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편 23의 주석학적. 인간학적 이해
야훼는 나의 목자 (2)
목자와 양, 상호간의 깊은 인식은 양떼들편에서도 이루어진다.
양들도 목자를 잘 알고 있기에 목자가 아닌 도둑이나 삯꾼을 따라 나서지 않는다.
예수께서 이 점에 대해서도 분명히 말씀하신다. "양들은 목자의 음성을 알아듣는다"
(요한 10,16)
얼마나 양들이 목자의 음성을 잘 알아듣는지를 보여주는 흥미로운 예화가 있다.
성서 공부를 위해 팔레스티나에서 머물고 있던 한 신부가 양치기들의 삶과 양떼들의 생태를 알기 위해 한동안 그들과 함께 살았다.
어느날 갑작스런 기상변화로 심한 폭풍우가 몰아쳐서
양들을 동굴로 피신시켜야 했다.
그런데 그 부근에는 동굴이 하나밖에 없어서
두 무리의 양떼가 한 동굴 안에 피신하게 되었다.
비가 그치기를 기다리며 동굴 안에 있던 그 신부는 한 가지 의문이 생겼다.
비가 그치고 떠날 때 어떻게 이 많은 양떼들이 서로 섞이지 않고
자기들 목자를 따라갈까 하는 것이었다.
양들 엉덩이에 소유주를 표시하는 도장이 찍혀 있는 것도,
목걸이가 있는 것도 아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이 신부의 의문은 너무나도 간단하게 풀려버렸다.
폭풍우가 그치자 양치기 한 사람이 먼저 일어나 나가면서 노래를 불렀다.
그러자 한 무리의 양떼들만 일어나서 그 목자를 따라가고,
다른 양떼들은 그대로 동굴에 남아 있는 것이었다.
이어 두 번째 양치기가 노래를 부르면서 나가니 나머지 양떼들이 일어나
그 목자를 따르는 것이었다.
그 모습을 감탄하며 바라보던 신부는 양치기에게 그 노래를 가르쳐 달라고 했다.
자기도 그들처럼 해보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노래를 다 배운 그 신부는 양치기더러 숨어 있으라고 한 다음
그 노래를 부르면서 앞장서서 걸어가기 시작했다.
어느 정도 간 뒤 양떼들이 따라오는지 보려고 뒤를 돌아보니 놀랍게도
한 마리 양도 따라오지 않는 것이었다.
양들이 목자의 음성을 듣고 따라오는 것이지
멜로디를 알아듣고 따라오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었다.
목자와 양의 유비(類比) 안에서 목자는 주님을 가리키고 양은 우리를 가리킨다.
양들이 목자의 음성을 알아듣듯이 우리도 주님의 음성을 알아들어야 한다.
그런데 실제로 우리는 주님의 음성을 듣고 그분을 따라 살아가는 것 같지는 않다.
주님의 음성이 아닌 다른 음성을 듣고 따라 살아가는 경우가 더 많다.
그렇다면 주님께서 하신 "내 양들은 목자의 음성을 알아듣는다"는 말씀은
단지 주님의 바람에 불과한 것인가? 아니다.
이 점도 양들의 속성을 통해서 쉽게 설명할 수있다.
켈러(Phillip W. Keller)에 의하면 양보다 더 우둔하고 완고한 짐승은 없다고 한다.
(켈러는 동아프리카의 목자의 아들로 태어나 유년시절을 보내고, 8년간 양을 치다가 훗날 사목자가 된 사람으로 양의 생태에 대해서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다)
좀 과장해서 얘기하자면 양들은 바른 길만 빼고는 어떤 길이든지 가는 완고한 짐승이고,
길을 잃어버릴 줄은 알아도 집을 찾아서 돌아올 줄은 모르는 우매한 짐승이다.
이 완고함과 우둔함은 사실 우리 인간에게서 흔히 발견되는 모습이다.
다음 이야기는 양들이 목자의 음성을 알아듣기는 하지만
경우에 따라서는 전혀 목자의 음성을 따르지 않는
완고하고 우매한 동물임을 보여준다.
어느날 번개와 벼락이 쳐 깻묵을 보관하고 있던 헛간에 불이 붙었다.
양떼들이 깻묵 타는 고소한 냄새를 맡고 달려와 빨갛게 불타고 있는
깻묵더미 앞으로 자꾸만 가려고 하였다.
이를 본 목자는 급히 달려가 양떼들을 불구덩이에서 떼어놓기 위하여
작대기를 휘둘러 댔다.
한 무리를 떼어 놓으면 다른 무리가 불을 향해서 달려들고,
이러는 가운데 다행히 불길이 잡혀 양떼들은 살긴 살았지만
뜨거운 불기운 때문에 얼마나 기진했던지 몇 주일을 빌빌대었다.
그런데 그 목자 말로는 똑같은 일이 다시 일어난다 해도
양들은 똑같은 짓을 다시 할 것이란다.
도대체 무엇이 문제이길래 양들은 불에 타 죽는 것도 모르고 불길을 향해 돌진하는가?
도대체 무엇 때문에 목자의 음성을 그토록 잘 알아듣는 양들이 목자가 작대기를 휘두르는데도 개의치 않는가? 깻묵 때문이다.
완고하고 우매한 양들은 고소한 깻묵 냄새만 맡을 줄 알았지 자기들을 태워버릴 뜨거운 불길은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양이 우리 인간을 유비하는 존재라면 깻묵은 우리가 집착하는 현세적 욕심을 유비한다.
그러니 우리가 착한 목자이신 주님의 음성을 알아듣지 못하는 것은,
아니 알아듣기를 거부하는 것은 현세적 욕심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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