밭에 묻힌 보물/신앙 자료

정약종의 <주교요지>

김레지나 2010. 1. 24. 12:27
정약종 성조의 <주교요지>


상 편

1. 인심이 스스로 천주님 계신 줄을 아느니라.

무릇, 사람이 하늘을 우러러보며, 그 위에 임자가 계실 줄을 알므로, 병들고 어려운 일을 겪으면, 하늘을 우러러 "이 괴로움 에서 벗어나게 하소서"하며 빌고, 번개와 우뢰를 만나면, 자기 죄악을 생각하고 마음이 놀랍고 송구하니, 만일 천상에 임자가 아니 계신다면, 어찌 사람마다 마음이 이러하리요?

2. 만물이 스스로 나지 못하느니라.

천지 만물은 다 제 몸이 스스로 나는 일이 없다. 초목은 열매가 있기에 씨를 전하고, 짐승은 어버이가 있어서 생겨나고, 사람도 부모가 있어서 생겨나니, 그 부모는 조부모에게서 나는 지라, 차차 올라가면, 분명히 시작하여 난 사람이 있을 것이니, 이 사람은 누가 낳으셨을까? 이 사람 도 부모가 있어서 났다 하면, 그 부모는 누가 낳았을꼬? 처음으로 난 사람은 부모가 없이 났을 것이니, 그 사람은 제 몸을 스스로 낳았다 할 것이냐? 그렇다면 이 사람만 제스스로 나고, 뒷사람은 스스로 나 지 못할까? 이로 미루어 보건대, 처음에는 사람을 분명히 내신 이가 계실 것이니, 사 람 하나를 가지고 의논하면, 초목과 짐승도 다 그러하여, 처음난 짐승도 이 짐승을 낳음이 아니라, 초목과 짐승과 사람을 모두 내신 이(창조주) 계시니, 이 내신 이를 천주라고 일컫느니라.

3. 만물이 저절로 되지 못하느니라.

여기에 큰집이 있다. 아래엔 기둥을 세우고, 위에는 들보를 얹고, 옆에는 벽을 맞추고, 앞에는 문을 내어 비바람을 가리워야 사람이 몸을 담아 평안히 살 수 있으니, 이 집을 보면 어찌 저절로 되었다 하리요? 반드시 '목수가 있어서 만들었다'하리라. 만일, 어떤 사람이 이 집을 보고 말하기를 "기둥과 들보와 벽과 문창이 저절로 어울려 되었다"고 하면, 이 사람을 "지각이 없다"고 할 것이다.

천지도 또한 집과 같아서, 하늘로 덮고 땅으로 싣고, 해와 달로 밝히고, 비와 이슬로 초목을 기르고, 물로 축이고, 불로 덥히고, 나는 새는 공중에 날고, 기는 짐승은 땅에 기어, 만물을 다 배포(排鋪)하고 마련하였기에, 사람이 그 중에서 하늘을 이고 땅을 밟고, 만물을 쓰고, 평안히 살아, 마치 집을 짓고 평안히 있음과 같으니, 작은 집도 절로 되지 못하여, 반드시 건축 한 목수들이 있어야 되거든, 이 천지같은 큰 집이 어찌 절로 되었으리요?

분명히 지극히 신통하시고, 지극히 능하신 이가 계셔서 만들어야 될 것이니, 목수들을 보지 못해도 집을 보면 집지은 목수들이 있는 줄을 알 것이요, 천주를 보지 못해도 천지를 보면, 천지를 만드신 임자가 계신 줄을 알 것이라.

4. 하늘이 움직여 돌아감을 보고 천주가 계신 줄을 알지니라.

온갖 것이 지각(知覺)과 손발이 있어야 능히 움직이고, 지각이 없으면 움직이지 못하니, 사람과 짐승은 지각이 있기에 움직이고, 흙과 돌은 지각이 없기에 움직이지 못하니, 그 중에 지각이 없고도 움직이는 것은 반드시 지각 있는 이가 잡고 흔들어야 움직이므로, 흙과 돌은 지각이 없어도, 지각 있는 사람이 굴리면 움직이고, 물레와 수레는 지각이 없어도, 지각 있는 사람이 잡고 돌리면 움직이니, 저 하늘과 해와 달과 모든 별이, 귀와 눈이 없고, 손과 발이 없고, 혼과 지각이 없는데, 능히 날마다 움직여 돌아가고, 또 돌아가되, 일정한 법이 있어, 봄 여름 가을 겨울이 차례로 돌아오고, 밤낮과 덥고 추움이 고르게 나누어져서, 천백 년이 되도록 그 돌아가는 도수가 털끝만큼도 틀리지 않으니, 지각없는 것이 어찌 스스로 돌아가며, 돌 아간 들 어찌 절로 도수에 맞으리요? 분명히 지극히 신명하고, 지극히 능한 이가 잡고 돌려야 돌아갈 것이니, 이 돌아가게 하시는 이는 곧 천주이시니, 그러므로, 물레와 수레가 돌아감을 보면, 저 하늘도 천주가 계셔서 돌리시는 줄을 알 것이라.

5. 사람은 반드시 천주로 말미암아 생겼느니라.

어떤 사람이 묻기를, "처음으로 난 사람은 천주로 말미암아 났거니와, 지금 사람은 부모의 속으로부터 나니, 천주 아니 계신들 어찌 나지 못하리요?"

대답하기를, "처음 난 사람은 천주가 아니 내셨더라면, 지금 사람이 어디로부터 났으리요? 또 부모의 힘만으로는 자식을 낳지 못하니, 이를테면 장인(匠人)이 그릇을 제 재주로 만들기를 마음대로 해서, 만들고자 하면 만들고, 말려고 하면 말고, 크게 하려면 크게 하고, 작게 하려면 작게 하는데, 사람이 제 자식 낳기를 장인(匠人)들이 그릇을 만들듯이 제 재주로 할 것 같으면, 어찌하여 낳고 싶어도 낳지 못하며, 아들을 낳고 싶어도 딸을 낳고 , 잘 낳고 싶어도 못나게 낳는 일이 있느냐?" 이것을 보면 사람의 힘이 아니라, 천주의 조화(造化)로 하시는 것을 알 것이요, 또 장인(匠人)은 그릇을 제 재주로 만들기 때문에 그릇 만드는 묘리(妙理)를 알거니와, 사람은 자식을 낳아도 그 되는 묘리를 누가 아는가? 만일에 알 양이면, 어찌하여 이목구비(耳目口鼻)가 되며, 오장 육부가 됨을 모르리요? 다 천주의 신령하신 슬기로 마련하심이니라.

6. 천주는 오직 한 분이시니라.

한 집안에는 가장(家長)이 하나이고, 한 고을에는 관장(館長)이 하나이며, 한 도(道)에는 감사(監司)가 하나이며, 한 나라 에는 임금이 하나이니, 만일 두 임금이 있다 하면 천지가 어지러워질 것이다. 이 임금은 해를 서쪽으로 돌리려 하면, 저 임금은 동쪽으로 돌리려 하고, 이 임금은 여름이 되게 하면 저 임금은 겨울이 되게 하며, 이 임금은 살리려 하면 저 임금은 죽 이려 할 것이니, 어찌 세상일이 제대로 되겠는가? 이제 해는 언제나 서쪽으로 가고, 여름이 될 때에는 여름이 되고, 겨울이 될 때에는 겨울이 되며, 불은 언제나 덥고, 물은 언제나 차며, 짐승은 짐승을 낳고, 사람은 사람을 낳아, 천지가 개벽한 뒤로 이 날까지 일정한 법이 있어, 만고(萬古)에 바뀌지 아니하니, 반드시 한 임금이 계시어서 마련하기 때문에 온갖 법이 다 한 곬으로 나게 되어 있다. 그러므로, 이 사람을 살리려고 하면 다시 죽일 이가 없고, 저 사람을 벌주려 하면 다시 상줄 이가 없느니라.

7. 천주는 본디부터 계시고, 스스로 계시니라.

어떤 사람이 묻기를, "만물이 절로 나지 못하고, 다 천주가 내신 것이라 하니, 그러면 이 천주는 누가 내었는가?" 대답하기를, 만일 천주를 낸 이가 있다고 한다면, 그 낸 이가 곧 천주가 될 것이니, 받아서 난 이는 천주가 되지 못할 것이다. 이제 일컫는 바 천주는 따라 난 데가 없으며, 본디부터 스스로 계시는 분이다. 대개, 스스로 계신 이 하나가 먼저 있어야 만물이 다 이에서부터 생겨난 것이다. 나무로 비유하면, 잎은 가지에서 나고, 가지는 줄기에서 나고 줄기는 뿌리에서 나니, 뿌리는 잎과 가지와 줄기의 근본이 된다. 근본의 또 근본이 어찌 있으리요? 또 수(數)로 써 말한다면 만은 천에서 나고, 천은 백에서 나고, 백은 열에서 나고, 열은 하나에서 나니, 하나는 만과 천과 백과 열의 시작이 되는지라, 시작의 또 시작이 또 어디 있으리요? 천주는 나무의 뿌리 같으시어, 다시 뿌리가 없으며, 수의 하나와 같으시어, 다시 시작이 없느니라.

