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론 말씀 (가나다순)/송영진 신부님

배은망덕 - 송영진 신부님

김레지나 2011. 4. 9. 11:45

<사순 제4주간 화요일>(2011. 4. 5. 화)(요한 5,1-3ㄱ.5-16)

 

<배은망덕>

 

4월 5일의 복음 말씀 내용은 여러 가지로 상징적입니다.

그리고 전체적인 내용은 예수님의 생애를 압축한 것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예수님께서 벳자타 연못을 지나가시다가

연못 옆에서 서른여덟 해나 누워 있는 병자를 보시고 그의 병을 고쳐 주십니다.

그 병자가 예수님께 병을 고쳐 달라고 간청하지도 않았는데,

순전히 자비심으로, 그 병자가 너무 딱해 보여서, 그의 병을 고쳐 주신 것입니다.

 

그런데 그 병자는 예수님이 누구인지도 모르고, 알려고 하지도 않고,

병이 나은 다음에 고마워하지도 않고, 마지막에는 예수님을 밀고합니다.

 

그 병자는 유대인들을 상징하는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자기들에게 메시아로 오신 예수님을 알아보지도 않고, 믿으려고 하지도 않고,

수많은 병자들을 고쳐 주시고, 많은 기적과 자비를 베푸셨는데도,

예수님을 십자가에 매달아 죽인 유대인들...

 

벳자타 연못의 물이 출렁거릴 때,

가장 먼저 연못에 들어가는 사람은 병이 나았다고 하는데,

그건 아무래도 미신처럼 생각됩니다.

그런 헛된 희망을 품고 연못 주위에 누워 있는 많은 병자들의 모습도

유대인들을 상징하는 것으로 생각됩니다.

올바른 신앙생활을 하지 않고 미신이나 우상숭배에 빠져 있었던 유대인들...

 

어떻든 예수님 덕분에 병이 나은 사람이 집으로 걸어가는데,

축하하는 사람은 한 명도 없고,

안식일이니까 들것을 들고 걸어가면 안 된다고 말하는 사람들뿐입니다.

율법에 사로잡혀서 예수님을 거부했던 바리사이들 모습 그대로입니다.

 

복음 말씀에 등장하는 인간들 모습에는 사랑도 없고, 믿음도 없고,

이기심과 율법주의 같은 것만 가득 보입니다.

 

오늘날의 우리들에게는 그 병자가 바로 우리 자신의 모습일 수 있습니다.

은총을 받을 자격도 없는데,

하느님의 자비와 은총과 사랑을 넘치게 받고 있는 우리들의 모습...

그런데도 고마워하지도 않고, 은총이 은총인 줄도 모르고 있고,

운이 좋았다는 소리나 하고 있고, 자기가 잘나서 그런 줄만 알고 있고...

 

예수님은 바로 그런 인간들을 위해서 오셨다가

그런 인간들 때문에 죽음을 당하셨습니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서,

만일에 누군가가 그 병자에게 왜 그렇게 배은망덕하냐고 꾸짖는다면,

아마도 그는 이렇게 항의를 했을 것입니다.

“나는 예수가 누구인지도 모른다. 그에게 내 병을 고쳐 달라고 하지도 않았다.

그런데 그는 내가 안식일 율법을 어기게 만들었다.

건강해지면 뭐하냐? 안식일을 어겼다고 돌에 맞아 죽을 뻔 했는데...”

그 병자는 서른여덟 해 동안이나

사람들에게 버림받은 상태로 누워 있었던 자신의 모습을 금방 잊어버렸습니다.

 

창세기에서...

짝이 없어서 외로워하는 아담을 위해서 하느님께서 하와를 만들어 주셨는데,

선악과를 따먹은 뒤에 아담이 했던 변명은...

“당신이 만들어 주신 저 여자 때문에...” 였습니다.

아담은 짝이 없어서 외로워했던 때를 잊어버렸습니다.

 

이집트를 탈출한 뒤에

이스라엘 백성들은 광야에서의 방랑이 너무 힘들다고 불평합니다.

“언제 우리가 우리를 해방시켜 달라고 했는가?

왜 우리를 이 광야로 끌고 와서 이 고생을 시키냐?”

이스라엘 백성들은

살려달라고 하느님께 울부짖었던 노예 시절을 너무 쉽게 잊어버렸습니다.

 

구약성경은 배은망덕의 역사로 가득 차 있습니다.

신약성경도 별로 다르지 않습니다.

예수님께서 체포되고 재판받고 십자가를 지고 처형장으로 가실 때,

예수님 덕분에 병이 나은 그 수많은 병자들은 어디에 있었을까?

제자들처럼 모두 달아나버렸을까?

 

사는 게 너무 힘들다고 울면서 기도할 때의 신앙생활과

모든 일이 다 해결되고 편안해진 다음의 신앙생활이...

배은망덕이 되지는 말아야 합니다.

 

화장실 갈 때의 마음과 갔다 온 다음의 마음이 다르다고 해도,

신앙생활은 그런 식으로 하면 안 됩니다.

이미 받은 은총까지 다 날아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느님께서 주신 은총을 취소하시는 것이 아니라

우리 스스로 잃어버리는 것입니다.

 

- 송영진 모세 신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