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가는 말 - 언제나 하느님을 향해
생각을 심으면 행동을 낳는다.
행동을 심으면 습관을 낳는다.
습관을 심으면 성격을 낳는다.
성격을 심으면 운명을 낳는다.
- 영국 저술가 새뮤얼 스마일스
지금까지 우리는 세상 한복판에서 주님과 함께하는 것이 무엇인지,
또 실제로 그렇게 살아가는 방법을 살펴보았다.
예를 들어 '활동 중의 관상', '활동과 관상의 통합',
'모든 일에서 하느님을 보고 하느님 안에서 모든 일을 보고'와 같은 것이다.
이렇게 여러 가지 표현을 사용한 이유는 할 수 있는 한 이 책의 메시지가 머리속에 명확히 들어와 우리 것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였다.
이 같은 바람으로 덧붙여 설명하고 싶다.
세상 한복판에서 주님과 함께한다는 것은 바오로 사도가 표현한 것처럼
끊임없이 기도하는 것이니,
바오로 사도는 테살로니카 신자들에게
"끊임없이 기도하십시오"라고 권고하고 있다.(1테살 5,17).
그렇게 권고할 수 있었던 것은 그 자신이 그렇게 끊임없이 기도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바오로 사도는 언행일치의 사람이다.
자기는 하지 않으면서 남에게 권고하는 그런 위선적인 사람이 아니다.
그렇다면 바오로 사도는 어떻게 쉬지 않고 기도할 수 있었는가?
그것은 그가 무슨 일을 하든지
주님을 위해서, 주님과 함께, 주님 사랑으로 했다는 것이다.
나침반의 바늘은 언제나 북극을 가리킨다.
손가락으로 나침반의 바늘을 다른 곳으로 돌려도 손가락을 떼는 즉시
바늘은 북극을 향한다.
바오로 사도가 끊임없이 기도했다는 것은 그가 영적인 나침반을 갖고 살았다는 뜻이다.
그는 천막 만드는 생업에 종사하는 동시에 복음을 전하기 위해 동분서주하면서도 영적 북극을 향한 시선을 절대 흩뜨리지 않았던 것이다.
우리도 끊임없이 영적 북극을 향해 있어야 한다.
자녀들을 돌보면서도 마음의 눈은 늘 하느님을 향해 있어야 하고,
과중한 업무에 몰두하면서도 마음의 눈은 늘 하느님을 향해 있어야 하고,
복잡한 길을 운전하면서도 마음의 눈은 늘 하느님을 향해야 한다.
냄새나는 화장실을 청소하면서도 마음의 눈은 늘 하느님을 향해 있어야 하고,
결론도 없는 회의에 긴 시간 참석하면서도 마음의 눈은 하느님을 향해 있어야 한다.
아는 것에서 할 수 있는 것으로 이끌어 주는 것은 오직 한 가지 실천뿐이다.
진정 활동 중의 관상을 살기를 바란다면 그 지향을 가슴에 품고 간절히 키우면서
필요한 원리들을 훈련해야 한다.
그런데 한 번의 훈련으로는 성공하지 못한다.
말했다고 해서
모두 듣는 것은 아니다.
들었다고 해서
모두 이해하는 것은 아니다.
이해했다고 해서
모두 동의하는 것은 아니다.
동의했다고 해서
모두 활용하는 것은 아니다.
한 번 활용했다고 해서
모두 '습관'이 되는 것은 아니다.
습관은 우연히 생기지 않는다.
습관은 반복 훈련을 통해 생긴다.
피아노를 잘 치고 싶다면 매일 몇 시간씩 연습을 해야 하고,
춤을 잘 추고 싶다면 매일 몇 시간씩 춤 연습을 해야 하듯이,
세상 한복판에서 주님과 함께하고 싶다면 매일같이 필요한 훈련을 반복해야 한다.
주님과 함께 하는 연습이 처음에는 쉽지 않을 것이다.
엄청난 인내와 수고가 요구된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그 연습은 점점 쉬워질 것이다.
앞에서 언급했듯이 프랭크 루박은 로렌스 수사의 책을 읽고 나서 그분처럼 하느님 현존 안에서 살기로 작정했지만 처음부터 쉬웠던 것은 아니다.
그는 이렇게 고백한다.
"나는 마치 물살을 거꾸로 헤엄쳐 가기 위해 노를 젓는 사람과 같았다.
나는 끊임없이 하느님께 귀를 기울였고, 쉬지 않고 다른 사람들을 위해 기도했으며,
사람들의 외모보다는 그들의 영혼을 보려고 했다.
그런데 노를 잡고 있는 손에서 힘을 빼면 그 순간 표류하고 아래로 흘러내려갔다.