8. 천주는 시작이 없으시고, 마침이 없으시니라

온갖 만물이 다 그것을 내신 이가 있으므로, 아무 때에 내자 하면 나서 시작이 있고, 아무 때에 없애자 하면 없어져서 마침이 있지만, 오직 천주는 본디부터 계셔서 아무 때에 내자고 할 이가 없으므로 시작이 없고, 아무 때에 어떻게 하자고 할 이가 없으므로 마침이 없으시니라.

9. 천주는 지극히 신령하시어, 그 형상이 없으시니라.

만물이 형태있는 것은 천하고, 형태없는 것은 귀하므로, 초목과 짐승은 형태가 있기에 천한 부류가 되고, 사람의 영혼과 하늘 위의 천신은 형태가 없기에 귀한 부류가 되는지라, 이제 천주는 높으시고 귀하심이 사람과 천신보다 한량없이 더하시므로, 소리도 없으시고, 냄새도 없으시며, 오직 신령하실 따름이니라.

10. 천주께서는 안 계신 곳이 없으시니라.

천주는 형상이 없으시고, 신령하신 본체(本體)가 무한하시어 온전히 하늘에 계시고, 온전히 땅에 계시고, 온전히 만물에 계시고, 온전히 천지 밖의 무한한 데 계시니, 어찌하여 그런 줄을 알리요? 하늘을 만드실 제는 당신의 본체가 하늘에 계실 것이요, 땅을 만드실 제는 땅에 계실 것이요, 만물을 만드실 제는 만물에 계실 것이며, 본체가 한없이 크시매 천지 밖의 무궁한 데에도 계시니라.

11. 천주는 무궁히 능하시니라.

무릇, 사람은 재능이 한이 있어, 가령 무슨 그릇을 만들려 하면, 반드시 감을 가지고 연장을 쓰며, 힘을 들이고, 때를 허비한 뒤에야 비로소 그릇이 되지만, 천주는 그 힘이 무궁하시어 천지 만물을 만드시되, 없는 가운에서 내시고, 연장 없이 만들어 내시며, 힘을 들이지 아니하시고, 때를 허비하지 아니하시고, 한 번 명하시면 눈 깜짝 할 사이에 이루어 내시니, 만일 이 천지에서 더 크고 기묘한 천지를 무수히 만들려 하셔도 한 번의 명하시면 될 것이요, 또 이 천지 만물을 모두 없애려 하셔도 한 번만 명하시면 없어질 것이다. 그러므로 그 힘이 무한하시다 하느니라.

12. 천주는 온전히 아시느니라.

천주는 이미 무궁히 능하신 즉, 반드시 온전히 아실 것이다. 대개, 천지 만물을 만드는 묘리(妙理)를 무궁한 슬기로 먼저 아셔야 무궁한 힘으로 만드실 것이니, 만일 무궁히 알지 못하신다면, 무궁한 힘을 어찌 베푸시리요? 그러므로 만물의 크고 작음과 정하고 추함과 깊고 옅음과 무수한 귀신의 은밀한 마음과 억만 사람의 숨은 뜻을 다 꿰뚫어 훤히 아시어, 털끝만큼도 속일 수 없다, 또 억만 년 이전의 일과 억만 년 이후의 일이 역력히 눈 앞에 벌어져 있으므 로, 그 아심이 무궁하시다 이르느니라.

13. 천주는 무궁히 아름다우시고, 좋으시니라.

천주는 어찌하여 무궁히 아름다우시다 하는고? 대개, 천주가 만드신 만물을 보면 알 것이다. 하늘의 높고 넓음과 해와 달의 빛나고 밝음과 땅과 바다의 두껍고 깊음과 초목 금수의 변화롭고 많음과 온갖 기묘한 빛과 소리와 여러가지 기이한 맛과 향내와 하늘 위에 수없이 많은 천신들의 신통함과 땅위의 수없이 많은 사람들의 슬기로움과 세상의 만가지 영화와 즐거움이 천주로부터 났으니, 이런 만물의 만가지 아름 다움을 천지가 개벽한 후로부터 천지가 마 칠 때까지, 날마다 내시고 해마다 내시어 무궁무진(無窮無盡)하니, 당신의 본체(本體)안에 반드시 무궁무진한 아름다움이 있을지라. 비유하건대, 정승(政丞)판서(判書)의 영화로운 복과 감사(監司)병사(兵使)의 부귀한 즐거움이 다 임금의 손에서 나왔으므로, 정승판서와 감사 병사의 영화 부귀 함이 다 임금의 몸에 싸였으니, 백관의 부귀함을 보면 임금의 지극한 부귀를 넉넉히 알 수 있음과 같이, 만물의 아름다움을 보면, 천주의 무궁히 아름다우심을 알 것이 니라.

14. 천주는 세 위(位)이시고 한 체(體)이시니라.

'천주 삼위일체'(天主三位一體)의 도리 (道理)는 사람의 슬기가 약하므로 완전히는 통달하지 못하나, 비유로써 조금은 증명할 수가 있다. 무릇 사람이 밝은 거울에 비취면 거울 속에 그 얼굴이 나타나고, 또 사람이 마음에 한 가지 것을 사랑하면 마음속에 그 사랑하는 정이 생긴다. 그와 같이 천주도 이러하시어, 무시로 그 무한히 아름다운 본체, 무한히 밝은 마음 가운데 비치어, 무한히 아름다운 얼굴을 나타내시니, 그 얼굴이 곧 당신의 얼굴이시라, 또 무한히 사랑하는 마음으로 무한히 아름다우신 정을 발하시니, 그 발하시는 사랑이 또한 당신의 사랑이시니라. 그러나 사람이 거울에 비취어 나타나는 얼굴은 오직 거울을 의지한 그림일 뿐이요, 사람의 사랑하는 정은 마음에 의지한 빈 정일 뿐이다. 그 그림자와 빈 정은 다 잠깐 있는 것이 요, 헛것이지만, 천주는 본디 무궁히 능하신 성(性)이시요, 그 밝으신 얼굴과 그 사랑하시는 마음이 곧 그 체(體)이시라. 그 밝으신 얼굴과 그 사랑하시는 정에, 또한 그 체와 함께 사시며 진실하시어, 그 본체가 하나이시고, 그 얼굴이 하나이시고, 그 사랑하시는 정이 하나이시므로, 세 위(位)라 하는데, 세 위란 말은 천주의 체(體)가 셋이 아니라, 위(位)는 비록 셋이지만, 그 체(體)는 오직 하나이시라. 그 비치시는 얼굴이 곧 체(體)이시고, 그 사랑하시는 정이 곧 그 체(體)이시니, 세 위(位)가 한가지로 한 체(體)이시고, 한 성(性)이시기 때문에 세 위가 다 높고 낮음과 크고 작음과 먼저와 나중의 분별이 없느니라. 또 세 위가 먼저와 나중의 분별이 없으나, 차례의 선 후를 말한다면, 그 본체는 아비라 이르고, 그 낳으신 얼굴은 아들이라 이르며, 그 아비와 아들이 서로 사랑하여 발하신 정은 성신(聖神)이라 이르니라. 사람은 아비의 마음이 아들의 마음에 통하지 못하고, 아들의 마음이 아비 마음에 통하지 못하는 것은 그 마음이 각각이고 형체(形體)에 걸리는 까닭이거니와 천주의 사랑하시는 마음은 그렇지 아니하시어, 아비와 아들이 한 체(體)이시고, 또 그 체(體)가 형태가 없으므로 아비의 사랑과 아들의 사랑이 서로 형체에 걸리는 것이 없이 통하시어, 성신(聖神)을 발하시니, 성신이란 말은 지극히 착하시고, 형태가 없으신 사랑을 이름이니라.

15. 푸른 하늘이 천주가 아니니라.

어떤 사람이 묻기를, "세상 사람이 매양 푸른 하늘을 우러러보면 절로 공경하는 마음이 나니, 저 푸른 하늘이 천주가 아니시냐?"고. 대답하기를, 그렇지 아니하니, 하늘을 공경하는 마음은 이 하늘을 공경함이 아니라, 하늘 위에 계신 임금을 공경함이라, 비유컨대, 백성이 대궐을 바라보면 절로 두려워하는 마음이 생기는데, 그것을 어찌 대궐을 두려워한다 하리요? 대궐 안에 계시는 임금을 두려워하는 것이다. 저 푸른 하늘은 대궐같고 하늘 위에 계시는 천주 는 대궐 안에 계시는 임금 같으니, 만일 푸른 하늘을 천주라 하여 절하면, 이는 대궐을 보고 임금이라 하여 절하는 것과 같으니, 어찌 그르지 아니하리요? 하늘은 천주의 전능(全能)으로 만드신 것이니, 비유컨대, 사람이 집을 지었다면 그 집을 가리켜 임자라 하겠는가? 집을 지은 사람이 임자임과 같이, 천주가 하늘을 지으셨으니 천주가 하늘의 임자이시니라.

또 하늘이 넓고 푸르러 큰 유리덩이 같은 것이, 귀와 눈이 없고 손과 발도 없으며, 지각도 없고 영신(靈神)도 없으니, 어찌 천지 만물의 임자가 되리요? 천지의 큰 임자는 오직 하나이시니, 하늘을 임자라 하면, 저 하늘이 아홉 겹이 있으니, 어찌 천지의 임자가 아홉이 되리요?

