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암 투병기간 중에 하느님을 만났습니다. 하느님으로부터 사랑을 받고 있다는 기쁨이 어찌나 컸는지, 한동안은 죽는 것조차 두렵지 않았습니다. 동생에게 저처럼만 된다는 보장이 있다면 암환자 코스를 추천하고 싶다고 권하기까지 할 정도로 제가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인 줄 알았습니다.
‘하느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신다’는 놀라운 사실을 알리고 싶어서 항암치료 중에 인터넷 환우카페에 일기를 써서 올렸습니다. 하느님 이야기만 하면 지루하다고 안 읽을까봐 적당히 코믹한 내용도 섞고 엄살을 피우기도 했습니다. 신앙이 없는 사람들에게 어필해야했기 때문에 하느님 이야기를 노골적으로 하지는 못하고 글 사이사이에 살짝 끼워 넣으려 애썼습니다.
글재주도 없는 데다가 타자도 느려서 운동할 시간도 없이 컴퓨터 앞에서 낑낑대야 했습니다. 글을 써서 공개하면서 마음속에는 저항이 심하게 일었습니다. 솔직하기는 하지만 유려하지 못한 글인 탓도 있었겠지만, 그런 이유 때문일 거라고 짐작하기에는 제 마음이 불편한 정도가 지나쳤습니다. 환우들이 많이 읽어보고 하느님께 관심을 두면 좋겠다는 마음 하나로 고생스럽게 글을 썼지만 시큰둥한 반응을 보이거나 하느님 이야기만 쏙 빼고 읽거나 빗나간 반응을 보이는 환우들이 있어서 더욱 괴로웠습니다.
일기를 써서 올리는 일을 그만 두는 게 낫겠다 싶을 만큼 다른 사람들의 반응에 상처를 받은 어느 날 하느님께 여쭈어보았습니다.
“하느님, 힘드네요. 다들 ‘네 건강이나 신경 써라’하고 비웃는 것 같기도 하구요. 글이 쉽게 써지는 것도 아니구요. 제가 나쁜 이야기하는 것도 아닌데 왜 이렇게 힘들까요? 제가 너무 소심한가요? 이쯤에서 그만 쓰고 싶어요. 웬만한 이야기는 다 한 것 같기도 하구요.”
그렇게 하느님께 종알대면서 소파에서 뒹굴거리고 있었는데, 마침 틀어 놓았던 차동엽 신부님의 복음묵상 테잎에서 말씀 하나가 제 마음 속으로 뛰어들어 왔습니다.
“두려워 말라.”
그 순간의 강렬함을 설명할 길이 없지만 굳이 표현한다면 ‘두려워 말라’는 말씀이 제 온 몸의 세포 하나하나를 강하게 때려 떨리게 한 것 같았습니다. ‘귀’로만이 아니라 ‘온 몸으로’ 말씀을 들은 것이라고 생각되었습니다.
‘아, 하느님’하고 울음이 터져서 소파 위에 엎드려 20분도 넘게 울었습니다.
그 후 제 마음 속에 일어난 '이치에 맞지 않게 심한 불편함'이 '하느님께서 제게 주신 선물'임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마음이 힘든 것이 어떻게 하느님의 선물이 되느냐구요?
제가 글재주가 뛰어나서 제 글을 자랑스럽게 생각했거나, 글을 읽는 사람들로부터 칭찬 받는 것이 즐거웠다면 제 만족을 위하는 마음이 하느님을 위하는 마음속에 섞여들었을 것입니다.
하느님께서 제 마음을 힘들게 하여 저를 시험하신 것은 아니었습니다. 하느님께서 직접 당신께 대한 사랑을 제게 불어넣어주셨기 때문에, 굳이 저를 시험하지 않으셔도 제 사랑을 보실 수 있으셨습니다. 아무리 설명해도 이해받지 못할 만큼 마음의 불편함이 심했기 때문에, 불편함이 제가 소심해서라든가 하는 원인의 결과라고 생각할 수도 없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글을 쓰는 제 수고가 오롯이 하느님의 영광만을 위하게 하고, 하늘에 쌓일 제 ‘공’을 가장 순수하게 닦아 더하게 하시려고 일부러 제 마음을 힘들게 하셨던 것입니다. 그러다가 때가 되니 ‘두려워 말라.’는 말씀으로 위로해주셨습니다.
제 '불편함'은 하느님께서 제 '공'을 더해주시기 위해 특별히 배려한 '선물'이었습니다. 하느님의 섬세한 사랑은 놀랍기만 합니다.
“두려워하지들 마라. 똑바로 서서 오늘 주님께서 너희를 위하여 이루실 구원을 보아라.”(탈출 14,13)
2011년 1월 20일 엉터리 레지나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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