'내버려두어라. 하느님께서 알아서 해 주신다.'는 말은 내 경험에 비추어 볼 때 맞는 말이 아니었다. 나는 하느님을 굳게 붙잡기 위해 투쟁해야만 했다. 쉬지 않고 노를 저으면서 영적인 근육을 발달시켜야만 했다."
그렇다. 어린아이가 일어서기를 배울 때
처음에는 간신히 일어서서 몇 초를 버티지 못하고 넘어진다.
그렇지만 다시 일어선다.
그렇게 반복할수록 조금씩 서 있는 시간이 길어진다.
세상 한복판에서 주님과 함께 살고자 하는 우리의 훈련도 거듭하다보면 잘 될 것이다.
프랭크 루박은 1년 동안 부단히 활동과 관상을 통합하려고 애쓴 후 놀라운 체험을 하게 되었다. 평화와 기쁨 그리고 생명의 에너지를 자기 안에서 경험하게 되었다.
한마디로 천국의 삶을 살게 되었다.
이제 이 책을 마무리하려 한다.
우리는 부엌에서 수고했던 마르타와 함께 시작했다.
그러니 마무리 역시 부엌에서 수고하는 이들의 이야기로 끝내는 것이 좋겠다.
미국 캘리포니아에 가면 '인앤아웃(In N Out)'이란 식당이 있다.
맥도날드나 버거킹과 같이 햄버거를 파는 식당이다.
인앤아웃 식당은 어떤 식당을 가든 항시 사람들이 줄을 서서 기다려야 할 만큼 인기가 좋다.
값이 비교적 싸고, 종업원들이 친절하며, 맛이 있기 때문이다.
맛이 있는 것은 사용하는 재료가 하나같이 신선하기 때문이다.
이 식당에는 마이크로웨이브 오븐이나 냉동실이 없다.
냉동이나 가공된 재료를 사용하지 않고 매일같이 공급되는 신선한 재료만 사용한다.
그런데 인앤아웃 식당의 진짜 특별함은 쉽게 드러나지 않는다.
이 식당에서 제공되는 종이컵 밑바닥을 보면 작은 글씨로 '요한 3,16'이라고 쓰여 있다.
그 내용은 우리가 잘 아는 "하느님께서 세상을 너무나 사랑하신 나머지 외아들을 내주시어, 그를 믿는 사람은 누구나 멸망하지 않고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셨다."이다.
많은 사람들이 우연히 컵 밑에 쓰인 '요한 3,16'을 보고 의아해한다.
성경을 모르는 사람들은 전혀 감을 잡지 못하고 성경을 아는 사람이라도 왜 컵 밑에
'요한 3,16'이라고 썼을까 머리를 갸우뚱한다.
그런데도 식당 어디에도 이 점에 대해 설명해 주는 곳이 없다.
많은 사업장을 가면 커다란 현수막에 '우리 회사 또는 우리 가게의 사명'이라고 제목을 정한 다음 멋진 내용이 적혀 있는데, 이 식당에는 그런 것이 없다.
왜 눈에 띄지 않는 곳, 컵 밑에다 그것도 깨알 같은 글씨로 '요한 3,16'이라고 쓴 것일까?
그것은 세상 한복판에서 주님과 함께하는 훈련을 하기 위해서다.
수학자요 철학자인 파스칼이 하느님께 대한 은총의 체험을 잊지 않으려고 그 내용을 적어 심장 가까이 품고 다니면서 자주 만졌듯이 이 가게 주인도 타종교인들에게 거부가을 주지 않으면서 그들이 어떤 지향으로 이 일을 하고 있는지를 잊지 않기 위해서이다.
바쁘게 움직이며 일해야 되는 식당 안에서 마음만큼은 고요하게 주님과 일치하기 위해서이다.
인앤아웃은 독실한 신자 가족이 운영하는 체인점이다.
처음 이 식당을 차릴 때 그들은 주님 안에서, 주님과 함께, 주님께 대한 사랑으로 식당을 운영하기로 목표를 정했다.
친절한 서비스와 함께 가장 신선하고 질 좋은 재료로 음식을 만들어 세상살이에 지친 영혼들을 섬기겠다는 목표인 것이다.
인앤아웃 식당의 운영 목표는 세상 한복판에서 주님과 함께 한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잘 보여주고 있다.
그런데 쓸데없는 잔소리겠지만 꼭 식당이 아니더라도 인앤아웃이 갖고 있는 거룩한 지향은 우리 각자가 처한 삶의 자리 어디에서든지 그대로 적용할 수 있을 것이다.
- 終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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