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거라. 나는 이제 양들을 이리 떼 가운데로 보내는 것처럼 너희를 보낸다. 돈주머니도, 여행 보따리도, 신발도 지니지 말고, 길에서 아무에게도 인사하지 마라.”(루카 10,3-4)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파견하시면서 하신 말씀입니다.
예전에는 이 말씀을 묵상하면서‘아무것도 지니지 말라.’는 요구가 요즘 사회에는 맞지 않다고 생각했었습니다.
지식이 많은 사람들 앞에서 복음을 전하려면 더 많이 배워야 하고, 글 잘 쓰는 사람들이 많은 세상에서 글을 발표하려면 뛰어난 글재주가 있어야 하고, 외모를 따지는 사람들 앞에서 강의라도 하려면 이왕이면 준수한 외모를 갖추면 좋을 테고, 물질 만능주의 세상에서 안락함을 추구하는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려면 제자들부터 궁핍은 면해야 할 텐데, 예수님은 불안하지도 않으신가? 아무것도 지니지 않은 채로 보내시다니. 이왕이면 능력을 갖추게 해주실 일이지.’하고 투덜댔습니다.
요즈음 저는 ‘아무 것도 지니지 말라.’는 예수님의 말씀을 새롭게 알아듣습니다. 제가 만약 하느님 이야기를 하기 전에 교리나 성경에 대한 지식이 풍부했다면 글을 쓸 때 주님께 딱 필요한 말씀을 찾게 도와주실 기회를 드리지 못했을 것이고, 그랬다면 주님의 도우심을 분명하게 알아차리지 못하고 제 능력으로 묵상하고 글 쓰는 줄 알고 지금보다 더 교만해졌을 것입니다. 또 영성적인 욕심은 예외라고 착각하고서 주님보다는 저 자신을 드러내려고 애썼을지도 모르는 일입니다.
제가 여전히 ‘지니지 않으려’하지 않고, 슬쩍 슬쩍 필요한 것을 챙기고 싶어하지만, 이젠 제가 ‘지니지 못한 것’들이 오히려 은총임을 어렴풋이나마 깨닫게 되어 주님께 감사드립니다.
예수님께서는‘길에서 아무에게도 인사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제 부족함을 너무나 잘 알고 있는 지인들의 시선으로 인한 부끄러움까지도 복음을 전하러 가는 길에서는 내려놓으라는 뜻이라고 묵상해보았습니다.
주님은 한 사람도 빠지지 않고 하느님의 나라를 사는 행복을 누리기 원하시기 때문에, 꽤나 절박한 심정으로 저의‘은총광고’를 통해 한 사람이라도 더 하느님 나라에 관심을 갖기를 바라실 것 같습니다. 그런데 만약 제가 주위의 평판이나 제 능력의 부족함 때문에 주저하면서 안전하게 튀지 않는 길만 고집한다면, 주님은 안타까워하실 것입니다.
다른 사람들의 눈치를 보거나 그들 눈에 비칠 제 부족함을 보면서 두려워하지 않고 오직 주님의 뜻만 신경 쓰면서 복음을 전하고 싶습니다. 아무리 막막하고 외롭더라도 ‘어떻게 하면 세상 사람들에게 주님을 더 잘 보이게 하나’궁리하기를 그치지 않겠습니다. 주님께서 겨자씨만큼 작은 제 바람과 노력을 응원해주시리라 믿고 감사드립니다.
“‘그분을 기억하지 않고, 더 이상 그분의 이름으로 말하지 않으리라.’ 작정하여도, 뼛속에 가두어 둔 주님 말씀이 심장 속에서 불처럼 타오르니, 제가 그것을 간직하기에 지쳐 더 이상 견뎌 내지 못하겠습니다." (예레미야 20,7-9)
2011년 1월 30일 엉터리 레지나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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