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 고백/레지나의 묵상글

누가 쓴 거야?

김레지나 2011. 1. 31. 10:37

  저는 글을 쓸 때 제 글솜씨가 별로인 것은 둘째 치고 제 글이 영성적으로 틀린 내용은 아닌지 자신 없을 때가 많습니다. 그래서 세 분께 먼저 검토를 부탁드리고 그분들로부터 무언의 묵인이라도 받아야 조금 용기가 생겨 발표하곤 합니다.

 

  며칠 전에 한 분이‘하느님께서는 우리의‘공’을 더해주시기 위해 ‘불편함’을 주신다.’라는 제 글을 받아보시고 “누가 쓴 거야?”라는 짤막한 답장을 주셨습니다. 웬만하면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으시던 분이 알쏭달쏭한 질문을 답장이라고 주셨으니, 어떻게 받아들여야할지 난감했습니다.

 ‘내가 쓴 글이 이미 다른 분의 묵상글에서 나온 주제였을까? 내가 쓴 글인지 퍼온 글인지 정말로 몰라서 물어보시나? 아니면 엉터리라고 생각되는 부분이 있었나?’별별 추측을 해보다가 무슨 뜻이냐고 메일로 여쭈어보았지만 답장을 받지 못했습니다.‘하여간 불친절하시다니까, 좀 자세히 지도해주시면 어디 덧나나?’하고 투덜대면서 ‘아무 말씀 없으시니 통과’라고 생각하고 그 글을 발표해버렸습니다.

  예전 같으면 검열관 중 가장 신경 쓰이는 그 분이 ‘합격’이라고 말씀해주지 않으시면 자신 없어서 글을 발표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번에는 나머지 두 분이 ‘통과’한 것만으로 그 글을 발표해버렸습니다.

 

 제가 그렇게 용감해진 데에는 두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첫 번째는 그 글 뒤에 붙인 성경구절을 찾는데 성령께서 도와주신 것이 분명하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그 글을 다 써놓고 마지막에 덧붙일 성경구절이 있으면 좋겠다 싶어서, 성경을 들고서 ‘하느님, 이번에도 딱 맞는 말씀을 찾게 해주세요.’하고 기도하고 펼쳤습니다. 처음 펼쳐진 페이지에 그 글에 딱 어울리는 말씀이 있었습니다. 성경을 한 번도 통독해보지 못한 엉터리신자이지만 성경 전체를 뒤져봐도 그 글 뒤에 붙일 성경구절로 그보다 더 적당한 말씀은 없을 거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제가 글을 쓰다가 성경책 펼치는 모습을 가족들이 보았기 때문에, 저는 호들갑스럽게 말했습니다. “얘, 금방 봤지? 엄마가 글 쓰다가 성경 펼치는 거 봤지? 바로 이 구절을 찾았거든. 이 글 읽어봐라. 얼마나 어울리는 말씀인지. 하느님은 매번 이런 식으로 나를 도와주신다니까. 놀랍지 않냐?”

 제가 논쟁을 하거나 글을 쓸 때에 꼭 필요한 말씀을 찾도록 도와주신 것은 그 때뿐이 아닙니다. 거의 매번 그렇게 도와주십니다. '하느님께 멱살 잡힌 바보‘라는 글을 비롯한 다른 글들에서 종종 성경구절이 인용되어 있는데, 대부분 그런 식으로 우연히 찾은 것입니다.

 두 번째 이유는 제가 많이 뻔뻔해져서 글 솜씨나 글 내용이 수준미달이어도 겁내지 않기로 작정했기 때문입니다. 제 졸글을 몇 군데 발표하기 시작한지 5년이 다 되어갑니다. 그간 저도 여러 사람들로부터 영문을 모를 정도로 핀잔을 들은 적이 많습니다. 메일로 제 글을 받은 친구들로부터 귀찮다는 소리도 여러 번 들었습니다. 글 내용이 수준미달이라는 평을 듣기도 했습니다.  저를 잘 알지 못하는 어떤 신부님이 화를 내면서 “자매님은 글 이해나 하고 쓰느냐? 내 글처럼 쉽게 써라.”고 말씀하신 적도 있었습니다. 좋다고 칭찬하던 사람들이라도 제 약점을 조금이라도 발견하면 질투어린 비난을 해댔습니다. 그런 반응들을 신경 쓰다보니, 성령께서 필요한 성경구절을 찾게 도와주신 것 같다거나, ‘두려워 말라’라는 말씀을 들었다거나 하는 영적인 체험들은 더구나 알릴 수가 없었습니다. 잘난 척한다고 생각하거나 이해하지 못하거나 이해하더라도 시큰둥한 반응을 보이는 경우를 많이 겪었고, 제 주제를 모르고 건방 떨다가 하느님께 한 방 얻어맞게 될 날이 앞당겨질 것 같아 겁나기도 했기 때문입니다. 아직도 저를 아는 사람들이 비웃으면 어쩌나 하는 걱정에 쥐구멍에라도 숨고 싶은 기분이 들 때가 많습니다.

 그럼에도 요즘 들어 부쩍 제 체험이나 묵상들을 횡설수설 나누게 된 데에는 제가 연고지가 아닌 곳으로 이사 온 덕이 큽니다. 직장도 바뀌고 본당도 바뀌어서 제 생활반경에 드는 사람들 중에는 제가 모 사이트에 글 올리는 사람이라는 걸 알고 있는 이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도 혹시 제 부족함을 알고 있는 이들이 제 글을 읽고 코웃음을 칠까봐 안전장치로 글 끝에는 꼭 ‘엉터리 레지나 씀’이라고 적습니다.^^ 제 생각과 글은 많은 부분 그럴 듯하게 포장되어 있겠지만, 실제 제 생활은 부족하고 한심해서 가끔씩 자제력을 잃고 화를 내거나 남에게 상처를 주는 일도 많기 때문에, ‘엉터리 레지나’라고 적어놓기라도 해야 주위 분들이 제 글을 읽게 되더라도 얼굴이 덜 화끈거릴 것 같습니다.

