님 생각으로 돌아가는 것이지요.
신앙인의 부모님은 예수님이십니다. 그분을 부르는 것은 부모님을 부르는 것과 같습니다. 그러기에 수많은 ‘좋은 관계’를 그분께서 맺어 주셨습니다. 자녀인 우리가 행복하게 살도록 은총을 베푸신 것입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할 때는 자신에게 일어난 ‘좋은 일’을 먼저 떠올려 봐야 합니다.
기쁨이 충만해질 것이다
-반영억라파엘신부-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지금까지 너희는 내 이름으로 아무 것도 청하지 않았다. 청하여라. 받을 것이다. 그리하여 기쁨이 충만해질 것이다.”(요한16,24)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믿는 이들의 기도는 다 받아들여지고 그래서 기쁨이 충만해진다는 의미입니다. 그런데 믿는 이들의 기도라는 말에는 주님의 뜻에 맞는 청원이라는 뜻이 전제되고 있습니다. 주님의 뜻에 맞기만 하면 다 받아들여질 것입니다. 그러므로 헛된 기도를 하지 않기 바랍니다. 많은 경우 주님께 매달린다고 하면서도 내가 원하는 것을 내 이름으로 청하고 있음을 부끄러워 합니다.
토마스 아 겜피스는
“주님께서 함께 계시지 않는다면 무슨 좋은 일이 있겠습니까?
주님께서 함께하신다면 문제될 것이 무엇입니까?
주님과 함께하면서 가난할지언정
주님을 떠나 부요해지기를 바라지 않습니다.
주님과 함께 이 세상에서 순례자의 길을 걸을지언정
주님을 떠나 하늘로 올라가기를 바라지 않습니다.
주님과 함께 하는 곳이 천국이요,
주님을 떠난 그 자리가 죽음이며 지옥입니다.
주님께서는 제가 바라는 모든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님께 부르짖으며 마음으로부터 기도하겠습니다.
주님 외에 저를 도와줄 이 아무도 없습니다.
믿고 의지할 분은 주님밖에 없습니다.” 하고 기도하였습니다.
우리도 간절한 기도를 하되 믿음으로 열매 맺는 기도를 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기도는 하면 할수록 더 잘하게 됩니다. 기도를 자주 함으로써 기도를 배우게 되는 것입니다.
기도를 하지 않는 사람은 어느 누구도 기도의 참맛을 느낄수가 없습니다."
기도합시다. 주님의 심장과 우리의 심장이 만나야 합니다. 사랑합니다.
그 날엔
-김찬선신부-
"너희가 내 이름으로 아버지께 청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그분께서 너희에게 주실 것이다.
지금까지 너희는 내 이름으로 아무것도 청하지 않았다.
청하여라. 받을 것이다. 그리하여 너희 기쁨이 충만해질 것이다."
요즘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비나이다.”하고 기도하지만 옛날 우리의 기도 정식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비나이다.”였습니다.
그런데 주님의 이름으로 기도하고 청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입니까?
임금에게 무엇을 청하면 그 청이 전달되지도 않을 뿐 아니라 전달은 되더라도 그 청이 가납되지 않기 때문에 임금님과 잘 아는 사람의 이름으로 청하는 그런 것입니까?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지 않고 하느님 아버지께 직접 청하면, 하느님 문턱이 너무 높아 가납되지 않는다는 그런 뜻이라면, 그것은 ‘아니올시다!’일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은 이어서 말씀하십니다. “그날에 너희는 내 이름으로 청할 것이다.
내가 너희를 위하여 아버지께 청하겠다는 말이 아니다. 바로 아버지께서 너희를 사랑하신다.”
주님께선 아버지께서 친히 우리를 사랑하신다고 하십니다.
그러니 하느님께서 우리의 바람을 모르실 리가 없으시고, 우리가 청한다면 그 청을 거절하실 리도 없으십니다. 그러므로 이 말씀의 뜻은 삼위일체적 사랑의 차원입니다.
지금은 주님의 이름으로 청하지 않지만 “그날”에는 주님의 이름으로 청할 것이라고 하는데 “그날”은 바로 성령께서 우리에게 오시는 때이고, 성령께서 오시면 성령께서는 사랑의 성령이시기에 우리로 하여금 주님을 진정 사랑하고 믿게 하실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은 또 이어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희가 나를 사랑하고, 또 내가 하느님에게서 나왔다는 것을 믿었기 때문이다.”
성령께서 오시면 하느님께 대한 우리의 사랑이 비로소 완성될 것입니다.
성령께서 오시면 하느님께 대한 우리의 믿음이 비로소 완성될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는 하느님 사랑의 현현(顯現)이요 육화(肉化)임을 우리가 믿고,
하느님 사랑에 대한 우리 사랑으로서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가 사랑하여 이제 모든 것을 예수 그리스도 없이는 하지 않습니다.
하느님과 하느님 사랑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에게 왔기에 우리와 우리의 사랑도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느님께 가게 되고 우리의 청원도 사랑의 차원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갑니다.
성령께서 오시면 아들을 사랑하지 않고 아버지를 결코 사랑치 않을 것이며 아들을 제켜 놓고 아버지와 직접 쏙딱거리지 않을 것이라는, 오늘 말씀은 그런 말씀이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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