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 고백/레지나의 묵상글

'만만한 하느님'을 위한 회개

김레지나 2011. 5. 7. 23:09

‘만만한 하느님’을 위한 회개

                                              (진정한 회개는 하느님의 사랑을 깨달은 후에야 시작된다.)

 

* 가장 아름다웠던 시절 *

 

  누군가 제게 가장 아름다웠던 시절을 꼽아보라고 한다면, 단연 하느님의 현존을 느끼며 살던 암 투병 기간이었다고 대답할 것입니다. 하느님께서 베풀어주신 특별한 사랑에 맞갖게 살고 있지 못해서 그 시절의 이야기를 하는 것이 부끄럽지만, 잊지 않고 곰곰이 되새겨 보아야하고 전해야 할 은총사건이 꽤 많이 있습니다.

 

  저는 초등학교 2학년 때 첫영성체를 받은 후로 성당에 열심히 다니다가, 결혼 후 10년 동안은 바쁘다는 핑계로 거의 다니지 않았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암 진단을 받았고, 수술을 몇 주 남겨두고 하느님의 현존을 깊이 체험했습니다.

 

  암 진단을 받은 후 한동안은 꽤나 의연하고 밝은 모습으로 버티었는데, 대전의 동생 집에 맡겨 놓았던 어린 아들들이 눈물을 감추려고 애쓰는 모습을 본 후로, 그만 슬픔이 폭탄처럼 터져버렸습니다. 아이들과 헤어지고, 다음 진료를 위해 분당의 동생 집으로 오면서 평생 처음으로 맛보는 지독한 괴로움에 눈물만 죽죽 흘렸습니다.

 

  문득 하느님께 기도해야겠다는 생각이 스쳤습니다. 오래 냉담을 하다가 아프게 되어서야 하느님을 찾는 것이 자존심 상할 만큼 염치없게 느껴지기도 했지만 감당할 수 없는 슬픔과 괴로움을 하소연이라도 해야 숨 쉴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하지만 너무나 슬퍼서 이성으로는 단 한 마디로도 기도할 수 없었습니다. 대신 십여 년 만에 심령기도를 해보기로 했습니다. 동생네 큰방 침대에 누워서, 소리 내지 않고 입만 오물거리며 기도를 했습니다. ‘성령께서 필요한 기도를 하게 해 주신다더라’하는 기왕의 믿음만 있었지, 엄청난 슬픔 때문에 무엇을 청해야겠다는 생각조차 하지 못했습니다.

 

  갑자기 누워있는 제 몸이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달달달 떨리기 시작했습니다. 듣도 보도 못한 일이었습니다. 후우~하는 한숨과 함께 기도가 끝났나보다 하고 느끼자마자 세상을 다 얻은 것 같은 기쁨이 마음 가득 차올랐습니다. 이성으로는 설명이 불가능한, 급작스럽고 지극한 기쁨이었습니다. ‘아, 하느님께서 나를 이토록 사랑하시는구나.’하고 확실하게 깨닫게 되면서 티 없이 환한 행복감에 취해서 연신 헤죽헤죽 웃음이 났습니다. 세상에 존재할 거라고 상상한 적도 없는 황홀한 기쁨에 푹 잠겨서, 행여 제가 죽은 후에 남겨질 아이들도 하느님께서 어련히 챙겨주시랴 싶었고, 당장 죽어도 여한이 없으니 곧장 하느님 품에 안기면 오히려 좋겠다는 생각이 들 만큼 평화로운 행복을 느꼈습니다.

제 평생에 그 날 기도하기 전만큼 괴로운 적도 없었고, 기도한 후 만큼 기쁜 적도 없었습니다.

