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론 말씀 (가나다순)/송영진 신부님

바리사이와 세리의 비유 - 송영진 신부님

김레지나 2011. 4. 3. 19:16

<사순 제3주간 토요일>(2011. 4. 2. 토)(루카 18,9-14)

 

                                    <바리사이와 세리의 비유>

 

성전에서 기도하는 바리사이와 세리의 가장 큰 차이점은,

바리사이는 자기 자신의 실체를 모르고 있고, 세리는 알고 있다는 점입니다.

 

세리는 자기가 죄인이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가 겸손하게 '오, 하느님! 이 죄인을 불쌍히 여겨 주십시오.' 라고 기도하는 것은

원래 겸손해서가 아니라 죄의식 때문에 그렇게 기도한 것입니다.

사실 당시의 세리들은 실제로 죄인들이었습니다.

 

바리사이는 그가 말한 내용 그대로 그렇게 살고 있었을 것입니다.

강도짓이나 불의나 간음을 하지 않고, 일주일에 두 번 단식하고,

모든 소득의 십일조를 바친다는 그의 말은 사실일 것입니다.

사실 그대로 말하는 것은 교만이 아닙니다.

그러나 그가 말하지 않은 것들이 있었습니다.

 

바리사이들의 속은 탐욕과 사악으로 가득하고,

십일조를 내면서도 의로움과 하느님 사랑은 소홀히 하고,

윗자리를 좋아하고, 인사받기를 좋아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루카 11,39-43).

그런데도 바리사이는 자기가 잘못한 것이 없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자기에게는 잘한 일뿐이고, 자기는 칭찬받아 마땅하다고만 생각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과연 그럴까?' 라는 뜻으로 바리사이를 세리와 비교하셨습니다.

 

성전에서 자기 자랑만 늘어놓은 그 바리사이의 가장 큰 잘못은

자기가 잘못한 것이 없다는 바로 그 생각입니다.

그런데 그는 알면서도 없는 척 하는 것이 아니라 진짜로 모르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그렇게 당당한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자기 자신에 대해서 모르고 있다는 것(알려고 하지 않는 것) 자체가 죄라고 하십니다.

 

고해성사를 보면서 죄가 없다고 주장하는 사람과

죄가 생각나지 않는다고 하는 사람의 차이는 큽니다.

너무 작고 사소한 실수는 시간이 흐르면서 잊어버릴 수 있습니다.

그러나 아예 죄가 없다고, 잘못한 일이 없다고, 실수한 일도 없다고

당당하게 말하는 것은 그 자체로 교만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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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잠깐, 교만과 겸손을 생각해봅시다.

교만한 사람은 자기가 교만하다는 것을 모릅니다.

겸손한 사람은 자기가 겸손하다는 것을 모릅니다.

 

자기가 교만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그렇게 생각하는 순간 겸손해집니다.

자기는 겸손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그렇게 생각하는 순간 교만해집니다.

 

겸손으로 유명한 성인 성녀들을 보면,

겸손해지려고 노력해서 겸손해진 것이 아니라

진짜로 자기 자신은 부족한 사람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겸손해진 분들입니다.

 

교만한 것으로 유명했던 사람들을 보면,

자기 자신의 본모습에 대해서 전혀 모르고 있습니다.

아니, 알려고 하지도 않습니다.

만일에 누가 옆에서 지적하고 비판하면 인정하지 못하고 화를 냅니다.

 

교만한 사람은 자기 자신의 실제 모습을 모르기 때문에 위험합니다.

모르면서도 자기가 생각하는 자기 모습이 진짜라고 믿기 때문에 더 위험합니다.

스스로 깨닫기 전에는 누가 어떻게 해 줄 방법이 없습니다.

회개란 자기 자신의 실제 모습을 정확하게 알려고 노력하는 일에서부터 시작됩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겸손해지려는 노력이 아니라 교만해지지 않으려는 노력입니다.

자꾸 의식적으로 겸손해져야지, 겸손해져야지, 하다 보면

겉으로만 꾸미는 거짓 겸손이 되기가 쉽습니다.

거짓 겸손은 그냥 교만입니다.

(너무 과장되게, 의식적으로 겸손하게 행동하는 거짓 겸손을 보면

교만한 사람보다 더 안 좋게 보입니다.)

 

그러나 교만해지지 말아야지, 교만해지지 말아야지, 하면서

자꾸 자기 자신을 단속하고 경계하면 언젠가는 진짜로 겸손해질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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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께서 바리사이를 자주 비판하셨지만,

모든 바리사이가 다 그런 것은 아닙니다.

당시에 세리들은 온 백성의 미움을 받는 죄인들이었지만,

모든 세리가 다 그런 것은 아닙니다.

 

열두 사도 중에 바르톨로메오 사도는 바리사이 출신이고,

마태오 사도는 세리 출신입니다.

사도단 안에서 그들은 출신을 따지지 않고 한 형제였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바로 그런 것을 바라셨을 것입니다.

회개한 바리사이와 회개한 세리가

다 함께 하느님의 자녀가 되고 서로 형제가 되는 것.

 

그런 관점에서 복음 말씀을 다시 읽어보면

예수님의 의도가 더욱 분명하게 드러납니다.

바리사이든 세리든 간에 모두 다 회개하라는 것입니다.

(성전에서 기도하면서 회개한 사람이 세리가 아니라 바리사이였더라도

예수님의 가르침이 달라지지 않습니다.)

 

지금 누군가는 죄 속에서 살면서 죄의식을 느끼고 있을 것이고,

누군가는 죄를 지은 적이 없다고 맘 편하게 살고 있을 것입니다.

회개는? 양쪽 다 해야 합니다.

 

우리는 조금씩 바리사이이기도 하고 세리이기도 합니다.

(아니면 완전히 바리사이이거나 완전히 세리이거나 할 수도 있고.)

어떻든 회개는 전부 다 해야 합니다.

회개한 바리사이와 회개한 세리는 다 함께 구원을 받을 것입니다.

회개하지 않는 바리사이와 회개하지 않는 세리는 다 함께 심판을 받을 것입니다.

 

 - 송영진 모세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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