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론 말씀 (가나다순)/송봉모 신부님

[스크랩] <상처와 용서> - 머리말

김레지나 2011. 1. 12. 23:20

<상처와 용서>

 

머리말

 

왜 어려운 상황에 있을 때 친밀한 관계가 악화되는가?

참으로 짧고 귀한 인생길을 걸어가면서 서로가 서로에게 도움이 되는 관계,

위로가 되는 관계를 우리는 얼마나 원하고 있는가.

그러나 삶이 어려워지고 그 어느 때보다도 위로가 절실히 필요할 때

서로가 서로에게 힘이 되기보다는 서로 미워하고 짐이 되고

때로는 관계가 단절로까지 악화되는 것은 무슨 이유 때문일까?

놀랍게도 부부 사이가 악화되는 것은 그들의 가정이 어려움을 겪고 있을 때인 경우가 많다.

사업에 실패하고 파산하여 경제적 어려움을 겪고 있는 부부나,

자식을 교통사고로 잃고 아파하는 부부들이 이혼하는 경우가 드물지 않다.

가장 위로가 필요한 순간에 서로가 서로에게 위로가 되기보다는 상처를 주다가

파경에 이르게 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어느 컬림니스트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첫째 이렇게 큰 불행을 당한 마당에 이혼을 주저할 이유가 어디 있겠는가 하는

파괴적인 심정에서,

둘째 그 동안 부부간에 갈등을 겪으면서 살아오던 중 큰 불행을 당하자

그 불행을 상대방의 탓으로 돌리고 계속해서 상대를 원망함으로써.

 

왜 모든 일이 잘되어 갈 때에도 친밀한 관계가 악화되는가?

 

삶이 어려워질 때 관계가 소원해지는 것은 이해가 되지만,

모든 일이 잘 되어 나가는 행복한 상황에서 관계가 악화되는 것은 무슨 까닭일까?

예를 들어 자기를 아껴주고 이해해 주는 상대방을 만나 행복한 나날을 보내면서도

평화를 잃어버리고 상대방과 충돌하는 경우가 있다.

지난날 누군가에게 버림받은 체험이 있는 사람은

지금의 상대방으로부터도 버림받지 않을까, 자기가 상대방에게 부족하지는 않을까,

자신도 모르게 불안해하고 염려할 수 있다.

이렇게 불안해하고 염려하다 보면 마음의 평화는 깨어지고

별것 아닌 것 갖고도 상대방이 나를 더이상 사랑하지 않는다고 의심하고 다투게 된다.

이것은 치유되지 않은 상처의 파괴력이다.

과거의 응어리진 상처, 치유되지 않은 상처는 언제든 기회가 되면

마음의 표면위로 떠올라 행복한 오늘의 기쁨을 앗아갈 수 있다.

 

우리가 살면서 상처를 주지도 받지도 않을 수 있다면 좋겠지만

그러한 세상은 없다.

그러니 적어도 내 편에서 다른 이에게 상처를 덜 주고,

다른 이로부터 상처를 덜 받을 수 있는 길이 있다면

그러한 길을 부단히 개척해야 할 것이다.

특별히 치유되지 않은 지난날의 상처가

오늘날을 살아가는 나의 삶에 파괴적 영향을 주지 않도록

상처에 대한 정성어린 돌봄이 있어야겠다.

또 치유하시는 주님께 도움을 청해야 할 것이다.

예수께서는 병자를 고쳐주신 다음 네 병이 나았다는 말을 하는 대신

네가 구원되었다는 말을 자주 하셨다.

이 점에서 구원은 곧 치유의 과정이다.

그럼 구원받은 인간이 되기 위해서 '상처와 용서'에 대해 생각해 보기로 하자.

 

출처 : 퍼렁별나라공쥬님의 블로그
글쓴이 : 찬미예수님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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