 

 

* 만만한 하느님 *

 

  그 후로 여러 달 동안,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사랑을 여러 가지 방법으로 알려주셨습니다. 가족과 친구들은 투병하는 저를 가엾이 여겼지만, 저는 행복에 들떠서 세상에 부러운 사람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냉담 기간 중에 심각한 잘못에 빠져있을 때도 있었는데, 그때의 기억마저 기분 좋게 회상할 수 있었습니다. 하느님께서 저를 사랑하신다는 확신 속에서, 엄마 품에 안긴 젖먹이처럼 아쉬울 것 없는 평화를 누렸습니다. 제 지난날의 잘못과 여전한 부족함에도 하느님께 죄송스런 마음이 들지 않았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제가 아무리 철부지 짓을 해도 변함없이 사랑해주실 게 분명했기에, 만만하기 짝이 없는 분이라 생각되었습니다. 당시에 제가 쓴 글을 읽은 지인들이 ‘하느님께 그렇게 버릇없이 굴어도 되는 거야?’하고 염려해줄 정도였습니다.

 

  어느 날, K언니가 ‘영성의 첫 단계는 하느님을 두려워하는 것’이라고 일러주셨습니다. 그 말을 듣고 살짝 고민이 되었습니다.

 ‘내가 기본도 없이 까불고만 있는 걸까? 두려움?, 경외심? 그게 다 뭐지? 에라, 난 모른다. 내가 암에 걸리  고 급하니까 그 단계를 건너뛰게 해주셨나보다. 만만한 하느님이 어려운 하느님보다 좋기만 한 걸.’

 

   

* 첫 번째 회개 *

 

  항암치료를 받던 중 어느 날 미사에 참례했을 때의 일입니다. 할머니 한 분이 휠체어에 앉아 계셨습니다. 그 할머니의 뒷모습이 돌아가신 시할머니와 똑같아서 무척 놀랐습니다.

 

  시할머니께서는 결혼을 한 번 하셨는데 아이를 못 낳는다는 이유로 이혼을 당하시고, 시할아버지께 개가하셨습니다. 큰아버지께서 아들을 늦게 얻으셨기에, 남편이 집안의 대를 이을 아들 대접을 받았다고 합니다. 할머니는 남편을 애틋하게 예뻐하셨다고 합니다. 저는 시어머님의 낳은 정 보다는 시할머니의 기른 정이 더 고마운 것이라고 늘 생각했었습니다.

 

  시할머니께서 치매와 노환으로 병원에 입원하셨을 때, 찾아가 용돈을 조금 드렸더니. “내가 안 쓰고 두었다가 오는 사람들한테 우리 손주가 준 거라고 자랑해야겠다”고 하시며 아이처럼 좋아하셨습니다. 할머니께서는 친자식이 아닌 큰아버님께 오랜 세월 신세를 졌다는 생각을 떨치지 못하셨는지 눈물을 보이며 말씀하셨습니다. “나 공밥 안 먹었다. 나 공밥 안 먹었다. 내가 어서 죽어야지.……” 할머니를 그날 뵌 것이 마지막이었습니다. 평소에 건강하셨기 때문에 더 오래 병원에 계실 줄 알았는데 예상보다 빨리 돌아가셨습니다.

 

  미사 중에 본 할머니가 휠체어에 앉아서라도 성체를 모시는 것이 정말로 보기 좋았고 부러웠습니다. ‘시할머니께서 돌아가시기 전에 대세라도 받으시게 할 걸, 할머니 앞에서 기도해 드릴 걸. 남편에게는 할머니가 최고였다고, 고맙다고, 더 잘 해드리지 못해서 죄송하다고, 꼭 좋은 곳에 가실 거라고 말씀드릴 걸.’하는 후회가 들었습니다.

 

  좋은 일 하고 사셨으니 천국에 가셨으리라고 믿고 있지만, 고통스러운 임종의 시간에 “나 공밥 안 먹었다. 그런데 이제 와서 나를 혼자 두느냐, 죽기가 두렵다.”라고 하셨을 것 같았습니다. 할머니 마음을 더 편하게 해드리지 못한 것이 너무나 죄송스러웠습니다. 제가 냉담 중이 아니었더라면 가까운 성당의 봉사자들에게 연락을 해서라도 마음의 평화를 갖고 임종을 준비하시도록 도왔을 것입니다.

