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대이신 안나 언니는 어린아이 같은 신앙심을 갖고 기도와 봉사활동을 열심히 하십니다. 만날 때마다 눈물을 흘리시며 하느님 은총을 체험한 순간들을 이야기해주곤 하십니다. 언니랑 같이 있으면 하느님의 사랑이 진하게 느껴지고 흐뭇한 부러움이 생깁니다.
언니가 “어쩔 때는 하느님이 불공평하신 것 같아.”라고 말씀하신 적이 있습니다. 하느님을 잘 알지 못한다면 아무리 부자라도 소용없다며 당신의 넉넉지 못한 살림을 불만스러워하지 않았고 젊어서 혼자되신 것도 억울해하지 않던 언니였던지라, 놀라서 이유를 물었습니다.
언니가 보기에도 부러울 만큼 맑고 열성적인 신앙을 가진 자매가 있는데, 그 자매가 우연한 행운으로 재산을 엄청 불리게 되었답니다. 언니보다 신심이 덜한 것으로 보이는 사람들은 아무리 세속적으로 잘 되더라도 하느님을 깊이 만난 복만 못하다 생각하고 부러운 마음도 들지 않았는데, 언니만큼 신심이 훌륭해 보이는 자매가 하느님을 만난 복에 더하여 세속적인 부유함도 누리는 걸 보고는 그만 하느님이 불공평하신 것 같다고 생각하게 된 것이었습니다. 언니에게는 신앙이 최고 우선적 가치였고 언니만한 신심을 가진 사람은 드물었기에 누구를 부러워해본 적이 거의 없었는데, 우선적 가치인 신앙이 비슷한 상대와 당신을 비교해보고는 그만 부러운 마음이 들었나 봅니다.
70대이신 로사 어머님은 대학까지 나오셨는데, 50대까지는 열심히 성경봉사자 등으로 활동하시다가 60대 후반부터는 레지오도 빠지고 주일미사만 다니십니다. 제가 “한가한 시간이 많으니 가끔 평일미사라도 다니시지요.”하고 말씀드리자, 어머님은 “50년 신앙생활 하면서 성당활동 할 만큼 했어. 이제 좀 게으름 피워야지. 어차피 나처럼 열심히 했던 사람이나 주일미사만 겨우 다녔던 사람이나 다 똑같이 천국 가는데 늙어서까지 열심히 할 필요가 있어? 죽기 전에 회개해도 천국 간다는데..”라고 하셨습니다.
로사 어머님 말씀을 듣고 피식 웃음이 났습니다. 어머님은 하느님이 공평하지 않으신 것 같으니, 대신 당신 편에서 하느님께 대한 충성을 줄임으로써 덜 손해 보는 쪽을 택하신 것 같았습니다.
저도 안나 언니와 로사 어머님의 이야기를 듣고 살짝 고민해보았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두 분과 같은 의문을 갖고 계실 거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다가 제 나름대로 답을 생각해냈습니다. (신학적으로 맞는지는 모르겠습니다.)
‘하느님은 전능하시잖아. 이 세상 사람 한 사람도 똑같이 창조하지 않으신 분인데, 구원이라고 다 똑같은 방법으로 하실 리가 있어? 구원도 보상도 맞춤형이겠지. 다 똑같이 벌 받지도 않고, 다 똑같은 상을 받지도 않을 거야. 천국에서 모든 영혼은 각자의 그릇에 꽉 차게 복을 누리겠지만, 그 그릇에 담긴 행복의 빛깔들은 다를 수 있겠지. 천국에서 영혼 각자는 제 몫만큼 차고 넘치게 만족하기 때문에 다른 영혼들을 부러워하지 않겠지만, 하느님 편에서 보면 각 영혼이 누리는 것들이 다 다를 걸. 어떻게 다 다르냐구? 전능하신 하느님이시니까 그 방법은 전능하신 하느님만이 아실 테지. 우리 편에서 공평하실 것 같네, 공평하지 않으실 것 같네, 하고 계산할 필요 뭐 있어? 하느님의 구원사업은 한 사람 한 사람 다 따로 따로 맞춤형인 게 분명해. 우리의 눈물을 따로 따로 닦아주실 것이고, 우리들 각자에 맞는 최고의 보상을 해 주실 주실 테고, 우리에게 주실 수 있는 사랑의 깊이와 빛깔은 세상 모래알 수 보다 더 다양할 거야. 그것도 못하시면 전능하신 게 아니지. 구원의 방식도 어루만져주시는 손길도 창조하신 사람들 수만큼 많을 거야.’
하느님께서 각자가 누려야할 몫을 공평하게 나누시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면, 하느님께서는 정의로운 분이시라는 믿음을 갖고 있는지 점검해보아야 합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에게 최고의 사랑을 주시는 분이시니, 우리도 하느님께 최고의 사랑을 드릴 수 있도록 한 순간이라도 의심하여 게으름을 피워서는 안 되겠습니다.
“아빠 하느님, 저희가 전능하신 하느님을 상대로 의구심과 불만을 가진 적이 있다면 속상하셨더라도 너그럽게 살짝 눈감아주세요. 게으름을 피우거나 쓸 데 없는 의심으로 흔들릴 때, 부족하지만 하느님께 최고의 것을 드리려 애썼던 순간을 기억하시고 용서해주세요. 저희가 쓸 데 없는 말을 지껄일 때 마다 ‘나는 모든 순간 네가 그립단다.’하고 속삭여주시면 금방 알아듣고 정신 차릴 수 있을 것 같아요. 저희 믿음과 열정이 흔들리지 않게 언제나 꼭 붙잡아주시리라 믿어요. 하느님께서 저희에게 최고의 사랑을 주고 계시니, 저희도 게으름 피우지 않고 최고로 기쁘게 지내고 최고로 열심히 복음을 전해 볼게요. 응원해주세요. 아멘.”
2011년 1월 31일 엉터리 레지나 씀
“지각 있는 사람들이여 제 말을 들으십시오. 하느님께서는 결단코 악을 행하지 않으시고 전능하신 분께서는 불의를 저지르지 않으십니다. 그분께서는 사람에게 그 행실대로 되갚으시고 인간을 그 길에 따라 대하십니다. 참으로 전능하신 분께서는 올바른 것을 왜곡하지 않으십니다.”(욥 34,10-12)
“너희는 ‘주님의 길은 공평하지 않다.’고 말한다. 이스라엘 집안아, 나는 저마다 걸어온 길에 따라 너희를 심판하겠다.”(에제 33,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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