16. 천지가 스스로 만물을 능히 내지 못하느니라.

어떤 사람이 묻기를, "하늘과 땅에 있어 만물의 부모가 되는데, 어찌 천주께서 만물을 내시었다 하리요?"라고. 대답하기를, 온갖 것이 저와 같은 것을 낳고, 저보다 나은 것은 낳지 못하기 때문에 생기 있는 초목이 초목을 낳되 지각있는 짐승을 낳지 못하며, 지각있는 짐승이 짐승을 낳되 영신(靈神)있는 사람을 낳지 못한다. 이 천지는 산 것이 아니니, 어찌 생기있는 초목과 지각있는 짐승과 사람을 낳으리요?

그러므로 비유컨대 화가가 그림을 그리려면 반드시 종이와 물감을 가지고 그리는데, 만일 종이와 물감이 없으면 그림을 그리지 못한다. 그렇다고 해서 어찌 한 낱 종이와 물감이 그림을 그렸다고 하겠는가? 반드시 화가가 있어야 그림이 된다. 이제 만물도 그러해서 땅은 종이 같고, 하늘은 물감 같고, 만물은 그림같은 것이니, 화가가 아니면 종이와 물감이 어찌 절로 그림이 되며, 천주가 아니시면 하늘과 땅이 어찌 절로 만물을 만들리요? 그러므로 사람이 천지와 일월성신(日月星辰)을 향하여 절하는 것은 매우 그릇된 일이다. 비유컨대, 부모가 자식을 위하여 집과 논밭을 장만해 주면, 자식이 집과 논밭으로 산다하여 그 집과 논밭을 향하여 절하고, 집과 논밭을 주신 부모의 은혜를 생각지 아니한다면, 어찌 그릇된 일이 아니리요? 마찬가지로 사람이 만일 천지와 일월(日月)을 내신 천주의 은혜를 모르고, 천지와 일월을 향하여 절한다면 이 집과 전답을 향하여 절하는 것과 무엇이 다르리요?

17-27

28. 천주는 반드시 착한 이를 상주시고 악한 이를 벌주시니라.

천주는 지극히 밝으시고, 지극히 능하시고, 지극히 어지시고, 지극히 엄하시고, 지극히 공번되시니, 반드시 사람의 착함을 상주시고, 악함을 벌하시니라. 지극히 밝으시므로 사람의 착함과 악함을 밝히 아실 것이요, 지극히 능하시기 때문에 상벌을 뜻대로 하실 권한이 있을 것이며, 지극히 어지시므로 착한 이를 사랑하시어 상주실 것이요, 지극히 엄하시기에 악한 이를 미워하사 벌하실 것이며, 지극히 공번되시므로 상과 벌을 반드시 고르게 하실 것이다. 그러므로 세상을 배치하신 뒤로 착한 사람이 하나도 천주께 상을 받지 아니한 이가 없고, 몹쓸 사람이 하나도 천주께 벌 을 받지 아니한 이가 없느니라.

어떤 사람이 묻기를. "그리하면, 어찌 하여 이 세상에서 착한 사람도 가난한 이가 많고, 악한 자도 부귀한 이가 많으냐?" 고 대답하기를, 세상의 화복으로서는 사람의 선악을 갚을 길이 없으니, 사람이 세상에 살아가는 데 있어서 처음에는 착하다가 나중에 그른 이도 있고, 처음에는 그르다가 나중에 착한 이도 있다. 죽은 뒤에야 착한 이가 다시 그르지 못하고, 그른 이가 다시 착하지 못할지니라. 만일 이 세상에서 사람의 선악을 갚으려 하면, 사람이 오늘 착한 일을 한다 하여 부귀를 주었다가 내일 그른 일을 한다 하여 부귀를 빼앗고, 한 사람의 부귀를 천백번이나 주었다가 천 백번이나 빼앗을 것이니, 천주의 하시는 법이 어찌 이렇듯이 어지러우시리요? 또 사람이 죄를 지었다가도 뒤에 다시 뉘우치고 고치는 일이 있으니, 만일 죄를 짓는다하여 큰 벌을 주어 죽게 하면, 그 죄를 뉘우쳐 다시 고칠 길이 없을 것이니, 천주의 어지신 뜻이 어찌 그러하시리요?

사람의 선악은 생전에 결단이 나지 않으므로 천주께서 상벌을 정하지 아니하시고, 또 세상의 복은 그 수가 한정이 있으되, 착한 사람은 그 수가 정한 것이 없으니, 비유컨대, 한나라의 정승의 수는 셋이며, 정승을 하염직한 사람의 수가 열이나 된다면, 어찌 정승 세 자리를 가지고 착한 열 사람을 다같이 정승을 시킬 수가 있으리요? 한 고을에 재물이 만금이 있는데, 만금을 가짐직한 사람은 둘이나 셋이 된다면, 어찌 한 만금을 가지고 두 세 사 람에게 만금씩 같이 나누어 줄 수가 있으리요?

그러므로 이 사람을 존귀하게 해주면, 반드시 저 사람이 천할 것이요, 이 사람을 가멸지게 하면 반드시 저 사람이 가난할 것이니, 세상의 부귀로서는 모든 착한 사람을 다갚아 고르게 할 길이 없으며, 또 죄악의 크고 작음을 따라 형벌을 무겁게, 또는 가볍게 해야 할 것인데, 세상 의 죄악은 무한하고 형벌은 유한하니, 한 사람을 죽인 죄는 제 몸 하나를 죽이면 된다 하더라도, 두 사람 죽인 죄와 백 사람 죽인 죄는 어찌 그 한 몸을 둘에 내고, 백에 내어 죽이리요? 그러므로, 세상의 상과 벌로써는 사람의 선악을 갚을 길이 없느니라.

무릇, 이 세상에서 착한 사람이 어찌 빈천(貧賤)과 고난을 받으며, 몹쓸 놈이 어찌 부귀와 복락을 누리는고? 착한 사람도 한 두 가지 그른 일이 있기 때문에 천주께서 공번되시어 한가지의 그른 일일지라도 벌하지 아니하심이 없기에, 세상의 작은 괴로움으로 그 작은 죄를 벌하시었다가, 죽은 뒤에는 큰 복락으로 큰 공덕을 갚으시며, 몹쓸 놈도 한 두 가지 착한 일이 있 으므로 천주께서 지극히 어지시어 한 가지의 착한 일일지라도 갚지 아니하심이 없기에, 세상의 작은 복락으로 그 작은 공을 갚으시고, 죽은 뒤에 큰 형벌로 죄악을 다스리시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 세상의 착한 이가 간혹 괴로움을 당하고, 몹쓸 놈도 간혹 즐거움을 얻는 것은 그 죽은 뒤를 기다려 상과 벌을 결단하시려 함이니라.

29. 사람은 죽은 뒤에 영혼이 있어 상과 벌을 받느니라.

어떤 사람이 묻기를 "세상의 상벌로는 사람을 알맞추어 갚을 길이 없기 때문에 천주께서 사람에게 상벌은 내리시지 않는 것이 아니냐? " "어찌 그러하리요? 세상의 임금도 반드시 선악을 보아 벼슬도 시키고 형벌도 주거늘, 하물며 천지의 지극히 높으시고 지극히 공번되신 임금이 어찌 상벌이 없으리요? 세상에서 상벌을 온전히 아니하심은 반드시 죽은 후를 기다려 알맞게 하심이니라. " 또 묻기를, "세상 사람이 한번 죽으면 몸이 썩어 없어지는데, 상벌을 어디에 다 베푼단 말인가? " 대답하기를, 사람이 죽은 뒤에 몸은 썩어도 영혼은 죽지 아니하느니, 짐승의 혼은 제 몸에서 생겼으므로 배고프고 배부르고, 춥고 더운 것이 제 몸에 붙은 일만 알기 때문에, 죽으면 그 몸에 붙었던 혼도 따라 없어지고, 사람의 혼은 제 몸에서 생긴 것이 아니라, 몸이 생길 제 천주께서 신령(神靈)한 혼을 붙여 주셨기 때문에 제 몸 밖의 일도 좋아하고 싫어함이 있으니, 이를테면 남이 나를 기리면 내 몸이 배부 를 것이 없으되, 공연히 좋아하고 남이 나 를 헐뜯으면 내 몸이 아플 것이 없는데도 공연히 싫어하니, 이 좋아하고 싫어하는 마음이 그 몸에서 솟아나는 것이 아니라. 영혼에서 나오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 로 사람은 짐승과 달라 영혼이 따로 있기 때문에 몸이 죽어도 영혼은 따라 죽지 아니하느니라.