 

  집에 돌아와서 저는 처음으로 천주교 신자로서 긴 기간 게으름을 피운 것을 눈물을 흘리며 통회했습니다. 저는 미사 빠진 것, 죄 지은 것도 하느님께서 용서 안하고는 못 배기시리라는 것을 잘 알고서 하느님께 배짱을 부리곤 했었습니다. 병에 걸리고 아쉬워져서야 하느님을 찾는 제 자신이 부끄럽긴 했지만 벌 받은 거라고 생각한 적은 없었습니다.

 

  그런데 그날은 제가 정말 잘못했다는 생각을 하면서 아프게 울었습니다. 저의 냉담이 하느님과의 관계를 가로막는 것은 아니었지만, 가톨릭 신자로서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지 못한 원인이 되어 신앙생활을 유지했더라면 도움이 되었을 많은 상황들을 지나쳐 버렸던 것입니다. 이웃에게 잘못한 것들이야말로 하느님께 잘못한 것들보다 더 가슴 아프게 후회할 일이었습니다.

 

   

* 두 번째 회개 *

 

  제가 냉담했던 것에 대해 통회한 후로 여러 달이 지나서의 일입니다.

정기검진으로 뼈사진을 찍기 전에 주사 맞고 4시간을 기다려야하는데, 그동안 병원 지하 성당에서 루이사 피카레타의 책을 읽었습니다. ‘성혈은 주님의 뜻이다.’라는 구절을 읽는 순간 '아, 그때 문 선생님이 나를 위해 기도해주실 때 보신 환시가 그 뜻이었구나.‘하는 생각이 들면서 눈물이 펑펑 쏟아졌습니다.

 

  문 선생님은 초임 학교의 동료선생님이셨습니다. 선생님은 세례 받으신 지 얼마 되지 않았었는데도 놀랄 만큼 천진하고 깊은 신심을 갖고 계셨습니다. 문 선생님과 저는 한 지붕 아래서 자취를 했는데, 선생님은 매일 저녁 저를 불러서 묵주기도를 한 시간씩 하자고 강권하셨고, 저는 마지못해 함께 기도했습니다. 제가 몸이 아주 약했기 때문에 힘이 들어서, 문 선생님이 ‘이만 하면 됐어. 자러 가.’라고 하실 때면 무척 반가워했던 기억이 납니다. 제가 제 방으로 온 후에도 선생님은 한 시간 이상 더 기도하셨습니다. 그분은 순진하고 곧은 성품 때문에 동료 선생님들로부터 무시당하기 일쑤였지만, 저는 그분을 참 좋아했습니다.

 

  문 선생님의 언니 한분은 수녀님이셨고 가족 모두가 신앙생활을 열심히 하였는데, 선생님 가족들이 자취방에 오셔서 저를 위해 기도해주신 적이 있습니다. 문 선생님이 기도 중에 보셨던 환시를 이야기해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 김 선생님 머리에 박힌 큰 못을 빼내주셨고, 성혈을 입에 부어주려고 하셨는데, 선생님이 절대 입을 벌리지 않고 버티는 거야.”

  저는 난생 처음으로 들어보는 거창한? 환시예언의 의미를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내 머리에 무슨 못이 박혀있었다고? 17년간 미사 한 번 빠진 적 없고, 하느님에 대한 믿음도 튼튼한 것 같고, 학교에서도 따뜻하게 아이들 돌보고 있다고 자부하고 있는데, 내 머리에 박힌 못이라니? 내가 무엇에 묶여있었기라도 했나? 예수님께서 내 입에 성혈을 부어주시려 하셨다는데, 성혈이 대체 무엇을 의미하지? 내가 왜 입을 안 벌렸을까? 하느님 잘 믿고 있는데,,,,, 좀 환하고 기분 좋은 환시라면 좋았겠는데....조금 겁나네...’

하고 생각했을 뿐이었습니다.

 

  그 후 17년이 지나서, “성혈은 하느님의 뜻이다.”라는 구절을 읽다가 그 환시의 기억이 통회의 화살이 되어 가슴에 꽂혔던 것입니다. 문 선생님이 제게 해주신 환시예언의 의미를 그제야 마음속 깊이 깨달았습니다.

