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 고백/레지나의 묵상글

하느님께 기회를 드리자

김레지나 2011. 2. 6. 20:52

  제 아들은 고등학교 입학을 앞두고 있는 예비 신학생입니다. 새로 이사 온 지 일 년이 되지 않은데다가 말수가 적고 붙임성이 없는 성격이라서 여느 본당과 다른 분위기에 적응하느라 힘들어합니다.

  얼마 전에 어떤 자매님으로부터 아들이 사제성소에 대한 확신이 없이 눈치를 보는 것 같다는 꾸지람을 들었습니다. 본당 신부님께서 작년 초에 예신 지망생들과 면담해서 사제성소에 대한 확신이 있느냐 없느냐를 기준으로 두 명 남기고 10명을 탈락시켰다는 소리를 늦게야 들었습니다. 아들의 경우는 전에 다니던 본당에서 예신에 다녔기 때문에 까다로운 면접 없이 받아들여진 것 같았습니다.

 

  저는 아들이 사제성소에 대한 확신을 100퍼센트 갖고 있지 않은 것이 오히려 은총이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어떤 사람이 어릴 적부터 흔들림 없이 사제가 되고 싶어 하다가 ‘자신의 꿈’을 이룬다면 참 좋은 일입니다.

 하느님께서 든든하게 밀어주십니다.

 어떤 사람이 신학교에 들어간 후에까지 자신의 성소에 대한 확신을 고민하다가 사제가 된다면 그 또한 참 좋은 일입니다.

 하느님께서 든든하게 밀어주십니다.

   두 경우 다 장단점이 있겠지만, 확신이 없다가 고민에 고민을 거듭한 끝에 돌고 돌아서 사제가 된 사람은 아마도 ‘하느님을 자랑할 거리’가 더 많을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흔들림 없이 확고한 뜻을 유지하다가 사제가 된다면 하느님의 섭리보다는 자신의 뜻을 자랑하고 싶어하게 될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치열하게 고민하다가 특별한 체험을 얻거나 우연 같은 도움으로 사제의 길을 걷게 된 사람은 자신의 의지 보다는 삶의 마디마디 섭리하시는 하느님의 손길을 쉽게 알아차릴 수 있을 것입니다. 이겨내기 힘들 것만 같은 고통을 겪게 될 때, ‘내가 원하고 내 뜻대로 얻은 삶’이 아니라 ‘하느님께서 원하시고 하느님의 뜻에 따르는 삶’임을 생생하게 체험했기 때문에, 비교적 상처를 덜 입을 수 있고 흔들리지 않고 견뎌낼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예전 본당에서 예비신학생 모임을 하던 가톨릭 대학교까지는 두 시간 가까이 걸렸습니다. 그래서 그 지역 예신생들을 모두 모여 관광버스를 빌려 타고 모임에 다녔습니다.

  제 아들이 처음으로 예신모임에 가는 날, 아들을 차에서 내려 주고 멀리 떨어져서 아들이 버스에 올라타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아들의 어리버리한 표정을 보고 있으려니 눈물이 펑펑 쏟아졌습니다. 그 즈음은 긍정적인 고통 중에 계신 두 분 신부님을 보고 아픈 마음으로 기도하고 있었고, 부정적인 어려움을 겪는 어떤 신부님의 모습을 안타깝게 지켜보던 때였습니다.

 ‘사제의 길이 뭐 좋은 길이라고... 아무 것도 모르는 아들에게 권했을까? 저 어수룩하고 여린 아이가 그 힘든 길을 어떻게 걸으라고..... 뭐 좋은 길이라고....’하는 생각이 들어서 울면서 기도했습니다.

 ‘하느님, 저는 예신생 모임에 보내는 것까지만 할랍니다. 앞으로는 신부님 될래?하고 묻지도 않을 거예요. 저한테 그렇게 험한 모습을 다 보여주셨으면서.... 훌륭한 사제가 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데.....하느님께서 아쉬우시면 저 빼고 혼자서 알아서 부르세요. 저한테 어떤 역할은 기대하지 마시구요. 저는 가슴 아파서 여기까지 밖에 못하겠습니다.’

 

  예신을 보내는 것 말고는 신부님 되라고 권하지도 않을 거라고 작정했었지만, 아들에게 제대로 된 신앙교육도 하 지 못하고 기도하는 모범도 보이지 못했다는 생각이 들자 저는 다시 마음이 약해져서 하느님께 한 번 더 기회를 드리기로 했습니다. 천주교계 고등학교로 보내기로 한 것입니다.

‘하느님, 제가 하느님께 기회를 한 번 더 드리는 겁니다. 제가 할 일은 진짜로 여기까지입니다. 필요하시면 아들을 당신께 확 끌어당겨 쓰시든지 하느님께서 알아서 하세요. 전능하신 하느님께서 학교에 교목신부님도 계시고 예신생 끼리 기숙사 한 방을 쓴다는데, 아들에게 성소에 대한 확신을 못 주신다면 바보지요. 그죠? 그래도 아들이 사제가 안 되겠다고 하면 하느님의 뜻이 아닌 거지요. 맞죠?’

 

  저는 아들이 아직은 사제성소에 대한 확신이 부족하지만. 장차 어떤 방법으로든 하느님을 인격적으로 만나는 은총을 입기를 바랍니다. 그래야 고통을 겪을 때, 자신이 하느님의 팔을 잡고 있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께서 자기 팔을 잡고 있음을 더 쉽게 알아차리고 힘을 낼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하여 ‘자신의 확신’ 보다는 ‘하느님의 부르심과 섭리’를 자랑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주님의 뜻을 이루소서. 그제야 저희는 주님께서 하느님이심을 알게 되리이다. 아멘.”

                                                                               2011년 2월 1일 엉터리 레지나 씀

 

“그는 다른 민족들과 임금들과 자손들에게 내 이름을 알리도록 내가 선택한 그릇이다. 나는 그가 내 이름을 위하여 얼마나 많은 고난을 받아야 하는지 그에게 보여 주겠다.”(사도 9,15-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