또 신령한 혼은 형태가 없어 불에 탈 것 도, 칼에 상할 것도 없으며, 또 병들 것도 없으므로 죽을 길이 없느니라. 또 천주는 위로 천신을 내시고, 아래로 짐승을 내시고, 그 중간에 사람을 내시니, 사람의 영혼은 위로는 천신과 같고 몸은 아래로 짐승과 같은 지라, 그 영혼은 신령하고 영특하기 때문에 만사를 통달하여 천신과 같고, 그 몸은 귀와 눈과 발과 입이 있기로 음식을 먹고 운동하여 짐승과 같으니, 짐승과 같은 몸이 짐승같이 죽을 제는, 그 천신과 같은 영혼은 천신같이 길이 사는 것이니, 이제 사람마다 천신이 아니 죽는 줄을 알면서 천신과 같은 영혼이 죽는다고 한다면, 이는 천신이 죽는다는 말과 같느니라. 또 짐승은 살아서 무섭던 짐승이라도 무섭지 아니하고, 사람은 살아서 사랑하던 사람이라도 죽으면 무서워 하느니, 그 무서워하는 마음이 어찌 공연히 나리요? 짐승은 죽으면 아주 죽은 줄로 알기에 무섭지 아니하고, 사람은 죽어도 영혼이 있어, 엄한 심판을 받아 천당과 지옥의 분별을 알기에 절로 무서워하는 것이다. 만일, 사람의 영혼이 짐승과 같이 없어진다면 사람 죽는 것도 짐승 죽은 것과 같아서 무섭지가 아니할 것이다. 또 세속에 사람이 죽으면 초혼(招魂)하는 법이 있으니, 만일 영혼이 그 몸과 같이 없어지는 줄로 알면 어찌 혼을 부르는 법이 있으리요? 비록, 그 혼을 불러도 그 혼이 이미 정한 곳이 있어 제 임의로 올 수는 없지만, 혼이 있기에 부르는 것이니라. 또 영혼은 길이 삶으로 사람마다 길이 살고 싶은 마음이 있어, 백살을 살아도 몸이 죽을 때에 서러워하는 마음이 어려서 죽는 마음과 같고, 천세만세를 살아도 죽을 때의 슬픈 마음은 다 같을 것이니, 만일 길이 사는 혼이 아니라면 어찌 길이 살고 싶은 마음이 나리요? 비유컨대, 음식을 먹는 입이 있기에 음식을 먹고 싶은 마음이 나고, 소리를 듣는 귀가 있기에 소리를 듣고 싶은 마음이 생기며, 길이 사는 혼이 있기에 길이 살고자 하는 마음이 있는 것이라. 그러므로 영혼은 무궁히 살아 무궁한 상벌을 받느니라.

30. 영혼은 반드시 즐거움과 괴로움을 받느니라.

어떤 사람이 묻기를, "사람이 세상에 있을 때는 몸이 있기에 즐거움과 괴로움을 알거니와, 몸이 없어진 후에 영혼이 나가서 무엇으로써 즐거움과 괴로움을 알리요?" 대답하거늘, 온갖 것이 지각이 없으면 괴로움과 즐거움을 모르고, 지각이 있은 후에야 비로소 즐거움과 괴로움을 아는 것이니, 초목은 지각이 없으므로 꽃이 피어도 즐거운 줄을 모르며, 베어도 아픈 줄을 모르고, 짐승은 지각이 있으므로 먹으면 좋은 줄을 알며, 때리면 아픈 줄을 안다, 사람은 지각이 짐승보다 만배나 더하고, 또 신령하기 때문에 그 즐거움이 그 지각의 분수대로 더하여 짐승보다 만배나 더하다. 그러므로 지각이 없으면 즐거움이 없고, 지각이 조금 있으면 즐거움이 조금 있고, 지각이 많으면 즐거움이 또한 많다. 사람의 몸은 다만 피와 살이니, 지각 있는 영혼이 있지 아니하면 몸만으로는 즐거움과 괴로움을 알지 못해서, 지각없는 초목과 같은 것이다. 이제 먹어서 맛을 알고, 때려서 아픈 줄을 아는 것은 전혀 지각이 있는 영혼이 알게 함이니, 그러므로 사람이 죽어 영혼이 한번 나가면 입에 꿀을 넣어도 단지 쓴지 알지를 못하고, 살 에 칼을 찔러도 아픈 줄을 모르니, 이것으로써 보면, 영혼이 전혀 즐거움과 괴로움을 받는 근본이 되는지라. 몸에 있으나 몸을 떠나나 영혼의 지각은 마찬가지이니, 어찌 즐거움과 괴로움이 없으리요?

31. 천주께서 천당과 지옥을 두사, 세상 사람의 선악을 시험하여 갚으시느니라.

천주께서 세 세계를 배치하시니, 하나는 하늘 위에 있으니, 이름이 천당이요, 하나는 땅 속에 있으니 이름이 지옥이요, 또 하나는 하늘 아래와 땅위에 있으니 이름이 세상이라. 천주가 이 세상에 사람을 내사, 착한 일을 하고 그른 일을 하지 말라고 분부하시었으니, 그 분부에 따라 착한 이의 영혼은 천당에 올리시고, 그 분부를 어긴 이의 영혼은 지옥에 내리시니, 천당의 복은 천주의 무궁히 좋으신 영광을 보고 누림에 있으니, 세상의 복으로 비유하면, 정승판서와 감사병사(監司兵使)와 수령 들의 부귀하고 영화로움이 다 임금의 손에서 나왔기에, 백관의 부귀영화가 그 임금 한 몸이 갖추 쌓이었음을 알 것이니라. 이제 만물을 보면, 천지의 크고 넓음과 해와 달의 밝고 빛남과 초목과 금수의 번화 기묘함과, 천신과 사람의 신령 총명함과, 여러가지 기이한 맛과 향내와 만가지 좋은 소리와 빛과, 만국 임금의 영화 부귀를 다 천주의 전능으로 내신 것이니, 그 내신 힘을 생각하면, 보는 즐거움이 더욱 어떠할꼬? 백관의 영화를 보면 임금의 귀함을 알 것이요, 만물의 좋음을 보면 천주의 덕능(德能)을 알 것이다. 영혼이 천당에 오르면 천주께서 그 광명한 빛을 영혼에 비추어 주사, 당신의 무한하신 영광으로 비추시고, 무궁한 복락을 누리게 하시니라. 비유컨대 거울에 수은을 바르고 해에 비추면, 그 거울이 해와 같이 찬란휘황하리니, 영혼도 천주의 밝은 빛을 받아 천주의 얼굴이 영혼이 비 치기를 햇빛이 거울에 비침과 같느니라. 또 사람이 신령한 혼이 있으므로 세상에 무슨 복을 얻어도 다시 그보다 더한 복을 구하고, 그 더한 복을 얻고도, 또 그보다 더 큰 복을 구하고, 그 더한 복을 죄다 얻더라도 그 한없는 요망을 채우지 못하다가도, 천당에 한번 올라 무궁한 복락을 얻은 후에야, 그 무궁한 욕망이 만족하여 다시 바랄 것이 없다. 또 세상의 즐거움은 온 몸에 골고루 받지를 못하여, 음식을 먹을 제는 입은 즐겁되 귀와 눈은 즐거움이 없고, 풍류를 들을 제는 귀에는 즐겁되, 눈과 입은 즐겁지 아니한 법이니라.

그러나 천당의 즐거움은 그렇지가 않아서 영혼은 온전한 복락에 젖어서 안팎이 없이 즐겁고, 간 데마다 즐거우니, 세상 복은 복이 내 몸에 즐거우지만 천당의 복은 내 몸이 복 속에 들어간다. 또 세상의 복은 오래 되면 시드래져서 좋은 소리도 늘 들으면 싫어지고, 맛 있는 음식도 오랫동안 먹으면 물리지만, 천당의 복은 그렇지 아니하여, 오늘이 새로 즐겁고, 내일이 새로 즐거워, 날마다 해마다 새로이 즐겁고, 만만년 억만년이라도 무궁무진하게 새로우니라. 또 세상의 복은 얻었다가 잃어버리는 것이지만, 천당의 복은 한 번 얻으면 다시는 잃지 아니하고, 영원히 정하여 변함이 없느니라. 또 세상의 복은 아무리 좋다하여도 백년을 살지 못하고, 한번 죽으면 만가지 복이 다 헛것이 되어버리지만, 오직 천당에 있는 영혼은 무한한 복을 얻어 만만세를 살고, 무궁세를 살아, 일정한 세월이 없으며 마칠 기한이 없이 영원히 사는 중에 즐거운 마음이 세월을 잊어버리고, 천만년을 지내는 동안에도 이 세상의 하루 같느니라.

32. 지옥은 천당과 맞은 짝이 되느니라.

천당의 즐거움이 무궁무진한 즉, 지옥의 괴로움도 그와 같이 무궁무진한지라, 지옥 가운데 이상히 뜨거운 불이 가득하여, 그 덥기가 세상 불에 비하면 만배나 더 뜨겁다. '지옥의 불은 참 불이요, 세상의 불은 그림의 불과 같다' 하였으니, 그 모질고 끔찍함은 가히 알지니라. 악인의 영혼이 한 번 그불 속에 들면, 불이 영혼 전체에 온전히 배어서, 마치 쇠가 풀무속에 들어가 안팎이 없이 죄다 불이 되는 것과 같아서, 천년을 녹여도 없어지지 아니하고, 만년을 태워도 사라지지 아니하여 영원히 괴롭다. 또 이보다도 더한 괴로움이 있으니, 세상에 있을 적에 옳은 말을 듣고 조금만 수고를 하였더라면, 천당에 올라가 무궁한 경사와 복락을 얻었을 것을, 내 탓으로 쉬운 일을 아니하고 번개같은 세상의 잠깐 동안의 즐거움을 위하다가, 이 제 이러한 불 속에 들었도다. 한 번 들매 다시 나갈 기약이 없어, 아프고 쓰리고 슬픈 마음이 그 뜨거움보다도 만배나 더하니, 세상의 만가지 흉악한 형벌로, 만가지 혹독한 괴로움을 죄다 모아 한 몸에 받아도, 이 지옥의 형벌에 비하면 만 분의 일도 되지 못하리라.

