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론 말씀 (가나다순)/송봉모 신부님

[스크랩] 책 <광야에 선 인간>- 맺는 말

김레지나 2011. 1. 12. 23:38

맺는 말

 

종교의 역설이라는 말이 있다.

나에게 부활을 주어야 할 하느님이 부활을 주기보다는 십자가를 줄 때,

그리하여 내가 믿던 하느님에게 버림을 받은 듯 절망에 시달리고 삶이 고통스러워질 때, 그나마 나를 부지해 주는 가장 단단한 밧줄은 그 하느님밖에 없다는 것, 그것이 바로 종교의 역설이다.

 

하느님께서 우리를 자유인으로 만들겠다고 불러내서는 우리 삶에 광야를 허락하시고 십자가를 허락하신 것, 그것이 종교의 역설이다.

 

지금까지 우리는

첫째, 광야는 우리 최종 목적지로 가는 한 과정이요,

우선 순위를 보게 하는 장소라는 것,

영원한 바람소리를 내는 광야는 반드시 거쳐야 할 필연적인 과정이라는 것을 보았다.

이 과정은 단순히 공간적. 시간적인 과정이 아니다.

그거으 존재 자체가 변화를 겪는 과정이다.

야곱의 후손이 하느님 백성, 이스라엘로 새롭게 태어나고,

우리가 하느님의 사람, 자유인으로 새롭게 태어나는 과정이다.

이 과정을 거치면서 우리는 한때 안주했던 과거 세계,

옛 인습과 옛 자아의 세계를 부숴버리게 된다.

노예살이를 하는 동안 우리 몸에 붙어 있던 과거 이집트의 잔재들을 떼어내고,

하느님을 향한 새로운 삶의 양식과 인생관을 갖게 된다.

 

둘째, 거대하게 펼쳐진 광야, 가도가도 끝이 없어 보이는 광야길은 생의 우선순위를 보게 하는 자리임을 보았다.

아득한 지평선을 보면서 숨이 막힐 때,

앞길을 막고 있는 거대한 바위산 앞에서 두 다리의 힘이 빠져 나감을 느낄 때

우리는 우리 생의 가장 중요한 분이 누구인지를 깨닫게 된다.

생의 조건이 철저히 결여된 고통스런 광야에서 무엇이 가장 중요한지를 깨닫게 된다.

광야는 하느님을 우리 생의 우선순위로 선택하게 만드는 장소이다.

 

셋째, 광야는  두 얼굴을 보여주는 장소라는 것을 보았다.

광야는 한편에서는 고통과 아픔의 얼굴을 보여주고,

다른 한편에서는 하느님 돌보심의 얼굴을 보여주는 장소이다.

도저히 살아갈 수 없을 만큼 절망적인 상황에서 우리가 그나마 살아갈 수 있는 것은

다 하느님 돌보심 때문이다.

하느님을 모르는 이들은 목숨이 질겨서 살아간다는 말을 하지만

그것은 철저히 하느님 돌보심 때문이다.

 

넷째, 두 얼굴을 보이는 광야에서 우리가 고통의 얼굴만을 바라보면 하느님께 반항하게 되지만 돌보심의 얼굴을 바라보면 인내와 힘을 얻게 된다.

 

다섯째, 우리가 광야에서 고통의 얼굴만을 바라보면 유혹을 받게 되어 끝내 파멸하게 되지만 돌보심의 얼굴을 보면 시험을 통하여 하느님의 사람으로 단련되고 정화된다.

그러니 광야가 참으로 받아들이기 힘들다 하더라도 받아 안아야 할 것이다.

 

끝으로 우리 각자가 대면하고 있는 광야를 성공적으로 헤쳐 나가 해방에 이르기 위해서 도움이 될 수 있는 세 가지를 말씀드리겠다.

 

(1) 광야에 서 있는 사람은 자신이 신앙의 학교에 들어와 있다는 자각을 가져야 한다.

야곱의 후손들이 광야에서 자기들의 정체성을 깨달으면서 하느님의 백성으로 양성되는 교육을 받았듯이 우리도 광야에서 우리 자신의 정체성을 깨닫고 하느님의 자녀가 되기 위한 양성교육을 받는다.

광야에서 겪게 되는 수많은 고통과 시련 그리고 많은 아픔과 눈물은 마치 어린아이가 학교에서 국어. 산수. 자연 등을 배우는 것과 유사하다.

광야가 주는 고통과 시련은 한 인간이 자기 발로 서기 위한, 그리고 하늘과 진리를 섬기기 위한 교육 과정이다.

 

(2) 광야는 신앙의 학교이다.

이 신앙의 학교에서 우리는 순종하여야 한다.

마치 선생님의 말씀을 잘 듣는 학생처럼 하느님의 가르침에 순종하여야 한다.

나에게 좋은 것만을 베풀어 주시는 하느님이심을 굳게 믿으면서 인내하여야 한다.

나를 양성시키시는 하느님께 모든 것을 내어 맡기고 순종하고 인내해야 한다.

 

(3) 그래도 견디기 어려울 때는 어떻게 할 것인가?

하느님은 결코 우리가 견딜 수 없는 시련을 겪도록 내버려 두는 분이 아니심을 믿어야 한다.

그분은 우리가 견딜 만큼만 시련을 허락하신다.

우리가 겪는 광야의 시련이 초대교회의 순교 성인들의 시련만큼 모질다고 생각지는 말자.

광야의 시련 앞에서 우리는 성서 인물 유딧처럼 고백할 수 있어야 한다.

 

"우리는 하느님께 감사를 드려야 됩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 조상들을 시험하셨듯이 지금 우리를 시험하고 계십니다.

하지만 하느님께서는.... 그들의 충성심을 단련하기 위하여

불과 같은 시련을 준 것만큼 혹독하게 우리를 다루지는 않으십니다."

(유딧 8,25-26)

 

 

 

출처 : 퍼렁별나라공쥬님의 블로그
글쓴이 : 찬미예수님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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