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론 말씀 (가나다순)/전삼용 신부님

기적은 긴 여정의 출발일 수도

김레지나 2010. 3. 25. 22:43

◆ 요셉 신부님의 매일 복음 묵상 ◆ 
 
 
 

사순 4주간 월요일 - 기적은 긴 여정의 출발일수도

 


 

 

시대의 살인마 유영철씨에게 어머님과 아내와 아들을 처참하게 살해당했던 고정원씨가 있습니다.

그가 우연치 않게 찾아간 곳이 바로 성당이었습니다. 그리고 한 신자 분을 알아 그의 권유로 세례를 받고 결국 유영철을 용서하기까지 이르렀습니다.

한강에서 몇 번이나 떨어져 자살을 하려고 하기도 하고 아파트에서도 끊임없이 떨어지고 싶었는데 그 사람을 용서하고 나니까 다시 살고 싶은 마음이 생겼다고 합니다. 미워할 때는 그리 죽고 싶더니 용서하니까 자신도 모르게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용서를 하였고 살아야겠다고 결심했지만 그의 마음이 편해진 것은 아니었습니다. 같은 일을 당한 사람들로부터의 따가운 시선이 있었고 더 그 분을 괴롭혔던 것은 먼저 시집을 갔던 두 딸이 아버지의 마음을 이해해주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나머지 남은 가족에게서까지 멀어져야 하는 아픔이 있었던 것입니다.

용서를 하고서도 술을 한 잔 하면 다시 슬픔이 북받쳤고 아무도 그 마음을 알아주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미국에서 가족을 살해당한 사람들의 모임에 일주일 동안 참석하게 되었습니다. 그 곳에서 한 분이 이런 말씀을 해 주셨습니다. 간추려보면 이렇습니다.

“저도 저의 외동딸을 잃었습니다. 처음엔 사형에 찬성하였지만 그 사람이 죽어도 아무런 위로가 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결국엔 용서하게 되었습니다. 지금 15년 이상 지났지만 지금도 분노가 튀어나올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하루에 1분 정도입니다. 그런데 당신은 이제 3년 정도가 되었으니 당신에게 필요한 것은 시간입니다. 용서는 했다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 기나긴 여정의 시작입니다. 용서로 기적처럼 마음에 평화가 오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죽기까지 그 길을 걸어야 하고 언젠가는 그 용서를 만나게 될 것입니다.”

즉, 너무 서두르지 말라는 말입니다. 우리는 어쩌면 눈에 보이는, 또 곧바로 이루어지는 기적을 원하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사람의 마음이 그렇게 빨리 바뀌는 것이 아닙니다. 만약 그렇다면 그렇게 쉽사리 바뀔 수 있는 사람을 믿을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입니다.

용서가 다시 살 수 있는 마음을 준 것은 이미 큰 기적이지만 그 효과는 시간을 두고 나의 노력과 함께 천천히 나타나는 것입니다. 마지막 종착지에 이르기까지 끝까지 믿는 믿음이 요구되는 것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은 다시 갈릴래아 지방으로 돌아오셨습니다. 예수님은 예루살렘을 다녀오시면서 많은 기적들을 행하셨습니다. 그래서 다시 돌아오셨을 때는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의 기적을 보고 몰려들었습니다.

오늘 기적을 청하는 한 왕실 관리도 그 기적을 보았기 때문에 예수님을 찾아온 것 같습니다. 예수님은 이렇게 대답하십니다.

“너희는 표징과 이적을 보지 않으면 믿지 않는다.”

그래도 그 사람은 막무가내로 청합니다.

“주님, 제 아이가 죽기 전에 같이 내려가 주십시오.”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가거라. 네 아들은 살아날 것이다.”

‘그 사람은 예수님께서 자기에게 이르신 말씀을 믿고 떠나갔다.’

저는 ‘말씀을 믿고 떠나갔다.’는 것에 집중해 보았습니다. 당장 기적이 보이는 것도 아닙니다. 직접 함께 가셔서 고쳐주셨으면 좋았겠지만 그저 믿고 떠나라고 합니다. 돌아가는 중에 ‘정말 고쳐졌을까, 안 고쳐졌을까?’의 고민으로 많이 갈팡질팡 하였을 것입니다. 그리고 집까지 가는 시간은 그 어떤 시간보다 길었을 것이고 자기 자신과의 싸움이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정말 내려가는 도중에 그의 종들이 와서 말하는 것을 듣고 아이가 바로 예수님께서 나으리라고 하신 그 때 아이의 병이 나았음을 알게 됩니다. 그리고 그와 온 집안이 믿게 되었다고 합니다. 믿음의 승리인 것입니다.

 

고정원씨를 대상으로 유영철 피해자들의 모습을 취재한 SBS 다큐멘타리를 보았습니다. 고정원씨를 시작으로 결국 천주교를 믿는 사람들만이 용서의 길에 들어섰습니다. 쉽지 않지만 그들은 가해자들을 위해서도 기도합니다.

다른 피해자들은 미움으로 힘들어하고 있었습니다. 온전한 생활을 하지 못하고 병원 신세를 지는가하면 다른 가족들이 그 충격으로 자살까지 하였습니다. 그들이 용서하지 못하면 상황은 더욱 악화될 것입니다.

물론 용서한다고 하시는 분들도 많은 눈물을 쏟아냅니다. 가족을 죽인 사람이 쉽게 용서가 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완전히 용서가 안 되었다고 하더라도 그들은 적어도 ‘용서의 길’에 접어든 분들입니다. 출발을 하지 않는 사람들과는 큰 차이가 있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시간이 지날수록 그 길에 접어든 사람들은 목적지에 가까워지겠고 언젠가는 “다 치유되었습니다.”하는 목소리를 듣게 되겠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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