또 천주의 무궁하신 전능을 생각하면 알 것이니, 지극히 밝은 것을 내고자 하시어 해를 내시고, 무한히 큰 것을 내고자 하시어 하늘을 내시고, 지극히 즐겁게 하고자 하시어 천당을 주시고, 지극히 괴롭게 하고자 하시어 지옥을 두셨으니, 이제 지옥의 괴로움 이 얼마나 끔찍하리요? 또 불을 가지고 말할지라도 천주의 신통하신 힘을 알 것이니 장작불과 숯불은 몹시 뜨겁지 아니하되 음식을 삭히는 데는 장작불이 낫고, 석류황(유황)은 손으로 만져도 덥지 아니하되 다른 불에 닿으면 갑자기 일어나니, 다 같은 불이로되 그 형상이 각각 다르다.

지옥에 두신 불은 또 이 세가지 불과 크게 달라, 형상이 있으나 형상없는 영혼을 능히 태워, 계속 태워도 꺼지지 아니하게 하시니. 가령 지옥에 있는 사람더러 천주가 이르시기를, "한 마리의 개미로 하여금 바닷물을 일년에 한 모금씩 물어내게 하여, 그 바닷물이 다 마르거든 지옥의 괴로움을 그치리라"하신다면, 오히려 바라는 마음이 아득하기는 하나, 그 바닷물은 언젠가는 마를 때가 있으려니와, 지옥의 괴로움은 영원히 그칠 때가 없는 것을 알므로, 바랄 것이 아주 없으니, 그 쓰리고 아픔이 어찌 비할 데가 또 있으리요? 어떤 사람이 묻기를, "죽은 후에 화복이 비록 있다 하나, 세상의 아무고 가본 이가 없고, 이 세상 복은 눈으로 보고 몸으로 받으니, 이 세상에서 잘 먹고 잘 입는 것이 좋다. 죽은 뒤의 일을 누가 알리요?" 대답하기를, 세상일이 눈에 보이는 것만으로써 다 믿을 길이 없으며, 이치로 생각하여야 참으로 미쁜 것이다. 달을 눈으로 보면 쟁반만 하지만, 이치로 생각하면 쟁반보다 억만배나 더 크니, 눈으로 작아 보이는 것은 믿을 바가 못되고, 이치로 생각해서 큰 것이 옳으니라. ……

슬프다! 천주의 상선벌악하시는 도리를 듣고, 生前死後의 사정을 알면서도, 오히려 아득히 깨닫지를 못하고, 번개같은 세상의 잠깐 동안의 즐거움을 위하고, 눈앞의 좋음을 잊지 못하여 헛것을 참 것으로 알고, 중한 일을 경한 일로 알았다가 , 죽은 후에야 비로소 눈으로 보고, 몸으로 당하여 놀라고 슬퍼하여, 아무리 울고 뉘우친들 무슨 소용이 있으리요? 이 세상에 있을 적에 선을 행하였으면 공이 되어 유익하려니와, 죽은 후에 비록 마음은 없어도 할 일없이 믿으나, 이때에 믿는 것이 무슨 효험이 있으며, 어찌 때가 늦지 아니하리요?

33. 천주께서 엿새만에 천지 만물을 내시니라.

(엿새 동안이라 함은 현재와 같이 24시간 되는 하루가 아니요, 그 당시의 하루는 몇 천년이나 몇 만년 이상이 됨-1932년 활자본의 설명임)

천주께서 처음에 아무것도 없는 데에서 천지를 내시고, 또한 무수한 천신을 내시니. 그 천신의 성품이 다 착하고 형상이 없이 신묘하고 정통(精通)한지라, 그 품이 아홉 층이 있는데, 그 중의 상품(上品)으로 대천신 하나가 있으니, 그 이름은 누지불(루치펠)이다. 천주께서 큰 재능과 슬기를 주시니, 그 천신이 자기의 신통(神通)하고 기이함을 알고 스스로 교만한 마음을 내어, 망녕되이 천주와 같노라 하면서, 다른 천신더러 저를 위하고 섬기라 하였다. 천신 중에 또 대천신 하나가 이름은 미가엘인데, 누지불의 일을 절통히 여기고 또 천주를 모든 천신의 근본과 주재 (主宰)가 되시는 줄을 알아, 그 은혜를 감사하고, 그 높으심을 우러러 존경하여 지성으로 받들며, 천신 중의 3분의 2를 거느리고, 한결같이 천주를 극진히 섬겼다. 천주께서 그 충신되는 천신을 천당에 두사, 무궁한 복락을 누려 길이 착한 천신이 되게 하시고, 그 역적되는 천신은 지옥에 내려 무진한 벌을 받아 길이 마귀가 되게 하시니라. 천주가 엿새만에 만물을 만드실 제, 먼저 천지를 내시니, 혼돈하여 차례가 없는지라 이에 차례를 정하실 째, 첫날은 한번 명하시어 눈 깜짝할 사이에 빛을 내시고, 이튿날은 땅의 높은 데를 산으로 삼으시고 땅의 낮은 데를 바다로 삼으시고, 또 땅에 초목과 곡식이 나게 하시고, 나흗날은 해와 달과 별을 만드시어 밤낮과 절후를 나누게 하시고, 닷새날은 물 속에 만가지 고기와 공중에 만가지 나는 새를 나게 하시고, 엿샛날은 땅에 만가지 짐승과 곤충을 나게 하시고, 나중에 사람을 내시니, 어찌하신 뜻인고? 천주께서 우리 사람을 사랑하심이 마치 부모가 자식을 사랑함과 같으시니, 부모가 자식을 위하여 먼저 집을 짓고 논밭과 가장 집물(家藏什物)을 장만한 후에 자식을 살리니, 천주도 이러하시어 먼저 하늘을 내어 덮게 하시고, 땅을 내어 싣게 하시고, 해와 달을 내어 비치게 하시고, 오곡백과를 내어 기르도록 마련하시고, 나중에 사람을 내시니라.

34. 세상이 본디 좋더니 사람의 처음 조상이 천주께 죄를 지으매, 좋던 세상이 괴로워지고, 착한 사람이 다 그릇되었느니라

천주께서 황토(黃土)로 한 육신을 만드시고, 신령(神靈)한 혼을 결합하여 한 사람을 내시니, 그 이름은 아담이라[아담은 황토라는 말], 천주께서 아담으로 하여금 잠을 깊이 들게 하시고, 그 갈빗대 하나를 빼내시어, 한 계집 사람을 만드시고 한 영혼을 결합하시니, 그 이름은 에와라[에와란 뭇사람의 어미라는 말], 두 사람이 다 장성한 몸으로 나서 짝지어 부부가 되니, 부부의 몸이 본디 한 몸으로 생겼으니, 마땅히 서로 사랑하게 하심이요, 또 여자가 사내에게서 난 것이니, 아내는 마땅히 남편에게 공손케 함이라. 천주께서 두 사람에게 자식 낳을 능을 주시어 자식을 낳으니, 하늘 아래의 억만 사람이 다 그의 자손이 되므로, 우리 사람이 서로 사랑하기를 한 부모에게서 난 동기같이 하게 하심이니라.

천주께서 아담과 에와에게 특별한 은혜를 베푸시어, 그 성품이 착하고 사욕이 없고 그 슬기가 밝아 흐린 곳이 없으며, 마음이 극히 발라서 편벽되지 아니하니, 이것은 영혼의 복이로다. 또 천주께서 이 세상에 한 좋은 곳을 마련하였으니, 그 이름이 지당(地堂)이라, 이 두 사람을 지상에 살게 하였는데, 지당은 춥지도 덥지도 아니하며, 오곡백과가 절로 나서 밭갈지 아니하여도 먹을 것이 넉넉하고, 옷을 입지 아니하여도 몸이 빛나 부끄러움이 없고, 또 모든 짐승이 사람의 말을 잘들어 범과 뱀같은 것이라도 사람을 해치지 못한다. 또 병도 없고 아픔도 없어 몸이 죽지 아니하고, 세상에 있을 기한이 차면 산 몸으로 천당에 올려 천신의 빈 자리를 채우게 하시며, 또 그 만대 자손도 다 복을 누리게 하실 것이로되, 이런 무궁한 은혜를 공없이 그저 주지 아니하는지라, 먼저 공을 세우고 후에 복을 받게 하려 하시어, 천주께서 원조[元祖: 으뜸 조상이란 말이니 아담과 에와]에게 이르시기를, "지당의 백가지 실과를 다 먹되, 다만 한 가지 선악과는 먹지 말라. 만약 이 실과를 먹으면 은혜를 잃어 이 세상 에서 무수한 괴로움을 받을 것이요, 또 이 죄로 너희 만대 자손에게까지 화가 미치리라"하였다.