 ‘아, 그렇구나. 성혈은 하느님의 뜻이구나. 하느님께서는 나를 통해 당신의 뜻을 펼치고 싶으셨구나. 그런데 나는 하느님의 뜻을 살피기는커녕 하느님께 아예 관심도 돌리지 않고 지냈구나. 하느님께 정말 잘못했다. 성혈을 부어주실 때 입을 벌리지 않은 정도가 아니라, 그렇게 오래도록 하느님 쪽을 향해 돌아서 있지도 않았으니,… 요즘 다른 사람들을 위해서 희생을 봉헌한답시고 은근히 기특해했었는데, 그게 아니다. 하느님의 마음을 아프게 했던 것에 대한 나 자신의 보속도 죽을 때까지 채우지 못할 것 같다. 앞으로 아무리 내가 많은 덕을 쌓는다 하더라도 우쭐댈 일은 아니겠구나. 하느님의 자비가 아니라면 하느님 마음 아프게 해드린 것을 갚을 길이 없구나.… 아, 하느님, 죄송합니다….’

하며 한참을 큰소리로 엉엉 울었습니다.

   

 

* 세 번째 회개 *

 

  제가 항암치료를 받던 당시, 저는 큰 고통 중에 계시는 어떤 신부님을 위해 마음을 다해 기도했습니다. 얼마나 급하고 간절했던지 여러 달 동안 그분을 위한 기도를 3분 이상 잊어본 적이 없었던 것 같습니다.

하루는 친정집 가족들이 놀러 와서 바닷가로 낚시를 하러 갔습니다. 저는 그분과 다른 몇 분을 생각하면 마음이 아파서 가족들과 즐겁게 어울리지 못했고, 혼자 차 안에서 조용히 기도했습니다. 묵주기도를 하다가 K선생님이 코팅해서 선물해주신 파티마의 기도문을 읽었습니다.

  "저의 하느님, 당신을 믿고 찬미하며 의지하고 사랑하나이다. 당신을 믿지 않고 사랑하지 않는 자들을 위 해 기도하오니 용서해주소서."

  "오, 지극히 거룩하신 성삼, 성부 성자 성령님, 마음 깊이 당신을 찬미하나이다. 세상 모든 감실 안에 계신 예수 그리스도의 지극히 보배로운 몸과 피와 영혼과 신성을 당신께 바치오니 예수님의 마음을 상해드린 불법과 모독과 무관심을 기워 갚기 위함이나이다. 예수 성심의 무한한 공로와 티 없으신 마리아의 성심을 통하여 삼가 청하오니 불쌍한 죄인들이 회개하게 하소서."

  나지막이 소리 내어 읽었는데, “당신을 믿지 않고 사랑하지 않는 자들을 위해 기도하오니 용서해주소서.…… 예수님의 마음을 상해드린 불법과 모독과 무관심을 기워 갚기 위함이나이다.”라는 부분에서 읽는 속도가 저절로 느려지더니, 단어 하나하나가 바다와 하늘 가득히 스며들어 퍼지는 듯했고 제 가슴에도 날아 들어왔습니다. 곧 울음이 터졌습니다.

 

  그 순간 제가 다른 사람들을 위해, 세상을 위해 기도하는 데 게을렀음을 통회했던 것입니다. 그 신부님이 억울한 고통 중에 계신 것도, 이 세상에 예수님의 마음을 상하게 하는 불법과 모독과 무관심이 판을 치는 것도, 제가 하느님의 자녀로서 제 몫을 다하지 못한 탓이라 여겨졌습니다. 이웃과 세상을 위한 기도를 소홀히 한 것이 하느님을 모르는 체한 것과 같다는 깨달음이 들었습니다. 한 사람 한 사람을 극진히 사랑하시는 하느님의 마음을 헤아려서 그들을 위해 기도했어야 했는데, 저는 신앙생활을 오래 하면서도 간절한 사랑을 담아 기도할 줄 몰랐던 것입니다.

