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목요일 주님의 만찬 미사(2010년 4월 1일) 강론
“해방, 생명, 사랑의 성체성사”
오늘 우리는 ‘성체성사’가 제정된 주님의 고별 만찬을 기념하는 ‘주님의 만찬 미사’를 거행하고 있습니다.
성체성사의 의미를 살펴보기로 합니다.
성체성사의 의미를 잘 이해하기 위해서 우리는 오늘 1독서로 봉독된 탈출기의 파스카 예식에 대해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구약은 신약의 쎔플이요 예표라고 자주 말씀 드렸습니다. 탈출기의 파스카 예식은 예수님의 파스카를, 십자가상의 파스카를, 주님의 고별 만찬석의 파스카에 대한 쎔플이요 예표입니다.
하느님께서는 모세를 통해 이스라엘 백성을 에집트에서 해방시키실 때 에집트에 내리실 마지막 재앙, 곧 맏아들과 맏배 동물들을 죽이는 재앙을 면케 하시고 파라오 병사들의 추격을 피해 약속의 땅에 무사히 다다를 수 있도록 두 가지 대단히 중요한 파스카의 소재를 지정해 주셨는데 그것이 바로 ‘누룩 없는 빵’과 ‘어린 양(염소)의 피’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어린 양의 피를 문설주와 상인방에 발라 죽음의 사자를 집에 들어오지 않고 지나가게 하여 목숨을 건졌으며, 누룩 없는 빵을 먹으며 야음을 타 탈출하여 마침내 홍해를 건너 자유를 얻게 되었습니다(민족적 파스카). 결국 하느님의 섭리로 ‘누룩 없는 빵’과 ‘어린 양(염소)의 피’가 이스라엘 백성의 에집트에서의 탈출에 대단히 중요한 역할을 하였습니다. 그것은 신약의 예수님의 살과 피에 대한 쎔플이요 예표였습니다.
또한 이스라엘 백성이 홍해를 건너 시나이산 아래서 십계명을 놓고 짐승의 피를 받아 반은 제단에 반은 회중에 뿌리며 계약(이 계약을 ‘구약’이라 한다)을 맺었는데, 그것은 짐승의 피로 맺어진 계약으로서 이스라엘 백성이 충실히 지키지 못해 파기된 한정적인 계약이었다. 그래도 이 계약의 피는 신약에 예수님의 피로 하느님과 새 이스라엘 백성인 그리스도인들 사이에 새롭게 그리고 영원히 파기될 수 없는 새 계약(신약)의 피에 대한 쎔플이요 예표였습니다.
요컨대 구약의 이스라엘 백성의 에집트에서의 탈출 때의 파스카 소재인 ‘누룩 없는 빵’과 ‘어린 양의 피’, 그리고 시나이산에서의 계약의 피는 신약의 예수님의 몸과 피의 예표였습니다.
그런데 구약의 그 예표들이 이스라엘의 에집트로부터의 민족적 해방에 연결되어 있다면, 그 예표의 성취인 신약의 예수님의 몸과 피는 죄와 죽음에서의 해방, 곧 영적인 해방을 위한 것입니다.
과연 우리는 예수님의 몸과 피 없이 죄와 죽음에서 해방될 수 없습니다. 죄의 사슬에서 풀려나 영원한 생명을 얻을 수 없습니다. 곧 하느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습니다. 주님께서는 우리를 죄와 죽음에서 해방시키기 위해 친히 제사장이 되어 십자가를 제단으로 하여 당신의 몸과 피를 제물로 속죄의 희생제사를 하느님께 바치셨습니다. 이것을 ‘십자가상 파스카’라 합니다.(* 파스카: ‘옮아감’ → 죄와 죽음에서 해방되어 하느님의 나라로 옮아감)
주님께서는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시기 전 날 밤에 제자들과 고별 만찬을 드시면서, 우리 인류를 죄와 죽음의 사슬로부터 해방시키실 당신의 십자가의 희생제사를 지속화, 영속화시키고자 유혈의 혐오적인 제사법이 아닌 ‘빵’과 ‘포도주’로 이루어진 ‘식사형태의 제사법’을 제정하셨으니 그것이 ‘성체성사’입니다. 그러니까 성체성사는 십자가상 희생제사를 영속화시키어 세상 끝날까지 믿음을 지닌 모든 이들이 구원의 은총을 얻게 하시고자 예수님께서 친히 제정하신 ‘식사형태의 파스카제’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과 고별식 만찬에서 빵을 드시고 하느님 아버지께 감사의 기도를 드리신 다음 당신 제자들에게 주시며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너희는 모두 이것을 받아먹어라. 이는 너희를 위하여 내어줄 내 몸이다.”
저녁을 드신 다음 잔을 들고 하느님 아버지께 감사의 기도를 드리신 다음 축복하시어 당신 제자들에게 주시며 말씀하셨습니다.
“너희는 모두 이것을 받아먹어라. 이는 새롭고 영원한 계약을 맺는 내 피의 잔이니 너희와 모든 이를 위하여 흘릴 피다.”