이때에 마귀가 사람이 천주의 은혜를 두터이 받아 세상에서 지당복을 누리다가 뒷세상에 천당 복을 얻어 저희들이 앉았던 자리에 올리려 하심을 알고, 깊이 샘하는 마음을 내어 그 복을 잃게 하고자 할 째, 저 사람이 마귀의 말을 듣지 아니하면 은혜를 보전하여 공이 될 것이요, 사람이 마귀의 꾀임을 들으면 은혜를 잃어 죄가 될 것이다. 이에 마귀가 지옥에서 나와 먼저 에와를 꾀이기를, "지당의 백가지 실과를 다 먹되, 어찌하여 오직 선악과 한 가지를 천주께서 너희더러 먹지 말라 하셨느냐?"대답하되, "만일 이 실과를 우리가 먹으면 죽는다고 하셨기 때문이다"하니, 마귀가 속여서 하는 말이. "그렇지 아니하다. 네가 만일 이 실과를 먹으면 슬기가 천주와 같아져서 모를 일이 없겠기에 천주가 너희더러 먹지 말라 한 것이다." 에와가 그 꾀임을 듣고 망령되이 천주와 같이 될 마음을 내어, 그것을 따먹고, 또 아담에게도 권하여 먹으라 하니, 아담이 또한 아내의 말을 듣고 받아먹으니, 슬프다! 눈 깜짝할 사이에 즐겁던 세상이 갑자기 괴로운 세상으로 변하여, 춥고 더우며, 배고프고 목 마르며, 수고롭게 밭갈이한 뒤에야 곡식이 되고, 부지런히 길쌈한 뒤에야 옷을 얻어 입으며, 또 천주는 사람의 임금이 되시고, 사람은 만물의 임금이 되거늘, 이제 사람이 천주께 되를 범하였으니, 만물도 그 갚음으로 사람을 해치게 되어, 뱀과 범같은 것이 다 능히 사람을 죽이고, 만가지 병이 때때로 일어나 죽기를 면치 못하니, 이는 육신의 병이지만 그 영혼의 병은 더 크고 더 중하여, 마음의 밝음이 변하여 어두워지고, 성품의 어짐이 변하여 글러지고, 마음에 잡은 주장이 남았으나, 이미 편벽되고 바르지 아니하여 착한 일을 하기는 여울을 거슬러 올라가기와 같이 어렵고, 악한 일 하기는 언덕을 달려 내려가는 것과 같이 쉽게 되었다. 천주의 어지심 마음이 도리어 진노하시고, 사람은 높은 복을 잃고 마귀의 종이 되어, 한평생 괴롭고 수고롭다가, 죽은 뒤에는 지옥의 무한한 괴로움을 박고, 또 만대 자손이 마찬가지로 그 원죄의 벌을 입어, 죄의 더러움에 허덕이는지라, 그러므로 성경에 일렀으되, 어린아이가 땅에 떨어지면 다 죄인이라 하였으니, 이는 원조의 죄를 이르심이라. 하물며, 장성한 사람은 원조의 죄 뿐 아니라, 거기에 또 자기의 지은 죄를 더하였으니, 그 죄를 어찌 다 말하리요? 어떤 사람이 묻기를, "원조의 실과 먹은 죄가 무슨 큰 죄이기에 그 벌이 이렇듯이 중한고? 또 자손 만대에게까지 미친다는 것은 어찌 된 일이냐?" 대답하기를, 죄악의 가볍고 무거움이 죄 지은 곳의 높고 낮음에 달렸으니, 이를테면 백성이 원에게 죄를 지었으면, 그 형벌이 볼기를 맞을 것이요, 감사에게 지었으면, 형추(形推)를 당할 것이며, 임금에게 지었으면, 귀양갈 것이여, 천자께 지었으면, 죽기를 면 치 못할 것이니, 죄는 한 가지로되, 죄지은 곳이 높을수록 그 형벌이 더욱 무거운 것이다. 이제 원조의 실과 먹은 죄가 무궁히 높으신 천주께 범하였으니, 천주는 무궁히 높으신 즉 그 죄가 무궁히 무거울 것이요, 그 죄가 무궁한 즉 그 형벌도 무궁할 것이니, 어찌 무궁한 괴로움을 면하며, 또 만대의 자손인들 어찌 그 벌을 면하리요? 비유컨대, 사람의 조상이 임금께 죄를 지었으면, 그 자손이 대대오 변방에 수자리 살고 종이 되는 법이 있으니, 원조의 벌이 그 자손에게까지 연루됨을 어찌 마땅치 아니하다 하리요?

(35-38)

39. 세상이 끝날 때에 천주 예수께서 다시 내려오시어 천하고금 사람들을 다 심판하시느니라.

천주께서 이미 세계를 내셨으니, 반드시 세계를 끝내실 날이 있을 것이다. 세계를 끝내실 때에 예수께서 하늘로부터 다시 내려오시겠노라 하시니, 그 제자들이 묻자오되, "어느 때에 내려오려 하시나이까?" 예수께서 이르시기를, "하늘에 있는 천신도 그 때를 알지 못하느니라" 하시고, 그 때를 일러주지 아니하시되, 그 때에 하실 일을 미리 일러 가라사대, 세상이 장차 끝날 때에는 천하 만국이 서로 싸우고 서로 죽이며, 흉년이 들고, 나쁜 병이 크게 돌고 재앙이 무수하여 사람이 많이 죽고, 바다가 뒤끓고 산이 무너지며, 온 땅이 진동하고, 하늘이 어즈러이 흔들리며, 해와 달과 별들이 다 그 빛을 잃는다. 세상이 끝날 날이 이르매, 하늘로부터 큰불이 내려와 초목과 짐승과 사람을 죄다 불태우고 천주께서 무수한 천신을 시켜 천하 고금의 죽었던 사람을 불러내어, 천주의 무궁하신 힘으로 다시 살리시니, 무덤 속에서 썩어 흙이 된 몸이 눈 깜짝할 사이에 본 몸을 이루고 천당에 있던 영혼과 지옥에 있던 영혼이 세상에 나와 각각 제몸에 결합하여 완연히 산 사람이 되니, 이때에 천신이 뭇사람을 데리고 오리와 골짜기에 모이고, 예수께서 못박혀 구속하신 십자가가 홀연히 공중에 나타나 보이니, 착한 사람은 십자가를 보고 감사하여 기뻐하고, 악한 사람은 십자가를 보고 제 죄를 생각할 것이니, 어찌 놀랍고 무서워하지 않으리요? 천주 예수께서 구름을 타고 하늘로 부터 내려오시니, 뭇사람이 눈으로 그 얼굴을 보고 귀로 그 소리를 들으리라. 예수께서 세상에 계실 제는 인성을 취하여 천주의 무궁하신 위엄을 갖추사 다만 인자하시고 겸손하시고 인내하시는 모든 덕으로써 우리 사람을 가르쳐 구속의 일을 공부하시었으나 이때에 이르러서는 그 위엄과 영광이 천지에 진동하여 당신의 지극히 공번되시고 지극히 의로우심을 혁혁히 나타내어 보이시니라. 예수께서 이미 내려와 임하시매, 성모 마리아는 천주의 왼쪽에 가까이 계시고, 무수한 천신들을 차례로 옹위하여 뫼시느니라. 천하 고금 사람이 세상에서 생각한 바와 말한 바와 행한 바가 착하나 그르나 낱낱이 다 드러나 뭇사람이 서로 그 선악을 알게 되어 가리움이 없느니라. 천주께서 착한 사람을 상주어, 그 육신과 영혼을 같이 천당에 올리시어 무궁한 복을 누리게 하시고, 악한 사람을 벌하시어 그 육신과 영혼을 같이 지옥에 내리시어. 무궁한 괴로움을 받게 하시니, 지옥은 영구히 닫히고, 천당은 무궁세에 이르느니라. 어떤 사람이 묻기를, "지금 사람이 죽으면 천주께서 그 선악을 낱낱이 심판하시어, 상과 벌을 이미 정하고 계신데, 어찌하여 세계가 끝 날 때에 다시 심판을 하시는가? " 대답하기를 이는 천주께서 그 지극히 의롭고 지극히 공번되심을 나타내기 때문이라. 세상에 악한 사람도 부귀를 누려 종신토록 즐거워 하는 이가 있는가 하면, 착한 사람도 비천하여 일생을 고생으로 지내는 이가 있느니, 사람들이 이런 일 을 보고, 천지에 주재자가 아니 계신가 의심도 하고, 혹시 공번되시지 못한가 의심하므로, 천주께서 뭇사람 앞에서 그 상과 벌을 공평히 판정하시는 것이니, 악한 사람도 그 중에 한두 가지 착한 일이 있기에 천주께서 지극히 공번되사 한 가지의 착한 일도 갚지 아니하시는 일이 없으므로, 이 세상에서 작은 복을 주사 그 작은 선을 갚으시고, 죽은 뒤에는 지옥에 내려서 그 평생의 악한 일을 벌하시는 것이요, 착한 이도 그 중에 한 두가지 허물이 있는 것이니, 천주께서는 지극히 엄하사 한 가지의 허물도 벌 아니 하심이 없으므로, 이 세상에서 작은 괴로움을 주시어 그 작은 허물을 단련하시고, 죽은 뒤에는 천당에 올리어 그 평생의 착한 일을 갚으시는 줄을 이 때에 모든 사람이 다 시원스럽게 알게 하는 것이니라. 또 사람이 세상에 있을 때는 그 속마음을 알 길이 없어, 악한 사람도 겉으로 착한 체하면 남이 모르고 착한 줄로 알며, 착한 사람 도 괴로움을 받으면 남이 모르고 악한 줄로 알아, 사람의 선악이 분명히 드러나지 아니하므로, 천주께서 한번 공번되이 심판하사, 각각 사람의 숨은 선악을 명백히 드러내시어, 천하고금 사람으로 하여금, 다 서로 보고 서로 알아서, 천주의 지극히 공번되심을 이때에 바야흐로 알게 하시느니라. 어떤 사람이 또 묻기를, "사람의 영혼은 죽지 아니하여 상과 벌을 받으려니와, 사람의 육신은 이미 죽어 흙이 되었으니, 어찌 다시 살아나 상과 벌을 받으리요?" 대답하기를, 육신이 다시 살아난다는 말은 천주 예수께서 친히 입으로 하신 말씀이니 반드시 가히 믿을 것이요, 또 이치를 생각해 보아도 가히 알 것이라. 천주께서 천지를 만드실 때에 아무것도 없는 가운데서 천신과 사람과 만물을 내셨으니, 이미 없던 것을 내신 재능으로 어찌 이미 있던 사람을 다시 살리지 못하리요? 또 영혼과 육신이 두 가지를 한데 합하여야 완전한 사람이 되느니, 이제 천당에 오른 영혼이 비록 복락을 누리나, 육신과 합하기 전에는 반쪽 사람 모양이라. 필경 그 육신이 다시 살아나 영혼과 합하여야 완전한 사람이 될 것이니, 천주께서 어찌 천당에 있는 착한 사람을 반쪽으로 두시리요? 또 사람의 육신은 항상 살게 마련하셨는데, 이제 죽는 것은 사람이 아니라 원조의 죄로 말 미암아 죽는 것이니, 세상이 끝날 때에 원조가 끼친 죄벌도 끝나서 없어지니, 원조의 죄벌이 이미 끝났은즉, 본디 살게 마련인 육신이 어찌 다시 살아나지 못하리요? 또 사람이 착한 일을 하나 악한 일을 하나, 영혼이 혼자서 하지 못하고, 육신이 도와서 같이 하는 것이니, 마치 배고파하는 사람을 영혼이 먹이고자 하나 혼자서는 하지 못하고, 반드시 음식을 손으로 가지고 발로 걸어가서, 눈으로 보고 입으로 넣어 주어야 그 주린 사람을 먹일 수 있는 것이니. 그 손과 발과 눈과 입이 다 영혼을 따라 함께 공을 세움이 아니냐? 또 영혼이 남의 재물을 훔치려 하나, 혼자서는 하지 못하고, 반드시 발로 걸어가서 손으로 그것을 가져와야 도적질이 된다. 그 발과 손이 다 영혼을 따라 함께 죄를 저지르는 것이 아니냐? 육신이 이미 영혼을 따라 공을 세우고 죄를 지었으니, 육신이 마땅히 영혼을 따라 상을 타고 벌을 받을 것이다. 부활한 육신은 제 영혼과 결합되었던 본 몸이다. 만일 본 몸이 아니고 딴 몸이라면, 이는 죄없는 몸을 벌주고 죄있는 몸은 놓아줌이요, 공없는 몸을 상주고, 공있는 몸을 버림이니, 어찌 천주의 지극히 공번되신 벌이 이러하리요? 착한 이의 육신이 다시 살아나매, 천주께서 특별히 은혜를 베푸사, 처음 몸과 크게 달라, 병신도 없고 늙은 모양도 없고 어린 모양도 없어 다 예수의 모습과 같으니, 예수는 착한 사람의 머리가 되고, 착한 사람은 예수의 팔다리가 되니, 예수 께서 사람도 그 머리와 같아서 설흔 세살의 모습이 되므로, 그 기운이 선량하고 강건하며, 그 얼굴이 아름답고 기묘하니라.