 

   

* 비로소 하느님이 두려워지다. *

 

  하느님을 만만하게 여기고 철딱서니 없이 응석을 부리던 저는 그렇게 세 번의 통회를 하고서야 비로소 하느님을 두려워하게 되었고, 하느님을 경외하는 마음이 신앙의 첫걸음이라던 K 언니의 말씀에 진심으로 동의하게 되었습니다. 하느님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했던 것을 먼저 통회했으니, ‘하느님을 위한 회개’라 이름붙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저는 가까운 이들에게 최선을 다하지 못했다거나 하느님을 모르는 체하며 지냈다는 이유로 가슴 아프게 울게 되리라고는 꿈에도 생각한 적이 없었습니다. 그저 죽기 전에 십계명 어긴 것 빠뜨리지 않고 고해성사 볼 수 있기만 하면 더 바랄 것이 없겠다고 여기며 지냈습니다. 제가 상상할 수 있었던 회개의 목적은 주일 미사 빠진 것, 남을 미워한 것 등의 죄를 뉘우쳐서 심판 받을 때에 드러날 제 죄를 줄이는 것이었습니다. 이웃을 위해 최선을 다하지 못한 것, 더 많이 더 깊이 사랑하지 못한 것 등은 가슴아파하며 뉘우칠 일까지는 아니리라 생각했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모든 사람을 애타게 사랑하시기에 제가 그들을 위해 미약한 힘이나마 보태기를 바라십니다. 그런 하느님의 마음을 제대로 깨닫지 못해서 최선을 다하지 않았던 일들을 뉘우치는 것은 이기적이고 약은 저로서는 불가능한 일입니다. 분명 성령께서 제게 베푸신 은총입니다. 제가 ‘죄를 면하려는’ 의지보다는 ‘하느님의 사랑에 보답’하고 ‘하느님의 뜻에 일치된 삶을 살려는’ 의지를 바라게 되었으니,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모릅니다.

 

 

* 하느님의 사랑을 경외하는 마음 *

 

  제가 하느님을 경외하게 되었다지만, 여전히 하느님은 제게 만만한 분이십니다. 세 번의 회개를 하기 전의 만만함과는 조금 다르게, 하느님의 사랑을 더욱 깊이 깨닫고 경외하는 마음이 바탕이 된 만만함입니다. 제가 하느님을 어려워하지 않는 것은 하느님의 사랑을 철석같이 믿게 된 응석어린 기쁨이고, 하느님 사랑에 대한 경외심의 또 다른 표현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제가 당신을 만만하게 여긴다고 해서 노여워하지 않으실 테지만, 제가 인연을 맺고 지내는 이들을 만만하게 보거나, 시간과 기회를 낭비하여 제 인생을 만만하게 만든다면 무척 가슴 아파하실 것입니다. 부족하고 약점 많고 자주 넘어지는 저는 앞으로도 통회할 일을 잔뜩 하게 될 테지만, 하느님의 사랑에 대한 깨달음이 전제되는 통회이겠기에 그 눈물이 결코 쓰지만은 않으리라 생각합니다.

 

  과연 진정한 회개는 하느님의 사랑을 깨달은 후에야 비로소 시작될 수 있습니다. 저는 ‘만만한 하느님을 위한 회개’를 통해 하느님의 뜻을 살피며 살아야함을 알게 되었고, 미약하나마 하느님의 사랑에 보답할 궁리를 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하느님께서 베푸신 회개의 은총을 입어 힘줄이 생기고 살이 오르고 생명을 얻은 행복한 사람입니다.

 

“너희 마른 뼈들아. 주님의 말을 들어라. 주 하느님이 뼈들에게 이렇게 말한다. 나 이제 너희에게 숨을 불어넣어 너희가 살아나게 하겠다. 너희에게 힘줄을 놓고 살이 오르게 하며 너희를 살갗으로 씌운 다음, 너희에게 영을 넣어 주어 너희를 살게 하겠다. 그제야 너희는 내가 주님임을 알게 될 것이다.”(에제 37:5-6)

  

                                                2011년 5월 7일 엉터리 레지나 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