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론 말씀 (가나다순)/전삼용 신부님

말씀은 해석하는 것이 아니라 믿는 것입니다.

김레지나 2010. 3. 25. 22:45

◆ 요셉 신부님의 매일 복음 묵상 ◆ 
 
 
 

사순 4주간 목요일 - 말씀은 해석하는 것이 아니라 믿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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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서의 귀감이라 하면 역시 고정원씨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연쇄살인범 유영철의 손에 어머니와 아내, 그리고 4대 독자까지 잃고도 유영철을 용서하고 그를 양야들로 삼고 그의 두 자녀들까지 키우고 싶다는 뜻을 전하기도 했습니다.

물론 그의 용서가 한 번에 이루어 진 것은 아닙니다. 자신의 가해자가 사형을 당해봐야 자신에겐 아무런 위로도 되지 않는 다는 것을 깨달았고 또 용서를 해야 자신이 살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고 가장 큰 것은 하느님께 대한 믿음이 생겼기 때문에 조금씩 조금씩 용서해 가는 것입니다.

그러나 용서보다 더 힘든 것은, 유영철 자신도 용서를 받아주지 않을뿐더러 그를 이해하지 못하는 주위의 따가운 시선입니다. 특별히 같은 아픔을 겪고 있는 사람들은 그를 거의 정신병자 취급을 하였습니다. 종교에 속았거나 다른 이유가 있어서 그런다는 것입니다. 그의 남은 두 딸마저도 아버지에게 오바하지 말라며 홀로 남은 아버지를 멀리할 지경입니다. 딸들에게 더 다가가기 위해서는 용서하지 말아야하는데 그는 이미 용서를 알아버렸기에 그렇게도 할 수 없는 처지입니다.

그는 이번에 사형 합헌 결정이 나고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번 판결은 또 한 번 저를 죽이는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용서를 통해 한평생을 몸의 한 부분처럼 지녀온 생각조차 사랑으로 변화될 수 있음을 체험했습니다. 그런데 우리 사회는 무엇이 두려워 새로운 희망으로 나아가는 걸 꺼리는 걸까요.”

꺼리는 것이 아니라 믿기를 원치 않는 것입니다. 성경도 예수님도 용서도 믿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믿기를 원치 않는 것입니다. 아이러니 하지만 많은 사람들은 미워하는 것이 힘든 줄 알면서도 용서하기를 원치 않습니다. 그러나 이미 용서한 사람이 미움의 굴레에서 나오기를 원치 않는 모습을 볼 때는 그보다 마음 아픈 일은 또 없는 것입니다.

 

구약엔 신약이 숨겨져 있다고 합니다. 실제로 예수님은 엠마우스로 가는 제자들에게 모세와 예언서들을 설명해 주시며 메시아가 어떻게 죽어서 3일 만에 되살아나야 한다는 것을 설명해 주셨습니다. 이 말씀은 이미 구약에 당신에 관한 내용이 담겨있다는 것을 말해줍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도 세 번씩이나 당신의 죽음과 부활에 대해 예고를 해 주셨습니다. 그러나 제자들조차 이것을 믿으려하지 않았습니다. 베드로 사도가 한 말처럼 “그런 일은 있어서는 안 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베드로는 그 덕에 예수님으로부터 ‘사탄’이란 말을 듣게 됩니다.

 

자칫 잘못된 성경공부는 교만만 키울 수 있습니다. 성경박사들보다 공부도 못한 성인들이 성경을 더 잘 이해하셨습니다. 그 이유는 그 안에 성령님이 충만하여 볼 수 있는 믿음의 눈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오늘 예수님은 학자들이라고 하는 사람들에게 이렇게 질타하십니다.

“나를 보내신 아버지께서도 나를 위하여 증언해 주셨다. 너희는 그분의 목소리를 들은 적이 한 번도 없고, 그분의 모습을 본 적도 없다. 너희는 또 그분의 말씀이 너희 안에 머무르게 하지 않는다. 그분께서 보내신 이를 너희가 믿지 않기 때문이다. ... 자기들끼리 영광을 주고받으면서 한 분이신 하느님에게서 받는 영광은 추구하지 않으니, 너희가 어떻게 믿을 수 있겠느냐? ... 너희가 모세를 믿었더라면 나를 믿었을 것이다. 그가 나에 관하여 성경에 기록하였기 때문이다. 그런데 너희가 그의 글을 믿지 않는다면 나의 말을 어떻게 믿겠느냐?”

 

믿음은 체험하게 합니다. 그저 공부만 해서 많이 안다고 말씀을 체험한 것은 아닙니다. 체험되지 않는 연구는 꿀을 맛보지 않고 그것에 대해 연구만 하는 것과 같습니다. 먼저 믿음으로 말씀을 믿고 살아야 체험할 수 있습니다.

비디오테이프의 필름을 빼서 눈으로 어떤 것들이 있는지 아무리 들여다보아도 볼 수 없습니다. 그러나 비디오 플레이어에 넣으면 영상을 볼 수 있습니다. 성경은 바로 이 비디오테이프와 같고 믿음은 바로 비디오 플레이어와 같습니다. 믿지 않으면 아무 것도 보이지 않습니다.

 

오늘 예수님의 심정을 생각하며 고정원씨도 용서를 못하고 있는 사람들을 보며 같은 심정이지 않을까 생각해 보았습니다. 물론 그렇게 살기 싫어서 믿으려 하지 않는다면 영원히 그 맛을 볼 수 없을 것이지만, 용서도 믿고 해 본 사람만이 그 진정한 의미를 아는 것처럼 예수님의 말씀도 먼저 믿고 실천해 본 사람만이 그 가치를 깨달을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