천주께서 또 무궁하신 힘으로 네 가지 큰 은혜를 베풀어주시니, 하나는 무상손(無傷損)함 이니, 춥지도 아니하고 덥지도 아니하며, 병도 없고 괴로움도 없으며, 불에 타지도 아니하고 칼에 상하지도 아니하므로, 다시 죽는 일이 없어 무궁히 사는 것이요, 또 하나는 광명(光明) 함이니, 육신에서 기이한 영화로운 빛이 솟아나, 영롱하고 찬란함이 햇빛보다 몇 배나 더함 이요, 하나는 신속함이니, 이 세상 몸과 같이 무겁지 아니하고 가벼워서, 날개가 없어도 빠르고, 가지 아니하여도 이르니, 마음으로 가고자 하는 데는 하늘이나 땅이나 억만리라도 즉시에 이르러, 잠깐 동안도 기다리지 아니함이요, 하나는 투철(透徹)함이니, 쇠에도 들어가고 돌에도 들어가 아무데도 걸림이 없느니라. 이 몸이 무수한 천신과 무수한 성인들과 같이 예수를 모시고 천당에 올라가 무궁한 복락을 받아, 눈으로는 항상 좋은 모양을 보고, 귀로는 항상 기묘한 풍류를 듣고, 입에는 항상 아름다운 맛을 먹고, 코로는 항상 기이한 향내를 맡아, 온 세상의 유쾌하고 즐거운 일을 모두 합쳐서 한 사람의 몸에 누려도 천당 복락의 만 분의 일도 미치지 못할 것이다. 이것은 오히려 육신의 복이므로 형용하여 말할 수 있거니와, 영혼의 복락은 육신보다도 한없이 더욱 좋으니, 어찌 말로 형용하여 알게 하리요? 영혼이 항상 천주의 얼굴을 뵈와 무궁한 영광을 받고 만가지 즐거움을 누려, 뵐수록 더욱 사랑하고 누릴수록 더욱 새로워 그 마음에 가득히 차고, 또 천주의 사랑하는 자식이 되어, 천신과 성인과 더불어 서로 동기가 되고 서로 벗이 되어, 이렇듯이 무궁히 즐기니, 그 존귀하고 영화로움을 어디에다 또 비하리요? 악한 사람은 육신이 다시 살아나, 착한 사람과 반대로 그 몸이 검고 더럽고 흐리고 무겁고 흉악한지라, 천주께서 지옥에 내리시어 무한한 괴로움을 받게 하시니, 비록 제 몸을 찢어 죽고자 하여도 죽지도 못하여, 살아도 죽는 것만 못하다. 모든 악자의 육신은 서로 끼이고 서로 눌리고, 불 가운데 있어, 마치 불 속에 넣은 쇠가 안팎없이 다 소금에 절임과 같아, 서로 치고 서로 한탄하며, 마귀는 천방백계(千方百計)로 아프도록 하여, 무수히 난타(亂打)한다. 또, 눈으로는 항상 무서운 모양을 보고, 귀로는 항상 벼락치는 듯한 소리를 들으며, 입으로는 항상 만가지 독한 맛을 먹고, 코로는 항상 온갖 더럽고 독한 냄새를 맡는다. 온 몸은 아프고 쓰리어, 톱으로 켜는 것보다 더하고, 창으로 찌르는 것보다도 더하며, 숯불 에 타는 것보다도 더하니, 천하만고에 온갖 흉악 혹독한 형벌과, 만가지 아픈 괴로움을 한데 모아서 한 사람이 받아도, 지옥의 괴로움에 비하면 만분의 일에도 미치지 못하느니라. 또 영혼의 괴로움은 육신의 괴로움보다 억만배나 더하여 항상 울부짖기를, "내가 세상에 태어나서 잠깐 동안의 쾌락을 탐하다가 이런 흉악한 괴로움을 겪으니, 세상에 있을 적에 옳은 말을 믿고 천주를 섬겨 조금만 수고를 하였던들, 성인과 같이 천당에 올라가 무궁한 목숨을 얻고, 무한한 경사를 누릴 것을… 아주 쉬운 일을 못하고, 이제 이 불바다 속에 들어와, 다시 나갈 기약도 없이 이 괴로움이 만만년을 지나도 처음과 같고, 억만년을 그침이 없이 무궁세가 되도록 이 형벌 속에 있는 영혼과 육신은 죽어 없어지지 아니하리니, 이러한 슬픈 광경을 어디에다 다시 비하리요?"하느니라.

40. 천주께서 강생하신 의심을 밝힘이라

어떤 사람이 묻기를, "천주는 본디 시초가 없이 스스로 계신 이라 하는데, 어찌하여 한나라때 어머니가 계시어 낳게 한 것이라고 하는 가?"

대답하기를, 구세주 예수는 한 위(位)에 두 성(性)을 합하고 계시니, 하나는 천주성이요, 또 하나는 인성이라, 한나라 때에 어머니 뱃속 에서 나신 이는 인성을 이름이요, 천주성은 무시로부터 스스로 계시니, 어찌 한나라 때에 모친이 있어 비로소 났다 하리요? 예수의 천주성은 성모의 아들이 아니요, 오직 예수의 인성으로만 성모의 아들이 되시느니라.

