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순 제4주일>(2011. 4. 3.)(요한 9,1-41)
<무엇이 더 중요한가?>
예수님께서 어떤 눈먼 이를 고쳐 주십니다.
그런데 그날이 안식일이었다는 것 때문에 일이 시끄러워집니다.
예수님께서 안식일을 어겼다고 바리사이들이 시비를 걸고 있습니다.
“안식일을 어겼으니 예수는 죄인이다.
죄인은 기적을 행할 수 없다.
따라서 눈먼 이가 눈을 뜬 것은 기적이 아니다.”
이것이 예수님에 대한 바리사이들의 생각입니다.
그들은 그 눈먼 이가 정말로 눈이 멀었었는지 그것도 의심하게 됩니다.
“정말로 태어나면서부터 눈이 멀었다면 죄 중에 태어난 죄인이다.
죄인은 하느님의 은총을 받을 수 없다.
따라서 그가 눈을 뜬 것은 하느님의 기적이 아니다.”
이것이 그 눈먼 이에 대한 바리사이들의 생각입니다.
그러나 앞을 못 보았다가 보게 된 그 사람은 다르게 생각합니다.
“내가 태어나면서부터 앞을 못 본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그런데 예수라는 분이 눈을 뜨게 해 주셨다.
그것은 분명히 기적이다.
기적을 행하셨으니 그분은 예언자이고 메시아시다.”
눈을 뜨게 된 사람의 논리는 자신의 체험을 바탕으로 사실을 진술한 것이고,
바리사이들의 논리는 사실상 궤변입니다.
그들은 기적보다 안식일을 더 중요하게 생각했기 때문에
자신들의 논리가 궤변이라는 것을 깨닫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이 이야기의 핵심은,
율법만 바라보느라고 기적을 보지 못하는 사람들과
기적을 기적으로 알아보는 사람들의 대립입니다.
이 대립은 보이는 대로 보지 않고 보고 싶은 것만 보는 사람들과
보이는 대로 올바르게 보는 사람들의 대립이기도 합니다.
왜 보이는 대로 보지 않고 보고 싶은 것만 보려고 했을까?
그것은 자기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만 보려고 했기 때문입니다.
바리사이들에게는 병자와 장애자를 고치는 기적보다,
죽은 사람을 살려내는 기적보다
율법이 더 중요했기 때문입니다.
이 말은 하느님의 은총, 사랑, 자비, 용서, 구원보다도
율법을 더 중요하게 생각했다는 뜻이 됩니다.
되찾은 아들의 비유에서
작은 아들의 회개, 아버지의 용서와 사랑, 그런 것보다
죄를 지은 작은 아들은 벌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큰아들이
바로 그런 바리사이입니다.
길을 가다가 강도를 당해서 죽어가는 사람을 보고서도
그냥 가버린 사제와 레위인이 바로 그런 바리사이입니다.
그들은 하느님의 은총과 사랑과 자비와 용서와 구원도
율법 안에서 이루어져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하느님을 율법 속에 가두어버린 사람들입니다.
법을 만든 사람 자신부터 그 법을 지켜야 한다는 것은
인간 세상의 중요한 원칙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인간 세상의 원칙일 뿐이고
하느님에게도 적용할 수 있는 원칙은 아닙니다.
만일에 하느님이 율법이라는 틀에 갇혀야만 한다면,
그분은 더 이상 하느님이 아닙니다.
하느님은 어떤 것으로도 제한될 수 없는 분이기 때문입니다.
하느님을 무엇인가로 제한한다면
그것은 하느님의 절대권과 주권을 제한하려고 하는 신성 모독죄가 됩니다.
따라서 안식일 율법 때문에
하느님의 기적도 기적이라고 인정하지 못한 바리사이들은
하느님의 주권을 부정하는 죄를 지었습니다.
자기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들에 대해 집착하면서
정말로 중요한 것을 보지 못하는 것은
눈을 뜨고 있지만 못 보는 것과 같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그들을 향해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희가 눈먼 사람이었으면 오히려 죄가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 너희가 ‘우리는 잘 본다.’ 하고 있으니,
너희 죄는 그대로 남아 있다.”
우리는 지금 자기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이
정말로 그렇게 중요한 것인지를 반성해야 합니다.
정말로 그렇게 목숨을 걸 정도로(인생을 다 바칠 정도로) 중요한 일인가?
많은 사람들이 죽을 때가 되어서야 겨우
자기가 헛된 생각 때문에 인생을 허망하게 낭비했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정말로 중요한 것이라고 생각하고 평생 그것을 추구하고 그것만 집착했는데,
나중에 보니 아무것도 아니었다고 후회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나중에 후회하지 말고 지금 회개해야 합니다.
- 송영진 모세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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