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야는 유혹의 장소
하느님 편에서 볼 때 광야는 인간을 단련시키는 시험의 장소이지만
어둠의 세력 편에서 볼 때는 유혹의 장소이다.
광야가 인간을 유혹하는 장소라는 점은 예수의 광야 40일 체험에서 잘 알수 있다.
예수께서는 광야에서 세 차례 사탄의 유혹을 받으셨다.
예수께서 받은 유혹은 야곱의 후손이 광야에서 받은 유혹처럼
세속 도시문화의 유혹이다.
바야흐로 복음운동을 시작 하기 전 예수께서는 어떤 정책을 갖고 그 운동을 펼칠 것인가 분별하기 위하여 광야로 가셨다.
예수께서 고민하고 분별하는 중에 어두의 세력이 끼여들어 유혹한다.
사탄은 인간이 본능적으로 갖고 있는 세 가지 욕망으로 유혹한다.
인간이 본능적으로 갖고 있는 욕망이란
첫째, 내 지붕, 내 울타리를 갖는 것 (부)
둘째, 하고 싶은 대로 하는 것 (명예)
셋째, 사람들이 나만을 쳐다보는 것 (권세) 내가 중심인물이 되는 것이다.
곧 부와 명예와 권세이다.
내 지붕, 내 울타리를 갖는 것은 내 소유물을 늘리려는 욕망이요,
내 하고 싶은 대로 한다는 것은 말 그대로여서 더 설명할 필요가 없다.
인간은 높은 자리에 앉으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범위가 넓어진다.
사람들이 나만을 쳐다보는 것, 곧 내가 중심인물이 된다는 것은
권세를 누리고 싶어하는 욕망이다.
주님은 광야에서 어둠의 세력이 유혹하는 이 세상의 부와 명예, 권세에 의존해서 복음 운동을 하기보다는 하느님 뜻에다 우선순위를 두면서 복음운동을 하기로 마음먹는다.
내 지붕 갖기를 포기하고 머리 둘 곳도 없는 빈손의 나그네가 되어 살기로 결심한다.
내 하고픈 대로 하기보다는 하느님이 원하시는 대로,
하느님 뜻에 따라 살기로 결심한다.
또 나만을 사람들이 우러러보도록 행위하기보다는 하느님만이 당신 복음운동의 중심이 되도록 결심한다.
한마디로 얘기하면 하느님 아버지 뜻에 따라 맨손으로 뛰겠다는 것이다.
우리가 광야에서 받는 유혹도 주님께서 받은 유혹과 비슷하다.
크게 세 가지 범주를 벗어나지 않는다.
빵을 움켜쥘 것인가, 아니면 하느님 말씀을 품을 것인가?
내 하고픈 대로 살 것인가, 아니면 하느님 원의에 따라 살 것인가?
내가 중심이 되어 살 것인가, 아니면 하느님께 중심자리를 내어드릴 것인가?
우리가 전자를 택한다면 유혹에 넘어간 것이다.
광야인 이 세상을 살면서 우리는 위의 세 가지 범주의 유혹들을 수도 없이 받는다.
그렇다면 어떻게 그 유혹들을 물리칠 것인가?
그 대답은 주님께서 몸소 가르쳐 주신다.
주님께서는 자기 수양이나 자기 극기로써가 아니라 하느님 말씀에 의지해서 그 유혹들을 극복하였다.
"사람은 빵으로만 살지 못하리라." (신명 8,3)
"너희 하느님이신 주님께 엎드려 절하고 오직 그분만을 섬겨라." (신명 6,11)
"너희 하느님이신 주님을 떠보지 말라." (신명 6,16)
우리도 광야에서 유혹 받을 때 성서 말씀에 의지하여 유혹들을 분별해 내고 극복하여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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