어떤 이가 또 묻기를, "예수는 인도(人道)없이 나셨으니 어찌 된 일인고?" 대답하기를, 예수의 몸이 비록 사람의 몸과 같으시나, 천주성과 한 위(位)에 결합하셨으니, 그 몸이 천주의 존귀하심을 포함하여 받으신지라, 천주의 존귀하심을 포함해서 받으신 몸이 어찌 인도로 말미암아 나시리요? 반드시 천주께서 친히 내신 것이요, 또 동신(童身)에서 나신 것은 전능하신 천주되심이 나타나고, 성모의 태중으로 나심은 참 사람이신 증거이니, 그러므로 천주 성신의 전능으로 말미암아, 성모의 조촐하신 피로써 예수의 몸을 이루사 원조의 자손이 되시고. 우리와 같은 혈맥이 되시므로 원조의 지은 죄와 우리들의 지은 죄를 가히 예수 한 몸으로 푸실 것이요, 또 인도로 나신 몸이 아니므로 홀로 윈죄의 죄를 물들지 아니하여 계시니라.

어떤 이가 또 묻기를, "지극히 높으신 천주가 지극히 천한 사람과 결합하여 계심이 어찌 마땅하리요?" 대답하기를, 천주와 사람이 서로 결합함으로써 사람은 천주와 같이 높아지고, 천주는 사람과 같이 낮아지지 아니하니, 비유컨대 세상의 임금이 신하의 딸을 왕비로 삼아 배합하면, 그 여인의 낮은 것은 없어져도 임금의 높은 것은 높은 대로 있는 것과 같으니라.

어떤 사람이 또 묻기를, "예수께서 죽으실 때에 천주성은 죽지 아니하시고, 응당 인성만 죽으셨거늘, 어찌하여 천주께서 죽으셨다 하는고?" 대답하기를, 천주성은 비록 죽지 않는다 하 여도, 천주성은 죽지 아니하시고, 응당 인성만 죽으셨거늘, 어찌하여 천주께서 죽으셨다 하는고?" 대답하기를, 천주성은 비록 죽지 않는다 하여도, 천주성과 인성을 합하신 몸이 죽으셨으니, 비유컨대 사람이 죽을 때에 그 영혼은 죽지 않고 육신만 죽되, 그 육신이 이미 영혼과 결합하여 한 사람이 되었으므로, 사람이 죽으면 말하기를 육신이 죽었다고 하지 않고 사람이 죽었다고 하는 것과 같이, 이제 천주 예수께서 사람의 몸과 결합하여 한 위가 되셨으니, 그 몸이 죽으심을 보고 천주께서 죽으셨다고 말함이 어찌 옳지 아니하리요?

또 묻기를, "천주 예수께서 한 번 작은 괴로움만 받으셔도, 온 세상의 죄를 다 넉넉히 푸실 것이어늘, 어찌하여 만고만난(萬苦萬難)을 다 받으시어 죽기까지 하셨는고?" 대답하기를, 천주께서 죽으신 뜻이, 지극히 선하시니, 대개 천주께서 사람을 사랑하시는 마음이 무궁무진해서, 다시 더할 것이 없게 하려 하심이요, 또 천주께서 지극히 높으심과 사람의 죄가 지극히 중함을 보이고자 하심이요, 또 당신이 이미 사람을 위하여 죽기까지 하셨으니, 사람도 천주를 위하여 죽기를 사양치 말라 하심이라. 또 사람이 한가지 죄만 있을 것 같으면, 당신이 한 가지 괴로움만 받으셔도 충분하련마는, 사람이 죄를 범하지 아니한 곳이 없기에, 예수께서 거룩하신 몸에 형벌을 받지 아니한 곳이 없으시니라. 또 예수께서 사람을 위하여 자기를 천주 성부께 제사하여 드려 희생을 대신하시니. 희생이 죽지 아니하면 제사 드리는 예가 되지 못하므로 이와같이 예수께서 죽음을 받으사, 그 죽으신 몸으로 성부께 제사를 드리시니, 천주 성부께서 그 제사를 받으사 사람의 죄를 완전히 용서하여 주시니라. 천주께서 강생하시기 전에는 사람이 염소나 양으로 천주께 제사를 받들더니, 예수가 세상에 내려오실 제 부귀한 집에서 나지 아니하시고, 양의 우리에서 나서 양과 같이 제물이 되려 하였으므로, 그 죽으실 때에 특별히 춘분 때에 염소나 양으로 천주께 제사드리는 날을 가리어 고난을 받고 죽으신지라. 이 죽으신 예를 기억하여 천주교에서 무궁세에서 무궁세에 이르도록 예수의 거룩하신 몸으로 천주께 제사하여 드리느니라.

41-42

43. 사람이 천주교를 들으면, 즉시 믿어 받들어 행할지니라.

어떤 이가 묻기를, "이제 천주교에 대한 말씀을 들으니, 마땅히 믿어 행할 일이로되, 천천히 내년부터 시작하면 어떻겠느냐?" 대답하되, 그른 일을 버리고 옳은 노릇 하기를 어찌하여 지금 당장에 못하고 내년을 기다리리요? 자식이 부모를 섬기려 함에 어찌 오늘은 못 하고 내일부터 하겠다고 하리요? 이제 천주께서 세상사람의 공번된 부모가 되시니, 이미 부모 되시는 줄을 알고도 어찌 그 자리에서 섬기지 아니하리요? 이왕에 죄를 많이 짓고도 오히려 부족하여, 하루라도 죄를 더 짓고서 천주의 은혜를 받아 착한 공부를 하겠다는 것이냐? 지금 하기 싫은 일이 어찌 내년에는 좋아지리요? 또 내년이란 말은 실로 헛말이요, 하기 싫은 핑계이니, 어찌 내년엔들 진정으로 하고자 하는 마음이 있으리요? 슬프다! 이러한 사람들이 하루 가고 이틀 가고, 한해되고 두 해되어, 죄악이 더욱 깊어질수록 천주께서 더욱 멀리 하사, 착한 공부를 행하기가 더욱 어려워질 것이다. 내년이 지나면, 또 내년을 기다리다가 필경 그 모양으로 죽어 몸은 널 속에 들어가고, 영혼은 지옥에 떨어지면 내년이 다시 없으리니, 그 지경에 이르러서는 내년을 기다린다고 한 말이 무슨 유익함이 있으리요? 비유컨대, 독 속에 있는 물은 종지로 퍼내어 한 번 푸고 두 번 푸고, 천만번을 퍼내면, 필경 그 독의 물이 다 없질 것이다. 사람이 세상에 태어나서 하루가 지나가고, 이틀이 지나가고, 천만날이 지나가면 필경 죽을 기한이 올 것인데, 독의 물이 없어진 것을 보고, 맨 나중의 종지가 그 물을 다 없앴다고 할 것인가? 반드시 첫 종지부터 물이 없어졌다고 할 것이며, 사람이 죽는 것을 보고 어찌 죽는 날에야 죽었다고 하리요? 반드시 나던 날부터 죽어간다고 해야 할 것이다. 그러므로, 사람이 세상에 살매, 하루가 지나면 무덤이 하루 만큼 가까워지고, 한 해가 지나면 무덤이 한 해만큼 가까워지는 것이니, 날마다 무덤을 향하여 가면서, 어찌 내년을 기다리고 공부시작 을 미루리요? 또, 그럴지라도 죽을 날을 미리 안다면 오히려 천천히 할 수도 있으려니와 죽는 날을 미리 알 길은 없다. 사람이 열병에 걸려 땀을 내지 못하면 육칠일 만에도 죽고, 바람 을 맞아 급히 막히면 눈깜짝할 사이에도 죽고, 음식을 먹다가 잘못하여 죽기도 하고, 물과 불과 범과 뱀이 다 사람을 갑자기 죽게 하는 수도 있다.

이렇듯이 죽는 일을 너도 어느날 어느 때에 어느 곳에서 당할 지 모르는데, 그래도 장래를 기다리고 방심하느냐? 세상 사람이 늙어서도 죽고 어려서도 죽으며, 악한 이도 죽고, 착한 이도 죽어, 사람이 죽었다는 소문이 날마다 내 귀에 들리는데, 너만은 죽지 아니할 줄로 아느냐? 어찌 남 죽는 소문은 네 귀에 들리고, 나 죽은 소문은 남의 귀에 들리지 아니하랴. 죽는 날을 미리 정할 길이 없으니, 사람이 한번 죽으면, 즉시 천주께서 무궁무진한 화복을 판단하시는지라, 천하에 이러한 무서운 일이 다시없거늘, 꼭 살는지도 모르는 내년을 어찌 기다리랴.

슬프다! 오늘 이 시각에도 죽는 사람이 얼마나 되는지를 모르는데, 그 속에서 내년 을 기다리다가 지옥에 들어간 이가 무수할 것이니, 너도 내년이란 말을 다시는 말지니라. 사람이 개과천선하면, 천주께서 그 죄를 용서함을 허락하시지만, 장래를 기다리고 미루어 가는 사람에게는 훗날을 허락하지 아니 하시느니, 오늘부터 곧 시작하여 미루고 핑계하지 말지어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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