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용서는 우리 자신을 위한 길
1. 용서하지 않으면 안 되는 첫째 이유는
용서는 우리 자신을 위한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종종 "도저히 용서할 수가 없다."
"용서해야 된다는 것은 알고 있지만 용서할 마음이 생기지 않는다."
라는 말을 하고 또 듣는다.
용서하기가 얼마나 힘들면 이러겠는가?
설사 나에게 상처를 준 그 사람이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행실을 고친다 해도
마음이 그 용서를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다.
더군다나 상대가 조금도 뉘우치는 마음이 없을 때는
용서하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가도 재빨리 사라진다.
용서의 하느님을 믿는 사람으로서 신앙의 요구 앞에서 용서하고 싶지만
실제로 우리 마음 안에 쌓여가는 것은 화. 분노. 적개심뿐이다.
하지만 용서는 우리 자신을 위한 것이다.
용서는 상대방이 뉘우쳤기 때문에 하는 것이 아니다.
도저히 용서할 수 없는 분노. 화. 적개심 때문에 용서하는 것이다.
부정적인 감정들이 가득차게 되면 무엇보다도 우리 몸이 견디지를 못한다.
열이 나고, 가슴이 답답해지고, 심장이 아프고, 소화가 안 되고, 잠을 이룰 수 없고,
안절부절 못하고...
가슴에 가득찬 적개심. 분노. 화는 우리의 몸과 영혼을 죽이는 독소들이다.
이러한 독소들이 밖으로 나가지 못하고 우리 안에 차곡차곡 쌓여가는데
어찌 견딜 수 있겠는가? 화병이란 무엇인가?
정신의학에서 말하는 화병, 울화병은
화날 일이 전혀 없는 상황에서도 가슴에 화가 부글부글 끓고
신체에 이상이 생기는 병이다.
남대문에서 뺨 맞고 한강에서 화풀이한다고,
우리가 가슴에 쌓인 분노를 올바른 방법으로 풀어내지 못하면
엉뚱한 곳에다 화를 내게 된다.
설거지하다가 애꿎은 그릇을 내던진다거나, 강아지를 발길로 찬다든가,
내게 상처를 준 사람이나 사건을 머리에 떠올린 순간 화가 나서 욕을 해대는 것 등이다.
우스갯소리 같지만 오래 살기 위해서라도 용서를 하여야 한다.
화를 많이 내면 심장에 좋지 않으며 생명을 단축할 수도 있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하버드 대학의 미틀만 박사의 연구에 따르면
화를 자주 내는 사람들이 그렇지 않은 사람들에
비해 심장마비를 일으킬 위험이 두 배나 높다고 한다.
또 듀크 대학의 레드퍼드 윌리엄스 박사는
100여 명의 변호사를 택하여 화와 생명단축과의 관계를 조사했는데
그에 따르면 학창시절 화를 잘 낸 변호사들은 비교적 화를 안 낸 변화들과 비교해서
50대의 사망률이 무려 다섯 배나 높았다고 한다.
내가 상처받은 것도 억울한데 화병에 걸려서 심장마비로 쓰러지고, 암에 걸리고,
그래서 일찍 죽는다면 얼마나 억울한 일인가?
이 세상에 상처를 받지 않고 사는 사람이 어디에 있는가?
그런데 나만 화병에 걸려 일찍 죽는다면 그처럼 딱한 일이 어디 있겠는가?
우리를 아프게 하고 상처를 준 이들 중 많은 이들이 자신의 잘못을 기억하지 못한다.
용서를 청해야 한다는 사실조차 모른 채 살아가는 경우가 허다하다.
세상을 뜬 경우도 있다.
이렇게 되면 아무리 세월이 흘러도 상대는 우리에게 용서를 청할 수 없다.
상대가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니라 해도 용서를 해야 하는 이유는
용서란 우리 자신을 위한 것이기에 그러하다.
우리의 정신건강을 위해서 꼭 필요하기 때문이다.
2. 용서를 해야 하는 두 번째 이유는,
다른 이들에게 피곤한 사람으로 찍히지 않기 위해서이다.
함께 지내기 가장 어려운 사람은 늘 불평불만에 차 있는 사람이다.
부정적 감정이나 생각만큼 전염성이 강한 것은 없다.
한 사람의 마음이 우울하면 그 옆에 있는 사람의 마음도 어두워진다.
늘 화를 내는 사람 옆에서 살아가는 이들은 화를 먹으면서 살아가는 셈이다.
만일 당신이 불행했던 지난 날을 붙들고 살면서 이웃을 탓하고, 가족을 원망하고,
늘상 분노에 차 산다면 처음에는 당신의 아픔을 진심으로 헤아려 주고 힘이 되어주고자 왔던 사람들마저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더 멀어져 갈 것이다.
만일 당신이 입만 열면 원망과 증오에 찬 말을 내뱉는다면 그 말을 듣는 사람은
짜증이 날 것이며 나중엔 당신을 될 수 있으면 피하려 할 것이다.
단순히 피하는 것이 아니라 당신의 분노와 적개심이 주는 전염병이 무서워 피할 것이다.
그렇게 되면 당신의 상처는 아물기는 커녕 더 심해질 것이다.
내게 잘못한 이를 용서하지 못하고 미워하면 미워하는 그만큼 증오심이 쌓여가게 된다.
용서를 하지 않겠다는 것은 내 마음 안에 증오심을 굳히겠다는 것이다.
이렇게 굳어진 증오심은 파괴적인 행위를 유발시킨다.
우리가 용서하지 않으면 상처난 마음을 아물게 하기보다는
그 상처를 키우면서 살아가게 된다.
마치 꽃에다 물을 주듯이 상처에다 미움이라는 물을 주고 있는 셈이 되는 것이다.
과거에 받은 상처로 인해서 화를 끓이면서 그 위에다 매일같이 증오심의 물을 주면서
내게 상처준 그사람이 내 마음속을 다 차지하게 만드는 것이다.
('꽃에다 물을 주듯이 상처에다 미움의 물을 준다'는 표현은 심라학자이며 사제인 채준호 신부의 표현이다.)
내 인생의 귀한 시간을 그 미운 사람이 다 차지하고 있는 것이다.
미움은 악순환이다.
그러면서 나는 벗들이나 가족들에게
피곤한 사람, 늘 불만에 차 있고 까다로운 사람으로 낙인찍힌다.
영성학자들은, 미워하는 마음을 갖는 것은
곧 마귀에게 자기 마음을 내주는 것이라 한다.
일단 누군가를 미워하고 증오하게 되면
그 다음부터는 마귀가 그를 움직인다는 것이다.
'마귀의 운동장'에서 놀지 않으려면
다른 이들에게 피곤한 존재가 되지 않으려면,
미움이라는 악순환에서 뛰쳐나오는 수밖에 없다.
상대방이 뉘우치기를 기다리면서 '마귀의 운동장'에서 헤멜 것이 아니라
그 운동장을 뛰쳐나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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