이렇게 하심으로써 빵은 처음으로 주님의 몸으로, 포도주는 처음으로 주님의 피로 축성된 것입니다. 말하자면 최초의 성체성사, 최초의 미사가 거행된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명령하시기를 당신을 기억하며, 곧 당신의 죽음과 부활을 기념하며 이 예를 행하기를 언제까지나 하라고 하셨습니다. 오늘 우리가 알고 있듯이 이 명령과 함께 무엇보다도 성체성사를 거행할 직분으로 사제직을 세우시어 제자들에게 맡기셨습니다. 주님의 제자들인 사도들, 그리고 그 후계자들인 주교들과 그 협력자들인 사제들은 주님의 명령에 따라 2000년 동안 위 형태로 성체성사를 거행해 왔으며, 교회는 그 명령에 따라 거행하는 성체성사가 빵과 포도주의 성변화와 함께 주님의 십자가상 속죄의 희생제사의 현재화를 완전히 유효하게 실현한다는 것을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요한복음 6,53-57에서 주님께서는 성체성사와 관련하여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사람은 영원한 생명을 누릴 것이며 내가 마지막 날에 그를 살릴 것이다. 내 살은 참된 양식이며 내 피는 참된 음료이기 때문이다.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사람은 내 안에서 살고 나도 그 안에서 산다. 살아계신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셨고 내가 아버지의 힘으로 사는 것과 같이 나를 먹는 사람도 나의 힘으로 살 것이다."
이 말씀대로 우리는 성체성사에 참여하여 빵과 포도주의 형상을 지닌 주님의 몸과 피를 참 생명의 양식으로 받아먹고 마십니다. 우리는 영성체로 주님과 지상 최고의 친교를 이루며 자신 안에 주님을 모시고 주님과 하나 되어 주님의 힘으로 살아갑니다. 그래서 성체성사는 지상 최대의 은총이며 최고의 성사입니다. 바로 오늘이 그 성사가 제정된 날입니다. 사실 우리는 성령의 힘으로 성사 전례를 통하여 예수님의 구원사건에 시공을 초월하여 참여합니다. 따라서 우리는 오늘 밤 주님의 만찬 미사를 통하여 제자들과 함께 최후의 만찬석에 참여하고 있는 것입니다. 바꾸어 말하면 지금 이 자리가 곧 주님의 최후의 만찬석인 것입니다. 과거에 이런 일이 있었더라가 아니라 지금 여기에 벌어지는 현실이게 하는 성사의 위대한 능력을 우리는 믿고 있습니다. 그 엄청난 은총과 함께 그 은총을 받아들이는 믿음을 주신 하느님께 감사와 찬미를 드립시다!
우리는 또한 앞서 말했듯이, 오늘 주님의 피를 마시며 주님의 피로 하느님과 우리 사이에 맺어진 ‘새롭고 영원한’ 계약을 기념합니다. 우리는 나약하여 그 계약에서 일시적으로 이탈하여도 주 예수님께서 우리를 대표하여 그 계약을 효성과 사랑으로 목숨 바쳐 지키고 계시기에 예수님의 피로 맺어진 계약은 새롭고 영원히 유효한 계약입니다. 우리가 고해성사를 통해 그 계약으로 돌아가면 그 살아있는 계약에 담긴 은총을 다시 받게 됩니다(그렇다고 고해성사 받으면 된다며 마음대로 계약이탈을 하는 우를 범해서는 안 되겠지요). 우리는 새 계약의 백성답게 예수님을 따라 하느님과의 사랑의 계약에 충실해야 합니다. 그럴 때 하느님께서는 당신 생명을 더욱 풍성히 베푸시며 영원한 생명과 함께 하느님의 나라를 더욱 영광되이 차지하게 해 주실 것입니다.
우리는 오늘 밤 영적 해방(파스카)의 성사요 생명과 구원의 성사이며 새롭고 영원한 계약의 성사인 성체성사의 제정을 기념하여 드리는 주님 만찬 미사에서 감사에 찬 마음과 더욱 큰 열성으로 성체성사에 참여할 것을 다짐해야 하겠습니다.
한편 오늘 밤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이 또 하나 있는데, 그것은 이 강론 후에 있게 될 ‘세족례’와 관련된 것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스승이요 주님이신 예수님께서 제자들의 발을 씻어 주십니다. 발씻김은 섬김과 봉사의 모범입니다. 성체성사는 한 마디로 섬김과 봉사, 곧 사랑의 성사임을 강조하신 모습입니다.
전례 용어에 ‘Rex credendi’, ‘Rex orandi’, ‘Rex vivendi’라는 말이 있습니다. 믿는 것을 전례로 거행하고, 그 거행한 바를 삶으로 실현해야 한다는 말입니다(Rex vivendi). 우리가 거행하는 성체성사는 그 본질상 우리가 성체성사의 정신을 삶으로 실천하도록 촉구합니다. 사실 나눔과 섬김과 봉사, 곧 사랑의 실천 없이 식탁에만 모이는 것은 성체성사를 몰이해한 것이며, 엄밀히 말해서 성체성사를 모독하는 것입니다.
이제 주님을 본받아 우리의 삶 속에서 성체성사를 구현하겠다는 다짐으로 주님께서 제자들과의 고별 만찬에서 하셨던 대로 세족례를 시작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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