  제 주위 분들이 제 글을 읽고 ‘화도 잘 내고 별 볼일 없는 사람에게도 사랑을 일러주시는 하느님이시니 오히려 용기가 나지 뭐야.’라고 위안 받으시면 좋겠습니다. 저도 ‘케롤 위머’의 글에서 위안을 받습니다.

  “그리스도인이라고 말할 때는, 구원받은 자임을 외치는 것이 아니라, 한때는 죄인이었음을 속삭이는 것이다. 그래서 하느님을 선택했노라고. 교만한 마음으로 자랑하는 것이 아니라, 여전히 실수하는 자임을 고백하는 것이다. 그래서 하느님의 도우심이 필요했노라고...“

 

  하느님께서는 제게 해주신 것처럼 우리에게서 하느님의 나라를 위하고자 하는 겨자씨만한 원의(願意)라도 발견하시면, 친히 그 ‘바람’이 큰 나무를 이룰 수 있도록 여러 가지 방법으로 도와주십니다. 하느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신다는 기쁜 소식을 전하면서 성경을 모른다고, 인간적인 약점이 많다고 두려워한다면 등불을 등경 위에 두지 않고 함지 속에 넣어두는 어리석음을 범하는 것과 같을 것입니다.(마르코 4,21-25 참조)

 

  제가 스스로 은총을 많이 받았노라고 인정할 줄 알고 그 은총을 나눔으로써 하느님께 감사하지 않으면 이미 받은 은총마저 희미해지고 효력을 잃게 되겠지만, 부족한 재주로나마 주님을 위해 제가 받은 은총의 체험들을 나눈다면 더욱 풍성히 받게 될 것이라 믿습니다.(마르코 4,21-25 참조)

  제게 베풀어주신 주님의 은총을 내밀한 부분까지 소문내기로 마음먹는 데 5년간의 망설임이 필요했지만, 앞으로는 평판이나 제 부족함이나 무식함을 핑계로 기쁜 소식을 전하는 일에 주저하지 않으렵니다. 여전히 약점 많은 저를 섬세하게 보살펴 주시는 주님께 의지하여 더욱 담대한 마음으로 ‘은총광고’를 해야겠습니다.

 

                                                                                           2011년 1월 30일 엉터리 레지나 씀

 

( 잠깐, 이 글은 또 어떻게 쓰게 되었는지 궁금하시다구요?

 거의 대부분의 경우에서처럼 처음에는 제목 정도의 아주 짧은 몇 단어가 떠올랐습니다. 그래도 구체적으로 읽는 이들에게 무슨 득이 될까 감이 잡히지 않으면 글 쓸 엄두를 못 냅니다. ‘누가 쓴 거야?’라는 제목으로 글을 하나 써야겠다고만 막연히 생각하고 있던 차에 엄마가 우연히 어느 수도회 후원회 소식지에 실린 케롤 위머의 글을 보여주셨습니다. 그 글 내용을 주제로 쓰고 마지막에 그 글을 인용해야겠다고 마음먹었습니다. 글을 통해 부족한 주제에 글을 써대는 부끄러움도 덜고 저 자신이 여전히 실수투성이임을 고백하기로 했습니다. 독자들에게 제 부족함이 오히려 위안이 될 수도 있겠다 싶어서 일단 컴퓨터 앞에 앉아서 돌머리를 굴려가며 글쓰기를 시작합니다. 어? 어찌어찌 쓰다보니까 케롤 워머의 글로 전체 주제를 삼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글 마무리가 안되고 답답해지니까 말씀 주시라고 성경을 펼쳤습니다. 이번에는 지나치게 까불지 말라는 뜻에서 적당한 말씀을 알려주시지 않을 것 같습니다. 하느님께 혼나겠다 싶어 두려운 마음으로 성경을 펼쳤습니다. 이런 구절을 찾았습니다.

“우리는 또한 끊임없이 하느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우리가 전하는 하느님의 말씀을 들을 때, 여러분이 그것을 사람의 말로 받아들이지 않고 사실 그대로 하느님의 말씀으로 받아들였기 때문입니다. 그 말씀이 신자 여러분 안에서 활동하고 있습니다.(1테살 2,13)

 무슨 결론을 내려야할지 명확한 감이 잡히지 않다가, “말씀이 우리들 안에서 활동하고 있다”는 구절을 읽으니, 아하! 주제를 담대하게 복음을 전하자는 쪽으로 잡는 게 좋겠다 싶습니다.

 다행히 최근 일주일간의 복음말씀이 어울리겠다는 힌트가 반짝입니다. 매일미사책을 뒤져서 생각을 정리해 보고 써내려갑니다. 메일을 보내 동생에게 초안을 보내 자문을 구했더니, 동생이 몇 군데 의견을 줍니다. 또 ‘반짝’생각나서 두어군데 첨삭합니다.

 이쯤 되면 ‘누가 쓴 거야?’라고 질문을 받으면 ‘저 혼자 쓴 건데요.’라고 자신 있게 대답하지 못하겠지요? ㅎㅎㅎ

 여러분도 능력 없다고 걱정하지 마시고 담대하게 복음을 선포하세요.^^*

 아쉬운 사람이 우물 판다고, 사랑이 많아서 급한 분은 주님이시니까 여러분을 안 도와주시고는 못 배기실 거예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